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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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https://arca.live/b/destinychild/24223609




카지노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럭저럭 즐거웠다.

애초에 슬롯머신이야 룰을 몰라도 간단히 즐길 수 있는 것이고

구미호와 메티스도 도박을 통해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재밌는 걸 해본다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승패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 도박은, 블랙잭이에요."

"블랙잭?"

"네. 카드의 숫자를 합쳐서 21에 가깝게 만들면 이기는 게임이에요. 22 이상이면 죽는 거고, 에이스는 1과 11을 겸하죠. 알파벳은 모두 10에 해당하고요."

"음... 난 안 할래. 구미호, 아까 하던 블루마블 한 번 더 하자."

"나는 좋다는 것이다. 딜러, 당신은?"

"하아... 이런 애들 보드게임이나 하려고 딜러를 한 건 아닌데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클로토는 의자에 앉았다.

"애들 보드게임 하다가 판 엎은 게 누군데?"

"그, 그건 구미호씨가 속임수를 써서 그런 거예요."

"그래. 네 말이 다 맞다는 것이다."

클로토는 빈정거리는 구미호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주사위를 흔들었다.

"이번에는, 제가 반드시 이깁니다."




"우와..."

"이, 이럴 리가..."

클로토는 넋을 잃고 판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어째서...

"두 바퀴만에 파산이라니. 대단하다는 것이다."

히죽히죽 웃으며 클로토의 씨앗지폐를 가져가는 구미호의 모습은 악마보다도 더 악마 같았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놀고 나니 시계는 어느새 오후 4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으윽... 한참 앉아있었더니 허리가 다 아프다는 것이다. 딜러, 이 섬에 더 재밌는 곳은 없냐는 것이다."

"제 이름은 클로토입니다. 재밌는 곳이라... 아, 그랑프리가 열리는 레이스 경기장은 어떠신가요? 분명 오늘 경기가 7시부터 있다고 들었는데요."

"레이스? 재미는 있겠는데..."

"숙소 가서 잠시 쉬었다가 나가면 딱 맞겠다는 것이다."

"네. 경기장은 두 분의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시간은 넉넉할 거예요."

"고마워. 그리고 덕분에...오늘은 저기, 즐거웠어."

"그랬나요? 그러셨다면 영광이네요."

클로토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테이블에서 트럼프 카드를 하나 꺼내 메티스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뭐야?"

"저도 오늘 조금 즐거웠거든요. 그 답례에요."


"나도 뭐, 그럭저럭 재밌었다는 것이다."

"아, 네."



"그럼 구미호, 이따가 그 그랑프리라는 거 보러 갈 거야?"

"나는 그러고 싶은데, 메티스는 어떻냐는 것이다."

"나도 좋아. 재밌을 것 같아."

저녁의 예정과 오전오후 내내 했던 놀이에 대해 얘기하며 카지노를 나가던 메티스는 갑자기 자신들을 덮치는 그림자에 놀라 작게 비명을 질렀다.

"아 거, 미안하게 됐수다. 내 차일드가 말을 안 들어서. 빨리 일어나지 못 해?"

"조심 좀 하라는 것..."

놀란 메티스를 보고 화가 난 구미호가 소리를 지르려다가 숨을 들이켰다.

"나... 나비?"

둘을 덮친 그림자는 나비였다.

메티스는 왜 나비가 다리를 후들거리며 여기 있는지, 왜 저 악마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있는지도 신경쓰였지만

그보다 신경이 쓰인 건 나비를 자신의 차일드라고 한 눈 앞의 악마였다.

"누가 니 차일드라고?"

"뭐야. 네 녀석들 친구라도 되나보지? 미안하지만, 이 차일드는 이제 내 거라서 말이지. 신경 끄고 가던 길이나 가."

"나비는...!"

우리 주인의 차일드야, 라고 말하려 했는데

말문이 꽉 막혀버렸다. 왜일까.

"손님들, 카지노에서 소란은 금물입니다."

메티스가 패닉에 빠져있을 때, 어느새 클로토가 나타나 패악질을 부리던 악마를 제지했다.

"쳇. 이 자식들이 내 차일드한테 오지랖을 부리잖아!"

"손님, 정말인가요?"

"......"

"손님?"

"나비는 내 주인의 차일드라는 것이다. 저 악마가 거짓말을 하고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주인이 어디 있는데! 지금이라도 오면 곱게 돌려주고 내 사과도 하지."

하나같이 억지스러운 주장이었지만

상대는 악마... 논리가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양 쪽 분 모두 주장을 굽히지 않으시는군요. 그렇다면... 이렇게 하죠. 이 곳은 카지노. 도박으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보세요."

"도박? 좋지. 내가 도박으로 딴 차일드만 한 다스는 되거든!"

클로토는 크하하하 하고 천박하게 웃는 악마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메티스에게 물었다.

"괜찮으신가요?"

"...응."

"그럼 종목은... 그래요, 가위바위보가 좋겠네요."

"뭐? 지금 장난해?"

"어머. 이렇게 싸움을 중재해드리는 것만으로 이미 편의를 많이 봐드리는 건데요?"

"말은 좋군. 그래! 가위바위보든 뭐든 하라고!"

"그럼 제 입회 하에 두 분의 도박을 시작하겠습니다. 상품은 이 차일드의 소유권, 으로 괜찮겠죠?"






당연한 결과지만 승부는 메티스의 승리였다.

승부에 불복하려하던 그 악마도 클로토가 유노의 이름을 들먹이자 깨갱하며 한 발자국 물러섰고 나비도 몸에 상처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셋은 무사히 오디세우스가 운전하는 차에 나란히 앉아 숙소로 가는 길에 올랐다.

메티스의 눈에 비치는 차창 밖의 푸른 하늘은 정말 예뻤지만

메티스의 마음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셋을 데려다준 오시페우스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차를 몰고 돌아갔다.

여전히 멍한 표정의 나비를 한 번 쳐다본 메티스는 말 없이 숙소로 걸음을 옮겼고

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메티스를 따라 들어갔다.

나비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싶은 메티스였지만 멍한 그 표정에 말문이 막힌 메티스는 소파에 힘 없이 앉아있는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래도 주인 앞에서는 말을 좀 하던데...'

생각해보면 출발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목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다.

평소에야 얼굴을 마주칠 일도 별로 없으니 신경쓰지 않았지만

이렇게 한 공간에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약간 나른한 기분으로 나비를 바라보고 있던 메티스의 눈이 크게 떠진 건

그녀의 시선이 나비의 발에 닿았을 때였다.

"나비! 너 발이.. 발이 왜 그래?"

"......"

갑작스레 소리치는 메티스의 모습에

나비는 조금 놀랐는지 눈을 깜빡거렸다.

하지만 메티스가 소리를 지를 정도로 나비의 발 상태는 너무나도 나빴다.

멀리서 보아도 그녀의 발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고 발톱은 언제 깨진 건지 피가 덩어리져있었다.

그 모습에 놀란 메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비의 발을 몇 번 문질러주었다.

그러고보니 나비의 발도 발이었지만

다리도 상태가 안 좋아보였다.

'아까 카지노 앞에서 다리를 후들후들 떨던 건,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었어.'

"이런 쪽으로는 잘 안 써봐서 모르겠는데, 곧 괜찮아질거야. 그런데...다리랑 발은 왜 이렇게 된 거야?"

"... 둘을 따라가느라..."

나지막히 대답하는 나비의 목소리에 메티스는 말문이 턱 막혔다.

구미호는 둘의 모습을 보며 꼬리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너..한테도 호출기 줬잖아. 그거 쓰면 데려다 줬을텐데?"

"그 차일드는...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우릴 찾으려고 웬종일 걸어온거야?"

메티스의 질문에

나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멍한 그 표정에 메티스는 언성을 높혔다.

"나비 너 바보 아니잖아. 우리는 아는 사람이라서 그 차일드 부른 거 같아?"

"...미안해."

"미안하면 알아서 좀 잘 하든지, 왜 사람을 신경 쓰이게 만들어? 그냥 그렇게 있으면 주인이..."

나비에게 쏘아붙이던 메티스는 주인이라는 말을 꺼내고 나서야 아차싶었는지 입을 다물었고

나비는 고개를 숙이고서 종아리를 주물거렸다.

"메티스. 나는 잠시 나갔다 오겠다는 것이다."

여태 들어본 적 없는 구미호의 차가운 목소리였다.

"응."



"...메티스. 미안해."

"......"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린 창밖.

어색한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나비였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어쩐지 그 얼굴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메티스는 마음이 아팠다.

메티스가 나비에게 쏟아붓던 말을 멈춘 이유는, 나비의 모습에서 자신의 과거를 보아서였다.

악마와의 대화를 포기하고

다른 차일드들과의 대화를 포기하고

마음의 벽을 쌓아 올렸던 그 때.

그 벽을 허물고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건 악마였다.

'주인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계속 그랬겠지.'

나비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아마 나비도 그 때의 자신과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메티스가 나비에게 공감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자꾸 화가 났던 건

옛날의 자신이 하지 못 했던 것을 나비는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 하지만

자신과 구미호에게 어떻게든 다가오기 위해 노력하던 그 행동들.

자신도 하고 싶었지만 주인의 도움 없이는 하지 못 했던 것들이었다.

그런 나비의 노력이 무의식 중에 거슬렸던 거라고 생각하니

메티스는 스스로가 끔찍하게도 싫어졌다.

"메티스...울어?"

어느새 메티스는 울고있었다.

"그...런거 아니야."

차분하게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는 마구 떨리고있었다.

눈 앞에서 나비가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데도,

스스로밖에 생각하지 못 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좀 진정이 되고 나서야

메티스는 입을 열었다.

"...저기, 나비.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응."

"주인도 없었는데.. 우리랑만 같이 이 섬에 온 이유가 뭐야?"

난데없는 질문에 잠시 멍하니 있던 나비는 이내 입을 열었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어. 악마가 다른 차일드들과 지내는 걸 보면... 행복해 보인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나도 메티스 너나 다른 차일드들과 친해지고싶었어."

조용히 내뱉듯 말하는 그 말에

메티스는 또 눈물이 흘러넘치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미안해... 나비. 네가 나한테 다가오는 걸 쳐내고... 네가 혼자 있게 해서..."

나비는 가만히 메티스의 말을 듣더니 조심스럽게 메티스의 옆으로 옮겨 앉아 메티스의 손을 잡아주었다.





"다리 많이 아프지? 내가 주물러줄게."

억지로 나비를 소파 위에 눕힌 메티스는 나비의 치마를 걷어올렸다.

"자, 잠깐..."

"가만히 있어봐. ...나비, 많이 아픈 것 같은데. 다리가 꿈틀꿈틀거려."

메티스가 안마를 마친 건

나비가 축 늘어져 녹초가 되었을 때였다.



"저기, 나비."

"응."

"그... 살로메 말고 친한 차일드 있어?"

나비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럼 있지... 나랑 친구 할래?"

수줍은 메티스의 말에 나비의 눈이 처음으로 크게 떠졌다.

"놀 때 같이 놀러가고, 웃을 때 같이 웃고. 울 때는 또 같이 우는... 그런 거 말이야. 아니, 싫으면 어쩔 수 없고..."

"아니. 난 정말 좋아. 고마워, 메티스."

그 미소는 악마와 있을 때도 보여주지 않던,

희미하지만 눈부신 미소였다.



해변을 따라 걷다가 완전히 밤이 돼 집에 들어온 구미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리모콘을 만지작 거리고있는 메티스와 나비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런 거 보는 건 어디서 배운 거야?"

"응... 악마도 자기도 집에 없을 때 보라고 살로메가 알려줬어."

"그랬구나. 오늘도 무서운 거 보자. 어, 구미호. 언제 왔어?"

"방금 왔다는 것이다. 바베큐를 하고있길래 잔뜩 얻어왔다는 것이다."

"맛있겠다. 나비, 구미호가 가져온 거 영화 보면서 먹자."

"응. 좋아."

구미호는 사이가 좋아진 둘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 날 밤 숙소에서는 구미호와 메티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를 않았다.

나비도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가끔 흡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바베큐가 식어가는 것도 잊은 채

처음 생긴 친구와 영화를 보았다.




"......"

그리고 또 다시

메티스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어두운 숙소 안

그림자에서 손이 자신의 발목을 잡을 것 같은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화장실을 다녀온 메티스는 도통 잠에 들지를 못했다.

그렇게 침대에서 뒤척이고 있으니

조용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티스. 잠이 안 와?"

"나비? 깨있었어?"

어느새 침대에 앉은 나비는 이불을 들어올리고서는 손짓으로 메티스를 불렀다.

나비의 침대는 1인용이라 조금 작았지만

두 명이 눕기에 그리 좁지는 않았다.

"그... 아까 영화 본 게 무서워서 이러는 건 아니야."

"응. 나도 알아."

메티스와 마주보고 누운 나비는 조심스레 메티스의 머리를 한 번 쓸어넘겨주었다.

"사실은... 어제도 메티스가 잠 못 자는 거, 봤어."

"저, 정말?"

"응. 그래서 부르고 싶었는데... 어제 우리는 안 친했으니까."

힘 없이 말하는 나비의 목소리에 어느새 눈꺼풀이 무거워진 메티스는

무슨 말을 하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잘 자, 내 친구 메티스."






창작물이지만 이제 그 관심이 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