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너머 가을의 하늘은 높고 공활하다.

높고 구름한점 없는, 너무나 깨끗한 하늘이었다.


그게 기분 나빴다.


[오전 07:33 , 2023-09-21]


차라리 비라도 추적추적내렸다면 좀 나았으려나?

아니, 그래도 좆같았을 테지.


어차피 답은 정해져있다.

오늘은 좆같은 날이라고.

왜냐면 6년간 꾸준히 해온 데스티니차일드가 서버종료를 하는날이니까.


"씨발..."


7월에 갑작스레 올라온 서버종료 공지는 오늘까지 번복되지않았다.

그러니 이 다음수순도 정해진대로 일 것이다.


아마 내가 출근한 사이에 데스티니 차일드는....


"에휴."


출근 전 나는 마지막으로 데스티니 차일드에 접속하고자 컴퓨터를 켰다.


곧 익숙한 BGM이 들려온다.

익숙한 화면이 나타났다.


커서로 클릭하자 로비화면으로 넘어간다.

중앙에는 야광봉든 싴틀이가 보였다. 


나는 잠시 멍하니 그것을 바라봤다.


그러다 커서로 싴틀이의 뱃살을 누르자 야광봉을 휘저으며 애교를 부린다.


"...귀엽네."


오늘 처음으로 웃음이 났다.


"처음 나왔을때도 존나 웃었는데."


그것이 매게가 된 것일까?

조금은 추억에 잠기고 싶어졌다.


화면을 옮기자, 차례차례 쌓여있는 차일드들이 보였다.

나는 순서대로 그것들을 어느하나 빠짐없이 차근히 눈에 담았다.


란페이.

목리자.

상아.

모건.

아르테미스.

...

...

...


천천히 지난 추억, 쏟아부은 돈과 시간을 음미했다.


이윽고 내 손은 헤스티아에서 멈춰섰다.


"나 처음에 이거하나가지고 시작했었는데."


내 첫 5성.

곧 메브가 나오고 자리를 내놨었지.


괜스레 지난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


그리고 머지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내가 데스티니 차일드를 많이좋아했구나─라고.


매번 운영좆같이 하는, 핵하나 못잡는 시프트업을 욕했고.

1점운동도 참여했으며.

중간에 접기도했었지만.


그래도 나는 데스티니 차일드를 좋아했다.

지금 이순간 지독히도 쓰린 아쉬움을 느낄 만큼.


'이대로 그만하고 싶지 않아.'


매번 섭종하라고 데챈에 글을 싸기도했다. 

거짓말이다.

늘 답답한 데차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원해서 그런 말을 한 것뿐이다.

사실 이런거 조금도 원하지 않았다.

남들에겐 망겜이고, 만들다 만 코딩덩어리라지만 내겐 너무나도 소중한 게임이니까.


메모리얼?

대체 그런게 뭔 의민데.

나는 데스티니 차일드를 계속 하고싶은거라고.

단지 그것뿐인데...!


[서버와 연결이 끊겼습니다.]


하지만 끝났다.

예상보다 훨씬 일찍 서버의 연결이 끊겼다.

마치 내게 얼른 출근하라고 등떠미는 것 처럼.


[오전 08:00 , 2023-09-21]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지금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늦을지도 모르겠네.


그럼에도 발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더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있을 뿐이다.

서버종료 메세지의 `확인`버튼 조차 누르지 못한채로.


'벌써 데스티니 차일드 하고싶네.'


츠팟─!


그때였다.

순간 눈앞의 모니터가 눈부신 광채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눈뽕을 당한 내 시야가 흐려졌다.

의식과 함께.


***


"...님,"


머리가 아프다.

마치 지독한 술독에빠진것처럼 어지럽고, 몽롱하다.


"주인님!"


익숙한 목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몇년동안 꾸준히 들어왔던.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그 목소리.


"모나?"

"어머, 주인님 이제야 일어나셨어요? 정말... 할일이 태산인데 늦잠이나 자다니..."


눈이 번뜩 뜨였다.

그러자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 눈에 보였다.


구릿빛 피부.

이마에 난 두개의 뿔.

꼬리가 늘어져 게슴츠레하면서도 야시시한 두 눈.


"모, 모나?!?!"


그녀가 분명 내 눈앞에 있었다.

너무도 생생한 모습으로.


"네, 주인님. 모나에요."


그녀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내 손을 잡았다.

보드라운 살결이 느껴졌다.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도 함께.


"왜 그러세요? 안좋은 꿈이라도 꾸셨어요?"


뭐지?

나는 매혹적인 모나의 얼굴에서 간신히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방안의 풍경이 보였다.


'여긴?'


익숙한 장소였다.

왜냐면 게임 속에서 몇번이고 봐왔던 장소니까.


조금더 시선을 돌리자 낡은 전신 거울이 보였다.


"!?!!"


허리를 숙인 모나와 그 바로앞에 있는 뿔쟁이가 보였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인데 말이다.


그 뜻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으음? 대체 왜그러실까? 평소에도 이상하지만 오늘따라 더 유난이시네."


이상하다고?

그래, 당연히 이상하지.


왜냐면 내가 서버종료한 데스티니 차일드 속 뿔쟁이가 되어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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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버종료하는 날 데붕이들이 데스티니차일드에 빙의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게임 속 뿔쟁이가 되었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