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 조심! 그릇 뜨거워!"


집 앞에 다다르자,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는 괜찮아."


"넌 뭐 하는 거야, 니르티! 아라한이 다칠 뻔 했잖아!"


니르티?


익숙한 이름이었다.


뭔가, 잊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생각될 때처럼..


"네가 나한테 식탁을 닦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문고리를 잡은 손이 약간 떨렸다.


"어서 오거라."


두 눈을 감은 여자와 등 뒤에서 빤히 이쪽을 지켜 보는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누구.."


혼잣말처럼 말이 튀어나왔다.


"이 자가 바로.."


회백발의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애절한 기분이다.


뭐지, 이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기분은.


"..."


"..."


서로 말없이 눈을 마주쳤다. 시선을 포개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그런.


"잠깐, 이 상황을 정리하고 싶은데.. 그러니까, 저 녀석이 니르티의 주인었다는 악마가 맞나?"


"얼굴을 보니 분명하다. 조금 변하기는 했지만.."


"하지만, 악마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당사자를 앞에 두고 무슨 이상한 소릴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나보고 악마라고 하다니.


"미안하지만, 난 기억상실이야. 내가 악마라는 것도, 네가 내 차일드였다는 것도 못 믿겠어."


눈을 감은 여성이 내게 물었다.


"정말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나?"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곤란하군.. 어찌 되었든 기억을 잃었다고 하니 다시 알려주마. 나는 퇴마사 니르티다.. 한 때 너의 차일드였지."


퇴마사가 왜 내 집에 있는 걸까.


"너와의 계약이 해지된 후로 퇴마사로서의 힘을 되찾았다."


"내가 궁금한 건, 그런 게…"


그런 말은 아무래도 좋다는 것처럼 자신을 니르티라 소개한 여성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쪽은 나의 벗인 퇴마사 아라한이다. 아니, 이제는 샤먼이라고 해야겠구나. 여기 카라라트리도 아라한과 같은 샤먼이다."


샤먼, 퇴마사… 잘 모르겠다. 애초에 그런 사람들이 나를 왜 찾아 온 건지, 내 집에는 어째서 있는 건지.


아니, 애초부터 여기가 내 집이 맞는 건지도 의문이다.


돌아서서 집 밖으로 나서려는 순간.


"잠깐.."


아라한이라 소개받았던 여자가 내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뭐 하는…"


갑자기 주변의 시야가 새하얗게 점멸했다.


...


미트라.


너는 모르겠지.


그러니 나는 네게 기억을 앗아가려 해.


너는 프로메테우스의 환생이 아니지만, 너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을 가졌어.


장막 너머를 보았을 때, 친타마니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를 안타깝게 여겼어.


미트라.


시공의 틈새에 빨려간 뒤 친타마니의 소유주가 되고 생각했어.


기억「플래시백」을 읽으며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어.


너에게 꼭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었기에.


내게 주어진 과업을 너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기에.


그러니 네가 희생하는 것을 더 이상 가만히 두고 보지 않겠어.


모든 성물의 힘을 합쳤을 때, 과거의 역사를 바꿀 수 있었어.


네가 기억을 잃은 건 있어야할 「현재」.


미래, 영겁의 시간이 지나더라도 너는 네가 프로메테우스의 화신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겠지.


실패하고, 괴로워하고, 모두를 위해 희생하고...


그렇게 쌓인 감정에서, 너는 얼마나 더 괴로워 해야 할까? 얼마나 더 많은 것을 포기하고, 타인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까?


그런 고통을 다시는 겪게하고 싶지 않아.


미트라.


나는 네게 손을 잡아달라고 했어.


내가 짊어져야할 원죄를 너는 같이 짊어지길 희망했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네가 나를 구하려 했다는 것을..


네가 체험해야할 모든 인고의 기억들을, 내가 대신해서 짊어질 거야.


이미 지나간 일을 다시 되돌릴 수 없다면, 미트라. 네가 했던 경험을, 기억이라는 이름의 연옥을 대신 짊어질게.


...


"나는.."


뭘, 본 거지? 방금?


무슨 이야기지?


희생.. 한다고?


모르겠어. 이 기억의 형태는 대체..


어째서인지..


눈물이.


멈추지가 않아.


"나.. 잊어서는, 안 될. 그런 기억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잊어서는 안 되는데,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이었는데.


안 돼.


앗아가지 마.


이 기억은.. 간직해야 할 소중한 기억인데.


불현듯, 잡았던 손을 뿌리쳤다.


"미트라, 너는 세인트 미카엘 학원에 들어가지 않아도 돼. 너는, 너로서 이곳에 존재하면 돼."


그런 말이 귓가에 어른거렸다.


"아라한..?"


니르티라 불렸던 여성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가겠어."


"가지 않아도 된단다, 미트라."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구나.. 흐름은 돌고 돌아, 자신의 원죄로서.. 앗아갈 수 없기에 파편은 다시 기억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구나.."


아라한이라 불렸던 소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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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과 미트라의 서사가 너무 맛있어서 마감치다가 글도 안 풀리는 김에 슥 써봤슴,,, 


뭔가 쓰고 싶은 내용은 많았는데 으윽


제발 니르티와 아라한은 살려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