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이 도시에 대해 말하는 것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경치가 좋은 도시.

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도시.

먹거리가 맛있는 도시.

볼 게 많은 도시.

뭐가 됐건 하여튼 좋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도시의 외곽, 낡은 아파트 2층에 살고있는 메티스는 벌써 네 번이나 산 알람시계를 기어이 박살내며 잠에서 깨어났다.

"......출근하기 귀찮네."

축 늘어진 온 몸과 뜬 건지 감은 건지 구분도 안 되는 눈을 하고도 얇은 이불 한 장만 덮인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는 지난밤의 흔적이 남은 쓰레기통을 발로 걷어차고선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흰 접시 위에 놓인 피자 두 조각을 꺼내 오븐에 넣어 조리버튼을 대충 눌러둔 그녀는 쓰레기장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화장실로 가 물을 틀었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것에는 이미 익숙해져 찬 물로 정신을 깨우고나자 화장실 벽에 걸려있는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끙 하며 신경질적으로 물을 잠근 그녀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수건으로 대충 머리를 말리며  선 채로 물 한 통과 함께 피자를 먹어치운 뒤 제복을 입고 현관 옆에 걸려있는 오토바이 키를 주머니에 대충 쑤셔넣으며 집을 나섰다.

오토바이를 달리다 모자를 떨어트릴뻔 한 메티스는 다음부터는 이것도 주머니에 넣고 와야지 생각하며 경찰서의 문을 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래 보이는군. 머리는 좀 말리고 오지 그랬나?"

서장이 던지는 수건을 받아든 메티스는 자신의 자리로 가 털썩 앉으며 책상 위에 있는 초콜렛통에 손을 집어넣었다.

"오늘은 뭔 일 없대요?"

"일이야 많지. 우리가 할 일이 없을 뿐이야."

"보나마나 이런저런 핑계대면서 다른 서로 돌렸겠죠."

책상 위에 발을 올리며 초콜렛을 까먹는 메티스의 태도에도 아랑곳 않고 서장은 담뱃불을 붙이며 말했다.

"오늘 오후에 교통단속 있으니까 알아둬."

"...잘못 들은 것 같은데요."

"잘 들은 거 맞아. 도시 중심부에 행사가 있어서 인력 차출해달라는거 이 앞 쪽으로 그나마 내가 빼준 거니까 볼멘소리하지 말고 다녀와."

"다른 사람 시켜요."

"이 코딱지만한 서에 너랑 나뿐인데 시키긴 누굴 시켜?"

"그러니까 왜 저랑 서장님 뿐인데요? 병신같은 윗대가리들.."

"그래서 이렇게 뺑끼칠 수 있는 거잖아."

세개 째 초콜렛을 먹은 메티스는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 하고 끙 하며 지갑을 열어보았다.

"......"

"또 뇌물 받다 걸리면 뒤진다."

"안 걸리면 되죠."

읏차 하며 다리를 내리고 서랍에 있는 경광봉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메티스는 배터리가 다 된 것을 보며 서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거 배터리 다 됐어요. 카드 좀 주세요."

"나한테 카드 맡겨뒀냐. 그리고 배터리 정도는 니 돈으로 사지?"

텅 빈 낡은 지갑을 벌려 보여준 메티스는 손 안에서 형광봉을 빙글빙글 돌렸다.

"잔말말고 주세요. 서장님 심부름도 해드릴테니까."

"심부름은..."

그런 거 없다고 하려던 서장은 메티스의 시선에 가슴 앞주머니에 있는 담배갑이 텅 빈 걸 보고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눈썰미만 빨라서는. 카드 줄테니까 내 담배랑 니 배터리, 그리고 우리 점심 사와라. 비싼 거 말고."

"저번에 먹은 샌드위치 어때요?"

"그거 말고."

"그거 말고 뭐요?"

"비싼 거 말고, 샌드위치 말고, 대충 사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자신에게 중지를 들어올리는 메티스의 머리에 지갑을 세게 던진 서장은 그대로 엊어맞는 그녀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씹... 이거 위에 찔러넣을 거에요."

"무서워서 밥도 못 먹겠네. 빨리 다녀오기나 해."

투덜대면서도 뒷주머니에 빵빵한 서장의 지갑을 집어넣은 메티스는 오토바이 열쇠를 만지작거리다가 생각을 바꿔먹고선 걸어서 시내로 향했다.

잡화점으로 들어간 메티스는 카운터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선 구석으로 향했다.

'구식 배터리가 있는 곳이라고는 이 넓은 도시에 이 잡화점 뿐이라니.'

속으로 별의별 욕을 다 뱉은 메티스는 묶음으로 돼있는 배터리를 집고 카운터에 올리며 어려보이는 종업원의 뒷쪽을 가리켰다.

"저거. 빨간 거 하나."

"두 개 해서.. 15달러입니다."

뒷주머니에 쑤셔둔 지갑을 꺼낸 메티스는 카드를 꺼내 계산을 마치고선 잡화점을 나서려다가 아 하며 뒤돌아 물었다.

"여기 근처에 점심 살 만한 데 없어? 비싼 거 말고, 샌드위치 말고."

다소 난해할 수 있는 그녀의 질문에도 종업원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건너편에 핫도그집이 맛있어요. 감자튀김도 같이 주는데 점심으로는 딱이에요."

"핫도그 좋지. 장사 잘 해라."

담배와 배터리가 담긴 검은 봉투를 손에 쥔 메티스는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는 걸 보며 핫도그집으로 향했다.

"맛없으면 다음에 와서 한마디해야지."

"우물... 음. 이거 맛있는데?"

서 입구에 있는 의자에 누워서 서류를 손에 들고 핫도그를 크게 한 입 베어문 서장은 종이컵에 담긴 콜라를 쭉 들이붓고 얼음을 와삭와삭 씹어먹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솔직히 그다지 기대는 안 했는데."

"너는 언제 다 먹은거냐?"

메티스의 책상 위에 핫도그와 감자튀김의 흔적만 남은 걸 본 서장은 기가 막히다는듯 물었다.

"서장님 포르노 보는 동안에 먹었는데요."

"...포르노 얘기하니까 이것도 야해 보이네."

빵 사이에 끼워진 소세지를 꺼내 입으로 쑥 집어넣는 서장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메티스는 종이쓰레기를 구겨모아 쓰레기통에 던졌다.

"맞다. 오늘 교통단속 언제 나가요?"

"그거 엄청 나중이야. 3시까지만 가면 돼."

"장소도 말해줘요."

"니 컴퓨터로 봐라~~~~~~"

메일로 도착해있는 교통단속 일정을 본 메티스는 표시된 위치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

"여기 집 근천데 끝나면 바로 퇴근해도 되죠?"

"그러든지. 중간에 튀었다 걸리는 건 나도 커버 못 떠주니까 제발 그러진 마라."

"알아요. ...서장님. 시간도 좀 남았는데 그거 다 드시면 당구나 한 판 칠까요?"

"내기 걸어."

"3일 청소당번."

"가자."

먹다만 핫도그와 감자튀김을 포장봉투에 쑤셔넣은 서장은 메티스와 어깨동무를 하며 서를 나섰다.

"분명히 뒷수작을 한 게 분명해. 내가 더 잘 치는데..."

한적한 도로변에 서서 경광봉을 든 채 팔짱을 낀 메티스는 도로에 얼마 있지도 않은 차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한 탕 해먹을 수 있으려나? 냉장고도 다 낡아서 이제 바꿔야되는데."

이렇게 혼자서 교통단속을 할 때 혼잣말을 하는 건 자신만의 습관은 아닐 거라 생각하며 메티스는 앞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스포츠카를 바라보았다.

"미친 새낀가. 저러다 사람 치여서 뒤지면어쩌려고."

경광봉의 불을 키고 호루라기를 세게 불며 차를 멈춰세운 메티스는 뚜껑이 열려있어 그대로 보이는 운전자를 바라보았다.

뒤로 넘긴 검은 머리, 멋스러운 턱수염과 가슴팍이 다 보이는 하와이안 셔츠 사이로 보이는 금색 목걸이.

그 촌스러운 패션의 목걸이만 제외하면 썩 괜찮은 남자네 생각한 메티스는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과속하셨습니다. 신분증 제시해주세요."

"과속? 그럴 리 없을텐데."

뻔뻔한 남자의 태도에 메티스는 멀리 보이는 표지판을 가리켰다.

"저 표지판은 장식입니까?"

남자는 신호등 사이 작게, 심지어 삐뚤어져 달려있는 표지판을 보고선 쯧 하고 혀를 차며 지갑을 꺼냈다.

서장의 것만큼이나 배가 불룩한 지갑을 본 메티스는 경광봉을 팔사이에 끼고 신분증을 받아들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서장에게 무전해 신원조회를 하는 것이 먼저겠지만 그너는 그런 절차는 무시 한 채 허리를 숙여 차에 기대 남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과속 벌금 얼만지 알지?"

"지난번에는 2000달러였지. 이번에는 얼마일지 궁금하군."

"그딴 것도 자랑이라고 말하는 거야? 뻔뻔하긴. 이번엔 면허 정지야. 벌금은 덤이고."

면허 정지라는 말에 남자는 선글라스 뒤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 놓치지 않은 메티스는 손에 쥔 신분증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아저씨 돈 좀 많은 것 같은데. 나한테 딱 10장만 주면 눈감아줄게. 어때? 어차피 여기 cctv도 고장나있거든. 나만 눈감아주먼 아무도 몰라."

메티스의 말을 듣던 남자는 피식 웃으며 그녀가 들고있는 신분증을 낚아챘다.

"경찰나리가 뇌물을 달라?"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안 그래?"

"구미가 당기는 얘기긴하군. 하지만 난 그것보다 이 쪽이 더 좋은데?"

지갑사이로 반짝이는 걸 가리키는 남자의 손에 메티스는 일이 잘못 돌아간다는 걸 알아챘다.

"이 도시의 경찰들이 썩어빠졌다는 건 여러번 들었지만 내가 당할 줄은 몰랐군. 미리 대비해두길 잘했어."

"녹음기...요새도 그런 걸 쓰나보네."

능글맞은 그의 웃음에 간신히  대꾸한 메티스는 뇌물 받다 걸리면 뒤진다는 서장의 말을 떠올렸다.

'좆됐다...'

그리고 그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메티스를 재미있다는듯 관찰하던 남자는 차에 기댄 그녀를 위 아래로 훑어보고선 지갑을 탁 소리나게 접으며 말했다.

"경찰나리. 그럼 이번엔 이쪽에서 제안 하나 하지."

"나 돈 없어."

"돈이 많았으면 나한테 뇌물을 요구하지도 않았겠지. 업무 끝나고 나랑 드라이브 한 번 어떤가?"

"인신매매는 뇌물이랑 비교도 안 되는 범죄야."

그렇게 당황한 주제에 대답은 청산유수로 하는 메티스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남자는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인신매매를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먹고 살만하니 안심하게."

그제서야 신분증에서도 보지 않은, 주피터라는 그의 이름을 본 메티스는 차에서 몸을 떼고 경광봉을 켰다.

"그럼 이거 끝날 때까지 기다리든지. 그리고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과속하지 마."

말을 마친 메티스는 다시 아까의 자리로 가 서서 팔짱을 끼곤 심통이 난 얼굴로 도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홀연듯 사라진 주피터가 다시 나타난 건 건물 사이로 주황색 노을이 비추기 시작할 쯤이었다.

휴대폰에 보이는 시계를 보고 다소 험난했던 하루를 마치려 하던 메티스는 아까 보았던 그 재수없는 남자가 차 안에서 손을 흔드는 걸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도망쳐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로 인해 생길 나중의 귀찮음이 더 신경쓰인 메티스는 그 차로 다가갔다.

"아저씨. 아니지, 주피터씨. 드라이브 한 번 같이 해주면 그 녹음기 내가 가져가도 되지?"

"그건 안 되겠는데. 이래 봬도 이제는 구하기 힘든 거라서 말이지. 그리고 그 녹음내용이 걱정되는 거라면 마음 쓰지 말게. 이미 다 지워버렸으니."

메티스는 반신반의하는 얼굴이었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내 오토바이 좀 집에 갖다 놓고. 그리고 드라이브 끝나면 뭔 일이 생겼든 나 집에 데려다주고 가."

"약속하지."

"약속이라는 말을 쉽게도 하네."

잠시 후 뒷골목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가지고 온 메티스는 주피터의 차 옆에 서서 말했다.

"우리 집 별로 안 머니까 조금만 가면 돼."

"내 집도 마찬가지라네."

"당신 관광객 아니었어?"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네만. 오늘 이 곳으로 이사온 참이네."

"하... 왜 하필 이런 날에 이사를 오고 난리야?"

괜한 화풀이를 하는 메티스의 행동에도 주피터는 화를 내기는커녕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 성격 참 마음에 드는군."

"서장님 말고 나한테 그런 말 하는 건 당신이 처음인데. 근데 주피터 씨. 그리 늙지도 않은 사람이 말투는 왜 그래?"

"내 말투가 뭐가 어때서 그러나."

"꼰대 같아. 그리고 그 목걸이도 촌스러워."

"...말투야 그렇다쳐도 목걸이는 신경 좀 쓴 건데."

주눅든 주피터의 목소리에 어깨를 으쓱인 메티스는 신호가 바뀌는 걸 보며 오토바이의 엑셀을 당겼다.

"여기서 기다리고있어."

낡은 5층짜리 아파트 앞에 오토바이를 대충 세워둔 메티스는 모자를 벗으며 주피터에게 말했다.

"들어가서 안 나오는 건 아니겠지?"

"그럴 거였으면 오토바이 타고 도망쳤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구로 들어가버리는 메티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주피터는 시선을 돌려 도로변에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지고 낙서가 그려져있었지만 좋게 말하자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나쁘게 말하자면 후진 아파트에 그녀가 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다 생각하고 있자 어느새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나온 그녀가 옆자리에 탔다.

"뭘 그리 보고 있는거야?"

"아파트 구경 좀 했네. 좋은 곳에 사는군."

그의 목소리에 섞여있는 조롱기를 눈치챈 메티스는 자신이 나온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당신한테는 그래 보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좋은 곳이야."

"사연이 있나?"

"있으면 뭐. 오늘 보고 말 사인데 캐묻지 말고 엑셀이나 밟아."

그녀의 말대로 주피터는 순순히 변속기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좋아하는 음식은 있나?"

"아무거나 잘 먹어."

"아까 둘러보니 꽤 고급스러운 식당이 있더군. 혼자 들어가기엔 민망해서 함께 갈 사람이 필요했는데 잘 됐어."

"잘 되긴 뭐가 잘 돼? 나는 똥 밟은 기분인데."

"너무 그러지 말게. 혹시 아나? 드라이브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지."

"그래 뭐. 그럴지도 모르지. 당신은 꽤 괜찮은 남자 같으니까."

예상치 못한 그녀의 말에 주피터는 고개를 살짝 돌려 메티스를 바라보았다.

망사스타킹에 경찰복을 입고 있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 자신의 옆에 앉은 그녀는 생각보다도 어려보였다.

"그리고 식당 같은 거 때려치워. 드라이브 할거면 어디서 대충 햄버거 같은거나 사줘."

"난 사준다고 한 적 없는데."

"드라이브 신청한 쪽이 사주는 건 이 도시에서 상식이야 아저씨."

"그런 상식은 또 처음 들어보는군."

"내 덕에 알았으니까 다행이네. 아, 저기. 저기 햄버거가 맛있어. 내가 사올테니까 여기 멈춰두고 기다려."

차를 멈추자마자 메티스가 문을 열고 내리는 바람에 주피터는 지갑이 있는 주머니에 넣은 손을 머쓱해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테이크아웃 전용 주문대가 따로 있는 식당에서 호출벨을 누른 그녀는 주문을 하고선 피식피식 웃으며 종업원과 대화를 나누었다.

잠시 후 햄버거가 담긴 봉투와 음료수를 가져온 메티스는 뒷자리에 봉투를 던져두고 빨대를 빨며 휴대폰을 꺼냈다.

"주피터 씨. 어디 뭐 갈 데 생각해뒀어?"

"아무데나 가려 했네만."

"드라이브 시켜줄 자세가 안 돼있네. 저 쪽으로 빠져봐. 내가 좋은 데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건 꼰지르지 말라고 내가 먹여주는 뇌물이니까 잔말 말고 먹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 주피터는 메티스가 알려주는대로 운전대를 움직였다.

그렇게 그녀의 지시대로 운전을 하는 와중 몇 번이나 빨간불에 걸려 신호가 바뀌는 걸 기다리며 나누는 대화는 꽤나 즐거웠다.

"여기로 이사는 왜 온 거야? 솔직히 여기. 그다지 살기 좋은 데는 아닌데."

"이 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네. 그 때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지. 그런데 왜 살기가 안 좋다는 건가?"

"사람이 너무 많거든. 이 쪽이야 외곽이라 덜하지만 조금만 들어가도 관광객이랍시고 거리에 쓰레기 버리고 관광지랍시고 아무데서나 바지를 내리는 것들이 득실득실해."

"바깥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는 거군."

"다 그렇지. 나도 당신이 벗겨먹기 좋을 사람일 줄 알았는데 호되게 당해버렸으니까."

"비슷한 일을 당한 친구가 있었거든.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자네도 오늘 두둑한 지갑을 주머니에 넣고 기분좋게 퇴근했을텐데 아쉽게 됐어."

"자꾸 그거 들먹일래? 일부러 말 안하고 있는건데."

"하하. 나한테는 썩 재미있는 일이었거든."

메티스는 유쾌하게 웃는 주피터를 보다가 차문에 팔을 올리고선 턱을 괴고 그의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 나한텐 재미없는 일이었어."

메티스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주피터가 운전해 도착한 곳은 지평선 위로 빨간 해가 떨어지고 있는 해변가였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차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가운데 모래사장 옆 야자수나무 아래에 세워둔 차 아래에서 메티스는 봉투를 뒤적거리며 물었다.

"아까 내가 이 도시 별로라고 했지?"

"그랬었지."

"그래도 이렇게 마음에 드는 부분은 있어. 경치 좋은 데서 먹는 저녁 같은 거라든지. 이럴 땐 관광도시라는 말이 확 와닿아."

"그것 말고는 또 어떤 게 마음에 드는지가 궁금한데?"

주피터가 말을 받는 동안 크게 두 입을 베어먹어 벌써 반이나 햄버거를 먹어치운 메티스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아저씨한테 그걸 왜 알려줘. 오늘은 드라이브시켜주는 댓가로 내 보물 중에 하나 알려준 것 뿐이야."

"흐음. 이렇게 좋은 걸 더 못 알아간다는 건 아쉽군."

정말로 아쉬워하는듯한 그의 목소리에 메티스는 다 먹고 남은 껍데기를 봉투에 넣고선 감자튀김을 꺼내먹으며 말했다.

"여기로 이사왔다면서. 이제부터 아저씨가 하나씩 찾으면 되지."

"그도 그렇군. 솔직히 자네의 입에서 그런 좋은 말이 나올 줄을 몰랐는걸."

"왜. 뇌물이나 요구하는, 낡은 아파트에 사는 부패경찰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라서?"

"뭐, 아니라고는 못하겠어."

길다란 감자튀김을 입에 구겨넣은 메티스는 콜라가 담긴 종이컵의 뚜껑을 열고 콜라를 마시고선 입을 열었다.

"다 사실이니까. 뭐 어쩌겠어?"

자조적인 메티스의 목소리에 벌써 감자튀김을 다 해치운 걸 보고서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주피터는 해가 바다로 반쯤 가라앉은 것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나는 자네가 썩 마음에 드는군."

"만난 지 몇 시간 됐다고 마음에 든대? 아저씨 10년만 젊었어도 작업치는 삐끼인 줄 알고 발로 차버렸을거야."

"그건 칭찬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욕이야."

단호한 메티스의 대답에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려버린 주피터는 자신의 햄버거를 그녀에게 주었다.

"왜. 이거 싫어해?"

"나이가 드니 이런 건 못 먹겠더군. 자네가 먹는 걸 더 보고싶기도 하고."

"얼마나 늙었다고 나이 타령은. 나 안 미안해하고 그냥 먹는다?"

받아든 햄버거를 들며 물은 메티스는 대답도 듣지 않고 포장지를 뜯었다.

멈춰두었던 차의 시동을 다시 건 주피터는 사이드미러를 한 번 보고선 엑셀을 밟으며 말했다.

"천천히 먹게. 그렇게 빨리 먹지 않아도 해변가만 다 보고서 집에 데려다줄테니."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아저씨랑 빨리 헤어지려고 급하게 먹은 게 아니라 나 원래 이렇게 먹어. 신경쓰지 마."

"그, 그런 거였나? 너무 빨리 먹길래 신경쓰고있었다네."

당황해하는 주피터의 모습에 메티스는 피식 웃으며 붉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내가 마음에 든다고 했지? 나도 아저씨가 꽤 마음에 들어."

"그거 참 영광이군.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는지 물어도 되나?"

"얼굴이랑 지갑 두꺼운 거."

"......"

잔잔한 바다바람을 쐬며 즐기는 드라이브는 메티스에게 있어 오랜만에 찾아온 종류의 여유였다.

밖으로 나돌아다니는게 언젠가부터 귀찮아져 퇴근을 하고나면 집 근처에서 오토바이나 몇 번 타는 게 다였는데, 이렇게 멋있는 차를 타고 남자와 대화를 하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풀리려 하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도로가 끝나는 걸 보며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메티스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이제 드라이브 끝. 나 집에 데려다주고 아저씨도 집에 가."

"참 냉정하기도 하군. 나는 솔직히 더 있고싶다 할 줄 알았는데?"

"아저씨가 그런거겠지. 잔말말고 차 돌려. 내일 출근할 준비 해야되니까."

"경찰나리의 말씀인데 여부가 있으면 안 되겠지. 길은 대강 기억하고 있으니 편히 앉아있게."

"눈썰미가 좋은가보네. 꽤 복잡한 길이었는데."

"칭찬해도 아무것도 안 나오네만."

"풉.. 그래. 그렇다니까 다행이네. 난 사람구경이나 하고있어야겠다."

길을 기억하고있다는 말대로 주피터는 길 한 번 잘못 들지도 않고 메티스의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내린 메티스는 아까 단속할때와 같이 문에 가슴을 기대며 주피터를 바라보았다.

"허세인 줄 알았는데. 정말 나한테 한 번도 안 물어봤네?"

"사실 몇 번이나 헷갈렸는데 허세 부리느라 안 물어봤다 하면 비웃을텐가?"

"응. 그런 사소한 걸로 허세 부리는것만큼 한심한 것도 없거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씩 웃어준 메티스는 등을 돌리고 뒤로 손을 흔들었다.

"또 보지. 메티스 양."

흔들던 손이 중지만 남은 걸 보고 주피터는 폭소를 터뜨리며 차를 돌렸다.

"야."

"......"

"야!"

"속 울리니까 소리지르지 마세요 서장님..."

자신보다 먼저 출근해 책상 위에 엎어져있는 메티스를 본 서장은 아침에 서의 문이 열려있는 걸 보고 사온 숙취음료수를 탁 소리 나게 내려두며 말했다.

"너는 왜 꼭 술 마신 다음 날에만 일찍 출근하냐."

"안 이러면 해가 중천에 떠서야 출근하거든요. 흐아암... 고마워요 서장님."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한 메티스는 음료수의 뚜껑을 따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서 어제는 왜 마신 거야? 니가 술 마시는  거 엄청 오랜만인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마신 게 나한테 된통 깨진 날이었나?"

"그냥요. 어제 마음이 좀 싱숭생숭해서 치킨이랑 먹었어요."

"너 밤에 그렇게 먹으면 살찐다?"

"알아요. 서장님 그렇게 말하니까 무슨 엄마 같네요."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화이트보드에 적힌 일정을 확인한 서장은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오늘은 뭐 없는 날이네. 손에 일 안 잡히면  적당적당히 해라. 참. 어제 교통단속은 잘 마친거야?"

"네, 뭐... 별 일 없었어요."

 반신반의하는 모습의 서장은 메티스를 노려보며 아까의 주제를 다시 꺼냈다.

"싱숭생숭한 거랑 교통단속이랑 관계 있지?"

"아니요. 아니, 없다곤 못 하겠는데 그건 아니고 남자 문제에요."

"뭐라고?"

게슴츠레하던 눈을 번쩍 뜬 서장은 책상을 발로 차는 반동으로 메티스의 옆으로 와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교통단속하다가 누구랑 눈 맞았어?"

"이런 얘기엔 엄청 적극적이시네요. 네. 어제 끝나고 드라이브하고 밥도 같이 먹었어요."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그 다음은???"

침을 꿀꺽 삼키며 묻는 서장의 질문에 안타깝게도 메티스는 허탈한 대답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게 끝이에요. 밥 먹고, 해변가 보고 집에 데려다주고. 연락처도 안 주고받고요."

"...구라치지 마."

"구라 아니라 진짜에요."

메티스의 퀭한 눈을 보며 알 수 없는 비명을 내지른 서장은 허탈한 모습으로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병신. 그렇게 속앓이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으면서 왜 그냥 헤어져?"

"아니, 그게 병신 소리 들을 일이에요?"

살짝 날선 메티스의 목소리에도 서장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들을 일이다. 눈 감고 잘 생각해봐라. 맞는지 아닌지."

"......"

메티스는 다시 책상 위로 엎어졌고 서장은 혀를 차며 업무를 시작했다.

한참 후에야 다시 일어난 그녀는 잠긴 목소리로 죽어가듯 말했다.

"서장님 말이 맞아요. 괜히 내가 초라해보여서 아무 말도 못한 거거든요."

"니가 뭐 어때서."

말과 다르게 자신의 가슴과 엉덩이를 중점적으로 훑은 서장이 피식 웃는 걸 보고 그만 자신도 웃음이 터져버린 메티스는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하긴.저 정도면 어디 가서도 안 꿀리죠."

"그럼 내기할래? 해변에 가서 누가 먼저 남자 꼬시는지?"

"서장님은 무서워서 남자들이 말도 못 붙일걸요."

메티스가 다시 기운을 차린 걸 본 서장은 12시다 다 되어가는 시계를 바라보더니 지갑을 꺼내며 말했다.

"오늘도 니가 점심 좀 사와. 부려먹는 게 아니라 바람 쐬고 오라고 배려해주는거다."

"눈물나는 배려네요."

"그치? 가는 길에 내 담배도 좀 사오고."

"너무 많이 피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시다. 이왕 가는 거 살 거 더 없는지도 확인 좀 해보고."

책상을 두리번거린 메티스는 딱히 보충할 게 없는 걸 확인하고선 일어나 서장의 지갑을 집었다.

"아. 어제 그 잡화점 애가 추천해 준 데 맛있던데 오늘도 걔한테 물어볼까봐요."

"좋지. ...메티스. 오늘은 좀 비싼 거 사와도 된다."

말을 마치고서 이어폰으로 귀를 막는 서장에게 속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 메티스는 어제 담배를 산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걸어가기엔 꽤 거리가 있어 오토바이를 타고 싶었지만 숙취 때문에 택시로 출근한 메티스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두 다리를 이용하기로 했다.

'또 보지. 메티스 양.'

옆에 서장도 없으니 다시 생각나는 그 남자의 말에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애써 다른 생각을 하며 가게에 도착한 그녀는 어제의 그 종업원에게 말을 붙일 생각을 하며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 다르게 카운터에 그 종업원은 서있지 않았다.

그 대신, 주황색과 노란색이 섞인 하와이안 셔츠 사이로 반짝이는 금색 목걸이를 찬 채, 뒤로 넘긴 머리까지도 같지만 어제와는 다르게 안경을 쓰고 있는 그 남자가 카운터에 서있었다.

포스기를 붙잡고 끙끙대던 그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려 그 곳에 서 있는 여성을 보고선 놀란 건지 웃는 건지 모를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군. 그래, 뭐 필요한 거라도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