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티스. 내일은 오토바이 타고 출근하지 마라."

서장이 가장 기분이 좋은 퇴근시간 30분 전.

갑자기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메티스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요?"

"내일 종일 이쪽으로 대대적인 교통통제가 있단다. 또 어떤 높은 분이 지나가시는건지는 몰라도."

혀를 쯧 하고 찬 서장은 의자를 뒤로 재꼈다 앞으로 왔다를 반복하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존~~나 퇴근하고싶다~~~"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잖아요. 좀만 참으세요."

핀잔을 주는 메티스의 목소리를 듣던 서장은 갑자기 씩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요즘 그 남자랑은 어때?"

"어떻긴 뭐가 어때요?"

"니가 숨겨봤자지. 그렇게 죽을상하고 있다가 다시 얼굴에 생기가 도는데 내가 모를까봐?"

"... 은퇴하시면 심리분석가라도 하시면 되겠네요."

"어쭈. 말 돌리는 거 봐라?"

"잘 되고 뭐고 할 것도 없어요. 그래도 뭐..."

말끝을 흐리며 생각에 잠기는 메티스를 본 서장은 맥주라도 한 잔 마신듯이 크으 하며 어린아이처럼 박수를 쳤다.

"잘 되면 나한테도 소개해줘야된다."

"서장님한테요? 제가 왜요?"

"내가 니 상관이니까 당연하지!"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서장과 티격태격 하는 사이 퇴근시간이 다 된 것을 확인한 메티스는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퇴근하겠습니다. 서장님도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난 너 미행하러 갈건데."

"그럼 그게 미행이에요? 그냥 쫓아오는거지."

"하여튼 한 마디를 안 져요. 그래. 너도 조심해서 들어가라. 요새 이 근처에 집 나온 애들이 기승이라던데 유의해두고."

"애들요? ...알겠어요. 내일 뵐게요."



"어서 오... 자네 왔군. 오늘 업무는 어땠나?"

먼지털이를 들고 카운터를 청소하던 주피터는 자신의 옆에 의자를 놓으며 메티스에게 물었다.

"매일 똑같지 뭐. 장사는 잘 돼?"

"간신히 종업원들 급여를 줄 정도는 되네."

"서장님이 장사치들 말은 믿지 말랬는데. 사실 엄청 잘 되는 거 아냐?"

그녀의 농담에 피식 웃은 주피터는 카운터 아래 오래된 라디오를 껐다.

"이런 오래된 건 대체 어디서 구해오는 거야."

"구해온 게 아니라 옛날부터 가지고 있던것이네. 이상하게 더 좋은 것이 나와도 버릴 수가 없더군."

"흐응... 그래서 일은 언제 끝나?"

"7시에 교대니 30분만 기다리게."

30분이나 기다려야된다는 말에 인상을 찌푸린 메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둘러보았다.

생필품부터 시작해서 약간 오래된 물건들까지 있는 걸 대충 보던 그녀는 들어올 때는 보지 못 한 출입문에 붙은 종이를 발견했다.

"이게 뭐야. 16시부터 19시까지 일할 사람 구함? 아저씨. 일 안 하려고?"

"아아. 그것 말인가. 내가 가게를 보고 난 뒤로 매출이 낮아진 걸 보고 내린 판단일세."

"그냥 귀찮아서 그런 건 아니고?"

"아니라곤 못 하겠군. 자네가 일주일 중 두 번은 이 시간에 와서 언제 끝나냐 묻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긴 하네."

능청스러운 주피터의 대답에 메티스는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잘 생각했어. 그럼 우리 뭐 먹으러 갈까?"








"그거 내 오토바인데."

교통통제가 있다는 서장의 정보로 오늘 하루 지하철로 출퇴근을 한 메티스는 안 그래도 피곤한데 큼직한 검은색 항공점퍼에 검은색 면바지를 입고서 자신의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소녀를 보고 머리를 짚었다.

"죄, 죄송해요! 오토바이가 너무 멋있어 보여서요. 헤헤."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안장에서 내려오는 소녀의 미소를 본 메티스는 나쁜 아이 같지는 않아 보인다 생각했지만 척 봐도 관리가 안 된 손톱, 싸구려 염료로 염색한 녹색 머리를 보고서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알았으면 나와."

"알았어요. 근데 언니 경찰이에요?"

"그럼 코스프레라도한 것 같아?"

"네! 이렇게 짧은 바지 입고 다니는 경찰이 어딨어요?"

생글거리며 밉지 않게 까불거리는 소녀의 머리에 꿀밤이라도 놔줄까 생각하던 메티스는 손을 저으며 아파트로 들어갔다.

"한 번만 더 그러고있는 거 눈에 띄면 ... 혼난다. 저녁 먹을 시간인데 빨리 집에 들어가."

"네~ 근데 언니. 여기 살아요?"

"그래. 그러니까 다시는 찾아오지 마라."

더 이상 소녀가 귀찮게 하기 전에 계단으로 향한 그녀는 집으로 들어가 밖에서 보이지 않게 자신의 오토바이를 바라보았다.

다행이라 해야할지 소녀는 길 건너편으로 사라지고있었고 오토바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메티스는 그 찝찝함을 떨쳐내기 어려웠지만 배달시킨 피자를 먹고 티비를 보고있으니 어느새 그 소녀는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녀의 오토바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아침부터 책상에 앉아 유리통의 초콜렛을 다 해치울 기세로 먹으며 씩씩거리는 메티스를 본 서장은 잘못 깎은 손톱을 매만지며 물었다.

"무슨 일 있냐?"

"네. 정말 큰 일이요."

"그러니까 그게 뭔데."

"오토바이 도둑맞았어요."

경찰서에 어울리는 메티스의 대사에 서장은 뒤통수를 한 번 긁었다.

"신고는 했고?"

"해야죠."

성격 같아선 진즉에 해버렸을 메티스지만 왠지 모르게 그 초록머리의 소녀가 마음에 걸린 그녀는 화만 내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뭐. 아는 사람이 훔쳐간 거야?"

마치 그런 자신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묻는 서장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뜬 메티스는 눈동자를 굴리며 대답했다.

"아는 사람은 아니고요. 그... 어제 어떤 여자애가 제 오토바이 위에 앉아있었거든요. 아마 그 애가 훔쳐간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 그럴 애는 아닌 것 같거든요."

"사람 보는 안목도 없는 게 무슨.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신고해. 내가 전화해서 빨리 찾으라고 한 소리 해줄테니까."

"...알아서 할게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완곡하게 거절하는 메티스의 대답에 서장은 별 말 없이 어깨를 으쓱여보이며 말했다.

"니가 그렇다는데 어쩔 수 없지. 그럼 이제 그만 씩씩대고 일해라. 초코 까먹는 소리때문에 집중이 안 된다."

그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에 메티스는 놀란듯 물었다.

"뭐 하고 계신데요?"

"인터넷 포커."

"......"



퇴근 후, 오토바이 대신 지하철로 집에 도착한 메티스는 집 근처에서 산 샌드위치 봉투를 손에 들고 힘없이 집으로 향했다.

"맘에 들던 오토바이였는데... 서장님 말대로 지금이라도 신고할까."

아무리 도시의 변두리에 낡은 아파트 앞이라 해도 돌아가는 cctv는 있기 때문에 범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스스로에게 답이 나오지 않는 것에 괜스레 짜증이 난 그녀는 봉투를 든 팔을 크게 돌리며 그런 마음을 털어냈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집에 가서 신고해야..."

지, 라고 하려던 메티스는 아파트 앞에 서 있는 소녀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어, 언니..."

"여긴 또 뭐 하러 온 거야?"

어쩔 줄 몰라하며 웃는 그 얼굴을 보니 범인은 소녀가 맞는듯 했다.

그럼에도 메티스는 먼저 오토바이 얘기를 꺼내지 않고 소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한참이나 서 있다가 입을 연 소녀는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언니. 잠깐만 타보려고 했는데 한 눈 판 사이에 없어졌어요. 헤헤..."

"그래서. 훔친 건 너라는 거야?"

"...네. 죄송해요."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소녀를 보고 자신의 안목을 저주한 메티스는 소리나게 혀를 쯧 하고 찼다.

"그렇게 웃는다고 봐 줄 거라 생각하지 마. 네가 왜 훔친건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소중... 아니. 중요한 물건이었으니까."

"아끼던 거였어요?"

"비싼 거니까 당연히 아끼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온 건지는 모르겠는데, 지금이라도 찾아오라는 말은 안 할 거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할거라 하려던 메티스는 갑자기 주피터와 있었던 일이 떠올라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이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신고는 안 할테니까 다시는 내 눈 앞에 띄지 마라."

여전히 웃는 상으로 무어라 말을 하려는 소녀의 입을 본 메티스는 참아왔던 화를 터뜨리며 소리질렀다.

"꺼지라고!"

"...미안해요 언니."




"그런 일이 있었군."

손도 멈춘 채 열을 내며 주피터에게 자신에게 생긴 일을 말해주던 메티스는 힘 없이 웨지 감자를 집어먹고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매일 꼬박꼬박 지하철 타야 되게 생겼어. 출퇴근 시간엔 사람도 많은데. 씨..."

"새 오토바이를 살 때까지 내가 태워다줄 수도 있네만?"

"됐어. 나도 아저씨도 번거로운 일 될 게 뻔한데. 마음만 고맙게 받을게."

"사실 나도 말해놓고 조금 후회할뻔 했네. 하하."

메티스의 눈빛이 싸늘해지는 걸 보고 헛기침을 한 주피터는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그런데 왜 신고하지 않은 건가?"

"그냥. 마음 같아선 바로 신고하고 싶었는데, 아저씨 생각이 나서."

"내가? 아, 뇌물 사건을 말하는거로군."

"사건이라고 하지 마, 기분 나쁘게. 하여튼 그게 맞아. 신고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그 때 일이 떠오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더라고. 뭐라고 해야 되지... 설명을 잘 못 하겠네."

끙 하며 추가주문을 하는 메티스의 앞에서 그녀의 말을 곱씹던 주피터는 어느새 안주가 다 사라져있는 걸 보고 혀를 내둘렀다.



주피터의 맥주를 한 모금 마신 것만으로 얼굴이 새빨개져 집으로 돌아온 메티스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와 작은 소파에 몸을 던지고서 티비를 틀었다.

티비에서는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토크쇼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메티스의 의식은 다른 곳에 가있었다.

오토바이가 사라졌고, 범인을 알아냈고, 자신 나름대로의 벌을 주었는데도 영 찝찝한 마음이 떨쳐지지 않는 것 때문에 새벽까지 고민하고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 한 그녀는 그대로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하으.. 서장님.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거 너무 힘들어요."

"고작 일주일 해놓고 벌써 엄살이냐. 몇 년 몇 십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전 이제 일주일째니까 힘들죠. 하아... 그거 쥐꼬리만한 월급 몇 번은 꼬박 모아야 살 수 있는 건데..."

서에 와서 6시간동안 백 번은 넘게 듣는 메티스의 한숨에 서장은 답답하다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주차장에 경찰 오토바이 있잖아. 이 말하면 또 '그근 스르으~~' 하면서 안 탄다고 하겠지?"

"아니 제가 언제 그랬어요? 안 탄다는 거야 맞지만."

"똥고집은. 그래봐야 니 몸만 불편하지."

"내버려두세요."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근무를 마친 메티스는 진지하게 대출을 받아서라도 오토바이를 한 대 사야하나 생각하며 지하철을 탔다.

결국 큰 결심을 하고 휴대폰으로 오토바이의 자세한 가격을 알아보던 그녀는 아파트 앞, 익숙한 검정색 오토바이가 있는 걸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저게 왜...?"

놀라서 오토바이로 달려가자 안장 위에 붙은 노란색의 작은 메모장이 있었다.

'오토바이 훔쳐가서 죄송해요. 용서해달라고는 못 하겠지만 다시 가져다뒀어요.'

그 후에 쓰여진 긴 글들은 끝을 제외하고 모두 덧칠되어 볼 수 없었다.

'정말 죄송해요. 다시는 여기 얼씬도 안 할게요.'

메모를 읽고서 안장에서 뜯어낸 메티스는 오토바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전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 있는 골목 입구에 상자가 넘어져있는 걸 보고서 그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얼씬도 안 한다면서."

골목 사이에 선 소녀는 전의 항공점퍼와 다른 검은색 후드를 모자까지 뒤집어 쓴 상태로 머쓱하게 웃었다.

"언니가 메모 읽는 것만 보고 가려고 했어요."

"누가 오토바이 찾아다달래? 다시는 내 눈 앞에 띄지 말라고 했잖아."

좁은 골목에서 얘기하기가 불편해 밖으로 나가려 소녀의 팔을 붙잡으려던 메티스는 자신의 손을 보고 흠칫하며 뒤로 물러서는 그녀를 보고 아차하며 팔을 접었다.

"여기서 얘기하기 힘드니까 나와봐."

어두운 곳에서 나와 밝은 곳에서 보는 그녀는 일주일 전 보았을 때와 비교해 많이 초췌해져있었다.

옷을 바꿔입어 체형이 그대로 드러난 것도 이유겠지만 그 뿐 아니라 얼굴색과 눈 밑의 다크써클, 핏발선 눈이 그녀의 안 좋은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거냐고 한 마디 하려던 메티스는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기세가 꺾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괜찮은 거야?"

"네? 네 괜찮아요. 오토바이 찾으러 다니느라 몇날며칠동안 잠을 못 자서요, 헤헤. 제, 제가 봤는데 어디 망가지고 그런 덴 없었어요. 조금 긁히긴 했어도요."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 했던가.

아파오는 머리를 짚은 메티스는 손을 휘휘 저었다.

"알겠으니까 그만 가라. 니 얼굴 별로 안 보고 싶으니까."

"헷... 알았어요. 이제 다시는 여기 안 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잠깐만. 너 이름이 뭐야?"

메티스의 질문에 곤란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던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헤일리요. 예쁜 이름이죠?"

황당한 그녀의 말에 메티스는 그만 피식 웃어버렸다.

"그래. ...그리고 가끔은 와도 돼. 패스트푸드라도 좋으면 사줄테니까."

"정말요? 헤헤, 너무 좋다. 근데 이제 여기 올 일 없을 거에요."

"왜. 이사라도 가?"

"네, 뭐..."

말을 흐리는 소녀에게 메티스는 호기심이 생겼지만 더 묻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난 간다. 그리고 급식 좀 잘 챙겨먹고. 이제 막 자랄 때 같은데 그렇게 말라있으면 어떡해?"

"그, 급식 열심히 먹어요. 오늘 나온 육포 얼마나 맛있었는데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나 이제 진짜 간다. 잘 지내. 도둑질 같은 거 하지 말고."

"...네. 들어가세요."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소녀의 얼굴을 기억해둔 메티스는 더 이상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두 다리를 쭉 펴며 잠에 들었다.

'그런데 급식으로 육포도 나왔던가?"




"서장님. 오늘 늦으셨네요?"

"말도 마라. 아침부터 난리였어."

정오가 지나서야 지친 표정으로 들어오는 서장에게 인사한 메티스는 같이 먹을 점심 얘기를 꺼내려다 그녀가 꺼내는 주제에 관심을 돌렸다.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내가 집 나온 애들 조심하라고 했던 거 기억나?"

"그런 말씀 하셨어요?"

"하셨다. 하여튼 그 어린 것들 좀 어떻게 하라고 하도 닥달을 해대서 옆 서에 다녀왔지."

"에이, 뻥 치지 마요 서장님. 누가 닥달한다고 일하실 분 아니신 거 아는데."

메티스의 농담에 가만히 있다가 경찰모를 벗은 서장은 그녀를 가만히 보며 말했다

"오토바이 훔친 놈도 그 중에 있을 것 같아서. 초록머리 여자애라고 했던가?"

초록머리 여자애라는 말에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껴 입을 다문 메티스는 간신히 입을 다시 열었다.

"네. 어제 저한테 오토바이 다시 돌려주고 갔는데, 왜요?"

"오늘 아침. 같은 패거리로 보이는 남자애들한테 여자애가 폭행당하고 있다는 제보가 있었거든. 니 말대로라면 오토바이 돌려준 것 때문에 저지른 보복성 폭행인 것 같은데."

가슴 앞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서장은 벌떡 일어나 나가려는 메티스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조사는 해봐야 알겠지만, 아마 그 애도 깨끗하지는 않을 거다. 왜 그 애한테 마음을 준 건지는 모르겠는데 어중간한 각오면 나가지 마."

"...서장님. 저보고 사람 보는 안목이 없다고 하셨죠?"

"그랬지."

"저는 이 쪽 일이면 대부분 서장님을 믿어요. 하지만, 이번 건..."

"경찰로서의 일이 아니니까 다르다?"

"......"

"뭐, 그럴 지도 모르지. 반차처리 해놓을테니까 이제 나는 모르는 일이다. 입구의자에 뭐 던져둔 것도 같은데 필요하면 가져가든지."

연기를 내뿜으며 컴퓨터로 시선을 돌리는 서장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메티스는 의자에 있는 서류를 집어들어 눈으로 빠르게 훑으며 곧장 주차장으로 가 오토바이를 탔다.




"허억.. 허억.. 아얏!"

빛이 들어오지 않는, 쓰레기가 가득 쌓여 층을 쌓은 건물 사이의 골목에서 쓰러진 소녀는 접지른 발목을 문지르며 앞뒤를 살폈다.

다행히 성난 황소처럼 따라오던 남자아이들은 자신을 놓친 건지 보이지 않았고 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허억... 후우... 후..."

간신히 호흡을 진정시킨 소녀는 바짝바짝 말라가는 입술을 혀로 한 번 축이고서 다시 일어섰다.

잠시 추격이 뜸해지긴 했지만 곧 다시 그들이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소녀는 잘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로 절뚝이며 빛이 새어들어오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파..."

잠시의 평화가 찾아오자 기껏 훔쳐온 오토바이를 다시 돌려주었다는 걸 알아챈 오빠와 친구들이 때린 온 몸이 욱신거려왔다.

평소에는 화 나는 일이 있어도 어른들한테 들킨다는 이유로 얼굴만은 때리지 않았지만 이번 일은 정말 화가 났는지 오늘 아침에는 얼굴도 얻어맞아 성한 곳이 없었다.

그 무자비한 손과 발길질의 공포를 되새긴 소녀는 온 몸을 떨면서 벽을 짚고 간신히 한 걸음 한 걸음 빛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일단 큰 도로로 나가면 자신을 어쩌지는 못 하리라. 몇 번이나 눈 앞에 보이는 어른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모멸감 섞인 시선을 받고 일주일동안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맞았던 기억이 있는 그녀는 기적을 바라지 않았다.

단지, 큰 도로에서는 그들도 막무가내로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도로까지 거의 도착한 소녀는 멀리서 들려오는 성난 목소리에 어깨를 움츠렸다.

곧 저 멀리 뒤에서 쓰레기더미를 밟고 자신을 잡으러 오는 오빠의 친구들이 보였고, 소녀는 움직이지 않은 다리를 애써 움직였다.

움직여서...

'움직여서, 어떡하지?'

설령 도로로 나간다 해도 그 순간 뿐이고, 결국 그들은 다시 이 뒷골목으로 자신을 데려올 것이다.

그러면 그 전과 같은, 혹은 더 비참한 삶을 살게 되겠지.

그런 생각에 아랫입술을 꽉 깨물면서도 소녀는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잠시만이라도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급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다섯 걸음도 채 남기지 않은 곳에서 다시 한 번 발을 접지른 소녀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 하며 철퍼덕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고 앞을 가리는 그림자와 뒤에서 점점 다가오는 발소리에 소녀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걸 느끼며 눈을 감았다.





"잡았다. 오토바이 도둑."

"...언니?"

'어른을 보면 무조건 웃어.'

오빠가 가르쳐준대로 소녀는 천천히 눈을 뜨고 눈 앞에 선 금발의 불량한 옷차림을 하고서 팔짱을 낀 그녀를 올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너. 괜찮은 거야?"

"네? 뭐가요? 아.. 얼굴은 넘어지면서 다친거에요. 헤헤."

메티스는 다 쉰 목소리로 웃음을 쥐어짜내는 소녀의 뒤편 멀리에서 다가오는 남자아이들을 흘끗 보며 물었다.

"그렇게 말하라고 배운 거야? 어른을 보면 웃으라고 배웠고?"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다시 물을게. 너, 괜찮은 거야?"

소녀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웃으며 말을 돌리려 했지만 입만 웃을 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오빠한테 몇 십번이나 말 해도, 어른들한테 몇 백번이나 말 해도 들어주지 않던 말.

계속 해봐야 돌아오는 건 폭력뿐이라는 걸 안 뒤로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말.

이 사람이라면 그 말을 들어줄까?

눈 앞의 여자는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어깨를 한 번 움찔했지만
팔짱을 낀 상태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다른 말을 하지도 않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억지로 밀어올린 입꼬리가 내려오고, 애써 평정을 가장하던 얼굴이 무너지고, 여태껏 참아온 눈물을 터뜨린 소녀는 파르르 떨리는 입을 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 하나도 안 괜찮아요. 오빠랑 친구들한테 맞는 것도.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도. 어른들만 보면 억지로 웃는 것도. 물건 훔치는 걸 도와주는 것도 더 이상 하기 싫어요. 나 하나도 안 괜찮아요, 언니... 나 좀 도와줘요.."

울음 때문에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며 말을 뱉어내는 소녀의 말을 모두 들은 메티스는 그제서야 팔짱을 풀며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도와줄게."

햇빛이 눈을 찌르는 도로로 단숨에 자신을 이끈, 소녀가 잡은 그 작은 손은 여태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한 따뜻한 손이었다.






"들어와."

소녀가 주춤거리며 들어오는 걸 본 메티스는 멍이 든 그녀의 한쪽 눈을 보고서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옷 좀 벗어봐. 후드만 벗어도 되니까."

"네?"

"얼른."

단호한 메티스의 목소리에 소녀는 느릿느릿하게 후드를 벗었다.

후드 아래, 흰 티만 입고 있는 소녀의 팔에는 상처와 멍자국이 가득했다.

단순히 때리기만 한 것이 아닌, 도구를 이용한 흔적도 있는 것을 본 메티스는 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온 몸이 다 이런 거야?"

"거의 다요."

"...가서 씻고 와. 옷은 내 거 줄 테니까 그거 입고 오고. 속옷은 나중에 가서 사자."

고개를 끄덕인 소녀는 다시 후드를 입고서 메티스가 건네는 옷을 받아들고 욕실로 향했다.

정말로 간만에, 아니.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처음으로 따뜻한 물을 튼 소녀는 온 몸이 따끔거리는 걸 느끼며 목욕을 했다.

몇 시간 전 까지만 해도 쫓기던 상황에서 전혀 달라진 이 상황에 정신이 없어서였을까. 한참이나 떨어지는 물을 멍하니 맞고 있던 소녀는 뻣뻣한 머리를 감고 샤워볼 대신 손에 바디워시를 묻혀 조심스레 몸을 씻고선 메티스가 준 옷을 입고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자 코를 찔러오는 고소한 냄새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걸 느낀 소녀는 본능적으로 그 냄새를 따라가 메티스가 있는 부엌으로 갔다.

"아. 다 씻었어? 근데 옷이 좀 크네. 저녁에 속옷이랑 같이 옷도 사자."

"네..."

"거기 앉아. 내가 할 줄 아는 게 볶음밥 뿐이라. 아니 이것도 냉동이긴 한데, 나중에 더 맛있는 거 해줄게. 일단 오늘은 이거 먹어."

식탁에 앉아 메티스가 떠둔 걸로 보이는 물을 한 모금 조심스레 마신 소녀는 자신 앞의 놓인 접시에 수북히 담기는 볶음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프라이팬을 가져다두고 소녀의 반대편에 앉은 메티스는 아 하며 입을 열었다.

"너 배고플 것 같아서 두 개 뜯었는데, 너무 많나?"

"아니요, 잘 먹을게요."

"근데 너 안 웃으니까 엄청 딱딱해 보인다."

"......"

자신의 눈치를 보는 소녀를 본 메티스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웃으라는 소리 아니야. 억지로 웃는 것보다 지금이 훨씬 보기 좋으니까."

"그런가요."

"어째 말투도 좀 변한 것 같다. 그래.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고. 그게 맞는 거지. 내 앞에서만이 아니라 어디서든."

"......"

메티스의 말을 듣던 소녀는 말 없이 숟가락을 들어 볶음밥을 입에 넣었다.

"어때, 맛있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밥을 먹는 소녀를 보던 메티스는 턱을 괴고 있다가 돌연 입을 열었다.

"헤일리. 그거 네 진짜 이름 아니지?"

"네."

"오빠가 그 이름 쓰라고 하디?"

오빠라는 말에 몸을 움찔거린 소녀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원래 이름은 뭐야?"

"..헬라요."

"헬라. 예쁜 이름이네. 앞으로 같이 지낼 사이니까 내 이름도 말해줄게. 나는 메티스야."

"메티스.. ...그런데 같이 지낸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야. 너만 괜찮으면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자. 법적 절차 같은 건 내가 어떻게든 해볼테니까. 어디까지나 네가 원한다면 그러겠다는 거야. 싫다고 해도..."

다른 방법도 많다 말해주려던 메티스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헬라의 볶음밥 위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 날 저녁, 양 손에 쇼핑백을 잔뜩 든 메티스는 헬라의 머리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헬라. 나온 김에 염색도 하고 가자. 그 머리 너무 이상해. 너무 많이 상하기도 했고."

"아.. 염색은 싼 걸로 밖에 못 해서요. ...저, 혹시 가능하다면 연두색으로 해도 될까요?"

"안 될 건 없지. 근데 왜 연두색이야?"

"원래 연두색이었는데 오빠가 억지로 녹색으로 염색시킨거거든요."

"연두색 머리도 있구나. 그러자. 더 필요한 거 있으면 말 해."

"지금 생각나는 건 없어요. ... 감사해요."

쑥스러운듯 목소리가 작아지는 헬라의 머리를 쇼핑백을 든 손으로 간신히 쓰다듬어준 메티스는 그녀의 손을 잡고 미용실로 향했다.






한 달 뒤.


"메티스. 너 앞으로 퇴근할 때마다 '감사합니다 카두케우스 서장님! 존경합니다 카두케우스 서장님!' 하면서 퇴근해라."

"그런 거 안 해도 감사하고 존경하는 거 아시잖아요."

"너 때문에 한 달 꼬박 뛰어다니면서 고생한 거 생각하면 출근할 때도 그 말 해야 돼 넌."

"아, 하면 되잖아요. 감사합니다 카두케우스 서장님! 존경합니다 카두케우스 서장님!"

"잘 하네. 봐라, 얼마나 듣기 좋은지."

좋아라 웃는 서장의 옆에서 메티스는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이에요. 서장님 아니었으면 헬라가 로키네 패거리가 아니라는 걸 입증하는 것부터 어려웠을 거에요."

"뭐, 그 패거리에 있었던 게 강제였다는 것만 증명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자칫 잘못했다가는 헬라 보호소 갈 뻔 했잖아요. 그 때 얼마나 초조했는데요."

"그러니까 넌 상관 잘 둔 줄 알아라. 이렇게 능력 있고 부하 끔찍이 챙기는 이런 상관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어?"

"네, 정말 끔찍하네요. 아, 6시다. 저 먼저 들어가볼게요."

"메티스."

"무섭게 왜 이름만 부르고 그러세요?"

"고생 많이 했다. 이제 집에가서 딸..푸흡...이랑 오붓한 시간이라도 보내."

"그,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요! 이상하잖아!"

기겁을 하며 나온 메티스는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있을 소녀를 떠올리고서 빙긋 웃으며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딸랑딸랑

"아저씨, 오랜만이야."

"한동안 못 볼 거라 하더니, 생각보다 일찍 보게 되는군."

"한 달이면 긴 거 아니야?"

메티스의 물음에 씁쓸한 웃음을 지은 주피터는 그녀의 뒤에 누군가 서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뒤에 있는 손님은 누구인가?"

"아, 그... 내 딸이야. 헬라, 인사해. 주피터라고, 언니랑 친한 아저씨야."

"안녕하세요. 헬라라고 합니다."

얇은 양갈래를 한 연두색 머리의 소녀는 병아리를 연상시키는 노란색 스웨터에 흰 면바지를 입고 양 손을 모으며 인사했다.

"예의 바른 아이군. 그런데 딸이라고?"

"응. 어쩌다가 입양하게 됐어. 오늘부터."

"그동안 자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지는 말이군. 한 달 동안 얼굴을 안 비춘 건 입양과정 때문인가?"

"그런 거지. 참, 들어오면서 보니까 아직 아르바이트생 구하는 거 같던데. 청소년도 되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니 안 될 건 없지. 그 아이가 하는 건가?"

"나는 청소년 아니니까 헬라가 하는 거지."

메티스의 말을 듣고 조용히 서있는 헬라를 바라본 주피터는 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곧 교대가 오니 면접은 그 때 하지. 그리고 자네는 잠시 나가있어주게.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 거지만 면접은 면접이니."

"빨리만 끝내줘. 오늘 헬라랑 할 거 많으니까."

"오래 걸리지 않을 걸세."





7시 20분.

가게 앞 벤치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던 메티스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주피터와 함께 나오는 헬라를 보고 물었다.

"헬라. 면접 잘 봤어?"

"네. 아저씨가 친절하게 대해주셨어요. 원한다면 내일부터 나와도 된다고 하셨어요."

"정말? 아저씨. 진짜야?"

"거짓말이라 하면 체포라도 해갈텐가?"

재미없는 농담에 혼자 웃은 주피터는 무안해하며 말했다.

"계약서는 작성했으니 시작날짜만 정하면 되네. 급료에 대한 부분은 설명은 해줬지만 자네에게도 당연히 따로 설명해주겠네. 지금 듣고 갈텐가?"

자신의 옆에 선 헬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메티스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 헬라랑 같이 갈 데가 있어서. 내일 아침 일찍 와도 될까?"

"그렇게 하게. 오기 전에 전화 한 통 정도만 해주면 고맙겠군."

"알았어. 고마워 아저씨."

"감사합니다 아저씨."

비슷한 인사를 남기고서 오토바이 위에 타는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피식 웃은 주피터는 문 앞에 붙여둔 종이를 떼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언니. 근데 오늘 어디 가는 거에요?"

"음... 가면 알 텐데. 지금 알고 싶어?"

"아니요. 안 알려주셔도 돼요."

"참. 배고프진 않아? 저녁시간 한참 지났는데."

"괜찮아요. 오후에 운동하고 온 것 빼면 집에만 있었거든요."

"나는 배고파. 빨리 볼 일 보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오늘은 그럴만한 날이니까. 그런데 하루종일 안 심심했어?"

"조금요. 그래도 책 읽고 있으니까 시간은 금방 갔어요. ...사실 오늘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집중은 하나도 못 했지만요."

무미건조한 목소리지만 그 안에 쑥스러움이 느껴지는 헬라의 목소리에 참을 수 없는 미소를 지은 메티스는 천천히 오토바이를 멈춰 한 교복가게 앞에 멈춰섰다.

"여긴..."

"너도 이제 학교 다녀야지. 교복은 내가 미리 주문해뒀으니까 이제 나와있을거야."

"네?"

"옷 사이즈는 대충 아니까. 아, 앞으로 클 거라는 이유로 더 큰 사이즈로 주문하고 그러진 않았어."

"아니요. 그거 말고..."

"응? 아, 학교 얘기?"

고개를 끄덕이는 헬라를 본 메티스는 오토바이의 키를 빼 주머니에 넣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가까운 학교야. 이래저래 처리할 게 많아서 당장 다니진 못하겠지만 입학수속은 밟아뒀어. 대신 이전 교육과정은 따로 해야되니까 오늘부터 공부 열심히 해야된다. 알았지?"

메티스의 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멍하니 서있던 헬라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그녀의 품에 폭 안겼다.

한참이나 그러고 있다가 눈물콧물로 범벅이 돼 얼굴을 뗀 헬라를 보고 피식 웃은 메티스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가게의 문을 열었다.









"언니, 저 이제 나가요."

"하으음... 으... 어제 너무 마셨나보다..."

침대에서 좀비처럼 부스스 일어난 메티스는 눈도 뜨지 못 한 체 헬라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토스트 해뒀으니까 먹고 나가세요. 전 그럼 나가볼게요."

귀여운 리본을 맨 블라우스에 위에 연푸른색 마이를 입고 비슷한 색의 치마 밑으로 스타킹을 신은 헬라는 메티스가 억지로 달아준 곰인형이 달랑거리는 보라색  커다란 가방을 매고서 현관으로 향했다. 

"헬라, 잠깐만. 이리 와봐."

"왜요?"

눈 앞에서 살짝 삐친 듯 말하는 헬라를 보고 끙 하며 일어선 메티스는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학교 재밌게 다녀와. 저녁엔 학교에서 뭐 배웠는지, 친구들이랑 무슨 얘기 했는지, 오는 길엔 뭘 봤는지 말해주고."

"...네."

헬라를 안은 팔에 힘을 한 번 꽉 준 메티스는 그녀를 놓아주고서 같이 현관으로 갔다.

그리고 그 골목에서 그랬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팔짱을 끼고서 자신이 나가는걸 지켜보는 메티스를 돌아본 헬라는 그 때 이후로 처음 지어보는 환한 웃음을 보여주며 문을 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부제

연두머리 소녀





헬라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