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흐응~ 흐응~"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새벽.

아직 해도 뜨지 않아 창문 밖이 깜깜한 시간에 일어난 테오파노는 부엌에 서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준비한건지 햄과 단무지, 시금치와 맛살.

그리고 수상해 보이는 재료 몇 개를 옆에 준비해둔 테오파노는 미리 준비해둔 발 위에 김밥김을 하나 올려두었다.

"이렇게 도시락을 싸두면 주피터 씨가 좋아하시겠죠?"

오늘 함께 나가기로 한 약속.

말은 약속이었지만 데이트를 하러 나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테오파노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오른 표정을 하고있었다.

일어나서 세수만 대충 해 아직 부스스한 얼굴이었지만 부엌에 혼자만 있어 신경쓰지 않은 테오파노는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어디서 꺼냈는지 투명한 비닐장갑을 낀 그녀의 희고 가느다란 손은 김밥을 한 줄 두 줄 싸기 시작했다.

중간에 맛을 보기 위해 한 줄을 잘라 먹어보기도 하며 손을 바삐 움직이자 눈 깜짝할 사이에 열 줄이 넘는 김밥이 접시 위에 올라갔다.

마치 탑이라도 쌓듯이 김밥을 하나하나 쌓아올리던 그녀는 열 줄이 넘게 싸고나서야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저녁까지 먹어도 충분하겠죠? 주인님도 배고프실테니까 드리고, 로잔나한테도 주고, 그리고..."

아침부터 준비를 하느라 꽤 지쳤는지 테오파노는 식탁의자에 앉아 멍하니 김밥을 바라보았다.

아직 할 게 많은데도 눈꺼풀이 계속 무거워져오자 졸음을 참을 수 없었던 테오파노는 곧 고개를 꾸벅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식탁 위에 누워버린 그녀는 김밥을 내버려둔 채 짧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쿠울..."

=*=

"...? 얘는 왜 여기서 자고있어?"

이른 해가 떴을 쯤.

물을 마시기 위해서인지 담요를 입고 나온 악마는 식탁에 엎드려있는 테오파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겠다며 호들갑을 떨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럴지 몰랐던 악마는 부엌의 모습을 슥 살펴보았다.

언뜻 봐도 엉망이 돼버린 곳곳의 모습과 커다란 접시 위에 잔뜩 쌓여있는 김밥.

그리고 맛을 보기 위해 썰어둔 것인지, 도마 위에 있는 김밥을 하나 집어먹은 악마는 의외라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되게 잘 쌌네. 왜 참치도 깻잎도 안 넣고 마요네즈를 넣은건진 몰라도."

지난밤 아르바이트를 하고 와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악마는 테오파노가 앉아있는 긴 의자에 앉아 김밥을 몇 개나 낼름낼름 집어먹었다.

그러고 있으면 테오파노가 일어나 무슨 말이라도 할 줄 알았지만 식탁에 엎드린 그녀는 행복하게 잠든 얼굴 그대로 새근새근하는 숨소리만 내뱉을 뿐이었다.

주피터와 테오파노의 약속이 있다는 걸 알고있긴 했지만 시간이 아직 한참 남은 걸 본 악마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게 천천히 일어나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담. 평소엔 늦잠 자는 애가."

일찍 일어난 테오파노가 신기했는지 악마는 그녀를 바라보며 한참동안 김밥을 집어먹었다.

거의 한 줄 가까이를 다 먹고나서야 배가 불러오는 걸 느낀 악마는 하품을 하며 일어나 자신의 담요를 테오파노에게 덮어주었다.

"으음... 주피터 씨, 거기는 안 돼요..."

"얘는 무슨 꿈을 꾸고있는거야?"

어이가 없다는듯 말한 악마는 좀 더 자기 위해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 때, 언제 일어났는지는 몰라도 멀끔한 모습에 옷까지 차려입은 주피터가 복도에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가 이 시간에 일어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어서 악마는 힘없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일어났네 주피터."

"진즉 일어났네. 그보다 자네는 오늘 일찍 일어났군.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어."

"그래서 지금 다시 자러 가려고. 흐아암... 아, 방급 보니까 테오파노 김밥 엄청 싸놨던데. 넌 봤어?"

"테오파노가?"

주방 쪽으로는 간 적이 없었는지 주피터는 의외라는듯 되물었다.

다시 잠이 몰려오기 시작했는지 얼굴이 졸음으로 가득해진 악마는 하품을 하면서 주방을 가리켰다.

"흐아암... 지금 주방에 있으니까 한 번 가봐. 너랑 어디 간다고 엄청 신난 것 같던데."

"...알겠네. 고맙군."

악마의 말을 듣고난 주피터는 주방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가 해준 말대로 테오파노가 하늘색 머리를 식탁 위에 잔뜩 흐뜨러트린 채로 엎드려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악마가 옆에 있었다면 한심해하는건가 생각할만한 한숨이었지만, 주피터의 속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속마음을 혼자서만 생각하며 테오파노에게 다가간 주피터는 그녀의 작은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테오파노,, 일어나보게."

"음냐... 응...? 주피터 씨...?"

줄음이 가득한 얼굴로 눈을 깜빡깜빡거린 테오파노는 주피터를 한참이나 보고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귀가 살짝 빨개진 그녀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이 싸둔 김밥을 가리켰다.

"저, 저거 오늘 주피터 씨랑 소풍 나가려고 싸둔 거에요! 잘 싸지 않았어요?"

"소풍?"

"네! 오늘 오후에 저랑 같이 나가자고 하셨잖아요."

"...?"

잔뜩 신난 테오파노를 보며 주피터는 금시초문이라는 얼굴을 했다.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혹시라도 자신의 기억이 틀린 건 아닐까 싶었던 그는 어제의 일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그런 건가."

그제서야 왜 테오파노가 엉뚱한 말을 하는지 알아챈 주피터는 어이없다는듯 중얼거렸다.

아직 졸음에서 벗어나지 못 해 눈을 깜빡거리고 있는 테오파노의 건너편에 앉은 주피터는 잘라둔 것 중에 딱 하나 남아있는 김밥을 집어먹었다.

그다지 맛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맛에 고개를 끄덕인 주피터는 언제나와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쁘지 않군. 소풍 나갈 때 먹을 밥으로는 딱이겠어."

"정말요? 헤헤... 아! 주피터 씨 거는 제가 특별히 재료도 많이 넣었어요!"

"그랬나. 어쩌지 몇 개만 너무 크다 싶었는데, 그런 이유였나보군."

"제가 예쁘게 썰어드릴테니까 맛있게 먹어주세요!"

졸려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렇게 말하는 테오파노의 모습에 주피터는 하마터면 입꼬리가 올라갈 뻔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은 그는 대신 아까부더 생각하고 있던 말을 꺼냈다.

"그런데 오늘 소풍 간다는 말은 누가 한건가?"

"네? 그거야 주피터 씨가 그러셨잖아요. 오늘 오후에 같이 나간다고."

"분명 그렇게 말하긴 했네만. 뭘 하러 나간다고 했는지는 제대로 듣지 않은 모양이군."

"...?"

그 말에 테오파노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잔뜩 기대를 한데다가 아침부터 분주하게 바쁘게 준비한 테오파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주피터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오늘 주인이 맡긴 임무를 하러 가는 게 아니었나. 소풍 간다고는 하지 않았네."

"저, 정말요? 아닌데... 소풍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청천벽력 같은 말에 테오파노는 믿기 싫다는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안 믿기면 주인에게 물어보게. 어제 거실에서 똑똑히 말하지 않았나."

"히잉..."

주피터가 틀릴 리 없다는 걸 아는 테오파노는 반박을 하지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직 제대로 씻지도 못 하고 담요를 덮은 채 풀죽은 테오파노의 앞에서 주피터는 잔뜩 쌓여져있는 김밥들을 바라보았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풍기는, 작은 참깨가 뿌려져있는 김밥을 잠시 보고있던 주피터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다른 일은 몰라도 주인이 맡긴 임무에서만큼은 조금의 양보도 없다는 걸 아는 테오파노는 억지도 부리지 못 하고 그가 떠나가는 발소리를 듣기만 했다.

저벅저벅.

끼이익...

"...?"

발소리가 멀어질 줄 알았던 테오파노는 가까이서 들리는, 찬장을 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리고 주피터가 찬장에서 도시락을 꺼내고 있는 걸 본 테오파노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김밥은 여기에 넣으면 되겠나?"

"네? 아... 네! 거기에 넣으면 딱 맞을거에요. 저기, 그런데..."

거기까지만 말한 테오파노는 뒷말을 잇지 못 하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기만 했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 짐작은 갔지만 모른체 한 주피터는 능청스레 물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게."

"소풍 가는 게 아니라 주인님이 맡기신 임무 하러 가는 건데, 김밥 싸가도 되는 거에요? 주피터 씨는 그런 거 싫어하시잖아요..."

"음. 그건 그렇지. 한창 임무를 하는 와중에 김밥을 먹자고 조르면 쓴소리를 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주인이 시킨 걸 다 하고나면 소풍을 가든 김밥을 먹든 상관없지 않겠나."

"그, 그렇죠! 저도 처음부터 그렇게 할 생각이었어요!"

"소풍까지 다녀오려면 바쁠테니 어서 준비하게. 나도 도와줄테니."

도시락통을 식탁 위에 올려둔 주피터는 손을 깨끗이 씻고서 칼을 집어들었다.

그리 고새 도마를 하나 꺼내 김밥을 썰려 하자 어느새 옆까지 다가온 테오파노가 싱글벙글거리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제가 주피터 씨 드시라고 특별히 싼 김밥들 한 번 봐주세요. 제가 맛있는 거 잔뜩 넣었거든요."

"호오, 그런가. 기대되는군."

다른 김밥들보다 언뜻 보기에도 덩치가 큰 김밥을 도마 위에 올린 주피터는 안에서 느껴지는 물컹거리는 무언가에 흠칫 하고 어깨를 움찔였다.

이상한 걸 넣지 않았을거라 믿고 싶었지만 테오파노의 엉뚱함을 아는 주피터는 저도 모르게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선 김밥을 천천히 세워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상상도 하지 못 했던 재료가 들어 있는 걸 본 주피터는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며 물었다.

"...도대체 김밥에 슈크림은 왜 넣은겐가?"









부제는 다정한 배려

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