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올라온 읽을거리 글. 본인도 몹시 재미있게 읽었지만, 한 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토론하던 도중 아서 대통령이 예정보다 일찍 오는 바람에 반사적으로 왕에게 하듯이 절을 했다고……”


아시다시피 조선은 유교 -꼰- 사회였고, 그런 유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다름아닌 예(禮)였다. 이를테면 LOL을 하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과연 정글러가 몇년 상을 치러야 하는지, 그 복색은 어찌해야 하는지. 양반과 상놈 간에는 서로 어떤 의례를 갖추어야 하는지, 종묘의 제사는 어떻게 지내는지 등등등.


이로 인해서 터진 가장 유명한 사건은 예송논쟁일 것이고, 소설 「남한산성」을 봐도 앞마당까지 밀고 들어온 오랑캐 대빵을 어떤 호칭으로 부를지 병림픽하는 내용이 나온다. 하물며 타국의 최고 지도자를 영접하는 자리에서, 조선의 얼굴마담으로 내보낸 보빙사들이 어떻게 대우할지 갈피를 못 잡다가 ‘반사적으로’ 큰절을 했다는 언급의 신빙성은 의아하다.


그럼 그 레퍼런스는 어디 있을까?



나무위키의 보빙사 항목과 체스터 A. 아서 항목에 동일한 언급이 보인다. 그럼 저 링크는?




이곳으로 연결된다. “어떤 방식으로 인사를 할지 의논하던 조선 보빙사 일행은 잠시 당황하다 큰절을 했다.”


이러한 서술이 인터넷 군데군데 보이고 또 몇몇 냥붕이들에게도 위화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아마 최상단에 있는 보빙사가 절하는 일러스트가 머릿속에 깊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빙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만국박람회도 아니고 뉴욕의 거대한 호텔도 아니고, 한국사 교과서에 실린 저 일러스트가 다들 생각나지 않는가? 촌시런 조선 전통복(?) 차림의 사내들이 문지방 앞에서 양복 사나이에게 절하고 있고, 아마도 대통령으로 보이는 양복맨은 굉장히 떨떠름하게 몸을 뒤로 젖히고 있다.


미국까지 와 놓고 습관 때문에 튀어나온 옛 풍습으로 큰절을 하는 조선촌놈들, 그리고 그걸 굉장히 떨떠름하게 쳐다보는 미국의 대통령. 그 구도가 딱 구한말의 정세랑 맞아떨어져서 곧 보빙사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각인된다. 말이 된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도로, 과연 저 절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그랜절일까?


글쎄. 맨 위의 그림을 봐도 이상한 점이 보인다.


1. 보빙사 멤버들이 사모관대를 차려입고 있다는 건(그림에는 사모관대도 아닌 어정쩡한 복장으로 되어 있음) 이미 조선의 예법대로 타국의 왕을 존중하겠다는 의도일 텐데, 왜 절하고 말고를 가지고 토론하고 있었겠나?

2. 아무리 봐도 보빙사들이 누워 있는 곳이 복도이고 아서가 있는 곳이 접견실 내부인데, 아서가 늦게 도착해서 보빙사가 반사적으로 절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리고 이하의 질문들이 여전히 남는다.


3. 조정에서 보낸 보빙사들(홍영식, 민영익, 서광범 등)이, 접견 당일날까지 외국 대통령에게 절할지 말지 못 정하고 있었을 정도로 띨띨했을 리가 있나?

4. 더구나 아서와 접견하기 전에 이미 조선이 타국(비단 미국이 아니라도)의 외교관들과 접촉한 적이 있을 텐데, 저런 자리에서 외교관인 보빙사들이 서양 예법을 처음 접해 본 여고생들처럼 얼탔다는 것이 타당한가?



이글루스에 덕륜재라는 블로그(이글루?)가 있는데, 거기에 보빙사의 행적을 당시 영자신문들과 대조하며 교과서보다 훨씬 소상히 정리해 둔 연재가 있었다. 본인이 고3때 공부하기 싫으면 시간 죽이기로 컴퓨터실 가서 읽던 글인데, 꿀잼이니까 읽어볼 법하고...


오늘 내가 렉카해 온 글은 바로 이것. 나무위키에 써져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주장이 펼쳐져 있다. http://dylanzhai.egloos.com/m/3309614

(방금 보니까 나무위키에도 링크 걸려 있음 ㅋㅋ;;)



당시 보빙사 이벤트를 보도한 신문에서는 아서 대통령과 미국 정부 요인들이 11시 경에 이미 접견실에 있었으며, 보빙사 일행들이 그 뒤에 와서 문 밖에서 절을 했다고 쓰여 있다고 한다. 아서의 Fashionably late에 관한 내용 따위는 전혀 없다.


사실 저것이 당연한 게, 만리 타국에서 온 두루마기 차림의 청년들이 이것저것 신기하다고 구경하고 다니는 것 자체가 미국인들에게는 하나의 신기한 이벤트였다. 당시만 해도 지식이 없는 계층 “저게 일본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하는 반응이었다고 하니.


그러니 이들의 취급은 세미 국빈급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엣큥♡ 하면서 지각하고, 보빙사들이 그걸 보고 당황해서 팔치녀 잘못 쓴 이오리처럼 반사적으로 큰절발싸! 할 법한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더 살펴보자.



보다 외교관, 그러니까 ‘사신’의 모습에 가까운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문 밖에는 갓 쓴 보빙사 수행원들이 꿇어앉아 있고, 확실히 보빙사 멤버들이 접견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서를 찾아온 구도다.


복장에 관한 내용도 보다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블로그 주인장님의 번역에 따르면 대충 저런 관복을 착용하고 있었단다. 분명 저건 사신의 복식인데, 동양 스타일이다.


이미 조선에서부터 외국인도 만나 보고 했을, 그나마 조선에서는 상위 1% 수준으로 외국 문물에 열려 있었을 보빙사 멤버들이, 왜 단령에 흉배까지 빼입고 대통령을 만나뵀을까? 서양 예법을 따지고 자시고 할 정신이 있었다면 애초에 관복이 아니라 양복을 입고 있지 않았을까.


그야 “우리는 조선 스타일로 접대할 것이다.”라는 의사표현이다. 보빙사는 관광객이나 천조국뽕 맞은 스파이가 아니고, 조선을 대표해서 저 자리에 나온 거니까.


그래서 그들은 조선에서 타국의 왕을 영접하는 태도와 같이 아서에게 큰절을 했다. 통역관이 “이것은 조선의 외교관들이 타국의 왕에게 갖추는 최고의 예우 표현입니다.”라고 아서에게 전했다. 민영환은 이어 조선말로 조서를 낭독했다. 분위기가 우호적이고 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언론이 이것을 호의적으로 보도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으로 번역한 故 이윤기 작가가,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무덤이 있는 크레타 섬에 갔을 때 이런 일화가 있었다.


함께 간 동료 교수와 작가들은 카잔자키스의 무덤 앞에서 소주를 따르고 묵념을 했지만, 이윤기 씨는 한 술 더 떠 그 앞에 큰절을 올렸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가이드가 눈물을 터뜨렸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네 나라의 대문호에게 이만한 예우를 보이는 것이 더없이 감동스러웠던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닌 국가 사이에서 보낼 수 있는 최고의 경의는, 바로 자기 문화의 방식으로 보내는 경의다. 왜냐하면 그 행위에는 진심이 담겨 있으니까다. 비록 공자가 자기가 있는 고을의 복식을 따랐다고는 하지만, 외교의 세계에서는 사뭇 다른 문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빙사 일행은 미국의 ‘프레지던트’에게 큰절을 한 것이고, 미국의 민심은 그들을 웃음거리 삼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행위에 담긴 행간이 외면되고 ‘얼탄 나머지 반사적으로 튀어나간 행동’으로 읽히는 것은 조금 서글픈 일이다.


하물며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저 그림을 보고 ‘미국 땅에서까지 구습을 포기하지 못한 우스운 모습’이라고 생각해 버린다면 어떻겠는가.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