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기분 좋게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아카라이브를 보고 있습니다. 난방기기는 너무나 따뜻하고, 옆에 놓인 간식거리는 입에 착착 달라붙습니다. 이 순간이 너무나 즐거우면서도 다소 따분합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그 따분한 일상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가르쳐 드리기 위해, 1945년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리틀 보이를 가져왔습니다. 불꽂놀이를 보여 드리기 위해 말이죠. 당신은 아마 이 일탈보다 큰 일탈을 느끼지 못하실 겁니다.


나는 당신이 어디 사는지 모르지만, 일단 도심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시골이라면 뭐, 운이 좋으셨습니다. 나는 리틀 보이를 들고 가볍게 공중으로 부상해 올라, 폭탄을 가동하고 상공 10킬로미터 가까운 높이에서 리틀 보이를 떨어뜨립니다. 무게 4.4톤, 우라늄 64킬로그램으로 이루어진 리틀 보이가 땅을 향해 달려듭니다.


쾅! 리틀 보이는 땅으로부터 약 600미터 정도의 높이에서 폭발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마어마한 광채와 빛을 뿜어냅니다. 0.001초 만에 뿜어져 나온 엄청난 열 때문에 주변의 공기를 비롯한 모든 물질이 플라스마로 변하고 그 플라스마 덩어리는 무려 직경 1킬로미터에 달합니다. 이 범위 안에 계셨다면 축하드립니다. 플라스마로 변하시면서 고통 없이 가셨습니다.


1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플라스마 덩어리는 급격하게 주변으로 팽창합니다. 폭발은 아시다시피, 쾅! 하고 나서 터진 곳에서부터 열과 파편이 사방으로 뻗쳐 나옵니다. 핵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 범위가 어마어마할 뿐입니다. 열이 점점 주변으로 퍼지면서(이 "점점"은 1초를 뜻합니다)플라스마 덩어리도 커지고, 여기서 뻗치는 어마어마한 광채도 사방으로 뿜어져 나옵니다. 그리고 이 구를 직접 바라본 모든 이들의 눈이 타 버리고 맹인이 됩니다.


이어서 이 플라스마 구에서 사방으로 뻗어나오는 막대한 복사열이 도시를 강타합니다. 폭발지점으로부터 반경 12.5킬로미터 내의 모든 것에 섭시 수백도의 열이 순간적으로 가해지고 탈 만한 건 다 타기 시작합니다. 사람이라고 예외는 없습니다. 보통의 불과 다른 점이라면, 열이 워낙 엄청나서 사람이 이글이글 탄다기보다는 그대로 녹아버릴 만한 건 다 녹아 버리고 신체조직은 바싹 튀겨진다는 것이죠.


복사열이 지나가고 대략 1초에서 3초 정도의 시간 뒤, 엄청난 열기로 인해 플라스마화된 공기들이 주변의 공기들을 가열하지만, 이미 몇 차례나 주인을 넘어온 열들은 공기를 또 플라스마화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공기를 팽창시킬 능력은 충분하죠. 플라스마 구 주변의 공기가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섭씨 230도에 최대 풍속 마하 1.8의 바람이 주변으로 휘몰아칩니다. 건물, 도로, 나무, 그리고 사람까지 이 바람에 휩쓸리면서 하늘로 날아올라가 버립니다. 철골로 지은 강력한 건물들은 버티고 서 있을 겁니다. 철골만 앙상하게 남은 채로.


이 어마어마한 바람이 한 번 바깥으로 휘몰아치는 데에는 대략 1분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플라스마 구가 식어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플라스마 덩어리가 빠르게 식어 다시 기체로 변하면서 온도가 떨어지고, 주변으로 뻗쳐 나갔던 초음속의 바람이 수축하며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휘몰아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차가운 바람은 아래로 급격하게 내려와 한 번 폭풍을 견뎌낸 모든 것을 다시 휘갈기며 쇄도하고, 플라스마 덩어리가 되었던 사람, 건물, 도로, 공기 등은 재와 먼지의 형태로, 섭씨 100도 이상을 유지하며 바람을 타고 위로 빠르게 상승합니다.


버섯구름입니다.


버섯구름이 뻗어 올라가면서 지름 3킬로미터가 넘는 엄청난 크기의 그림자가 땅에 드리워집니다. 버섯구름의 형태는 곧 사라지고 버섯 머리 부분의 재가 구름으로 변하면서 도시를 뒤덮고, 이때 함께 끌려 올라간 막대한 양의 수분이 다시 응결하여 물로 변합니다. 그리고 플라스마 속에서 녹아 없어진 사람, 건물, 도로, 그리고 아까 뻗어나간 초음속의 바람에 휩쓸린 사람과 모든 물건들이 하늘에서 불타고 박살나면서 먼지로 변합니다. 이 먼지들과 물이 결합하며, 폭발 1시간에서 10시간 안에 검은 물로 변하여 비로 내리기 시작합니다.


검은 비가 쏟아집니다. 핵폭발의 속에서 죽어간 망령과 그들이 아끼고 사랑했던 물건들과 집과 자동차와 도로와 그들의 시간까지 녹아들어간 검은빛의 비가 땅으로 쏟아집니다. 이 비에는 그 안타까운 것들만 녹아 있는 건 아닙니다. 우라늄이 붕괴하면서 뿜어낸 중성자가 듬뿍 녹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방사능입니다.


방사능이 하늘에서 죽은 자의 파편을 타고 내려옵니다. 이 비는 약 30분에서 1시간 정도 소나기처럼 쏟아질 겁니다. 이 비에 단 한 방울이라도 닿았다면 거기서부터 당신의 살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검은 비의 웅덩이에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유전자 조직이 파괴되고 몸 전체의 세포가 암세포로 변할 겁니다.


죽음의 비가 30분쯤 내리고 나서부터는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먹을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마실 수도 없습니다. 숨도 쉴 수 없습니다. 죽어있어야 합니다. 살아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방사능이 친히 당신의 코와 입과 눈과 피부를 갈기갈기 찢고 들어가 내장과 피와 뼈를 시커멓게 태우고 뇌를 반쯤 잘라 놓으며 고통 속에 죽어가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핵폭발 범위 13킬로미터 안에 있다면 살고 싶다는 기대는 버리는 게 좋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지하실이나 지하 주차장, 혹은 지하철역에서 피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그곳에 있는 모든 환풍구를 틀어막으시고 모든 수도와 모든 길목을 차단하십시오. 그러면 아주 조금 더 질긴 삶을 이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아직 죽음은 시작되지도 않았습니다.


뻗어나간 열기는 단순히 물건을 튀기거나 녹이는 데에 그치지 않고 불바다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초음속으로 불었던 바람 때문에 화마 역시 초음속으로 움직여 주변을 다 집어삼켰습니다. 방사능 비로 불길이 잡히기는 했지만 아직 위험은 남아 있습니다. 방사능 비가 그치자 여기저기 숨어 있던 화마가 조금씩 조금씩 다시 고개를 내밉니다. 건물들이 모조리 붕괴하면서 건물 안의 도시가스관이 대기 중에 막대한 양의 가스를 풀어놓았습니다.


불기둥이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합니다. 불은 남아 있던 모든 잔해를 다 태웁니다. 불기둥의 높이는 최소한 10미터에 달할 것이고,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도 이글이글 타오를 겁니다. 여기에 플라스마에게 가열된 공기들도 남아 있습니다. 돌과 철이 모두 녹아 쇳물이 되어 흐르고 모래와 흙은 모두 유리파편으로 변해 버립니다. 불길은 범위를 특정할 수 없습니다. 모든 걸 다 집어삼키고 태우고 녹일 겁니다. 소방대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들 역시 접근하는 즉시 방사능에 노출될 겁니다.


소방헬기는 출동할 수 있습니다. 헬기는 있는 힘을 다해 물을 뿌려서 불길을 잡으려고 애를 씁니다. 방사능이 헬기까지 올라오지는 못할 테니까요. 물론 극미량이 올라올 수는 있지만 소방대원들의 암 발생 위험율을 많아야 수 퍼센트 올리는 정도에 그칠 겁니다. 그러나 헬기가 뿌려대는 물은 또 하나의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방사능 비가 고여 있던 웅덩이는 그새 불길에게 다 증발하고 방사능 결정체만 남아 있었지만, 소방헬기가 뿌린 물에 다시 녹아 흐르기 시작합니다. 하수구, 환풍구, 예외는 없습니다. 방사능 물질을 다시 머금은 물이 강이 되어 흐르고 시체가 산처럼 쌓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구조대가 도착했습니다. 방사능을 막기 위해 방역복으로 중무장한 다수의 구조대원들이 급히 특파되어 방사능 덩어리나 다름없을 극소수의 생존자들을 구해냅니다. 생존자들은 눈알이 녹아 아래로 흘러내리거나 몸이 반토막이 났거나 온몸이 유리조각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이들은 신속하게 주변의 응급진료소로 옮겨집니다.


응급진료소는 아무런 기능도 없습니다. 납골당에 불과합니다. 방사능을 맞고 세포 단위에서부터 파괴된 생존자들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소화기관이 고장난 이들은 아무리 먹어도 영양실조로 죽을 것이고, 영양 공급을 위해 링거를 꽂으면 링거 바늘이 들어간 자리에서부터 살이 썩어들어갑니다. 백혈병이 생기고 숨도 쉬기 힘들며, 뇌가 파괴되어 정상적인 사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핵 14,000개 이상이 쌓여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의 주변은 그 정도가 심합니다. 끊임없이 핵 도발을 감행하는 나라도 있고, 핵을 처맞아 보고 나서도 여전히 핵 보유의 야심을 가진 나라도 있고, 핵 투발 수단을 늘리려고 발악하는 나라도 있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을 보유한 나라도 있습니다.


인류는 지구를 벗어날 기술도 없는 족속인 주제에 자신들을 몇 번이나 파멸시킬 수 있는 무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핵폭탄을 사용하지 않는 겁니다. 핵을 가능한 한 최대한 줄여서 국가간 질서를 유지할 정도로만 남겨두고 핵 투입을 시나리오에조차 넣지 않는 겁니다. 핵은 강대국 간의 패권 게임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핵폭탄은 당신을,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제거하고 녹이고 파괴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핵은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핵에너지는 신이 인류에게 내려준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무기로 사용하는 자도 인간이고, 타인과 나눌 따뜻한 빛으로 삼을 자도 인간입니다. 우리는 핵에너지를 빛으로, 희망으로, 미래로 나아갈 길로 삼을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을 배척해서도, 그것을 오용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핵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자료


나무위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https://namu.wiki/w/%ED%9E%88%EB%A1%9C%EC%8B%9C%EB%A7%88%C2%B7%EB%82%98%EA%B0%80%EC%82%AC%ED%82%A4%20%EC%9B%90%EC%9E%90%ED%8F%AD%ED%83%84%20%ED%88%AC%ED%95%98


쿠르츠게작트 영상 [[도시에 핵을 떨어뜨린다면?]]: https://www.youtube.com/watch?v=5iPH-br_eJQ


나무위키 [[이 세상의 한 구석에]]: https://namu.wiki/w/%EC%9D%B4%20%EC%84%B8%EC%83%81%EC%9D%98%20%ED%95%9C%20%EA%B5%AC%EC%84%9D%EC%97%90


서적 [[카운트다운 히로시마]](해당 서적은 일본을 피해자로 묘사하는 대목이 있으니 열람에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