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의 장군인 에르빈 롬멜은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과 함께 저돌적인 지휘로 유명하다. 물론 그는 전술적인 안목은 뛰어났으나 전략적인 안목은 하인츠 구데리안이나 에리히 폰 만슈타인에 비해 많이 모자랐다는 평가가 상당히 많다. 그의 자신만만한 행동과 다소 신경질적인 성격은 많은 어이없는 일화를 낳았다.


그는 프랑스에서 작전 후 철수 중일 때 실수로 자신의 대열에서 이탈, 프랑스군의 주둔지에 자기 장갑차 1대만 끌고 제 발로 들어갔었다. 그러자 롬멜은 태연하게 장갑차에서 걸어 나와 프랑스군에게 "한 번 기회를 줄 테니 항복하라!"라고 소리쳤고, 주둔지의 프랑스 병사들은 자기들이 진 줄 알고 전원 항복했다.


롬멜이 진짜 유명해진 계기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였는데, 여기서도 그는 길 잃어버리는 버릇을 못 고치고 실수로 영국군 행렬의 뒤에 끼어들고 말았다(...) 그런데 더더욱 어이없는 것은 당시 영국군 병사 누구도 자기 바로 옆에서 트럭을 타고 있는 자가 롬멜이리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기에 롬멜은 자연스럽게 원대복귀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북아프리카 전선에 있었던 롬멜은 독일의 동맹인 이탈리아에 파병되어 이탈리아 땅이었던 곳을 영국에게 10주에 걸쳐 빼앗긴 땅을 1주일만에 싸그리 수복해주는 기염을 토했다. 이 때 이탈리아군은 전차가 많지 않았고, 독일도 대규모 전차를 보내주기 어려운 실정이었는데, 그러자 롬멜은 굴러다니는 주변의 자동차들에 나무판자를 갖다 붙여서 전차 대충 비슷하게 흉내낸 다음 일제돌격을 시켰다. 사막이 대부분인 아프리카의 특성상 어마어마한 모래먼지를 일으키면서 몰려오는 가짜 전차 부대는 영국군을 기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결국 그는 실제 필요한 전차의 절반만 가지고 땅을 모조리 수복했다(...)


롬멜이 아프리카에서 연전연승하자 처칠은 롬멜을 정말 두려워하고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까마귀 떼 속의 단 한 명 진짜 군인"이라고 언급하며 감탄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롬멜의 트럭을 노획하고야 말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롬멜에 대한 경외심은 영국과 독일의 장병들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독일 장병들은 롬멜을 찬양하는 내용의 군가인 "우리의 롬멜"을 만들어 부르기도 했다.


롬멜은 주변 상황을 살피는 데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수시로 자신의 전용 트럭인 "맘모스"를 타고 돌아다니며 주변을 시찰하는가 하면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주변을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롬멜 가까이의 병사들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롬멜이 안 보인다 싶으면 어느새 비행기 타고 적진 위에서 전황을 둘러보고 있고, 그쪽에서 잠깐 대공포 소리가 들린다 싶으면 어느새 롬멜은 다시 자신들의 옆에 와 있었다고 한다. 거의 신출귀몰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휘하 지휘관이 부대를 끌고 진격하다가 게으름을 피우거나 농땡이를 부리면 위에서 비행기 타고 지나가면서 쪽지를 떨궜는데, 그 쪽지의 내용은 지금 당장 진격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내려가서 지휘하겠다는 엄포였다(...) 덕분에 롬멜 휘하의 지휘관들은 죽어날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우는 해를 어찌 막으랴. 독일의 욱일승천하던 기세가 서서히 기울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고 천하의(?) 롬멜도 결국 임자를 만났으니 바로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이었다. 몽고메리는 엘 알라메인에서 웅거하며 영국군 물자를 계속 받아먹어 독일-이탈리아군을 압도하는 숫자를 이뤄낸 뒤 롬멜이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 곧바로 대공세를 가해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켰다. 결국 전선은 급격하게 함락되었고 롬멜은 본국으로 철수했으며, 그는 자신이 애용하던 트럭 맘모스를 자신의 후임 지휘관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 지휘관은 맘모스를 애용하다가 결국 패운이 확실해지자 울면서 맘모스를 불태웠다고 한다.


이후 롬멜은 독일의 대서양 방어선에 투입되었다. 그는 방어선을 깨뜨려 본 경험을 토대삼아 대서양 방어선의 단점과 문제점을 모두 짚어내서 개수하도록 했으며, 방어능력을 임시방편이나마 크게 향상시켜 주었다.


그리고 롬멜은 기상대에게 6월 6일의 날씨가 매우 험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리를 비웠다. 그 이유는 그의 아내가 생일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롬멜은 가족에 대한 생각이 매우 각별하여 자식들에게도 일일히 편지를 쓰고 아내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을 때마다 편지를 보내는 등 정성을 다해 챙기고 안심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롬멜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 6월 6일, 독일 기상대의 일보는 완전히 빗나갔고 미/영/프 연합 13만 대군이 맑은 날씨에 맞춰 대서양 방어선을 깨뜨리고 상륙해 올라왔다. 이것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악의 제국 나치 독일에 대한 연합군 최대의 반격이자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이 독일의 등허리에 칼을 꽂은 작전으로 평가되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롬멜이 자리를 비운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나치 독일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이후 에르빈 롬멜은 아돌프 히틀러의 암살 모의 사건에 휘말렸다. 그가 정말로 히틀러를 죽이려 했는지 아닌지는 롬멜 본인만 알겠지만 아무튼 히틀러는 국민적 영웅이었던 그를 직접 제거하기 힘들다는 것을 고려하여 명예로운 국장을 약속하며 조용히 자결하기를 요구했다. 롬멜은 받아들였고, 결국 그는 청산가리 캡슐을 먹고 자결하였다.


롬멜은 아직까지도 뜨거운 감자 같은 인물이다. 그의 전술적 안목과 전략적 안목, 운이 많이 따른 한 명의 독일군 장군에 불과했다는 이야기와 독일의 아주 영리한 장군 가운데 한 명이었다는 주장, 나치에 부역한 전쟁범죄자라는 주장과 학살행위를 부정한 양심은 남아 있는 자였다는 주장이 여전히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2차 대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족적을 남긴 굉장한 거인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그의 어록 중 가장 유명한 말으로 끝마치도록 하겠다.




세상이 널 버렸다고 생각하지 마라. 세상은 널 가진 적이 없다.


-에르빈 롬멜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