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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공부하면 할수록 괴롭다. 한국어도 깊이 알기가 어려운데, 막상 한국어 화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대한민국에서 나름대로의 생존을 위해서는 한국어 실력보단 영어 실력이 더 우선이다. 어딜가나 TEPS TOEFL를 우선으로 요구하지 TOPIK은 글쎄다... 체감 상 대한민국에서 한국어 실력이 좋아서 좋은 점은 대입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에서 국어 성적이나, 아니면 우리말 겨루기에서 우승 기회가 있다는 것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마저도 수능이나 고시에서 영어도 같이 요구하니까, 어쩌면 한국어를 모르고 영어를 더 잘 아는게 대한민국에서 유리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재학할 때만 해도 말하자면 '해욋물' 먹고 들어온 애들이 꽤나 있었는데, 심하면 자기들끼리 보란듯이 영어로 대화를 하며 영어가 더 편하다는 듯, 어설프게 과장된 캘리포니아 억양으로 토종 한국인들을 조롱했다. 나와 내 친한 좌파빨갱이 친구는 나중에 우리가 꼭 이디시어를 배워서, 저 오만한 미제 앞잡이들 앞에서 이디시어로 떠들어보자고 다짐했었다.



이야기가 갑자기 딴길로 셌는데, 여기서 한남유충 논문과 관련된 글을 보면서 여성은 유체이고 남성은 고체여서 어쩌고 저쩌고란 말이 나왔다. 유체와 고체라... 전에 언어유형론을 다룬다고 깝쳤을 때 체로키어 문법을 속성으로 배운 적이 있었는데, 한가지 흥미로웠던 건 체로키어에서 일부 동사는 동사의 대상이 되는 물질의 특성에 따라서 다른 형태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체로키어에서 일부 동사의 경우 대상이 고체, 액체, 생물, 길쭉한 것, 유연한 것 중 어느 것에 해당하냐에 따라서 형태가 다르게 된다. 만약 모르는 물체거나, 의문형일 경우 고체를 기준으로 삼는다.


예) 체로키어 동사 '가지다' -Ꭽ -ha


길쭉한 것 - ᎦᎶᏇ  총; ᎦᎶᏇ ᎠᏋᏯ kaloòkwe aki-vv'ya 나는 총을 가지고 있다.

생물 - ᏐᏈᎵ 말馬; ᏐᏈᎵ ᎠᎩᎧᎭ soókwíli aki-kháha 나는 말을 가지고 있다.

액체 - ᎤᎦᎹ 수프; ᎤᎦᎹ ᎠᎩᏁᎭ uúkáma aki-néha 나는 수프를 가지고 있다.

유연한 것 - ᎠᏑᎶ 바지; ᎠᏑᎶ ᎠᎩᎾᎠ aàsuulo aki-naʔa 나는 바지를 가지고 있다.

고체 - ᎧᎵᏎᏥ 사탕; ᎧᎵᏎᏥ ᎠᎩᎭ khalseéji aki-ha 나는 사탕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동사 앞에 붙는 aki- 는 '나는'을 뜻한다. -Ꭽ -ha 라는 동사가 각각 해당하는 물체가 어떤 대상이냐에 따라서 -vv'ya, -kháha, -néha, -naʔa 등등으로 변화하였다. 외국어 좀 배웠다 하면 동사가 변화하는 것 쯤이야~ 싶은데 아니, 물체의 속성에 따라서 동사가 변화한다니?


모르는 것 - ᎦᏙ ᎤᏍᏗ ᎤᎭ kato úústi uu-ha 그는 무엇을 가지고 있나?


ᎦᏙ 무엇

ᎤᏍᏗ 그것

Ꭴ- 그는

-Ꭽ 가지다 (고체)


인용 - Montgomery-Anderson, Brad. A Reference Grammar of Oklahoma Cherokee. 2008. Print.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개념이다. 아니 걍 가지는 거면 가지는 거지 왜 그걸 길쭉한 것 딱딱한 것 액체인 것 말랑말랑한 것 살아있는 것... 무슨 좆이냐?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가 보기엔 이해가 안가는 문법이다.



하지만 마냥 웃긴 일은 아니다. 체로키어야 우리가 배워도 딱히 쓸모도 없는 언어고, 배울 일도 없는 언어다. 그러나 영어에서 이해가 안가는 문법이 나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런게 나한테도 있었다. 영어의 명사 중에서 가산명사와 불가산명사였다. Person-Persons-People-Peoples 같은 문제 마냥 가산명사 불가산명사는 내가 보기엔 이해가 안가는 문법이었다. 도대체 이건 왜 못세고 이건 왜 셀 수 있는거지? 그래서 지금도 헷갈린다.



한국어에도 비슷한 문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정물과 무정물을 구분하는 -에게/-에 의 문법이다. -에게는 주로 유정물에 사용한다. -에는 무정물에게사용한다.


사람에게 돌을 던졌다. (사람 - 유정물)

연못에 돌을 던졌다. (연못 - 무정물)


그러나 유정물과 무정물의 구분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다음과 같은 예시는 정석대로 한국어를 배웠다면 쓸 수 없는 표현들이다,


오늘도 달님에게 빌었죠. (달님 - 유정물???)

아버지는 바짝 쫓아오는 뒷차에게 화를 냈다. (뒷차 - 유정물???)

뇌와 관련된 문제는 물리학에게 넘겨주자. (물리학 - 유정물???)

한국은 일본에게 2:0으로 졌다. (일본 - 유정물???)

해당 단체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단체 - 유정물???)


인용 - 한승규. "조사 '에게'와 결합하는 무정물 명사의 유정성 연구." 韓國學研究論文集 (2014): 23-36. Print.



뭐, 하도 바쁘다보면 의도적으로 실수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손님 여기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와 같이 틀린 문법이어도 알아들으면 그만 아닌가. 그러나 외국어를 하면서 어색한 감을 지우는 일은 정말 힘든 것 같다. 하물며 내가 나고 자라면서 체득한 언어도 헷갈리는 마당에.



사족으로 일본어에도 비슷하게 ある (aru) / いる (iru)의 구분이 있다. 예전에 외국인들과 게임을 하다가 하도 화가 나서 아군에게 mother aruno? 라고 화를 낸건 의도적으로 틀리게 쓴 문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