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게시판

안녕 냥붕이들아 졸업하고 할 짓 없어서 언어학 관련 정보들을 시간 날 때 마다 올려볼까 해

외국에 오래 살아서 필력이 심각하게 딸린다는 점 양해해주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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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계에서 가장 큰 떡밥 중 하나가 한국어와 일본어의 관계임. 일단은 별개의 어족이라는 건 대부분 이견이 없는데 문법이 서로 너무 비슷해서 그것도 단정짓기 힘들다 함. 


그 와중 언어학자인 Christopher Beckwith(이하 백위드)는 삼국사기에 적힌 고구려 지명과 고(古)일본어 단어들의 연관성을 발견, 고구려-일본어족이라는 어족을 제시함. 얼마나 비슷한지 한 번 보자:


고구려어중고한어 독음현대 한국식 독음고일본어현대 한국어
mitmi
于次hju-tshij우차itu다섯
難隱nan-ʔɨn난은nana일곱
toktowo



언어학 배경 지식이 없어도 비슷해 보이지? 이 단어들의 연관성을 바탕으로 벡위드는 요동반도에 정착한 고구려어 사용자들이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 일본 등으로 이주를 했다고 하는데, 그 중 일본으로 넘어간 집단이 도래인, 즉 야요이 문화의 주체라고 주장함. 


근데 이 가설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음:

1. 고구려의 중심지였던 대동강 이북 지역 지명에는 위와 같은 단어들이 발견되지 않음

2. 광개토대왕비에도 일본어와 연관성 있어 보이는 단어나 형태소(morpheme - 뜻을 가지는 가장 작은 언어 요소)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음

3. 삼국사기에 적힌 지명들은 대부분 한반도 중부에 위치해 있음


특히 3번이 눈여겨 볼 만한게, 옛 지명들은 토착민들이 지은 것이 대부분인지라 정복자인 고구려의 언어와는 다를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 예를 들어서 고구려가 지배층이였던 백제에선 왕을 귀족들은 어라하, 백성들은 건길지라 불렀음 (근데 양층언어설도 말이 많긴 함).


또 중국 전문가인 벡위드는 한국어/일본어 배경 지식이 부족해서 한자 발음을 재구하는데 중국어 관점으로 밀어 붙여서 신빙성이 떨어짐.


그 와중에 동아시아 언어 전문가인 Alexander Vovin(이하 보빈)을 중심으로 반도일본어족(Peninsular Japonic)이라는 새로운 가설이 나타남. 이 가설에 따르면 한반도 중남부에는 일본어계 언어가 쓰였는데, 요동/만주지역의 한국계 언어가 남하하면서 일본어계 주민들은 동화되거나 일본으로 넘어 갔다고 함.


반도일본어족설은 삼한 지역 지명들이랑 고대 일본어 단어들의 연관성을 증거로 제시했는데, 이 지명들 마찬가지로 삼국사기에 등장함:

신라어고일본어현대 한국어
買(매) - *mɛ

mî-ndu

彌知(미지) - *miti
mîti
刀良(도량) - *tora
tôra
牟羅(무라) - *mura
mura
마을


또 보빈에 따르면 벡위드가 제시한 고구려어 단어들도 한강 유역에 쓰였다는 걸 바탕으로 백제계 반도일본어와 비슷하다고 주장함.


반대로 한국어에도 토착 일본어계 언어의 흔적이 남았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서 쌀은 일본어로 올벼(이르게 익는 벼)를 뜻하는 早稲(wase)에서 왔다고 함. 중세 한국어로 쌀은 ᄡᆞᆯ(/psʌr/)인데, *w- 발음이 없던 고대 한국어에서 *w- 계열 일본계 차용어는 *p-로 차용했다고 함. 요약하자면 wase → pase → psʌ대충 요런식으로 변형이 됐다 함. *w-가 *p-로 바뀐 사례는 '바다'에서도 발견 됨. (서부 고일본어 wata → 중세 한국어 바닿〮 patah)


이 외에도 제주도에서도 옛 일본어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탐라는 일본어인 타니(谷) + 무라(村), 아니면 타미(民) + 무라(村)에서 유래했다고 하고, 또 제주어로 입인 굴레(kulle)는 고일본어 kuti, kutu 와 연관성이 있다고 제시했음. 부산에 있는 지명인 모라(毛羅)도 이 잔재가 아닐까 싶음.


하지만 한국어 고문헌 자료가 너무 없어서 단어 비교 수준으로 밖에 연구를 할 수 없어서 기적적으로 만엽집 같은게 발굴되지 않는 이상 정확히 추측하기는 힘듦. 그러나 고고학적 자료와 비교해 보면 반도일본어족 설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