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으로 서원 철폐령 당시에 살아남은 서원 3편이다.


아직 서원듀스 47 중에 18개만 소개했으니 계속 이어서 소개함


지난번에 소개한 건 아래 링크 참고


1편 : https://arca.live/b/dogdrip/21325922

2편 : https://arca.live/b/dogdrip/21368832


서원 철폐령이 직접 내려진 건 고종 8년 3월 18일 무신 1번째 기사에서 볼 수 있다.


전교하기를,


"일전에 서원(書院) 문제에 대하여 하교한 일이 있다. 선현(先賢)을 문묘(文廟)에 함께 배향하는 것은 도학의 연원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서 사당과 서원에 제사지내는 것은 높이 우러러 사모하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문묘에 종향(從享)하는 사람 이외의 서원에 대해서는 전부 제사지내는 것을 그만두도록 하라. 그러나 충성과 절개가 있고 큰 의리가 있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은 높이고 보답하는 일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십분 공정해야 사체(事體)에 합당한 것이다. 예조 판서(禮曹判書)는 또 대원군(大院君)에게 품정(稟定)하되 중첩하여 설치한 서원의 제사를 그만두게 하는 것은 전번에 하교한 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이 이후로 논의를 거쳐 선정된 게 지금 소개 중인 47개 서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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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충청남도 부여 창렬사



병자호란 당시의 삼학사, 윤집, 오달제, 홍익한을 모신 서원.


저번 글에서 볼 수 있는 경기도 광주에 현절사가 있는데 이 서원이 왜 훼철되지 않은 건지는 알 수 없다. 경종 시기에 창렬사라는 현판을 임금이 내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임금이 직접 현판을 내린 서원이기도 하고, 여기 배향된 삼학사 자체가 충절을 장려하는 의미가 있기에 훼철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만 받을 뿐이다.



20. 충청북도 충주 충렬사



충주시 출신이었던 충민공 임경업 장군을 배향한 서원.


나 어릴 때는 임경업 장군 위인전이 있었는데, 아는 냥붕이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틀딱이라. 숙종 시기에 이 서원이 세워진 뒤에 임경업 장군에게 충민이라는 시호가 주어졌고, 영조 시기에 충렬사라는 이름을 주었다. 임경업 장군의 유품이 여기에 전시되어 있으니 가까운 곳에 있다면 가봐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사당 옆에 임경업 장군의 부인의 절개를 기리는 정부인완산이씨 정렬비도 있다고 한다. 임경업 장군 역시 충절을 상징하는 인물이라 훼철되지 않은 듯 하다.



21. 충청북도 청주 표충사



이인좌의 난 당시에 반군에 굴하지 않아 살해당한 충민공 이봉상, 남연년, 홍림을 배향한 서원.


충민공 이봉상은 충무공 이순신의 자손으로, 조상과는 달리 무능한 관리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인좌의 난 당시에도 계략을 쓴 반군에게 포로로 잡히게 됨. 기록에 따르면 여기 배향된 세 명은 모두 같은 날 죽었는데, 이봉상은 항복을 권하는 이인좌에게 "너는 충무공(忠武公) 집안에 충의(忠義)가 서로 전해져 오고 있음을 듣지 못했느냐? 왜 나를 어서 죽이지 않느냐?"고 세 번을 외쳤고, 그러자 이인좌가 죽였음. 그걸 막으려고 군관 홍림이 달려와 이봉상 앞을 막아서며 자기가 진짜 절도사라고 주장했고, 반란군이 끌어내어 항복하라고 협박하자 죽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그러자 이인좌가 "이는 충신이다. 죽이고 싶지 않지만 나를 죽일까 염려되기 때문에 죽인다. 그러나 일이 성사된 후 너의 후손을 녹용(錄用)하겠다."고 말하자 홍림은 "나에게는 본디 아들이 없지만 있다 하더라도 어찌 너 같은 역적에게 등용되겠느냐?"라고 외치고 살해당했다. 남연년은 당시에 영장(營將)이었는데, 역시 이인좌에게 포로로 잡혔다. 이인좌가 항복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니 남연년이 말하길, "내가 나라의 후한 은혜를 입었고 나이 70이 넘었는데, 어찌 개새끼 같은 너희를 따라 반역을 하겠느냐?"고 이인좌를 비난해서 결국 죽었다. 처음에 지었을 때는 충신 3명을 배향했다 하여 삼충사라고 이름이 붙었다가 이후 표충사로 사액을 받아 이름이 표충사로 바뀌었다. 역시 충절과 관련되어 훼철되지 않은 듯 하다.



22. 전라북도 정읍 무성서원



신라시대의 학자이자 해동18현 중 한 명인 고운 최치원과 중종 시기의 문관인 신잠을 배향한 서원.


원래 고려시대 유학자들이 최치원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태산사에서 시작해 이후에 신잠의 위패를 배향한 생사당이 지어지고, 광해군 시기에 태산사 자리에 태산서원을 지은 것을 숙종 시기에 최치원과 신잠을 모두 배향하도록 하고 무성서원이라 사액을 내렸다. 이후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을 추가로 배향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에 등록된 9개소 중 하나. 최치원을 배향한 서원 중 가장 역사가 깊은 서원이라 훼철되지 않은 걸로 보인다.



23. 전라남도 장성 필암서원



조선 중기의 문관이자 유학자, 해동 18현 중 한 명인 문정공 김인후를 배향한 서원.


김인후는 호남에서 유일하게 해동18현으로 문묘에 배향된 학자로, 서원은 선조 시기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정유재란 당시에 전소되었고, 인조 시기에 자리를 옮겨 새로 지었으나 수해 위험이 있어 현종 시기에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마을 이름도 필암리로 고친다. 사액된 것은 효종 시기에 호남 지역 유생들의 청원으로 사액되었고, 현종이 어필로 필암서원이라 선액하였다. 이 서원 역시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9개소 중 하나로 등재되었다. 호남에서 유일하게 해동18현에 들어간 사람을 모신 서원이라 훼철되지 않은 듯 하다.



24. 경상북도 구미 금오서원



고려 말, 조선 초의 유학자인 야은 길재를 배향한 서원.


길재는 여말선초에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고려 말의 삼은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고려가 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했으며, 정종 시기에 태상박사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며 거절했다. 금오산에서 살다 죽었다고 하며, 명종 시기에 지역 유생들의 청원이 올라가 선조 시기에 금오산 아래에 서원이 건립되었다. 이후 선조 8년에 사액과 현판이 하사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고, 이후 복원할 때 금오산이 너무 외진 곳이라는 판단으로 지금의 위치에 재건하였다. 길재는 이후 사림의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데다 그 자신도 절개의 상징 같은 인물이라 훼철되지 않은 것 같다.



25. 경상북도 안동 도산서원



퇴계 이황을 배향한 서원.


원래 퇴계가 이 지역 출신이고, 영남학파의 거두였던 대유학자인 만큼 퇴계가 사망하고 4년만에 설립되었다. 선조 8년에 선조가 한석봉을 시켜 쓰게 한 편액을 하사하였다. 구 천원권 지폐(옛날 빨간 지폐) 도안에 포함되기도 했을 정도로 유명한 서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9개소 중 하나로 등재되었다.



26. 경상북도 안동 병산서원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서애 류성룡을 배향한 서원.


원래는 고려 시대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을 류성룡이 안동으로 옮겨온 것이 시작이다. 류성룡이 사망하자 지방 유림이 논의해서 류성룡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인 존덕사를 만들고, 이후 이 존덕사가 병산서원으로 개칭한다. 사액이 내려진 것은 철종 시기에서지만, 그 전에도 이미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할 정도로 큰 서원이었다. 하회마을에 있는데, 풍산 류씨의 발상지이자 집성촌이다. 서애 류성룡이 풍산 류씨이니, 지금 이 지역에 사는 풍산 류씨는 류성룡과 같은 집안인 셈. 이곳 역시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9개소 중 하나로 등재되었다. 하회마을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하회와 양동"이니 어떻게 보면 이중등재 아닌가 싶은데... 하여간 류성룡이 임진왜란 당시에 세운 공적이 있기 때문인지 훼철되지 않았다.



27. 경상북도 영주 소수서원



고려 후기의 문신, 교육자, 유학자이자 해동18현 중 한 명인 문성공 안향을 배향한 서원.


본래 명칭은 백운동 서원으로, 중종 시기에 안향을 제사하기 위해 사당을 세운 것이 시초인데, 이후 퇴계 이황이 풍기 군수로 왔을 때 과거 송 시대의 예법에 따라 서원에 대한 인정과 지원을 해줄 것을 요청하여 명종이 윤허하고, 친필로 소수서원이라 사액하면서부터 소수서원이 되었다. 한국 최초의 서원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고, 해동 18현 중 1인을 배향한 서원이라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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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의 서원은 아직도 더 남았음. 아니 경상도 유생들은 서원만 세웠나. 47개 중에 몇개가 경상도야


서원듀스 47, 이제 20개 남았으니 한 두번 정도만 더 쓰면 될 것 같은데, 서원듀스 47의 대상 중엔 북한 지역 서원도 있어서 그건 설명이 좀 부실할 것 같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