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비스 프레슬리 편 읽어줘서 고맙다 냥붕이들아. 제목은 앞으로 '록과 당신의 이야기'로 할 거임.


2편은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비틀즈' 편이야. 사실 비틀즈가 현대 음악에 준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각각 맴버들에 각종 이야기 까지 하고 싶지만 그러면 비틀즈 편만 10편은 나올 거니까 자세하게 보고 싶은 사람은 나무위키 켜라.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 존 레논, 조지 해리슨)


-시작

1956년, 리버풀 출신의 존 레논(1940, 10, 09~1980, 12, 08)은 쿼리멘이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친구들을 모아 공연을 다녔지 그러다 1957년 7월 6일, 리버플 근교의 교회에서 공연을 하다 소년을 만났으니, 그가 바로 폴 매카트니야. 폴은 그로부터 며칠 뒤 쿼리멘에 가입하고, 그 다음해 자신의 학교 친구 14살의 조지 해리슨을 소개시켜주지. 존은 나이를 보고 반대하려다 조지 해리슨의 실력을 보고는 가입시켰어. 몇 년 후, 준은 미대에 들어가 스튜어트 서트클리프라는 친구를 사귀고 그를 꼬드겨 밴드에 가입시켰지.


쿼리멘 시절 부른 'In spite of all the danger'


1959년, 존 레논은 퀴리멘이 아닌 새로운 밴드 이름을 고민하다 서트클리프가 제안한 'beetles'(딱정벌레)에 'beat'를 넣은 'Beatles' 라는 이름을 썼어. 다만 59년에는 The Silver Beatles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해.


-함부르크로...

(초창기 비틀즈 멤버. 왼쪽부터 피트 베스트, 조지 해리슨,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스튜어트 서트클리프)

1960년, 비틀즈는 매니저 앨린 월리엄스의 제안으로 함부르크로 떠나게 돼. 이 투어는 정말 성공적이었지. 레논은 "난 리버풀에서 태어났지만 함부르크에서 자랐다."라고 할 정도로 12시간이나 연주를 하고 피트 베스트를 제외한 모두가 약을 할 정도로. 게다가 미술학도가 되고 싶었지만 존에게 낚인 서트클리프는 이동안 많이 방황했지. 물론 그동안 팬도 늘었지만 문제가 생겨 버렸어. 비틀즈가 활동하던 클럽에서 다른 클럽으로 이적하자 원래 클럽 주인이 조지 해리슨이 미성년자라는 것을 신고해 버렸고, 조지 해리슨이 추방당하자 폴 매카트니와 피트 베스트가 클럽에 방화를 해버린 뒤 추방당했지.

- 캐번 클럽에서.


캐번 클럽에서 부른 'some other guy'

리버풀로 돌아온 비틀즈는 카스파 클럽에서 시작해 1960년 12월 27일 리더랜드 회관에서 공연을 하고 대성공을 끌어내. 이 뒤 계속해서 계약이 이루어지며 비틀즈는 이미 리버풀 최고의 밴드가 되어가고 있었어. 본인들은 몰랐지만. 비틀즈는 1961년 캐번 클럽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며 흥행을 끌어냈지. 같은 해 4월에는 두 번째 함부르크 여행으로 밤무대에서 공연을 하였어. 하지만 그 여행에서 계속해서 음악가와 미술가 사이에 방황하던 서트클리프가 함부르크에 남으며 탈퇴하고 말아, 그러며 베이스는 폴 매카트니가 맡게 되지. 안타깝게도 서트클리프는 1962년 22세의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하고, 90년대가 되어서야 유족들이 수익을 받게 되었어.

어쨌든 이때의 경험은 비틀즈의 기본기와 수많은 멜로디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지.


-메이저가 되다.


대뷔곡 'Love me do'

비틀즈는 1961년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만나고 계약을 맺어. 엡스타인은 매니저가 되고는 음반을 내려고 런던으로 날아가 레코드 회사들과 수 차례 면담을 가졌지만 모두 거절당하지 특히 데카 레코드 사에서는 "기타 그룹은 쇠퇴할 것이며 비틀즈는 공연사업에서 미래가 없다" 라는 평과 함께 비틀즈를 탈락시켰지. 결국 비틀즈는 EMI 레코드 사의 하위회사 파를로폰과 계약을 맺고 1962년 6월 6일, 런던 애비 로드 스튜디어에서 레코딩 세션을 가져. 하지만 앨범을 당당하던 조지 마틴은 드러머 피트 베스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사실 피트는 다른 셋과 불화가 있었다 해.) 그렇게 대신 들어온 사람이 바로 '링고 스타' 그렇게 1962년 10월 5일 첫 싱글 'Love Me Do'가 차트 17위에 진입하며 성공적으로 데뷔하였고, 다음해 1월 두 번째 싱글 'Please Please Me'는 차트 1위에 진입하지


-영국을 지배하다.

(비틀즈를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


비틀즈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Please Please Me'

1963년 1월, 첫 정규 앨범 'Please Please Me' 가 각종 차트에서 1위에 등극하고, 3번째 싱글 'From Me To You'는 7주간 1위를, 첫 밀리언 셀러 'She Loves You'는 6주간 1위를 차지하고 당시 영국에서 가장 빨리,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 되었지.

첫 번째 전국 투어가 시작되었을 때, 수천 명의 여성팬들이 그들을 쫓아다니며 비명을 지르고, 환호를 하며, 개중에는 기절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었지. TV 프로그램 'Sunday night at the London Palladium'의 공연을 1500만명이 시청하며, 언론과 기성세대마저 굴복시키고 말지 곧이어 그들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화제가 되고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바야흐로 '비틀즈의 시대'가 온 거야.

2번째 앨범 'With The Beatles'의 수로곡 'All My Loving'

첫 번째 앨범 'Please Please Me'는 무려 30주 동안 차트 1위를 차지하다 내려왔지. 그들의 두 번째 앨범 'With The Beatles' 에 의해. 'With The Beatles' 는 차트 역사상 두 번째로 100만 장 이상 판매한 앨범이 되.


-그리고...


'I Want To Hold Your Hand'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소리지르는 팬들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1964년, 미국 진출을 위해 에드 설리번 쇼 출연 계약을 체결하며 이 공연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그들의 첫번째 빌보드 1위 곡이 되고 미국에서만 5백만 장이 팔리게 돼. 그렇게, 그들이 미국으로 진출하게 되지.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