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 2편은 비틀즈가 미국에 도착한 1964년 부터 투어를 중단한 67년 까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전의 상황

일단 비틀즈 이야기를 하기 전에 비틀즈가 오기 전 미국의 상황을 알아보자 이 시점에 미국 로큰롤은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 였어. 주요 로큰롤 뮤지션들은 사회적 지탄을 받거나, 비운의 사고로 사망하거나, 아예 은퇴하는 등 로큰롤이라는 장르 자체가 공중으로 붕 떠버렸지. 스탠다드 팝이나 R&B 등이 차트를 차지하고 있으며 로큰롤은 살아 있었지만 사는 게 아니었어. 그리고 이때, 아직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로큰롤을 사랑하던 '로버트 짐머맨'이란 청년은 로큰롤의 꿈을 접고 포크 가수가 되어 활동을 시작했어. 그는 원래 이름 대신 예명을 사용하며 이름을 떨쳤으니, 그가 바로 '밥 딜런'이야. 그리고 1964년 2월 7일. 영국을 평정한 네 마리 딱정벌레가 미국 JFK 공항에 도착하게 돼.


-브리티시 인베이전

1964년 2월 7일 수천의 팬들이 맞이하는 가운데 비틀즈가 미국에 도착해. 이들이 출연한 에드 설리번 쇼는 당시 미국 인구의 38% 이상, 무려 7300만명 이상이 시청하였고, 카네기 홀을 비롯한 공연 이후 두 번째 출연해서도 7000만 명의 시청자를 만들었지. 비틀즈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어. 어딜 가든 오빠부대가 뒤를 따랐고, 그들이 건드린 물건 -이를테면 덮고 잔 담요나 목욕한 물 등-들이 팔리는 등의 팬들의 행동은 이후 그루피족 문화의 시작이 되.

세 번째 빌보드 1위를 차지한 'Can't buy me love'의 라이브

64년 3월, 비틀즈는 첫 번째 영화 A Hard Day's Night 촬영을 하고, 성공을 거둬. 또한 서운드트랙 앨범도 인기를 끌며 영국에서 21주, 미국에서 14주 동안 1위를 차지하였지. 특히 4월 4일 'Can't buy me love'가 1위에 오른 날. 싱글 차트 1위부터 5위까지를 모조리 독식하는 신화를 달성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들을 따라하고, 비틀즈의 뒤를 이어 롤링 스톤즈, 더 후 등 영국 록밴드 들이 미국에 데뷔하게 되지. 그리고, 같은해 8월 이들은 밥 딜런과 만나게 돼. 딜런은 비틀즈와 친해지기 위해 마리화나를 선물하게 되고, 둘 사이에 영향을 주고받게 되는 계기가 되지.


-실시간으로 전설이 되다.

1965년 네 번째 앨범 Beatles for sale는 상업적 압력과 창작욕 사이 갈등이 그대로 느껴지는 앨범이지 하지만 비틀즈는 이 앨범으로 자기 앨범인 A Hard Day's Night를 차트 1위에서 끌어내리게 돼.

1965년 6월 11일, 비틀즈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이전까지 군인과 시장 등에게나 수여되던 MBE 훈장을 수여받게 돼.

(훈장을 받은 비틀즈)

일개 뮤지션의 훈장 수여는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지.

(다섯 번째 앨범 Help!의 앨범 커버)


7월, 비틀즈의 두 번째 영화 Help!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다섯번째 앨범  Help!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 그리고...


1965년 8월 블랙풀에서. Yesterday가 최초로 공개되던 순간

Help!의 수록곡 Yesterday는 역사상 가장 많은 커버 버전을 가진 곡이 되며 대인기를 끌었지 참고로 이때 비틀즈는 바하마로 촬영을 갔었는데,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은 여기서 인도 악기 시타르를 접했다고 해.

같은 해 8월 15일. 비틀즈는 뉴욕 셰이 스타디움 에서 최초로 대형 스타디움 공연을 펼쳐. 이때 관중만 55600명이 들어오는 기록을 쓰지.

(6집, 'Rubber Soul'의 앨범 커버)

그해 10월 부터 11월 까지, 비틀즈는 단 한달 만에 6집 'Rubber Soul'을 완성시켜, 당시 록 음악계와 달리 앨범 전체로 감상을 선언하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통일성 있게 어우러지는 등, 앨범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최초의 사례가 되지.


-투어 중단

1966년, 비틀즈는 일본 콘서트를 계획하였으나 일본 정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요구를 거절하고, 비틀즈가 공연을 하던 일본무도관은 천황을 비롯한 고위 정치인들이 연설을 하던 곳이라 몇몇 일본인들이 그들을 위협하기도 했지. 거기에 더불어 한 달 후 필리핀에서는 필리핀의 퍼스트 레이디 이멜다 마르코스의 아침식사 초대를 거절하자 열 받은 이멜다에 의해 경찰들이 보호를 거부하며 생명의 위협을 느낀 채 필리핀을 빠져나가게 돼. 이 사건은 비틀즈가 느끼던 공연에 대한 회의에 대해 마음을 굳히게 되는 계기가 되.

거기에 더해 미국으로 돌아온 비틀즈는 이번엔 미국의 종교, 사회 보수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아야 했지. 그해 초 존 레논이 영국의 모린 클리프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예수보다 인기가 많다"라고 한 발언이 미국의 바이블 벨트에서 논란이 일어난 거야.

(비틀즈의 음반을 불태우는 바이블 벨트의 기독교 신자들)

한국의 예수쟁이들 보다 더한 미국 바이블 벨트 신자들에 이어 바티칸에서 항의 성명을 발표하고, 스페인, 네덜란드 등지에서 비틀즈의 음악이 금지되는 등의 사태가 이어지자, 레논이 기자회견으로 해명 하는 등의 일을 벌였지. 안 그래도 힘든 상황이 이어지는 데, 비틀즈는 어느 순간 알게 되었어. 공연에서 열광하는 팬들은 자신의 음악보다 자신들을 더 원한다는 것을. 팬들의 비명과 환호에 자기들의 음악소리조차 듣기 힘들어진 순간, 그들은 8월 미국 투어를 마지막으로 순회공연을 끝내게 돼.


-다음 이야기

투어라는 짐을 벗은 비틀즈는 이제 고스란히 작곡에 시간을 들이게 되지. 하지만 그들은 아직 알지 못했어. 넷 사이에 아주 작은 균열이 가고 있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