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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하

어제 아르메니아에서 러시아로 출발하는 데까지 이야기를 했는데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나는 원래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 환승만 하고 공항 밖으로 나갈 계획은 없었다

모스크바 관광을 하고 싶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 한국에서 볼일도 있었기 때문에 일찍 돌아와서 집에서 쉬고 싶었거든

예레반 -> 모스크바 -> 인천 표를 끊고 나니까 중간에 환승시간은 2시간 25분이 나오더라

다만 모스크바 공항의 악명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는 형한테 물어봤다

거기는 처가가 벨라루스라서 1년에 한번은 모스크바 공항을 이용하거든

물어봤는데 자기는 환승시간 1시간 반으로 해도 넉넉한 나머지 밖에 나가서 담배도 하나 태우고 들어왔고, 짐 잃어버린 적도 없었다더라

그래서 나는 그 형을 믿고 아에로플로트 항공편을 예약을 했다...

물론 카타르라든가 폴란드라든가 다른 경유지도 있긴 했지만 시간과 비용 면에서 엄청난 손해였기 때문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여기서 모든 게 시작되었다


내 비행기는 예레반에서 오후 4시 5분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오후 7시로 연기가 되었다

모스크바에 폭설이 내려서 공항이 혼잡해진 상황이라 내 비행기가 정시에 출발을 해도 그쪽에서 내 비행기가 착륙을 할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2시간 55분 늦게 모스크바에 도착하면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는 이미 출발하고 없는 상황이고 ㅇㅇ

사람이 극한의 좌절과 분노에 빠지면 웃음부터 나온다는데 내가 그랬다

그렇게 미친놈처럼 낄낄 웃다가 겨우 정신줄을 붙잡고... 아에로플로트 콜센터에 전화를 해 보았다

결론은 모스크바 도착하면 공항 3층에 매표소와 서비스 센터가 있으니 거기서 직접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집에 하루 늦게 도착할 것 같다고 연락을 했고, 모스크바에 있는 호텔을 급하게 예약을 했다

기다리는 동안 같이 갔던 친구에게 비상금으로 2천 루블을 빌리고 다음날 오전 10시 반에 붉은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참고로 같이 갔던 이 친구는 그 이후에 어차피 모스크바에서 볼일이 따로 있었고, 자기 숙소도 따로 잡아놓은 상황이라 일찍 도착하든 늦게 도착하든 상관이 없는 입장이었다

출발시간이 다시 앞당겨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 보았지만 쓸데없는 일이었고 비행기는 더 이상 연착되지 않고 모스크바에 무사히 도착하긴 했다

혹시나 해서 내리자마자 호다닥 뛰려고 했는데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니 게이트가 아니라 활주로 한복판이었고 저 멀리서 셔틀버스가 오고 있더라...


마음을 비우고 입국심사를 받은 뒤 3층 출국장으로 올라갔다

매표소에 가서 상황 설명을 하고 놓친 비행기에 대한 환불을 받았고 다음날 인천으로 가는 새 표를 받았다(사실 여기서도 문제가 하나 생기는데 이건 나중에 설명하겠다)

그러고는 서비스 센터에서 내 수하물 태그를 보여 주면서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 내 짐을 찾을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까 어디론가로 전화를 하더니 40분쯤 뒤에 몇번 카운터로 가라고 하더라

모스크바에 체류하면서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서는 귀국한 뒤 고객센터에 메일을 보내면 그쪽에서 보고 판단한다더라 ㅇㅇ

어쨌든 가장 중요한 비행기표와 짐은 확보를 했으니 한 시름 덜고 호텔로 갔다

환전소는 문을 닫아... 친구한테 받은 2천 루블을 매우 유용하게 썼다 (얘가 러시아 돈도 빌려주고 내 멘탈 잡는데도 큰 도움을 줬다... 진심으로 고맙다)

호텔은 공항에서 차로 10분 거리였는데, 호텔에서 무료 셔틀을 운영하고 있더라

무튼 그렇게 폭설의 불시착을 찍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원래대로라면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공항철도를 타고 있어야겠지만 모스크바 시내로 들어가는 공항철도를 타고 있다

눈이 ㅈㄴ 많이 오긴 했네 ㅅㅂ

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 아에로익스프레스 직통열차를 타고 35분 가면 시내 서쪽에 있는 모스크바 벨라루스 역에 도착한다

벨라루스 역인 이유는 벨라루스 방면으로 가는 기차가 출발하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는 벨라루스 역 말고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역, 야로슬라블 역 등 행선지에 따라 역 이름을 붙여 놓았다

서울로 치면 서울역은 서울 중앙역(신의주역 + 부산역), 구로역은 서울 인천역, 용산역은 서울 원산역, 청량리역은 서울 경주역 이런 식이 되겠다

여담이지만 이쪽 동네는 기차역과 지하철역의 입구와 출구가 따로 있다

이건 공항도 마찬가지

느그나라는 공항 출구로 들어가도 큰일이 생기지는 않지만 여기서 그랬다가는 경찰 아조시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여기도 지하철은 깊고 아름답다

트빌리시 지하철은 어두침침하고 쥐 오줌 냄새도 나고 그랬는데 여기는 쾌적하고 밝은 분위기였다



떼아뜨랄나야 역에 내려서 붉은 광장으로 가려고 했는데... 엉뚱한 출구로 나와서 의도치 않게 볼쇼이 발레 극장을 보게 되었다

돈은 없고 시간은 더더욱 없으니 발레는 다음 기회에 보도록 하자



다시 붉은 광장으로 가는 중

갓글지도 찬양해



우여곡절 끝에 붉은 광장에 도착해서 친구를 만났다

저 뒤에 테트리스 성당이라고도 하는 성 바실리 성당이 보인다

여담이지만 이 광장은 바닥이 검은색이고 붉은색은 전혀 없다

공산주의의 붉은색이라기에는 공산주의가 없었던 시절에 이미 붉은 광장이었는데, 붉다는 뜻의 러시아어인 끄라스나야는 원래 '붉다'와 '아름답다'라는 뜻을 같이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붉다는 뜻만 남았고 ㅇㅇ

그러니까 원래는 붉은 광장이 아니라 아름다운 광장이었다는 뜻



성 바실리 성당 오른쪽에는 크렘린



왼쪽에는 국영 백화점, 일명 '굼'이 있다

말이 국영 백화점이지 소련 해체되고 한참 전에 민영화되었다고 한다

러시아에는 주요 도시마다 이렇게 굼이 있는데 당연히 모스크바의 굼이 가장 크다고 한다



독소전쟁의 명장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 동상

그 뒤에는 국립 역사 박물관이 있는데, 박물관은 이미 여러 번 봤는데다가 시간도 애매하여 가볍게 패스



크렘린 벽 묘지

소련의 역대 서기장들과 장군, 그 외 소련에 큰 공을 세운 인민 영웅들이 잠들어 있다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 그리고 소련 우주개발의 아버지 세르게이 코롤료프도 여기 잠들어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우주비행사들이 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을 빌려 탈 때마다 여기 와서 코롤료프의 무덤에 헌화를 하고 가는데, 골때리는 점은 이 코롤료프라는 양반이 미국을 핵공격할 수 있는 ICBM의 개발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서기장 동지 충성충성충성

레닌의 시신은 방부처리하여 유리관 안에 따로 모셔져 있다

구경할 수는 있지만 사진은 찍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레닌은 사실 자기가 죽으면 어머니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스탈린이 레닌을 우상화하면서 미라로 만들어버렸다 (마오쩌둥, 김일성, 호치민도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미라가 되어버렸다)

스탈린은 죽은 후 자신의 유언에 따라 미라가 되었으나, 그의 후임인 흐루쇼프가 스탈린 격하 운동을 벌이면서 크렘린 벽 묘지에 이장해 버렸다

지금 모스크바 시와 러시아 정부에서는 레닌을 이장하고 싶어하는 눈치이긴 한데, 소련 시절에 대한 국민들의 향수도 있고 제1야당인 공산당의 반대도 심하기 때문에 이장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한다

레닌은 오늘도 어머니 곁으로 가지 못하고 자본주의 시대의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점심은 굼 안에서 먹기로 했다

굳이 뭘 사러 오지 않아도 아이쇼핑하기에 좋을 듯 하다



점심으로 먹은 비프 스트로가노프



점심을 먹고는 크렘린 안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무명 용사의 묘

푸틴이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여기서 헌화를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크렘린 내부는 일부는 박물관으로 개방이 되어 있고, 일부는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로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박물관도 볼 게 많다고는 하지만 나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가장 싼 표를 끊고 한 바퀴 구경이나 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대포

러시아 제국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한 룩딸용이라는 게 정설이었는데, 내부에서 화약 성분이 검출되어서 실제로 쏜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네

어따대고 쐈을까 궁금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큰 종

얘네는 참 큰 거를 좋아한다

저 종은 원래 교회에 걸려 있었는데 떨어지면서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갔고, 지금은 저 안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용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크렘린 안에서 바라본 시계탑과 성 바실리 성당



대통령 집무실

당연히도(?) 그분을 만나뵙지는 못했다

이제 비행기 시간이 슬슬 다가오고 있어 친구와 작별하고 공항으로 ㄱㄱ

아 물론 남은 달러가 있어서 돈은 바로 갚았다

원래 계획에도 없었던 모스크바 여행이긴 했지만 정말 수박 겉핥기 식으로 둘러보고 왔다

다음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좀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구경하고 싶다

물론 러시아는 땅덩이가 매우 큰 나라이니까 모스크바 말고도 다른 동네들도 여기저기 가보고 싶음

물론 지금은 달나라 얘기다



저녁으로 공항에서 먹은 우즈벡 음식

사실 공항에 도착해서도 한번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전날 매표소 직원이 '오후 6시 35분 대한항공 비행기가 있고 오후 9시 아에로플로트 비행기가 있는데 뭘 타고 갈래?' 물어보길래 전자를 택했고, 내 카드로 결제를 하고 영수증을 받았다

물론 그 영수증은 러시아어로 되어 있었고 나는 이게 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표는 새로 결제가 되었구나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게 결제취소 영수증만 있고 새로 결제된 영수증이 없었다...

한마디로 놓친 비행기는 환불이 되었는데 새 비행기는 결제가 안 된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대한항공 체크인 카운터로 갔는데 탑승정보가 없다고 해서 전날보다 더 큰 멘붕에 빠졌다

다행히 대한항공에 현지인 직원이 있었고 그분이 확인해 보니까 아에로플로트에서 인천으로 가는 공짜 표를 새로 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9시 비행기를 타고 무사히 느그나라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한 가지 함정이 있었다면, 나는 6시 35분 대한항공을 탈 줄 알고 공항에 도착했는데 내 비행기는 알고보니 9시 아에로플로트였다...

그래서 공항에서 2시간 25분을 기다려야 했는데, 그 시간이면 시내 구경을 좀더 하고 올 수 있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이틀 동안 생쇼를 하고 나니 너무 피곤해서 비행기 안에서는 쳐자기만 했다

처음 이용해 보는 인천공항 제2터미널은 사람도 별로 없고 상당히 쾌적했다

아무도 안 궁금하겠지만 한국 도착하자마자 먹은 것은 비빔냉면이었다... 매운 게 너무 그리웠음 ㅋㅋㅋ


아, 아에로플로트 고객센터에 메일은 쓰지 않았다

모스크바에서 하루를 더 머물면서 추가로 발생한 비용이 환불받은 비행기 값보다 적었기 때문에... 인생 공부했다 치고 잊어버리기로 했다

물론 아에로플로트는 장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친절했고 나를 도와준 그 직원들에게는 진심으로 감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지가 러시아가 아닌 이상 앞으로 이용할 일은 별로 없을 거 같다... ㅋㅋㅋㅋㅋ

나는 그것보다 아에로플로트 비행기표를 대한항공 마일리지로 교차적립을 할 수 있는데 깜빡하고 안 했다는 게 더 빡친다


무튼 이렇게 원래대로라면 10박 12일이었어야 하는데 정신차려 보니 11박 13일이 되어버린 쏘련 여행기가 끝이 났다

이번에도 최대한 재미있게 써 보려고 노력은 많이 했는데 읽기에는 어땠을지 잘 모르겠다

난 러시아는 사실 잘 모르고 중앙아시아나 코카서스 3국에 대해 더 빠삭한 편이긴 한데, 뭐라도 궁금한 점이 있다면 댓글 달아주면 아는 데까지는 최대한 대답해 줄게

얼마 안 남은 주말 다들 잘 보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