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 1편: https://arca.live/b/dogdrip/21567053

비틀즈 2편: https://arca.live/b/dogdrip/21632470

비틀즈 3편: https://arca.live/b/dogdrip/21662769


-비틀즈, 해체.

1969년 9월 20일. 레논은 멤버들에게 자신이 밴드를 떠날 것임을 선언했어. 그 이후로 레논은 오노 요코와 함께 '플라스틱 오노 밴드'활동에 집중하며 싱글을 발표하지.

존 레논의 싱글 'Instant Karma!'

레논이 이렇게 되자 멤버들도 하나 둘씩 솔로 음반을 제작하게 되. 폴 매카트니는 69년 11월 부터 솔로 앨범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링고스타는 다음해 3월 솔로 앨범 'Sentimental Jouney'를 발표하지.

(비틀즈 해체, 1970년 4월 10일 데일리 미러)

70년 4월 9일 폴은 애플사 직원 피터 브라운과의 서면 인터뷰를 자신의 솔로 앨범 보도 자료에 첨부했어.

Q: 다른 비틀즈 멤버나 조지 마틴이 그립지는 않았나요? '이렇게 쉴 때 링고가 있으면 좋을 텐데' 생각이 든 적은 없었나요?

폴: 없었어요.

Q: 비틀즈 이름으로 새 앨범이나 싱글을 낼 계획이 있나요?

폴: 없어요.

Q: 이 앨범이 비틀즈를 잠시 쉬는 작품인가요, 아니면 솔로로서의 출발인가요?

폴: 시간이 지나면 알겠죠. 솔로 앨범이라는 의미는 그게 솔로 가수로서의 출발이라는 것이고, 비틀즈와 함께 만든 게 아니라는 것은 이 앨범이 휴식이라는 의미예요. 그렇게 두 가지 의미가 다 있어요.

Q: 비틀즈와 잠정적으로 갈라섰나요, 아니면 아주 갈라선 건가요? 이유는 개성차이인가요, 아니면 음악적 차이 때문인가요?

폴: 개성 차이, 비즈니스 차이, 음악차이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는 제 가족과 함께 있는 게 더 좋기 때문이에요.

Q: 레논-매카트니 관계가 회복되어 다시 활발하게 작곡하게 될 때가 올 것이라고 보나요?

폴: 아니요.

출처(https://www.history.com/this-day-in-history/paul-mccartney-announces-the-breakup-of-the-beatles)

그 다음날 데일리 미러가 헤드라인에 이 인터뷰를 실으며 공식적으로 비틀즈는 해체되지. 정작 존은 비틀즈라는 그늘에서 해방됐다는 감각을 느낌과 동시에 자신이 했어야 할 공식 발표를 빼앗긴 것에 분노하였지. 70년 12월 31일 매카트니는 비틀즈의 계약 파트너쉽을 해소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헀고, 리는 1974년 12월 29일 존 레논이 합의안에 서명할 때까지 이어져. 그 전까지 각각 멤버들의 솔로 앨범은 애플 레코드 명의로 발매됐지.

비틀즈가 해체되자 맴버들은 모두 각각 자신의 천재성을 뽐내며 솔로 앨범들을 발표해. 존 레논은 70년 John Lennon/Plastic Ono Band와 71년 Imagine를, 조지 해리슨은 All Things Must Pass를 발표하고 조지는 저 앨범의 수록곡 My Sweet Lord가 빌보드 1위를 차지하지. 매카트니는 71년 부터 아내 린다와 기타리스트 데니 래인과 함께 밴드 '윙스'를 결성하지.

사실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의 관계는 해체 이후 73년 부터 다시 나이지기 시작해. 3편에서 언급했던 비틀즈의 매니저 선정에서 갈등 때문인데, 폴을 제외한 셋이 지지한 '앨런 클라인'의 기만행위가 밝혀지며 분위기가 바뀌게 된 거지. 74년 3월 존 레논을 폴 매카트나와 그의 아내, 그리고 스티비 원더가 방문하며 같이 연주를 할 정도였지. 물론 이전만큼 친하게 지낸 건 아니고 서로가 서로의 앨범을 칭찬한다던가 같이 술을 마신다던가 할 정도로 회복되지. 훗날 존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할 정도로 관계가 개선되서, 비틀즈의 재결합은 무리더라도 이벤트 성으로 다시 모이는 정도는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망 5시간 전 존 레논의 사진. 오른쪽의 남자가 마크 채프먼)

1980년 12월 8일. 존 레논은 마크 채프먼이라는 정신병자의 38구경 리볼버에 맞고 과다출혈로 세상을 떠나고 말아. 사망 직전 존 레논이냐고 물어본("Are you John Lennon?") 의료진의 질문에 "네..."("Yeah...")라고 대답했고, 이것이 존의 유언이 되고 말았지.

(2000년 경, 폴, 링고, 조지의 사진)

2001년 11월 29일, 조지 해리슨이 담배로 인한 후두암이 폐로 전이되며 세상을 떠나게 돼. 안타까운 점은, 조지는 힌두교를 믿으며 밥먹듯이 하던 마약과 술을 단숨에 끊었지만 담배만큼은 30년 가까이를 끊지 못했다는 거야.


이제 남은 멤버는 폴 메카트니와 링고 스타 뿐이지. 둘은 아직 간간히 만난다고 하네.


-평가

"이미 비틀즈가 오선지에서 가능한 모든 좋은 멜로디를 다 뺏어갔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좋은 멜로디가 나올 수 없다." (N.EX.T의 보컬 신해철)

"비틀즈는 좋은 곡을 썼느냐를 결정하는 준거점이다. 그들의 곡을 참고하면 단숨한 팝에서 보다 복잡한 음악으로 진화하는 데 걸린 시간을 따져볼 수도 있다."(오아시스의 리더 노엘 갤리거)

사실 여기다 적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비틀즈가 이룬 업적은 엄청나. 단순하게 적기만 해도 로큰롤에서 록 음악으로 변신에 기여하며 후대 거의 모든 장르의 대중음악에 영향을 끼쳤고, 80년대 마이클 잭슨의 등장 전까지 록 음악이 주류로 자리하는데에 영향을 끼쳤으며 사이키델릭 록과 프로그레시브 록의 시초로 평가를 받지 또한 록 음악 최초로 백마스킹을 시도한데다. 최초로 야외 대형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했고, 뮤직 비디오도 사실상 최초로 시도했지.

후대에 준 영향도 엄청나. 90년대 브릿팝의 전설 '오아시스'는 아예 갤리거 형제가 맨시티와 비틀즈 광팬으로 유명하고 '퀸'의 '프레디 머큐리'도 조지 해리슨을 동경한다고 했지. 또한 LSD를 비롯한 마약의 대중화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히피 문화의 선구자이고, 서구권 국가의 세속주의화에도 영향을 끼쳤어. 사실상 6,70년대 문화 전체에 영향을 끼친 샘이지.


각각 개인으로 따져봐도 비틀즈 자체도 198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지만 각각 개인도 전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어. 레논이 94년,  폴이 99년, 조지가 2004년, 링고가 2015년 헌액되었지. 게다가 비틀즈와 개인이 받은 다른 상까지 전부 나열하면 끝도 없을 수준이야.


-번외. 한국에서.

"한국에서 비틀즈 노래는 'Yesterday', 'Let It Be', 'Hey Jude' 3개만 알아도 많이 아는 거다." (냥붕이의 고등학교 친구)

고등학교 졸업한지 좀 됐지만 저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나. 물론 저 세개의 노래도 엄청난 명곡이지만, 대부분 저기서 Ob-La-Di, Ob-La-Da 정도나 기억하는 편이지. 아마 냥붕이들도 주변에 록에 관심없는 친구한테 비틀즈 이야기를 해봐, 아마 십중팔구 "엥?! 계네들?! 완전 팝밴드 아니냐" 라고 할껄? 사실 한국에 서양의 록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이 70년대 부터기 때문에 60년대를 휩쓴 비틀즈는 간과된 점도 있지. 물론 그렇다고 다른 전설적인 록밴드 들이 조명되었냐 하면 아니올시다 지만.


-다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