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과 당신의 이야기, 그 네번째 이야기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야.


-어린 시절

(가족사진, 왼쪽부터 지미의 아버지 알 헨드릭스, 지미 헨드릭스, 루실 헨드릭스, 레온 헨드릭스)

지미 헨드릭스는 1942년 11월 27일,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나 흑인, 백인, 아메리카 원주민의 피를 모두 받은 지미의 집안은 너무 가난했어. 어머니 루실 지터가 지미를 낳았을 때는 겨우 17살이었고, 지미 이후에도 5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가난으로 입양시키거나 위탁 시설로 보낸데다가 약물 중독이던 어머니에 의해 3명은 장애나 기형을 가졌지. 그나마 동생 레온 헨드릭스는 살 까지는 같이 살고 그 이후로도 가까운 위탁 가정에 맡겨져 자주 시간을 보냈어. 하지만 그의 부모는 자주 싸웠고 끼니조차 잇기 힘들정도로 가난했지. 결국 지미는 밴쿠버 인디언 보호구역의 할머니에게 자주 보내져 거기에서 체로키 인디언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보냈지. 결국 부모닌 이혼했고 어머니 루실 헨드릭스는 오래지 않아 3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 지미가 한창 사춘기를 겪던 시기였기에, 이때의 일은 지미의 성격과 음악에 영향을 주지. 이혼 이후 양육권은 그의 아버지에게 넘어갔지만 지미는 그의 이모, 할머니, 이웃들이 돌아가며 보살폈고 가난한 성장기를 보내.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친구가 일하는 햄버거집에 팔리지 않은 햄버거를 먹고, 제대로 된 신발을 신을 수 없어 대충 신고 다니다 보니 어정쩡한 걸음걸이를 가졌던 건 유명하지. 다른 일화로, 지미는 기타를 가지고 싶었지만 가난한 집안에 의해 기타를 살 수 없었는데, 어느날 그의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나 빗잘 지푸라기가 잔뜩 널려 있었어. 바로 지미가 빗자루를 들고 기타치는 상상을 하며 빗자루를 연주한 거였지. 어찌나 열심히 했는지 학교에서도 그런 짓을 해서 학교에서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악기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한 적이 있을 정도야.


그 후 지미의 아버지가 잠시 형편이 풀려 낡은 집을 구입하고 하숙을 줬는데, 그때 들어온 부부가 가지고 있는 레코드에서 나온 블루스 그타리스트 -로버트 존슨이나 하울링 울프 등-에 푹 빠지게 돼. 그리고, 그가 14살 때 쓰레기통에서 한 줄짜리 우쿨렐레를 찾아 이걸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특히 'Hound Dog'를 연주했어. 물론 그냥 귀로 듣고.


15살 때, 드디어 아버지가 선물한 5달러 어쿠스틱 기타를 받았지. 참고로 이때 스트라토캐스터 기타가 200달러 짜리... 어쨋든 지미는 이걸로 열심히 기타를 배우며 들리는 음악들을 귀로 카피했어. 그러나 어쿠스틱은 음량이 작아 소리가 뭍히는 것을 알고는 일렉트릭 기타를 간절히 원하지. 16살 때, 아버지가 'Supro Ozark 1560 S'라는 키타를 선물했어. 지미는 이 기타와 함께 밴드 활동을 시작했고, 너무 열심히 밴드 활동을 한 나머지 출석수 미달로 고등학교에서 쫓겨나.


다들 알다시피 지미는 왼손잡이였는데, 아버지는 오른손잡이로 교육을 시켰어. 덕분에 지미는 양손을 모두 써서 연주가 가능했지.


-세션맨 지미

세션맨 시절, 왼쪽 제일 끝에 왼손잡이 기타리스트가 바로 지미 헨드릭스

1961년 지미는 자동차 도난의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과 군대라는 선택의 순간에 군대를 가게 돼. 지미는 공수부대에 배치되었어. 왜냐면 공수부대는 위험수당으로 매달 55달러가 더 나왔거든. 하지만 군대가 언제나 그렇듯 금방 군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부대의 베이시스트 빌리 콕스와 함께 'The Kasuals'를 결성해 밴드 활동을 계속하지. 너무 연습을 해서 상관한테 조인트를 까이기도 했지만 지미는 열심히 연습을 하며 하루빨리 제대를 바랬고, 낙하산 훈련 중 부상으로 의병 제대를 하게 되지.

하지만 우리의 자유로운 영혼 지미는 바로 고향에 가지 않았어. 제대하고 받은 돈을 모조리 술집에서 썼거든. 지미는 군대 동기에게 팔았던 기타를 되찾고 수많은 밴드와 여자를 거치며 세션활동을 해. 말 그대로 기타에 미쳐서 어디서든 약을 먹으며 까지 연습을 했고 만나는 기타리스트마다 기타 연주를 가르쳐달라고 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어. 특유의 이로 기타를 연주하는 퍼포먼스도 여기서 배웠지. 한때 리틀 리처드의 밴드에서 '지미 제임스'라는 이름으로 세션을 했지만 리틀 리처드는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자기보다 옷을 더 멋있게 입는다는 핑계로 쫓아냈고, 제임스 브라운의 백밴드에서는 얻어 맞고 쫓겨났지. 둘 모두 뛰어난 뮤지션이었지만, 자유로운 영혼의 지미와는 맞지 않았어.


1966년, 지미는 'Jimi James and Blue Flames'라는 밴드를 조직하며 본격적으로 홀로 서기를 시작하지. 이때는 자작곡이 없어 하울링 울프의 'Killing Floor',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등 기존 곡을 자기 스타일로 편곡해 연주했어. 그러던 어느 날, 영국 모델 린다 키스가 그의 공연을 보고 필을 받았지. 왜냐면 이때 그 롤링 스톤스의 '키스 리처즈'와 사귀고 있었거든. 그녀는 주변 음악 업계 사람들에게 지미를 소개시켜주었고, 미국에 와 있던 애니멀스의 베이시스트 채스 챈들러가 지미가 있던 클럽 '카페 와(Cafe Wha?)'에 들러 'Hey Joe'를 연주하는 지미를 본 그 즉시 매니저를 자청해 영국에서 활동하자고 제안하지. 여담으로 미국 뉴욕에서 인지도를 쌓던 지미는 이 제안을 망설였는데, 채스는 영국에 가면 에릭 클랩튼(영국의 기타리스트, 블루스를 현대적으로 계승시킨 전설)을 소개시켜준다고 꼬드겼다네. 그렇게 지미는 자신의 이름, '지미 헨드릭스'로 대서양을 건너.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영광의 절정

지미가 영국에 왔을 당시 영국에서는 로큰롤의 원류 블루스가 재해석 되고 있던 시기였어. 이때문에 채스 챈들러는 본토의 흑인 블루스 기타리스트가 영국에서 활동하면 성공할 거라 계산했지. 당시 보수적인 미국 블루스 계는 이미 고착회 되어 있어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어.

지미는 런던에 조탁하자 애니멀즈의 기타 오디션을 보러 왔던 노엘 레딩을 베이시스트로 뽑아. 지미는 그의 헤어스타일이 밥 딜런을 닮아 마음에 들어서 뽑았다고 하네. 일주일 후, 채스는 지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록 밴드 '크림'이 공연하는 장소로 데려가서  에릭 클랩튼을 만나. 채스는 이때 에릭과 지미를 서로 인사나 시켜주려 했는데, 지미는 당돌하게 크림과 즉흥 합주를 부탁했어. 정확히는 "두 곡 정도 같이 연주할 수 있을 까요?"라고 물었다고 하네. 에릭은 속으로 '별 웃기는 놈 다 보겠네.'라고 했지만 지미는 허락을 받은 즉시 하울링 울프의 'Killing Floor'을 연주해

원곡 하울링 울프의 'Killing Floor' 

지미 헨드릭스 버전

그야말로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혁신적인 스타일에 에릭은 놀라 나머지 곡을 따라가지도 못했어. 그리고 이때, 관객석의 한 천재 기타리스트가 위기의식을 느꼈으니, 그 이름 '제프 벡'이야.


오래지 않아 드러머 미치 미첼이 가입하며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가 탄생해. 아직 앨범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기타를 뒤집은 채 연주하는 왼손잡이 흑인 기타리스트의 소문은 런던 전체에 퍼졌고, 유명해지기도 전에 뮤지션들이 그에게 찾아와. 금세 영국, 프랑스, 독일에 투어 일정이 잡히고, 브라이언 존스, 에릭 클랩튼, 더 후, 제프 벡 등 수많은 전설적인 뮤지션들과 친해지지. 특히 비틀즈의 링고 스타는 자신의 안 쓰는 아파트를 빌려주었고, 폴 매카트니는 그들이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 출연하도록 주선해주었어.


66년 12월 싱글 'Hey Joe'가 발매되고 영국 차트 4위에 오르지. 곧이어 다음해 정규 앨범 'Are You Experienced'가 발표되어 영국 차트 2위에 올라. 물론 당시 차트 1위는 비틀즈의 전설적인 앨범 'Sgt. Pepper's Lonely Club Band' 

수록곡 'Hey Joe'

'Purple Haze'

같은해 6월,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마지막 곡 'Wild Thing'의 막바지, 격렬하게 기타를 치던 지미는 갑자기 라이터 기름을 기타에 붓고 불을 붙인 뒤, 기타 앞에 무릎을 꿇고 퍼포먼스를 펼치며 전설이 되.

기타 부수기!!

이후 겨우 2년 동안 'Axis: Bold As Love', 'Electric Ladyland' 등의 명반을 연이어 내놓으며 흥행 가도를 달려 

('Axis: Bold As Love' 앨범 커버)

('Electric Ladyland' 커버. 다른 버전은 심의에 걸려 올릴 수 없으니 나무위키켜라)

(1집 수록곡 'Stone Free')

(2집 수록곡 'Little Wing')

3집 수록곡 'Voodoo Child'


-익스피리언스 해체, 허무한 최후

69년,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해체하고 그 후 지미는 솔로 활동을 하며 우드스탁 페스티벌에도 참가하지 곧이어 1970년 필모어 이스트에서 친구와 함께 '밴드 오브 집시스' 데뷔 공연을 하며 부활을 알리려 했어 하지만...

1970년 9월 18일. 지미는 런던 스마르칸트 호텔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아. 수면제 과다 복용 이후 토사물로 인해 질식사 한 거지. 그때 지미는 겨우 27살, 28세 생일에서 겨우 2개월을 앞둔 때였어.

(사망 몇 시간 전, 지미 헨드릭스의 마지막 사진)


-영향력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최고의 일렉트릭 기타리스트. 일렉 기타의 역사는 지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무방하며 우리가 아는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는 지미를 통해 음악적으로 탄생했다 봐도 무방하지. 특히 그는 막 개발되던 기타 이펙터를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피드백 사운드, 아밍으로 인한 음정 밖의 음, 기타가 부딪히거나 마이크 스탠드에 비벼서 생기는 소리 등을 모두 마음대로 주무르며 노이즈조차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였어. 특히 1집  'Are You Experienced' 는 싸이키델릭 록의 걸작으로 평가 받지. 

블르수를 바탕으로 한 음악은 싸이키델릭 록, 하드 록, 헤비메탈 같이 같은 시기에 탄생한 장르의 정체성이 되었어. 아까도 말했지만 일렉 기타의 사운드를 만든 거나 마찬가지니까. 오른손잡이용 기타를 뒤집어 물아일체가 되어 연주하는 지미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지. 놀라운 것은, 지미는 15살의 늦은 나이에 기타를 시작했고, 전설의 1집, 'Are You Experienced'를 만든 건 기타를 배운지 9년정도 지난 해였으며 그 짧은 인생에서 대중음악의 판도를 뒤바꾸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4년이라는 거야. 그야말로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을 천재라는 거지.

그 영향력이 얼마나 엄청났냐면, 동시기에 활동하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들, '에릭 클랩튼, 제프 벡, 더 후의 피트 타운젠드, 퀸의 멤버가 되기 전의 브리이언 메이 등-이 지미의 신들린 기타 연주를 보고 기타를 접는 걸 진지하게 고민 할 정도였어.

지미 헨드릭스의 'Sgt. Pepper's Lonely Club Band' 커버

밴드를 본격적으로 결성하기 전 커버 음악을 주로 연주했기에 커버에도 능한데 위의 노래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Club Band'는 저 음악이 나오고 단 이틀만에 자신의 스타일로 커버한 거야.

그 영향력은 아직도 엄청나서 어디서든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를 정하면 2위 부터가 누가 됐든 1위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지미 헨드릭스지. 놀랍게도, 당시 지미가 활동하던 시절은 마틴 루터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대표되는 연설이 있기 10년도 더 전, 아직까지 흑인 차별이 남아있던 시기였음에도 당대 전설적인 백인 밴드 비틀즈와 롤링 스톤스랑 어깨를 나란히 한 전설인 거야.


-기타 이야기.

"백만 달러짜리 기타 실력과 5달러 짜리 보컬 실력을 가진 뮤지션"이라고 자신을 소개 할 정도로 기타 실력에 비해 보컬은 그런 편이었는데, 물론 기타 실력에 비해서 못하는 거고 실제로는 왠만한 일반인 보다는 잘 불러. 지미가 보컬도 하게된 이유는 밥 딜런의 노래를 듣고 저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못 할 게 뭔가 해서...


주로 사용한 악기는 스트라토캐스터(Stratocaster), 앰프는 플렉시 마샬 앰프, 이 엠프의 게인, 출력을 엄청 높히기로 유명한 데다가 앰프에 손상을 내서 잡음이 섞인 소리를 내길 좋아하다보니 그 소리를 재연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달라고 의뢰한 것이 페달형 드라이브 이펙터의 시초가 되었어.


지미의 기타 파포먼스는 사실 약물과 관련이 있어. 긴장감을 없에기 위해 약물에 손을 대는데다가 매니저들이 인종차별 때문에 출연료로 술과 마약을 사서 주고 나머지 돈은 자기들이 먹는 짓거리를 해왔기 때문이야.

(기타를 이로 물어뜯는 퍼포먼스를 하는 지미, 1967년 스톡홀름 공연에서 'Purple Haze'를 연주하며)


알다시피 왼손잡이인데, 그 유명한 "왼손으로 악수합시다, 그쪽이 내 심장과 더 가까우니까"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어.


-한국에서

전설의 기타리스트 취급을 받는 해외와 달리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약간 떨어지는 편인데, 그렇다고 롤링 스톤스 마냥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수준은 아니고, 기타, 특히 일렉 기타를 배우는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지. 어디까지나 해외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편인거야. 냥붕이 아는 형이 일렉 기타 치는데 지미 헨드릭스 계속 언급하더라.


-다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