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몇 년 전, 내가 직접 겪었던 일이다.


본명을 밝힐 수 없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이 이야기에서 내 이름은 일단 가명으로 야마다(山田)라고 칭하겠다.


몇 년 전에 나는 일본의 모 지역에서 직장을 잡았다. 그 지역 일대는 집세가 워낙 비싸서 신입사원 시절, 직장에서 받은 월급 중 상당수가 그 쪽으로 빠져나가곤 했다. 결국 어느 날 부동산에 들러 괜찮은 집이 없나 알아보던 중 직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교외 숲 속에 집 한 채가 이상하리만치 싼 가격에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동산 직원 사토(佐藤. 가명) 씨와 만나서 상담을 받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예, 그럼요. 전기랑 수도 문제없이 다 들어오고 통신도 잘 됩니다."


어느 숲 속에 별장처럼 위치한 작은 2층 집. 현관 지붕도 있고 1층에는 넓은 거실과 욕실, 화장실, 창고. 2층에는 방도 2개나 있는, 그야말로 있을 건 다 있는 집이었다. 최소한 직장을 제대로 잡고 생활이 안정될 때까지 살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이 정도 집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나왔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였다. 드러나지 않는 어떤 하자가 있는 건 아닐까...


(1층)

(2층)


"원하신다면 지금 바로 보여드릴 수도 있는데 가보시겠어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사토 씨는 본인의 차키를 꺼내들며 말했다. 은제 열쇠고리가 인상적인 키였다. 나는 수락했고 곧 사토 씨의 차를 얻어 타 그 집을 보러 갔다. 차를 타고 도시에서 나와 숲 안쪽 길로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집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이렇게 실속에 비해 터무니 없는 가격에 나온 집들은 보통 어딘가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법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토 씨와 함께 그 집을 둘러본 결과 나는 그저 마음에 들 뿐이었다. 혹시 이 집 전주인이 살해 당했다거나 귀신이라도 나오느냐는 농담을 던져봤지만 사토 씨는 유쾌하게 웃을 뿐이었다.


"다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이 집은 얼마 전에 새로 지은 집입니다. 계약한다면 야마다 씨가 첫 집주인이구요."


놀랍게도 그 집은 신축 주택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집의 가격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지만 딱히 그 이상 물을 생각은 없었다. 본인도 자세한 내막은 모르는 눈치였는데 물어봐서 달라질 것 있겠나 하고. 무엇보다 둘러본 결과 그 집은 그 당시의 직장을 다니는 동안 살 집으로는 최고였기 때문이다.


다만 도면을 본 후 집까지 둘러보고 별다른 이상한 구석이 없었음에도 끝까지 어딘가 개운치 않은 느낌은 있었다. '위화감'이라고 하던가? 설명할 수는 없는데 뭔가 아직 내가 모르는 부분이 남은 듯한 느낌.


잠시 거실을 둘러보며 도면을 보던 나는 혹시 그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싶었다.


"사토 씨. 그런데 도면에서 이 공간은 뭐죠?"

창고 옆에 그리 크진 않지만 비어있는 공간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사토 씨도 도면을 보더니 잠깐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마치 '이상하네. 내가 지금까지 왜 이걸 못 봤지?'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그러게요. 이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한 번 봅시다."


사토 씨와 나는 함께 도면에 그려진 그 공간으로 가보았다. 그러나 정말 도면에 솔직하게 그 공간은 창고 옆에 벽으로 막아진 그냥 빈 공간이었을 뿐이었다. 두드려보니 안에서 빈 소리가 났으니까. 사토 씨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저도 이건 이해가 안 되네요. 이 집을 지은 사람은 왜 이유없이 벽을 만들어 놨을까요? 이 벽만 없었다면 창고도 더 넓어졌을 텐데. 아니면 벽에다 문 하나만 달아 놓았더라도 수납 공간 같은 것으로라도 쓸 수 있었을 텐데요..."


그렇지만 어차피 그 벽이 그리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살면서 특별히 불편이 생길 만한 하자도 아니었기에 사토 씨나 나나 그냥 뭔가 사정이 있었겠거니 하고 그냥 넘겨버렸다. 예를 들어 공사를 하다가 돈이 부족해져서 문을 못 만들었다거나 아니면 뭔가 하려고 했다가 중간에 계획이 바뀌어서 그냥 벽으로 막아 버렸다거나... 어느 쪽이든 자세한 사정은 불명이었지만.


그 위화감의 정체가 과연 그 알 수 없는 빈 공간 때문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사토 씨와 집을 둘러보고 난 후 결국 나는 그 집을 사기로 결정했다. 전술했듯 그 집의 가격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저렴했기 때문에 그 때까지 내가 모은 돈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얼마 후 나는 그 집에 입주를 했다. 며칠 살아보니 정말 이 가격에 입주한 게 미안해질 정도로 편한 집이었다. 자전거로 도시까지 가서 지하철 타고 조금만 가면 직장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고. 게다가 그리 큰 집은 아니었지만 혼자 살기에는 조금 넓은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여자친구 카나코(佳奈子. 가명)에게 동거하자고 연락을 했다. 그녀 역시 내가 새로 집을 샀다는 소식에 좋아하고 있었던 터라 흔쾌히 승낙했다. 그녀는 그 다음날 자신의 차로 짐을 실어오겠다고 말했다.


위 도면에서 방 1을 내가 쓰고 방 2를 카나코에게 내어주기로 했던 것이다.


카나코가 오기로 한 날, 나는 시내에서 재료를 사다 근사한 저녁을 준비했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같이 밤을 보낼 생각에 벌써부터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띵동.


오후 7시. 그녀가 초인종을 눌렀다. 얼른 나는 문을 열어주었다.


"어서 와. 오느라 힘들었지?"


"시내에서 조금 멀긴 하지만 이 정도면 괜찮잖아."


"그래. 나도 자전거 타니까 다닐 만하더라. 카나짱은 차도 있잖아?"


"야마다 군도 슬슬 차 사야되겠다는 생각 들지않아? 나야 그 전부터 필요했으니까 일찍 산 거지만."


"자전거가 편한데. 운동도 되고. 그래도 정 필요하다면 사야겠지. 근데 카나짱 차는 집 앞에다 바쳐둔 거야?"


그 때 카나코가 내가 차린 저녁상의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주방으로 달려가더니 한 상 가득 차려진 밥을 보고 눈에 보이게 좋아했다.


"야마다 군이 이거 다 요리한 거야? 대단해!"


"특별한 날이니까 신경 좀 썼지. 일단 짐부터 좀 정리하는 게 어때? 들어다 줄까?"


"괜찮아. 이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어."


카나코는 2층으로 자신의 케이스를 들고 올라갔다. 두 개의 방 중 하나를 그녀에게 주기로 한 것이다. 얼마 걸리지 않아 그녀는 짐 정리를 끝내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별안간 그녀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이상하네. 뭔가를 두고 온 느낌이 들어."


"뭘?"


"잘은 모르겠는데 뭔가 중요한 걸 두고 온 것 같아. 그게 뭔지 모르겠는데..."


하지만 으레 다들 그런 느낌 한 번씩은 받는 법 아니겠는가. 나는 별 거 아닐 거라고 대수롭게 생각하며 넘겼다.


"기분 탓일 거야."


그러나 2층에 올라갔다 온 이후 이상하게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분위기가 많이 다운되어 있었다. 말수도 줄고 평소처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이상한, 묘하게 기분 나쁘기까지 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야마다 군. 아무래도 나 기분이 좀 이상해."


"무슨 기분?"


"이상하게 뭔가... 내가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어. 내가 여기 있는데 여기 있는 게 아닌 것 같은 느낌. 마치 야마다 군 혼자 이 집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뭐? 왜 이상한 말을 해? 그게 무슨 말이야?"


"미안. 나도 잘 모르겠어."


2층에서 무언가 불길한 거라도 봤나? 아니, 내가 이 집에 먼저 들어와서 살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갑자기 그녀가 왜 횡설수설하기 시작하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식사 후에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거실 소파에 앉아 뭔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갑자기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본인도 당황스러운 듯 모르겠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니 나로서도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무언가 잘못 돌아가기 시작한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서서히 엄습해오는 기분까지 들었다.


"야마다 군. 나 우선은 좀 씻을게."


그러던 차에 카나코는 먼저 씻겠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갑자기 카나코가 왜 저러는지 나로서는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아무래도 이사를 하면서 새로 바뀐 환경이 낯설어 잠깐 신경이 예민해졌나보다 하고 낙관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욕실로 들어가서 씻는 동안 나는 설거지를 끝내고 거실 소파에 반쯤 누워 그녀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욕실 안에서는 그녀가 씻고 있는 물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아무리 느긋하게 씻는 사람이라고 해도 목욕이 아닌 다음에야 보통 1시간 정도면 나오지 않던가? 그녀는 지금 2시간 째 욕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물소리는 계속 들리는 데 말이다.


'무슨 사람이 이렇게 오래 씻지?'


그 순간 뇌리에 스치는 생각. 혹시 넘어져서 머리라도 부딪힌 게 아닌가? 왜 진작 생각이 거기에 미치지 않았는지 원망하며 서둘러 문을 열었다. 잠겨 있지도 않았다. 분명 나신일 테지만 지금 그게 중요하던가?


"카나코! 괜찮아?"


하지만 문을 열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세면대 앞에 멀쩡히 서 있는 카나코의 뒷모습이었다. 머리라도 감고 있었는지 완전히 풀어헤친 그녀의 머리칼 사이를 비집고 나온 눈빛이 거울을 통해 내게 닿았다. 내가 갑자기 들어왔음에도 그녀는 동요하거나 몸을 가리려 하기는 커녕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알 수 없는 그녀의 섬뜩한 눈빛만이 거울에 비쳤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아마 누구라도 그 당시 나였다면 본능적인 직감이 왔을 것이다. 저게 누구건 간에 카나코는 아니다. 카나코가 아닌 그 무언가가 지금 내 집 욕실 세면대 앞에 서 있다.


"미, 미안! 천천히 씻고 나와!"


하지만 다음 순간 아주 찰나의 직감을 부정하며 문을 닫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분명 그녀가 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살아있지 않은 것 같다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한 탓에 괴랄한 상상력이 발휘된 것이 분명했다. 사실 그렇게 믿고 싶었다고 하는 쪽에 더 가까웠겠지만...


미지의 공포감을 뒤로 하고 나는 떨리는 발걸음으로 다시 거실로 돌아와 TV 앞 소파에 앉았다. 그렇게라도 하면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잠시 후 카나코가 다 씻고 나와서는 사실 다 장난이었다느니 나를 놀래켜주려고 3류 괴담 흉내라도 내봤다느니 해주기만 바라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공연히 키운 TV 볼륨이 집 전체에 울리고 있었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긴장감과 피로함에 잠시 졸았던 것 같다. 시간은 새벽 2시. 카나코는 이미 나온 지 오래였는지 욕실의 문이 열려 있었고 불은 꺼져 있었다. 하지만 거실 그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어디로 간 거지?


2층으로 올라가 보니 그녀의 방문 틈에 이렇게 적힌 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아마 방에 들어간 후 문틈 사이로 밀어 넣은 것이리라. 그녀치고는 조금 삐뚜름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아마 그녀가 쓴 글씨가 맞는 것 같았다.


急に疲れて先にねるよ。 起こさないで。朝にまた話そう

(갑자기 피곤해져서 먼저 잘게. 깨우지 마. 아침에 다시 얘기하자)


말 한 마디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피곤해져서 먼저 자겠다는 이유로? 정말 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이 집에 처음 온 순간부터 왜 이렇게 알 수 없는 행동만 하는 것인지 의문투성이였다.


다만 쪽지의 마지막 문장 '아침에 다시 얘기하자' 때문에 결국 발걸음을 돌려 내 방으로 향했다. 그녀도 지금 자신의 상태가 뭔가 이상하다는 자각은 있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쪽에서 대화 의지를 내보였으니 나도 일단은 그녀의 부탁대로 깨우지 말고 아침까지 기다려 주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 아침까지만이다. 어차피 몇 시간 후 아닌가. 나도 한숨 자고 나면 이 찝찝한 기분이 조금은 가시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내 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내가 다시 일어나 그녀의 방 앞으로 갔을 때도 그 쪽지는 여전히 거기 끼워져 있었다. 만약 그녀가 문을 열고 나왔다면 쪽지가 바닥에 떨어져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도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걸까? 깨우지 말라고는 했지만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면 최소한 아무 일 없다는 확인 정도는 하고 싶었다. 문을 열어봐서 아무 문제없이 자고 있으면 다시 문을 닫으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그녀가 깨지 않게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없다.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마치 증발한 것처럼 방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가져온 짐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그녀가 이 집에 찾아온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왜? 말도 없이 방에서 짐을 챙겨서 나오기라도 한 건가? 그렇다면 문 틈에 끼워놓은 쪽지가 떨어져 있었어야 할 텐데? 주워서 다시 끼워넣으면 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굳이 그런 번거로운 일을? 집 밖으로 나가보니 그녀의 차 역시 간 곳이 없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이상한 점이라면 그녀가 있던 방의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렇다면 창문으로 뛰어 내린건가? 아니, 그것 역시 말도 안 된다.

거기서 뛰어내리면 곧장 땅바닥이란 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창문에서 뛰어내려야 할 일이 있었으면 차라리 방에서 나와 2층 복도에 있는 창문에서 뛰어내렸으면 현관 지붕이라도 있는데.

가장 말이 되게 정황을 정리하자면 그녀는 내가 잠들어 있는 틈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창문을 다 열어 놓고 가져온 짐을 다 챙겨서 방을 나온 뒤 바닥에 떨어진 쪽지를 다시 문틈에 꽂아둔 후 차를 타고 돌아가 버렸다는 얘기가 된다. 그나마 가장 자연스럽게 퍼즐을 짜 맞췄을 때 말이다.


일단 사정을 들어보는 게 먼저다 싶어 카나코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몇 번이고 전화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녀는 어제 이 집에 온 이후로부터 계속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행적만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점점 안 좋은 생각까지 들었다. 


경찰에 실종 신고라도 해야 하나? 아냐, 고작 이까짓 일로? 사실 내가 경찰이어도 겨우 이런 일로 실종 신고를 한다면 절대 진지하게 받지 않을 것 같다. 확실한 것도 없고 그냥 뭔가 나에게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서 조용히 돌아가 버린 일이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얼마 후 나는 경찰과 연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내가 연락한 게 아니고 경찰 쪽에서 내게 연락을 해 왔다.


"야마다 씨 되십니까?"


"예. 그런데요."


"카나코 씨와 애인관계 되시죠?"


"맞습니다. 카나코는 지금 어디 있죠? 무슨 일이 생겼나요?"


"카나코 씨가 실종 되셨습니다. 어젯밤 11시 경 교통사고로요."


"잠시만요. 뭐라구요? 어젯밤 11시요?"


"네."


"그럴 리가 없는데요. 카나코는 어제 저녁 7시부터 쭉 저희 집에 있었는데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젯밤 11시에 OO 국도 근처 가옥에서 신고가 들어왔어요."


경찰에 의하면 어젯밤 OO 국도 근처에 있는 가옥에 살고 있던 노부부가 갑자기 집 밖에서 난 큰 소리에 놀라 밖을 내다보니 어떤 차량이 길가에 있는 전봇대에 연속해서 차를 들이받고 있었다고 한다.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차가 완전히 부서질 정도로 전봇대에 연달아 들이받자 노부부는 너무 놀라서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출동했을 때 그 자동차는 전봇대에 들이박아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차량 탑승자를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차문은 열려 있었고 핏자국이 어딘가로 이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비틀거리며 차량에서 내려 어딘가로 기어간 것 같은 흔적이 역력했다. 그 핏자국은 도중에 끊어졌고 그 차량에 탑승하고 있었던 피해자의 종적은 거기서 완전히 끊겼다고. 차량 조회를 통해 차주 추적을 해보니 그 차의 주인이 바로 카나코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사고가 났다는 국도는 내 집으로부터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었다. 내 집으로 가져왔을 카나코의 차가 그곳에 있을 리가 없었다.


잠깐. 거기서 문득 미치는 무서운 생각이 있었다.


'어제 카나코가 나에게 차를 가져왔다고 얘기했던가?'


차를 집 앞에다 바쳐뒀냐는 내 물음에 카나코는 대답을 하지 않았었다. 애초에 왜 나는 그녀가 차를 가져왔다고 멋대로 생각했던 거지? 그녀가 스스로 차를 가져왔다고 말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거다. 이런 젠장.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건 둘째 치고 나와 저녁 7시부터 함께 있었던 카나코가 왜 밤 11시에 거기에 있었던 거냐고? 그 때 분명 그녀는 욕실 안에서 씻고 있었을 터인데.


그 순간 어제 그녀가 했던 말이 다시 와 닿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전혀 다른 의미로 들리기 시작했다.


"잘은 모르겠는데 뭔가 중요한 걸 두고 온 것 같아. 그게 뭔지 모르겠는데..."


"내가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어. 내가 여기 있는데 여기 있는 게 아닌 것 같은 느낌."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어젯밤 여기 왔다가 사라져 버린 그녀는 누구였던 거지? 대체 카나코는 어디로 간 거야? 지금 어디에 있는 거냐고?


"야마다 씨?"


혼란스러움에 잠겨 있던 생각을 경찰의 부름에 겨우 떨쳐냈다.


"정말 어젯밤 7시부터 카나코 씨와 함께 계셨습니까?"


"...예. 맞습니다."


"죄송하지만 서로 좀 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사가 좀 필요하겠어요."


결국 경찰서까지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조사 결과 애초에 카나코의 차가 실제로 발견된 곳은 우리 집과 한참 떨어진 OO 국도였기에 얼마 안 가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그럼에도 카나코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고 나 역시 그녀의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다.


그녀가 다시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나흘 뒤였다.


그녀의 시체가 강에 떠내려왔던 것이다. 그곳은 그녀의 차가 교통사고를 당한 그 장소로부터도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같은 날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했던 것 같은 사람이 실종된 지 며칠 후 아주 먼 강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이 이야기를 말해줘봤자 누가 믿겠는가?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나였기 때문에 나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다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특별한 혐의도 없었고 카나코의 시신에서도 타살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결국 무혐의 처리되었다. 물론 기소만 안 당했을 뿐 그런 일을 겪었으니 당연히 내 생활은 철저히 망가져 갔다. 직장에서도 이따금 따가운 눈총이 내 뒤통수에 박히는 듯 했다.


그 와중에 나는 그녀의 짐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녀의 차와 시신은 발견되었지만 그녀가 우리 집에 가지고 왔던 그녀의 짐, 그 케이스만은 여전히 행방불명이었던 것이다. 왜 그 때 그 케이스의 행방을 알면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도 풀릴 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걸까.


어쨌든 수많은 의문을 뒤로 하고 나는 더 이상 그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누구라도 그런 일을 겪었으면 그런 집에서 살고 싶어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다 내 망상이었다고 넘기려고 해도 그녀가 이 집에 온 뒤로 보였던 이상행동들이 이 집에 뭔가 씌였다고 생각하지 않고서야 도무지 설명이 되질 않았다.


결국 나는 부동산 직원 사토 씨에게 연락해 집을 팔고 싶다고 말했다. 사토 씨도 내 소식을 어찌 알고는 있었는지 자세히 묻지도 않고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다. 이런 집을 판다는 것이 양심에 걸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여기서 살고 싶지는 않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집을 샀던 가격에 절반 만이라도 좋으니 팔 수만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서둘러 넘길 생각이었다.


꽤나 싼 값에 내놓았던 덕이었을까. 다행히 집은 얼마 지나지 않아 팔렸다. 집에 이사 오기로 한 사람들이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사실도 내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그 전에 살던 동네에서 소음 문제로 주변 이웃들과 다툼이 잦았다고 했던가?


어쨌든 조만간 나갈 집이라는 사실에 서둘러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겼다.

바로 저 공간.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부터 궁금했다. 대체 저 뒤에는 무엇이 있길래 굳이 이런 공간을 만들어 둔 것일까? 다시 창고로 가 벽을 두드려 봤다. 벽은 생각보다 굵은 두께가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조금만 부수고 안을 볼 수 있을 듯 했다. 그래. 이 정도 벽 하나쯤 없앤다고 해서 무슨 문제라도 생기겠는가?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망치와 공구를 가져와서 벽을 조금씩 허물었다. 창고 옆 그 공간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곳에는 아무리 봐도 몇 백 년은 되었을 듯한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카타나(일본도), 테루테루보즈(일본 전통 인형), 어린아이 유카타 같은... 분명 새로 지었다는 집 속에 왜 이런 물건들이? 게다가 그 물건들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 공간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방금 전까지도 누가 있었던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다가 나는 그 안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으아악!"


바로 카나코의 케이스가 그 안에 있었던 것이다. 이게... 도대체 왜 여기에? 분명 여기는 방금 내가 허물기 전까지 벽으로 막혀 있었을 터인데? 아니, 그 이전에 카나코는 그날 밤에 교통사고로 실종되었다고... 아냐. 하지만 그것보다도 전에 분명 이 집에 오기까지 했잖아. 바로 이 케이스를 들고.


나는 비명을 지르며 집에서 뛰쳐나와 사토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을 든 내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사토 씨. 저 야마다입니다."


"아, 예. 야마다 씨. 무슨 일로?"


"죄... 죄송합니다만... 빨리 저희 집으로 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빨리요."


사토 씨가 차를 타고 도착할 때까지 나는 집으로 다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집 앞에서 꼼짝 못하고 그저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내 사토 씨가 오자 나는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할지 망설이다 이내 그에게 사실을 전부 털어놓고 말았다.


"사토 씨.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전부 사실입니다. 제발 믿어주세요."


나는 그에게 이 일련의 사건들을 전부 이야기했다. 마치 동시에 두 장소에 있었던 것 같은 카나코, 그녀의 실종, 죽음,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지 막혀 있던 공간 속에서 튀어나온 그녀의 케이스까지. 사토 씨도 이야기를 심각하게 듣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야마다 씨. 저로서도 이해 안 되는 부분들이 있지만 일단 그 케이스부터 처리합시다."


"처리하자구요?"


"그런 게 집에서 나왔다고 하면 야마다 씨만 곤란해질 테니까요. 경찰에서 조사까지 받은 사람 집에서 그런 물건이 나왔다고 해서 좋을 게 없지 않겠어요? 거기다 이사 올 사람들이 이 일을 알면 계약을 취소할 지도 모르잖아요? 야마다 씨도 빨리 이 집을 팔아버리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야 그렇지만..."


"야마다 씨. 확실하게 대답해주세요. 애인분 실종사건과 야마다 씨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죠?"


"네. 그건 확실합니다."


"그럼 빨리 이 케이스를 갖다 버립시다. 야마다 씨가 사건과 상관이 없는 이상 우리는 그냥 임자 없는 물건을 갖다 버린 것 뿐이에요. 허문 벽은 저희 측에서 적당히 메워 드릴테니 얼른 그 케이스만이라도 서둘러 처리하자고요."


결국 나도 그가 옳다고 생각해 우리는 함께 집으로 들어가 그 케이스를 서둘러 갖고 나왔다. 다시 집으로 들어간 그 순간에도 케이스를 가지고 빠져나올 때까지 얼마나 다리가 후들거렸는지 모른다. 케이스를 사토 씨의 차 트렁크에 싣고 우리는 그 집으로부터 꽤 떨어진 강의 다리 위로 가서 강에다 그 케이스를 던져버렸다.


강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카나코의 케이스를 보며 이걸로 나도 나를 옥죄던 알 수 없는 사슬과도 같은 끔찍한 악몽 속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것일까 생각했다.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 이 빌어먹을 기억 속에서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기분 뿐이었다.


잠시 강을 바라보던 사토 씨와 나는 이내 돌아가기로 했다. 사토 씨가 은제 열쇠고리가 달린 자동차 키를 꼽아 시동을 걸며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야마다 씨.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사실 그 집, 절대 평범한 집이 아니더군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실 저도 야마다 씨가 그런 일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뭔가 잘못됐다 싶어서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아 굳이 말씀드리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그래도 알고는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사토 씨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이 이야기의 진위여부는 불명이지만... 최소한 여기 나오는 장소가 지금 그 집이 있는 곳이라는 것만은 확실해요."


그 다음 사토 씨가 나에게 들려줬던 이야기는 정말이지... 듣는 것만으로도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얼굴이 새파래질 정도였다.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 집에서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면 누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흘릴 수 만도 없을 것 같았다.


"하기사 저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은 하지만... 아니, 그렇게 믿고 싶지만... 이미 야마다 씨는 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눈 앞에서 직접 겪으셨잖아요?"


그러고 나서 돌아오는 길 내내 우리는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어차피 다른 사람에게 팔렸고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집이니 어서 잊어버리자는 생각만 되뇌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집에서 나온 후 나는 오랫동안 그 집에 대한 생각을 지우기 위해 정말 갖은 애를 다 썼다. 마치 영화 필름처럼 그 집에 대한 기억을 내 인생에서 가위질 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몇 번이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역시 만병통치약은 시간이라는 듯 일에 집중하다 보니 조금씩 그 집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져 가는 듯 했다. 하지만 역시 궁금증 자체는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마치 잘려나간 신체 부위에 계속 남는다는 가상의 통증처럼 말이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사토 씨에게 연락을 했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 집으로 공통된 연결고리가 있는 그와 오랜만에 얘기라도 하면 뭔가 풀리기라도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었을까.


그러나 사토 씨와 연락은 되지 않았다. 몇 번 전화를 걸어봤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상하네. 분명 출근해서 한참 일하고 있을 시간인데. 몸이 아파서 결근이라도 한 건가?


고민 끝에 사토 씨가 일하던 부동산으로 전화를 걸었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모르는 목소리였다. 사토 씨가 아닌 다른 직원인 모양이었다.


"혹시 사토 씨와 전화할 수 있을까요?"


사토 씨의 이름을 듣자 전화기 건너 직원의 목소리가 굳었다. 혹시 내가 잘못 전화한 건가? 아니, 그렇다면 지금쯤 여긴 그런 분 안 계신다고 대답이 돌아와야 하는데.


"저, 그... 실례지만 사토 씨랑 무슨 관계시죠?"


"예? 그냥 고객입니다만."


"그렇군요."


"사토 씨랑 연락 어려울까요? 오늘 출근 안 하셨나요?"


그러나 그 직원의 다음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 했다.


"죄송합니다만 사토 씨는 5일 전에 실종 되셨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5일 전 사토 씨는 갑자기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하루종일 연락조차 닿지 않았고. 평소에 그럴 사람이 아니었기에 수상하게 생각한 다른 사람들이 그의 집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으나 인기척이 없자 경비원에게 부탁해 집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들어가 봤더니 그의 집은 대부분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고 옷가지나 짐 같은 것도 거의 그대로 있었다고 그 직원은 얘기해 주었다. 없어진 것은 그의 자가용 정도 뿐이었다고.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듯 급하게 나간 것 같았습니다."


어떤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황급히 사라진 것인지는 몰라도 5일 동안이나 돌아오긴 커녕 연락조차 닿지 않았으면 분명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신고는 하셨나요?"


"예. 실종 신고도 바로 그날 밤에 사람들이 했지요. 아직까지 소식은 없지만요."


잠시 다음 말을 고르고 있던 찰나에 그 직원이 새로운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사토 씨의 집에 한 가지 이상한 광경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상한 광경이요?"


"식탁에 밥 한 공기와 사케 한 잔이 올려져 있었대요. 사토 씨는 평소에 술을 안 좋아하던 사람인데... 게다가 밥에서는 방금 막 차린 것처럼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술을 좋아하지도 않던 사람의 집 식탁에 밥과 술이 올려져 있었다? 방금 막 차린 듯한 밥을 내버려 두고 급하게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무튼 사토 씨가 돌아오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혼란스러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분명 그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 역시 그 집과 연관된 무언가에 당한 걸까? 아니. 아니어야 한다. 아니어야만 해. 이런 상황에서도 그 집 생각을 먼저 하고 있다니, 그의 안전이 우선인 것을 알지만 그 정도로 그 집에 대한 기억은 나를 집요하게 쫓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가 사토 씨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 것은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퇴근길에 휴대폰으로 본 뉴스에서 그의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그는 그의 집이 있던 곳으로부터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바닷가에 시체로 밀려왔다고 한다. 아마도 그가 타고 나갔을 그의 자동차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행방불명. 일단 사인은 익사로 판명 난 모양이지만 기분 나쁘게도 그는 눈이 사라져 있었다고 한다. 누가 자르거나 파낸 모양이 아니라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두 눈만이...


하지만 나를 더 경악하게 한 것은 그 다음 소식이었다.


"피해자 옆에서는 여행용 케이스도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피해자 본인의 물건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헉!"


분명했다. 그것은 내가 사토 씨와 함께 강에 갖다 버렸던 카나코의 케이스였다. 저게 왜 사토 씨의 옆에 놓여있는 거지? 정말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로 바다까지 떠내려간 케이스가 사토 씨와 함께 떠오르기라도 했던 건가? 아니, 그럴 리 없다. 그 강은 분명 사토 씨의 시체가 나온 바닷가와는 완전히 반대쪽으로 흘러간다. 누가 일부러 갖다 놓기라도 한 것이 아닌 이상 절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대관절 어떻게 된 일인지 최대한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유추를 해보려 했지만 곧 그만두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전부 그 집을 통해 연결되어 있는 사건들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미 이건 상식의 영역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 지갑을 찾기 위해 가방 속으로 손을 넣었다.


"응?"


문득 가방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촉감이 전해졌다. 곧이어 분명 가방에 넣은 적이 없었던 물건이 내 손에 들려나왔다.


"아아!"


은제 열쇠고리. 예전에 그 집을 처음으로 보러 가던 날 사토 씨의 차를 타게 되었을 때 본 적이 있는 그 물건이었다. 고리에 그의 이름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틀림없었다. 왜? 사토 씨의 자동차 키가 어째서 내 가방 속에? 더군다나 이 가방은 어제 새로 산 것이었단 말이다!


주변에 사람들만 없었더라도 비명을 내질렀을 것이다, 분명히.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지하철역 보관소에 그 가방을 통째로 집어넣어 버렸다. 그리고 지하철도 타지 않고 그 먼 거리를 뛰어서 집으로 도망쳐 왔다. 두려운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이내 결심을 굳혔다.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된다. 그 집에서 떠나왔지만 여기 있으면 나 역시 언제 그 저주의 희생양이 될 지 모른다. 그런 강렬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그 다음날 당장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어차피 얼마 전에 카나코 건으로 경찰서에서 조사 받은 일 때문에(결백하긴 했지만) 주변 시선도 안 좋아졌던 터라 크게 미련은 없었다. 직장을 떠나 난 당장 부모님이 계신 본가로 내려가 한동안 집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 역시 내 이야기를 믿기 어려워하신 건 매한가지였으나 미치기 일보 직전의 내 정신 상태를 보시고는 결국 의심을 거두셨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별 탈이 없던 것을 보면 그 저주인지 뭔지를 나는 결국 피한 모양이다. 새 직장도 얻었고 새로운 도시에 그럭저럭 괜찮은 집을 얻어 살고 있다.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예전의 그 집이 지금 어떻게 됐는지, 살고 있는 사람은 있는지 등의 의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고 알려고 하고 있지도 않다. 아주 가끔 뉴스에 실종된 사람이 며칠 만에 아주 먼 지방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 집과는 관련 없는 단순 사고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나와 있는 집은 일단 의심부터 하라. 자칫해서 어떤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닥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잠깐. 그런데 저 가방 낯이 익은데... 언제부터 저 옷장 위에 있었던 거지...?







타챈에 올린건데 여기도 한 번 올려본다 직접 창작한 괴담임

뭔가 찝찝한 부분이 남았을 텐데 이건 나폴리탄 형식 괴담이다 일부러 전체를 다 밝히지 않아서 더 무섭게 만드는 장르

SCP 재단 보면 중간중간 데이터 말소라고 나오는 부분 있지 그런 거랑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하면 됨

쓰다 만 것이 아니라 원래 장르가 그런 것이니 감안하고 봐줬으면 해


배경도 원래 한국이었는데 일본으로 설정해야 느낌도 살고 개연성도 더 부여될 거 같아서 중간에 일본으로 바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