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연재글 이후로 오랜만에 옛날에 읽은 책을 뒤적거려보니 내 생각보다 그동안 읽은게 제법 되서 놀랐음 그리고 그 중에 한번만 읽고 책장에 박아둔게 상당해서 또 놀랐고
 이 연재탭 쓰는게 얼마나 갈진 모르겠다만 그래도 이 계기로 한번 읽었던 책을 다시 펴보니 예전과는 또 다른 감상이 떠올라서 나쁘지 않은 기분임
 거두절미하고 본문 들어가겠음

 
책 본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오늘 소개할 책은 일본 소설가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이다. 책 좀 많이 읽어봤다 하는 사람들이면 소설가가 주로 활동하는 국가별로 유명한 장르가 있다는 걸 알 것이다. 일본은 힐링물과 추리소설로 유명하고, 미국과 영국은 판타지로 대표되는 장르소설, 중국은 삼국지나 초한지등의 역사물 등 말이다. 나 역시 책을 고를때는 저런 선입견에 입각해서 찾아보는 경우가 많았기에 내게 이 소설은 상당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소설의 주제는 피아노 콩쿨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피아노 콩쿨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개최되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쿨인데, 작품 내에서는 쇼팽 콩쿨에서 아이디어를 따 온 독자적인 콩쿨을 차용하였다.  새로운 설정을 도입한 이 시도는 다소 정적일 수 있는 경연의 진행에 상당한 자유도를 부여한 성공적인 시도였다. 소설 속 콩쿨의 세부적인 진행방식은 유명한 콩쿨의 그것과 차이가 꽤 많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소설속에선 경연 곡 중 작곡가가 새로 발표한 곡에서 일정 마디를 참가자들이 직접 작곡하여 경연을 진행하는 파트가 있는데, 권위 있는 피아노 콩쿨의 경우 해당 콩쿨의 이름을 걸고 있는 클래식 거장들의 명성을 중시하기에 프로그램의 구성 자체에 있어선 변형을 용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다만 이 작품속에서 변형을 가한 콩쿨 규칙이나 구성의 경우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일종의 장치로 작용하며, 무대로 삼고 있는 콩쿨이란 음악적 배경에 크게 거슬리는 장면도 존재하지 않으니 독자적인 설정으로 보고 감상해도 무리는 없을것이다.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은 네명이다. 작가의 인물 설정에서도 그 치밀함을 엿볼 수 있는데, 네명의 주요 등장인물은 각각 음악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상을 구체화한 모습이다. 타고난 천재성으로 기존 음악계를 뒤흔드는 신성, 과거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유아기때의 실패로 좌절감에 빠진 소녀, 크게 흔들리는 일 없이 꾸준히 실력을 쌓아온 모범생 청년, 재능은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이 아깝기에 음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회사원, 이 넷이 플롯을 꾸려간다. 지면의 분량상으론 다소 차이가 있지만 어느 인물이나 메인 플롯에서 소외되는 일 없이 꾸준히 등장하며 각자가 상징하는 캐릭터성을 어필한다. 콩쿨의 진행과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 각 인물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보는것도 작품 감상의 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

꿀벌과 천둥이라는 제목은 작품을 함축한것과 다름없다. 천재 소년은 양봉업자의 아들로, 콩쿨 진행기간동안 그 출신에서 따온 꿀벌왕자라는 별명을 얻게된다. 꿀을 얻기위해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니는 꿀벌은 관습에 얽메이지 않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소년을 상징한다. 천둥이란 클래식업계에 돌연히 나타난 소년의 존재로서, 콩쿨이 진행되는 짧은 기간동안 심사위원단과 세간에 충격을 전해준 소년의 행보이다. 작가는 이 소년을 통해 작품 내내 클래식계의 고지식함에 의문을 제기한다. 천재소년은 세계적인 거장의 유일한 제자인데, 콩쿨 진행기간 내내 그 이질적인 행보로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작품 내 묘사를 빌려오자면 이 소년의 존재는 '클래식계에 던지는 폭탄'으로, 소년에 대한 심사위원단과 세간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클래식의 또 다른 장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심사위원단의 토론 장면을 보고있자면 정말 현실에서 있을법한 논란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이 전개됨에 따라 그 평가가 서서히 달라지긴 하지만 최종 순위를 보면 클래식계의 정적인 모습을 완전히 떨쳐내진 못했다는 생각도 들어 아쉽기도 하다.

 음악소설이란 장르에 충실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 하다. 프로그램 구성 곡에 대한 묘사에 상당한 지면을 투자하였기에 고전 음악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도 소설을 즐기는데 어려움이 없다. 나같은 경우 초판 한정으로 딸려온 부록 CD에 프로그램 곡이 담겨있었기에 경연 장면을 볼 때 음악을 들으며 감상을 할 수가 있었다. 클래식계에 대해서는 지식이 그리 깊지 않기에 많은 말을 하진 못하지만 소설속 묘사가 실제 곡과 상당히 비슷하단 느낌을 받았다. 물론 등장인물의 성향에 따라 같은 곡이라도 묘사가 달라지는 부분이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기존 악곡을 알고있더라도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될 일은 없다. 오히려 저 미세한 차이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플러스 요소로 다가올 정도이다.

 음악소설이란 장르를 제쳐놓더라도 재미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소설이다. 일본내에서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도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책을 읽어보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찾아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