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세계가 두 패로 갈라져 싸운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승전국과 패전국만이 남은 상황. 프랑스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베르사유궁전에서 자신들이 당한 굴욕을 그대로 보복한다.


독일은 끔찍할 정도로 조리돌림을 당했다. 어마어마한 전쟁배상금과 식민지 할양, 재무장 금지와 더불어 무기개발 금지까지.

패전국이기 때문에 반항할 수 없었고 그대로 수용해야만 했다.

일단 확실한건 재무장건에 대해선 육군과 해군을 말 그대로 '고자'로 만들어 버렸다.


특히 해군은 병력 15000명 제한, 경순양함 6척, 구축함 12척, 배수량 1만톤급 미만 구형 전함 6척, 함포 구경은 11인치 이하만 장착 가능, 주포 사거리는 30km이하,  잠수함 보유 절대 금지

말 그대로 '있으나 마나한 해군'으로 만들어버리는 치명타를 쳐 맞는다.


당시 해군의 트랜드는 함대함 포격전이 주류였는데 배수량도 1만톤 미만에 11인치 이하의 포와 사거리가 30km인것은

'넌 드레드노트급은 구경도 하지마' 였다.

(참고로 드레드노트급이 12인치 주포에 배수량이 17000톤이 넘는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독일은 정말 '나사 하나 빠진 전함'을 만들기 시작한다.



라이히스마리네 : 전함이 갖춰야 할 3가지가 뭐라고 생각하냐?



조선소 직원 : 당연히 구경빨로 가는 공격력, 떡장빨로 가는 방어력, 출력빨로 가는 기동력이죠.



라이히스마리네 : 근데 우리는 11인치 이상을 달지 못하고 배수량은 1만톤 미만이라 다 갖출 수 없다.



조선소 직원 : 그럼 안 만들면 되는거잖아요?



라이히스마리네 : '그런거는 우리에게 있을 수가 없어'



조선소 직원 : ??



라이히스마리네 : 애초에 맞지 않으면 장갑따위 필요없지.



조선소 직원 : ????



라이히스마리네 : '장갑을 포기한 전함을 만든다'



조선소 직원 : ????????? 전함이 방어력이 없으면 그게 전함입니까?



라이히스마리네 : 까라면 까.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조선소 직원 : (그럴꺼면 왜 전함 3요소를 물어봐 ㅅㅂ...)



그리하여 바이마르 공화국 (이후 나치가 정권을 잡고 라이히스마리네는 크릭스마리네로 바뀜)은 생각보다 훨씬 미친생각으로

진짜 나사가 하나 빠진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을 건조한다.


배수량과 함포구경의 제한이 걸린 상태에서 전함을 제작하려면 무한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최대한의 화력을 위해 한계치인 11인치 주포를 장착하면 이미 배수량이 많이 날아가는데 거기에 대응방어용 장갑을 바르면 엔진 용적이 날아가버리니 움직이질 못하고, 기동력을 확보하자니 장갑을 포기해야하고, 주포를 포기하면 그건 전함이 아니게 되고.


결국 라이히스마리네는 맞지만 않으면 살아있는거니까 괜찮아! 라는 행복회로를 불태우며 건조에 들어간다.


당시에는 실험단계에 있던 함선용 디젤엔진을 과감하게 실전에 투입했고 당시 조선기술의 트랜드는 리벳접합식 건조였으나 엔진과 마찬가지로 당시엔 실험단계였던 용접방식을 채택하여 전함을 건조하기에 이른다.


이런 과감하고 모험적인 기술로 1933년, 배수량 12000톤급 11인치 주포를 탑재한 순양함크기의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1번함 도이칠란트가 진수된다.

근데 12000톤급이면 조약 위반이 아니냐! 라는 말이 있겠지만 꼴랑(?) 2천톤 정도는 줄여서 발표하는건 예사일도 아니다. 당시 각 국 해군들도

자국함선들 배수량을 적게는 1000~2000톤, 많게는 3000~4000톤은 줄여서 발표하는건 으레있었다.

요즘 각 나라의 해군들도 배수량이나 함급을 낮춰서 말하는게 늘상있는데 옛날이라고 없을까.


최악의 조건속에서 당대 최고의 기술력 활용으로 포켓전함이라는 별칭을 얻는 전함을 얻게된 히틀러는 아낌없는 지원을 크릭스마리네에 해줬고

그 지원에 힘입어서 1934년 2번함 아드미랄 셰어, 1936년 3번함 아드미랄 그라프 쉬페가 차례대로 취역한다.

히틀러가 빵빵하게 밀어주던 이 1930년대 중반까지가 사실상 도이칠란트급의 최고의 전성기였다.


왜냐?

히틀러의 베르사유조약을 불평등조약이라고 하며 일방적으로 파기를 해버리고 재무장을 선언하는 또라이짓을 감행, 그 패기(라고 쓰고 허세라 읽는)에 영국은 단독으로 영-독 해군조약이 1935년 체결되어서 베르사유조약의 건조 제한이 풀려버렸고 순식간에 도이칠란트급은 '구닥다리 전함'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처구니 없이 쉽게 구닥다리 전함이 되어버리자 1번함인 도이칠란트함은 함명이 국가명이라 격침당하면 국민 사기에 악영향이 된다고 이름을 뤼초우로 개명까지 당한다.

우째든 이 장갑함들은 1936년 스페인 내전에 국민파에 서서 소소한 포격지원정도만 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 이외의 작전은 그나마 괜찮은 기동력으로 통상파괴작전에 투입이 되어 수송선을 기습하는데나 쓰였고 함대함 포격전은 엄두도 내질 못했다.

주포가 전함급이면 뭐하나? 체급이 순양함이라 맞으면 그대로 용궁하이패스인데.

나사 하나 빠진 생각으로 진짜 나사 하나 빠진 전함이 나왔는데 그 빠진 나사가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써먹지도 못한셈이다.


그나마 3번함 그라프쉬페는 남대서양을 조금 누비면서 상선들을 조금 괴롭혔다. (그래봐야 상선 9척 격침이 고작이다.)

그러나 상선이 털리는데 영국이 가만히 있을리가 있는가? 영국군은 곧바로 대응할 병력 (엑세터 중순양함, 에이잭스 경순양함, 아킬레스 경순양함)을 보내어 그라프쉬페를 쫒아내려했다.


그라프쉬페는 화력만큼은 비등했던지라 격침의 위협을 이겨내며 엑세터는 중파, 에이잭스와 아킬레스를 소파시키며 추격을 뿌리쳤다.

하지만 교전도중 중유 예열기에 타격을 받아 수습을 하기 위해 중립국인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항으로 입항을 한다.



(실제로 몬테비데오항에 입항한 그라프쉬페 상태. 함미 부분이 심각하게 타격을 받았다.)



랑스도르프 함장 : 이곳에서 전함을 항해가 가능한 정도까지 수리를 하고 돌아가자.



승조원 : 네!



우루과이 정부 : 어.... 저기... 님들아?



승조원 : ??? 넹?



우루과이 정부 : 어... 저기... 우리 중립국이라서 님들 72시간 이후로는 항구 비워주셔야... 하는데요...?



랑스도르프 함장 : 큰일이구나.... 혹시 이 만한 전함이 라플라타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까?



우루과이 정부 : ....? 아마 저런 큰 배는 못들어 갈겁니다.. 어쨌든 72시간 꼭 지켜주십쇼.. 시간 넘기면 저희도 강제로 내보낼겁니다..



랑스도르프 함장 : (강이 깊다면 바로 옆 *아르헨티나로 가서 버티려 했건만 그것도 무리인가..) (*당시 아르헨티나는 나치독일과 꽤 가까운 관계였다.)

일단 72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함선 운용에 지장이 없게 하라.



??? : 영국군 함대가 이곳으로 온다고 한다아아아아아아! 졸라 몰려온다고 한다아아아아아아아아!



랑스도르프 함장 : (내 운은 여기까지인가.)



하지만, 몬테비데오 근처엔 영국군 함대는 없었다. 영국이 고의로, 몬테비데오에 있는 그라프쉬페를 묶어두기 위해 역으로 잘못된 정보를 흘려 혼란을 야기시킨것이다. 효과는 대단했다. 그라프쉬페는 사실상 도주를 포기하였고 72시간이 지나자 우루과이는 그라프쉬페에 대한 자국 항구 추방명령을 준비했다. 참고로 그라프쉬페를 정상적인 항해를 하게 만드려면 약 4개월정도의 수리기간이 필요했다. 결국 이러한 압박에 랑스도르프 함장은 1939년 12월 17일. 전 승조원 퇴함명령을 하달한 후 그대로 자침을 시켜버린다. 이때 몬테비데오 항에는 추격해오는 영국군의 함대와 그라프쉬페의 건곤일척급 전투를 보기위해 모였다고 한다.



몬테비데오 시민 : 영혼의 맞다이 가나요!?



그라프 쉬페 : 이것이 크릭스마리네! 제국 해군의 비장한 최후다!



그라프 쉬페 : 였던것.



몬테비데오 시민 : 이것이... 독일....???


이렇게 많은이들이 보는 가운데 거짓정보에 속아 자침을 한 그라프쉬페.

그리고 랑스도르프 함장은 크릭스마리네 깃발이 아닌 라이히스마리네 깃발을 꺼내어 펼친뒤 자신의 권총으로 명을 달리한다.

이후 시신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안장했다.


나머지 자매함들도 불운한 최후를 맞이한다.


도이칠란트에서 뤼초우로 개명이된 1번함 뤼초우는 노르웨이 침공작전이던 베저위붕 작전에서 영국잠수함에 어뢰맞고 한방에 기동불능판정, 예인해서 항구에 1년간 수리를 한뒤 바렌츠해 해전에 참가했지만 크릭스마리네가 대패하는걸 지켜만 보았다. 그 후 소련군에게 노획을 당해서 표적함으로 절단나버리는 안습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2번함인 아드미랄 셰어는 통상파괴임무 위주로 남대서양, 인도양에서 10만톤 이상의 격침전과를 올렸으나 자국으로 돌아온뒤 항구에 정박도중 공습맞고 어이없이 격침됐다.


이렇게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은 태어나자마자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한방에 퇴물이 되어버린 비운의 함선이였다.

전성기라 불린 1935년 이후 불과 8년만에 전함의 끝판왕인 배수량 45000톤의 아이오와급 1번함 아이오와가 취역했으니 말 다한셈이다.


순양함을 전함의 화력으로 우위를 점하고, 상대방의 전함은 순양함의 속력으로 기동전을 펼치려 했던 행복회로속의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하지만 현실은 순양함급엔 속도로 제압을 당하고, 상대 전함엔 모든것이 다 딸리는 끔찍한 결과가 펼쳐져버린 도이칠란트 장갑함이였다.


-독일 기술은 세계제일?! 크릭스마리네의 한줄기 빛,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이야기. 끝.


-참고자료 : 밀덕영상 캐러브님의 영상 https://youtu.be/QuplVWgxn7A

-그림자료 : 구글,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