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용두산 대화재


식모 하나가 촛불 켜둔채로 자다가 촛불이 떨어지는 바람에 불이 났는데 하필 한국전쟁이 겨우 끝났을때라 용두산에 피난민들이 쪽방촌을 만들어서 다닥다닥 살았음


판자촌이라 불이 당연히 금방 당겨올랐는데 문제는 이 근방 관재청 창고에 서울등 각지에서 싣어날라온 4000점의 왕실 보물이 보관되어 있었음


보관하던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정부에 빨리 이관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계속 무시당함. 그리고 이관 요청 편지를 쓴지 두달만에 불이 났음


이때 경비인들한테 열쇠가 없어서 유물을 대피시키지도 못했고 황실이랑 문교부가 책임소재를 미루느라 사태가 악화됨


결국 4000여점 중에 3500점이 아예 소실됨. 비율로 87.5%가 날아감


일제강점기랑 한국전쟁 거치면서 문화재가 얼마나 중요한줄 몰랐던 것도 있지만 사진기나 모사, 속기 관련 노하우도 없어서 그이전에 백업본을 만들어 놓지도 못했음


어진 46개 중에 11개만 겨우 건졌고 몇개는 아직도 복구를 못함



순조 어진



효명세자 어진


보다시피 아주 박살이 나서 컴퓨터 그래픽으로도 복원이 힘들다고 함


얼굴 윤곽이나 이목구비 구조라도 알아야 추정도라도 만드는데 아주 확실하게 타버림


특히 신라-고려 시대부터 전해지던 악기나 악보들도 이 때 한꺼번에 날아가서 삼국시대 이전 문화 연구는 일본에 남아있는 삼국시대 유물에 크게 의존할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함


더 골때리는건 심지어 이때 무슨 유물이 있었는지 기록했던 목록마저도 1960년에 불타서 사라짐



좀 비관적인 의견으로는 이때 사라진 유물중에 내가 아까 글적었던 <삼대목>이 섞여 있는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음

나도 가능성이 좀 있다고 보는데 맞으면 우리는 앞으로 삼대목의 향가를 영원히 못 알게될 가능성도 있음





나도 원래 꿈이 사학과였는데 어쩌다보니 경영학으로 넘어와있음. 그래도 역사에 아주 흥미가 떨어진건 아니라서 이것저것 찾아보는데 이런거 보고 있노라면 그래도 사학과라는 학과가 얼마나 중요한 학과인지 알거같음


요즘은 역사나 문화마저도 국력이 되는 세상인데 우리나라는 너무 단절된 역사가 많음. 


모쪼록 냥챈 사학붕이들이 좀 열심히 해서 우리 역사에 미싱링크를 좀 많이 찾아줬으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