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게시판

 "너는 꼭 기사가 되거라."


 모험가였던 아버지가 늘 나에게 하던 말이었다.


 나에게 모험가들의 이야기를 말해준 게 아버지면서.

나에게 미지의 장소에 대한 두려움과 두근거림을 알려준 게 아버지면서 모험가만은 되지 말라고 하셨다.


 영웅에 대한 선망을 가지고

만남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미지에 대한 열망을 가지는 건 우리 세대로 족하다고.


 너는 왕국의 기사가 아니더라도 마을의 기사가 되어 편안한 인생을 가지라고 하셨다.


 "저는 아버지보다 더 큰 키를 가지고 있어요.

"내 동료는 3미터가 넘는 거인이었다."

  

 "저는 아버지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내 동료는 맨손으로 나무의 밑 동을 뽑을 수 있었다."


 "저는 아버지보다 더 빠른 발을 가지고 있어요."

"내 동료는 옆 마을까지 1시간이면 도착했다.


 "저는 아버지보다.."
"내 동료는 .."


 나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을 해도 돌아오는 건 "너는 약하니 모험을 해서는 안된다" 말이었다.


 성인식을 치르고 1년, 2년... 5년이 지나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아버지에게

모험가가 되지 않을 바에 차라리 농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평생을 검만 잡고 살아온 아버지라면 

검을 놓으려는 나의 선택을 혼내지 않을까?

차라리 모험가가 되라고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은 나에게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고맙다고 했다.


 그 얼굴을 본 나는..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집을 뛰쳐나와 달리고 있었다.

더 이상 그 집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밤이 되어있었다.

추위와 허기가 날 괴롭히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어둠이 나를 삼킨 건가 싶을 정도로 깜깜한 하늘은 너무나도 무서웠다.


 팔을 끌어안고 다리를 웅크리고 눈을 감았다.

하늘이 밝아오기를 기도하며.


 이슬에 젖은 몸은 밤의 추위 보다 훨씬 차가웠다.

몸을 떨며 다리를 움직였다.


 달리다가 힘이 들면 걸었다.

걷다가 힘이 들면 잠깐 앉아서 쉬었고

힘이 돌아오면 다시 달렸다.


 그렇게 달리고 걷고 쉬고, 달리고 걷고 쉬고를 반복하다 처음 보는 도시에 도착했다.

배가 고팠으므로 얼마 없는 돈을 털어 밥을 사 먹었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으므로 이곳에서 터를 잡기로 결심했다.


 이방인이라고 배척 당할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터를 잡는 건 쉬웠다.

배부르진 않아도 굶주리진 않았다.

따뜻하진 않아도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었다.


 이걸로 된 거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버티고 

이틀을 보내고,

일주일을 넘기고,

한 달을 지내고,

일 년을 맞이했다.


 처음 왔을 때는 낯선 도시였지만 지금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같다.

처음 왔을 때는 나를 경계하던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서로 술잔을 나누는 이웃들이다.


 이걸로 된 거라며 현실에 순응하고 살아가려고 할 때

거리에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기억 속에 남아있던 모습과는 달랐지만 분명 내가 알던 사람이었다.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었지만 내가 알고 있던 얼굴이었다.

한쪽 팔이 사라져있었지만 내가 알고 있던 모습이었다.


 그는.. 나를 발견하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걸어왔다.


 서로가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정적만이 흐르고 있을 때

그는 한쪽 팔로 나의 왼쪽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팔은 점점 내려오다가 나의 손을 잡았다.



 "건강해서 다행이다."


 그는.. 아버지는 그 말을 하고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시작했다.


 "나는 젊어서 모험을 하고 다녔다.

여러 마을과 도시를 여행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술집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술잔을 나누기도 하였고

하룻밤의 사랑도 하였다.


그 때는 그게 좋았고 그게 당연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라가 안정이 되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설 곳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의뢰가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동료였던 자들과 싸우게 되었고

어쩌다가 얻은 의뢰도 온전한 보수를 받지 못하거나 어쩔 때는 오히려 돈을 내야 할 때도 있었다.


나는 너에게 모험가라고 말을 했지만

사실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쓰레기 용병 집단이었다.


아버지로서 너에게 현실을 알려줘야 했는데

나는 아들에게 환상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걸 한참 뒤에 깨달았다.


네가 어떻게 생각할 지는 몰라도 나는..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아버지는 이야기를 마치고는 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나에게서 멀어지는 아버지에게 왜 그걸 이제서야 말한 건지,

눈과 팔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지, 어떻게 나를 찾아낸 건지 여러가지를 묻고 싶었지만.

단 한 가지만 묻기로 했다.


 "아직도 그 집에서 살고 있나요?"


 아버지는 나의 말을 듣고 발을 멈췄다.

등을 보인 채로 "네 방은 매일 청소 하고 있다."이렇게 말하고 아버지는 다시 걸어갔다.


 그 때의 난 어떻게 했어야 했던 것일까.

아무런 진실도 모르고 아버지의 말을 따라야 했던 것일까?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에 아버지에게 찾아갈 때는..

최하위 기사직 이라도.


9급 기사라도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