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죽는다. 아마 오늘이나 내일쯤. 

침대에 위에. 이불 아래. 그녀는 누워서 쌕쌕이며 숨을 뱉는다. 의자에 앉아 마주 잡은 손이 차가웠다. 반쯤 찡그린 얼굴로 눈을 지그시 감아 다시 맡지 못할 공기를 마신다. 그러다 기침하며 내뱉는다. 나는 앉아 손을 쥐여주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병원이 있는것도. 내가 의사도 아니기에.


물론 짙은 먼지 속에 깔린 무언가는 병원일 수도. 누군가는 의사일 수도 있지만 그들과 우리는 너무나 멀리 있다. 옛것을 꺼내기에 아직 그녀는 준비되지 않았으니까. 복잡한 수수께끼를 남기고선 사람들은 흩어졌다. 마법 같은 이들은 마법처럼 흔적 두어 개만 남기고선 그마저 부끄러운지 먼지로 감추려 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서울이라는 것도 빛바랜 철판 하나가 알려준 덕택이니까. 


그것이 비록 신기한 물품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좋았다. 더 깊이 알 수 있었고 더 자세히 알 수 있었기에. 그녀 또한 그러했다. 순수하고 단순한 성격이 나를 끌어당겼다. 속임수 없는 정직함이 사랑스러웠다. 눈은 그녀 자신의 마음을 한자 한자 적어놓은 책 같았다. 때로 서로 눈이 마주칠때면 그 책 안에 내 이름 석 자가 들어간 거 같아 행복했다. 


어느 날 그녀가 사랑의 이유를 물었을 때. 나는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웃으며 너는 거짓말을 못한다고 외쳤다. 그리고 내 사랑의 이유는 그것이라고 내게 전했다. 그날. 각기 다른 공기가 같은 뜻이 되어서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토록 그녀를 기억하러 애쓰는 건. 그녀와의 시간을 하나라도 더 회상하려 애쓰는 건. 지금 너무나 희미해진 그녀의 향기처럼 머릿속의 그녀 또한 흩어져 사라지는 게 무섭기 때문이다. 서울이라는 요술의 퍼즐 속에서도 그녀의 조각은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갈 수 없는 건. 미세한 모터의 진동에 그녀의 마지막 숨소리가 묻힐까 두렵기에 그러하다. 차디찬 방에 덩그러니 놓여있는걸 그녀가 싫어하기에 그러하다. 그들은 핵무기, 생물 무기, 화학 무기는 척척 찍어내 아직까지 보관했으면서 우리에겐 작은 항생제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너무 불공평했다.


그녀가 작은 기침소리와 함께 내 손을 쥐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게 속삭였다.


"무거워. 너무 무거워."


그녀를 감싼 천 덩이를 풀어헤친다. 이불 아래 숨어있던 그녀가 드러난다. 그녀는 어느정도 미소지으며 내 손을 붙잡았다.


"가지마. 네 온기를 느끼고 싶어. 너만의 온기를."


내 손에 잠긴 손에서도 차가운 기운이 빠지질 않는다. 두 손 모아 기도하듯 손잡았다. 그녀가 나지막하게 중얼인다. 


"난 죽고 싶지 않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 같아. 몸이 납같이 무겁게 느껴지니까."


"왜 그런 말을 해. 너무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마. 어쩌면 기적이 찾아올지도 모르잖아."


그녀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 웃음소리는 기침소리가 되어 끝이 났다. 몇 번의 잔 기침 후에 그녀는 대답했다.


"넌 거짓말을 못해. 그리고 나는 지금 나의 생존 여부를 고민하는게 아니라 사후세계의 여부를 생각하고 있어. 넌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지? 내가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았다는 걸 입증할 수 있지?"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만족한다는 듯이 이어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오늘이 슬퍼져가. 곧 다가올 밤이 영원할까? 내가 이토록 노력했던 나의 삶의 결말이 과연 끝없는 어둠일까? 정말 죽으면 아무것도 없는 걸까? 그렇다고 해서 누구도 알 수도. 입증할 수도 없는 공상 속에 나를 던지는 게 옳을까?"


그녀는 다짐한듯 눈을 감았다. 졸려 무거워진 눈꺼풀이 따르는 데로. 그러고선 마지막 말을 남겼다.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 내가 내 여행을 방해해."


작은 숨소리가 힘겹게 흘러나왔다. 작은 손아귀가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문뜩 작은 원형의 물체가 떠올랐다. 은빛 윈형의. 사용하는 설명서가 곁들여진 그 물건은 그녀를 낫게 하지 못하지만 편안하게 할 수는 있었다.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끄트머리에 연결된 마이크로 착용자에게 생각을 주입하는 그 도구.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놓고선 창고로 달려갔다. 금빛보다 아름다운 빛깔이 내 손에 쥐여져있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방안은 하나의 고요함에 사로잡혀 아무말도 꺼내지 못한체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방안에 들어간 나는. 죄책감 탓인지 미련 때문인지 그녀의 머리를 신중하게 들고선 그 기계안에 넣었다. 기계가 빛을 내뿜으며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외친다. 소리친다. 


사후세계는 실존하며. 거기에는 너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있다고. 곧 나도 갈태니 너무 외로워하지 말고 편하게. 즐겁게 여행을 떠나라고.


기계가 돌아가며 내는 소리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모서리에 빽빽하게 매달린 전구가 빛을 잃어갔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는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그녀를 보았다.


흰 천위에 몇 방울 눈물. 그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작은 미소 하나가 날 만족시켰다.



+)부족하거나 모자르거나 이상한건 댓글로ㄱㄱ

예전에 써본 것들 틈틈이 올려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