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dogdrip/22426374?target=all&keyword=%EA%B0%80%EC%A0%95%EC%A0%84%ED%88%AC&p=1- 1편



3.전개
어찌되었건 제갈량은 마속에게  뛰어난 부장들을 붙여주고 정예병을 내주었으며 열류성에 고상까지 박아넣어 백업해줌으로서 자신이 해줄수 있는것은 전부 다하였다.그리고 그것도 모잘라서 구체적인 전술지시와 진지를 구축할 장소까지 미리 선점하여 마속에게 일러준다. 거의 물가에 애를 내놓는 심정으로 제갈량은 마속을 가정으로 보내었고 마속은 장합보다 한발 앞서서 가정에 도착하였으며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주위를 한번 슥 둘러보더니 이리 말한다.

"산을 타자." 


마속:나는 산이 좋아.
제갈량: 이 미친놈아....


3.1 가정의 지형.
그렇다면 도대체 가정은 어떤 지형이었기에 마속은 제갈량의 절도(군의 명령)를 무시하고 산을 탄것인가? 


(마속과 장합의 본진 예상도) 

(지도로 구현한 가정의 지형) 



마속은 물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갔는데 (지형이) 행동하기에 번잡하였으므로 왕평은 계속 마속에게 규간(規諫, 옳은 도리로 간함)하였으나 마속이 이를 쓰지 못하여 가정(街亭)에서 크게 패하였다.
-왕평전-

제갈량의 장수인 마속(馬謖)과 가정(街亭)에서 맞붙었다. 마속은 험한 남산에 의지했고, 내려와 성을 점거하지 않았다. 장합은 그 급도(汲道-용수로)를 끊고 들이쳐 마속을 대파했다.
-장합전-

(마속은) 제갈량의 절도(節度-작전명령)를 어기고, (군사)행동이(擧措) 매우 번거롭고 어지러웠으며(煩擾), 물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가니, 내려가서 성(城)을 점거하여 (지형의) 이점(利點)을 다투지 아니하였다. 비장(裨將) 왕평(王平)이 힘써 간하였으나 (마속이) 쓰지 않으니, 마침내 대패(大敗)하여 사졸(士卒)이 모조리 궤멸(潰滅)하였다.
-소상 속후한서-

마속은 제갈량의 절제(節制-작전명령)을 어겼고, (군사)행동이 번잡스럽고 어지러웠으며, 물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가니, 내려가 성을 점거하지 아니하였다. 장합이 그 급도(汲道-물을 수송하는 길)을 끊고 이내 공격하니, 마속은 패주하고 사졸은 흩어졌다
-학경 속후한서-

마속에게 여러 부대를 감독하여 선봉에 서도록 하면서 장합과 가정에서 싸우게 하였다. 마속은 제갈량의 절도를 지키지 아니하면서 행동거지(舉措)가 번요(煩擾-번거롭고 어지러움, 혹은 혼란스러움)했으며, 물을 버리고 산을 올라, 아래에 있는 성을 점거하지 않았다. 장합이 그 급도를 끊고 공격해 대파하니 (마속의) 병사들이 이산(離散-구성원이 헤어져 흩어짐)되었다
-자치통감-

당대의 기록과 후대의 기록을 조합하면 공통적으로 알수있는 사실이 마속이 물이 없고 지세가 험한 남산에 의지하였다는것, 바로 아래의 길에는 성이 있었고 물이 있었으나 마속은 그곳에 급수대 만을 설치하였을뿐 성을 점령하거나 길목을 막지 않았다는것. 남산은 지형이 좋지않아 군사가 번잡하게 흩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것은 바로 성과 물의 존재이다. 고대는 현대와 달리 면의 형태가 아닌 점과 선의 형태로 나라가 존재하였으며 그 점선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성이라는 건축물이다. 거기에도 성근처에는 물까지 있었다 하니 당연히 보통목적으로 세워놓은 성이 아니었던것은 분명하였다.

그리고 가정의 지형을 구현한 사진을 보면 알수있다싶이 가정의 지형은 큰길과 열류성을 돌아 상규로 향하는 좁은 샛길 말고는 길이 없다. 만약 이곳이 막혀버리면 장합은 성에 의지하고 진채를 벌여놓은 마속을 힘으로 단시간안에 제압하던가 미친척하고 마속을 무시하고 열류성이 있는 아주좁은 셋길을 비집고 들어가 상규로 향하던가 아예 정신줄 놓고 산을 타며 없는길을 만들어가며 나아가야하는 선택지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즉 마속이 길목이 진을 쳤다면 식수확보+성이라는 안정적인 방어건축에 의지+산에 진을 쳤을때보다도 많은 잔여시간으로 진채를 튼튼히 구축함, 이라는 환상적인 어드벤티지를 모두 챙겨갈수 있었다. 거기다 장합은 5만이라는 대군을 산맥을 빙 돌아 곡선을 그리며 진군해왔기에 보급사정이 말그대로 개판이었을 확률이 매우 컷고 마속은 오래 끌거없이 단시간만 버티면 장합이 스스로 자멸하는 타임어택을 장합에게 일방적으로 걸어버릴수 있었다.

하지만 마속은 이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남산에 올라갔다. 현대의 남산은 사실상 산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야트막한 구릉지이다.  하지만 장합전에는 험한 남산에 의지하고('謖依阻南山') 라는 구절이 존재한다. 阻는 막다라는 의미보다는 막히다라는 의미가 강하기에 이뜻으로 번역하면 "마속은 남산에 의지하여 막혔고" 라는 이상한 의미가 되어버리기에 두번째 뜻인 험하다 라는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이 기록을 토대로 한다면 당대의 남산은 지세가 꽤나 험한 산이었고 마속은 이 산을 올라 진세를 벌였으나 산세가 험하여 대규모 군사가 진세를 벌이기에는 좋은 지형이 아니었기에 왕평은 이에 대하여 간하였으나 마속은 싸그리 무시하고 산위에 모든 군사를 꼴아박아 어지럽게 진세를 벌인것이 된다. 바로 아래에 우물까지 있고 강까지 흐르는 튼튼한 성을 버려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