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퍼플 1편 - 록과 당신의 이야기 7.1. 딥 퍼플 초기~전성기 - 냥드립 채널 (arca.live)


- 딥 퍼플 3기

 이번에도 보컬과 베이스를 바꾼 딥퍼플은 가장 먼저 베이스와 세턴드 보컬을 담당할 당시 22세의 글렌 휴즈를 발견해. 다른 멤버들 보다도 최소 6~7살 가량 어린 글렌 휴즈는 작사 작곡은 물론 보컬도 뛰어나서 후일 블랙 사바스에서도 보컬을 맡게되지. 글렌 자신도 자신을 보컬리스트로 인식하고 있었고. 때문에 베이시스트로 제안한 딥 퍼플이 달갑지는 않았으나, 트윈 보컬 체제로 갈 거라는 존 로드와 리치 블랙모어의 설득 끝에 가입하게 돼. 또한 리드 보컬을 맡게 된 가수는데이비드 커버데일로, 당시 무명이었으며 낮에는 양품점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사람인데 너무 패션 센스가 형편 없어서 다른 멤버들이 열심히 꾸며주었고, 다행히도 3기의 첫 번째 앨범 'Burn'에서 충분한 실력을 보여주었지.

(딥 퍼플 3기 1집, 'Burn')

이 앨범 역시도 1기나 2기에 비견되는 대성공을 거두었지.


타이틀 곡, 'Burn'

이 앨범 발매 직후 딥 퍼플은 이전에 블랙 사바스 편에서도 나왔던 록 페스티벌 'California Jam 1974'에 참가하였지. 25만명의 관객들이 참여한 이 공연에서 딥 퍼플은 3기 또한 2기에 못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어.

(왼쪽 위 존 로드, 왼쪽 아래 데이비드 커버데일, 중앙 리치 블랙모어, 오른쪽 위 글렌 휴즈, 오른쪽 아래 이안 페이스)

이 성공에 힘입어 2번째 앨범 'Stormbringer'을 발표해.

(3기 2집 'Stormbringer'의 앨범커버)

기본적으로 리치 블랙모어가 대부분의 곡들을 작곡하였지만, 글렌 휴즈의 펑키한 사운드가 흐르는 기묘한 앨범이었어.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 두 사람이 거의 절반씩 보컬 파트를 가져갔지. 이전까지의 메탈적인 분위기에서 넘어와 소울, 그리고 블루스가 충만한 딥 퍼플의 걸작이야.


타이틀 곡 'Stormbringer' 

한국에서도 유명한 'Soldier of Fortune'

이 즈음 해서 글렌 휴즈는 사실 그 유명한 데이비드 보위와 1년 정도 같이 살았었는데, 공통 관심분야가 많아 정말 친했었어. 보위는 당시 작업하던 'Young Americans'의 보컬을 해주길 바랬지만, 리치 블랙모어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해.

당시 록 뮤지션이 그랬듯 딥 퍼플도 블루스를 좋아했었어. 하지만 리치 블랙모어는 블루스와는 별개로 글렌 휴즈의 소울 사운드는 관심이 없었지. 그러나 'Stormbringer'는 글렌 휴즈의 주도하에 소울이 넘처나는 앨범이었고, 리치는 음악적인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후배들은 이미 음악계에서 자신과 맞먹는 거인이 되어 있었지. 게다가 존 로드마저 이 신인들 편이 되자 리치 블랙모어는 점점 흥미를 잃다가 밴드 '레인보우'를 만들며 딥 퍼플을 탈퇴하게 돼.

이 딥 퍼플 3기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도 많고, 2010년 쯤 되어 존 로드와 데이비드 커버데일 주도로 재결합을 추진했지만 이안 페이스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의견에 무산되었고, 2012년 존 로드가 세상을 떠나며 3기 딥 퍼플은 역사가 되었지. 후일 3기 딥 퍼플 시절을 추억하던 화이트 스네이크의 보컬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2015년 'The Purple Album'을 발표해.


-딥 퍼플 4기

리치 블랙모어가 탈퇴하자, 존 로드는 밴드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리치 블랙모어 없이는 밴드를 유지할 수 없다 생각해 밴드를 해산하려 했으나, 글렌 휴즈와 데이비드 커버데일의 강력한 설득이 뒤따랐지. 정확히는 글렌 휴즈도 리치 없는 딥 퍼플을 상상도 할 수 없어 원래 자신의 밴드 '트레피즈'를 재결성 하려 했으나 데이비드의 설득으로 넘어온 거야. 특히 원래 무명이었다가 유명해진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열성적으로 후임 기타리스트를 찾았는데, 그 후보로는 그 유명한 제프 벡, 아일랜드의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리 갤리거('오아시스'의 갤리거 형제와는 관계 없다.), 데이비드 보위의 기타리스트 믹 론슨 등등 온갖 기타리스트를 찾은 끝에 미국인 기타리스트 타미 볼린을 영입하지. 그렇게 글렌 휴즈, 데이비드 커버데일, 타미 볼린이라는 51년 생 젊은이들의 주도하에 1975년 'Come Taste the Bend'를 발표해.

(4기 1집  'Come Taste the Bend'의 앨범커버)

하드록에 가까우면서 퓨전재즈 스러운 이 앨범 역시도 명반에 손꼽히지. 특히 원래 'Burn'에 수록될 예성이었던 'You Keep on Moving'는 이 앨범에 수록되어 빛을 보게 되었어.

'You Keep on Moving' 

타미 볼린은 이 앨범 수록곡 9개 중 6개의 작곡에 참여하는 등 활약을 하였지. 특히 재즈를 바탕으로 하는 넓은 스펙트럼의 기타 연주도 다른 멤버들과 조화를 이루었어. 다만 딥 퍼플 같지 않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었지. 그만큼 리치 블랙모어의 영향력이 컸던 거야. 게다가 이 젊은이 셋은 인간 대 인간으로썬 갈등이 없었지만 리드 보컬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보컬 파트 배분으로 불만이 있었고, 원래 리드보컬이던 글렌 휴즈도 자기 파트에 만족하지 못했어 셋 모두 보컬로써의 자존심이 강한 탓이었지. 또한 타미 볼린은 마약 중독자였기 때문에 라이브 실력이 장원준 마냥 롤러코스터를 탔어.

(왼쪽부터 글렌 휴즈, 데이비드 커버데일, 타미 볼린)

시간은 흘러 76년 3월, 40을 바라보는 존 로드는 까마득하게 어린 삼인방들이 날뛰는 밴드에 지쳐버려. 게다가 저 셋 중 타미 볼린과 글렌 휴즈의 약물 중독은 점점 심해졌고, 그 행동은 무대에서 마구 표출되지. 결국 그해 3월 15일. 리버풀 엠파이어 극장에서 존은 밴드의 방향성을 상실했다고 자각, 이안 페이스와 해체를 결정하였어. 그리고 그해 7월, 밴드는 공식적으로 해체되지.

타미 볼린은 이후 자신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잘 나가는 듯 보였지만 해도 채 넘기지 못하고 76년 12월 마약 중독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아.

글렌 휴즈는 다음해 트래피즈 멤버들과 함께 솔로를 내고 이후 82년 까지 약물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싸움을 벌이지. 그렇게, 딥 퍼플은 완전히 록 음악계의 뒷편으로 사라지고 말아.


-이후

진작 밴드를 떠난 리치 블랙모어는 밴드 '레인보우'를 만든 뒤 로니 제임스 디오, 그레이엄 보넷 등 전설적인 보컬리스트를 배출하지.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이후 또다른 전설적인 메탈 밴드, '화이트스네이크'를 만들어 87년 10월 딥 퍼플도 이루지 못한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하였고 90년대에는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와 활동하기도 했어.

이안 길런은 재즈록 밴드, 하드록 밴드등을 거쳤고 후일 블랙 사바스에도 잠깐 몸을 담지.

존 로드와 이안 페이스는 76년 'PAL'이라는 밴드로 활동하다 차례차례 화이트스네이크에 가담하지.

글렌 휴즈는 약물 중독과의 사투 끝에 82년 재기하며 현재도 솔로가수로 활동하고 있어.


-재결성

그리고 1984년, 딥 퍼플은 전설적인 2기 멤버로 재결성하지. 하지만 이후부터의 활동은 그들의 역사에서 큰 비중은 아니야. 이미 그 이전의 활동이 너무나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지. 물론 아직도 콘서트건 음반이건 마구마구 팔라지만.

(재결성된 2기 딥 퍼플. 왼쪽부터 이안 길런, 존 로드 이안 페이스, 로저 글로버, 리치 블랙모어)

잘 굴러가는 듯 했지만 이 딥 퍼플도 중간중간 멤버들이 나가고 들어오고를 반복했어. 이안 길런과 리치 블랙모어가 특히 갈등이 심했지.

(2017년 딥 퍼플. 왼쪽부터 이안 페이스, 로저 글로버, 이안 길런, 스티브 모스, 돈 에어리)

그렇게 2015년이 되어 딥 퍼플은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보다 한참 뒤에서야 로큰롤 명예의 전장에 헌액이 돼. 수상자는 2기와 3기 딥 퍼플 멤버, 그리고 로드 에반스였지.


-평가

그야말로 헤비메탈 그 자체나 마찬가지인 밴드야. 딥 퍼플과 그 파생밴드만으로도 하드록과 헤비메탈계의 주요 인물이 전부 거쳐갔지. 이 영향력은 그야말로 어떠한 헤비메탈 밴드도 이루지 못한 영향력으로, 딥 퍼플과 관련된 밴드만으로도 70, 80년대 하드록, 헤비메탈 역사의 90%는 쓸 수 있을거야.


-한국에서

헤비메탈 밴드지만 의외로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좀 있는 밴드야. 3번 정도 내한공연을 가졌는데, 첫 번째 내한공연이 1995년으로 기타리스트 스티브 모스의 첫 데뷔공연이었는데. 존 로드가 감사의 의미로 아리랑을 연주했지. 두 번째는 99년 인천 송도 트라이포트 록패스티벌. 당시 한국 최초의 록페스티벌로써 엄청난 라인업을 자랑했고, 3일 내내 폭우가 오며 싸그리 망해버렸지...(최악의 태풍 루사 - 한반도 기상 반란! 재난은 계속될 것인가 - YouTube  당시 딥 퍼플의 공연 영상 일부- 영상 11분 25초경) 놀랍게도 딥 퍼플은 감전우려로 말리던 스태프들의 만류를 "청중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뿌리치고 공연을 했고, 11시 넘어 공연이 끝난 뒤 앵콜이 이어지자 관계자가 귀가하라고 소리쳤음에도, 이안이 그 소리를 듣고 무대로 달려와 "조까!"를 시전한 뒤 앵콜곡 2개를 더 연주했어. 이후 2003년에도 'Bananas' 월드 투어로 한국에 온 적이 있지.


당시 멤버들의 연혁.


-다음 이야기

이렇게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딥 퍼플로 이어지는 헤비메탈 밴드 이야기가 끝났으니, 다음은 프로그레시브 록 4대장...

다음을 기대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