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 5월 광장]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중심인 대통령 관저 옆에 광장이 있다. 광장이라기 보다는 작은 공원 같지만 이곳이 담고 있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옛날부터 광장으로 불렸다. 이곳에 얽힌 역사를 살펴보면 지구 반대편인 아르헨티나에서 한국의 역사가 느껴진다.

19세기 초, 라틴아메리카의 대부분의 나라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하지만 민중을 위한 독립은 아니었다. 독립 이후 이곳에서 태어난 스페인의 후손들과 군부 세력은 자신들의 배만 채우기 바빴다. 원주민들에 대한 약탈이 식민지 시대보다 심해진 곳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1848년, 멕시코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강대국으로 떠올랐으며, 스페인이 떠난 라틴아메리카에는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었다. 냉전 시기였던 1975년, 남미 국가들의 정부 공작원들에 의한 암살과 탄압이 자행되는데, 이를 '콘도르 작전'이라고 부른다. 이 작전의 결과 남미에는 반공 친미 정권이 수립되었고, 군사 정권의 횡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983년, 아르헨티나의 군사 정권이 무너지면서 콘도르 작전은 막을 내린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 시기를 가리켜 '더러운 전쟁'이라고 말한다. 이때 실종되거나 살해된 사람은 3만 명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5월 광장에는 40년 전에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이 매주 목요일마다 모여 침묵 시위를 한다. 죽은 자식을 되살릴 수는 없지만 극악무도한 정권에 희생된 무고한 자녀들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페루 - 아르마스 광장]



남미의 어느 도시에나 '아르마스'라는 이름의 광장이 있다. 아르마스는 무기를 뜻하는데, 스페인의 침략 당시 광장을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해 전쟁 때에 무기를 보급하는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페루에도 아르마스 광장이 있다.

페루의 수도인 리마는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건설되었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1523년, 스페인의 카를로스 왕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렇게 세워진 도시가 리마다. 리마는 남미에서 중요하고 부유한 도시로 성장했지만, 1746년에 일어난 지진 이후 모두 바뀌었다. 지금 리마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건축물은 지진 이후 새로 지은 것이다.

광장의 한가운데에서 보이는 건물들은 대부분 식민지 시대에 세운 것으로, 가톨릭 교회와 귀족들이 권력을 장악했던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광장의 동쪽에는 리마 대성당이 있고, 대성당 왼쪽에는 추기경의 화려한 관저가 있다. 광장의 서쪽에는 콜로니얼 건축 양식으로 지은 리마 시청이 있다.

리마는 아르마스 광장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건축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경관을 해칠 수 있는 것들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다양한 색상의 로고를 지닌 글로벌 브랜드 매장을 포함해 모든 가게들의 간판을 검은색으로 통일했으며, 건물의 외관도 세계문화유산 건축물들과 잘 어울리도록 여러가지 색으로 칠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이 광장 이야기의 마지막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