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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라는 것은 현재 한국 사회와 전 문화영역에 확산되는 풍조이다.

이 풍조는 한국 사회와 관계되어있으며

유사한 케이스인 일본의 양판소와 흥미로운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인다.



한 일본인이 쓴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책에서는 한국인을 이런 존재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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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성리학적 세계관이 마음속에 녹아든 존재이다. 그들은 도덕적이지 못하더라도 도덕적으로 보이고 싶어하고 또한 능력있는 이보다는 도덕적인 이를 사랑한다.

한국인은 옳바르지 못한 자신을 저주하며 자신의 모습을 이상적이고 완벽한 이로 만들고자 또는 그렇게 보이고자 일고의 타협도 없이 자신의 몸을 깨부순다.

이 과정에서 실패할경우 그들은 한의 정서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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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완벽한 이가 되고싶어한다.

부유하고 선량한 사람.

친절한 이웃.

정의의 실현자.

그러나 우리는 현실의 장벽앞에 이가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특히 사회의 여러문제에 직면하고 장래에 대한 기대조차 하지 못하는 청년층은 이를 절감한다.


우리의 열망은 한의 감정으로 변형되고 우리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그 감정은 계속 우리 안에 쌓여간다.

이렇게 축적된 감정은 반드시 해소가 되기 마련인데


예를 들자면


'누군가를 아니면 어떤 집단을 혐오하기',


'완벽한 이를 우리 수준으로 끌어내리기',


'가상속에서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하기'

등이 있다.


그리고 사이다는 3번째에 해당한다.

가장 비겁하지만 동시에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는 대안.

현대 청년세대의 도피처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듣는다면 사이다물과 일본의 양판소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떠올릴것이다.

사실 일본의 양판소또한 버블경제로 인해 절망한 청년들의 현실도피였으니 말이다.

두 장르는 유사해보이나 한국과 일본의 청년세대가 원하는 점에서 두 장르는 차이를 보인다.


한국청년은 존경받고 싶어한다.

일본청년은 사랑받고 싶어한다.


그렇기에 한국과 일본의 자위용 소설이 주안점을 두는 내용은 크게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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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비교대상인 일본을 설명하겠다.


일본의 양판소는 현재 만화, 라노벨, 애니메이션을 장악했으며 장르도 매우 다양하다


허나 이 모든 작품에는 아무것도 없는 사회에서 도태된 채 하루하루를 나태하게 보내던 자신이 모종의 계기로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이계의 공주든 괴물이든 주인공을 사랑한다.

양판소는 그들이 어째서 주인공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지않는다.

왜냐면 독자에게 그건 중요치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중요한건 모두에게 사랑받는다는 결과이다.


또한

일본 양판소의 주안점은 힘겹고 귀찮은 위업쌓기따위가 아닌 세상의 규범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공간에 자신만을 이유없이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이들과 일상을 보내는 것에 맞춰져있다.

거기에 침범하는 이는 또는 목표를 방해하는 이는 선악을 불문하고 모조리 박살을 낸다.

그들에게 있어 정의란 자신의 평안을 옭아매는 귀찮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존경보다 사랑을 원하고 안정된 공간에서 모성을 지닌 여성과 보내는 평온함을 원한다.

이들은 일본의 관습인 와에 맞추어 사느라 자신의 행복을 잃었다고 여기고 거기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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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청년세대는 사랑보다는 위업 쌓기에 집중한다.

물론 주인공을 좋아하는 여성들은 넘쳐난다.

허나 여성들은 그 자체로 주인공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아니다.

사이다물에서 주인공을 좋아하는 여성은 트로피에 가깝다.

여성들은 너무나 완벽한 주인공을 위로하지도 소통하지도 못한채 숭배에 가까운 존경을 보낼 뿐이다.


또한 극도로 수동적이고 자기보신적인 일본양판소의 주인공과 달리 한국의 사이다물의 주인공은 매우 능동적으로 악인을 무찌르고 부조리를 박살내며 약자에게 친절하며 악인에게 용서없는 완벽한 모습을 보인다.

그렇기에 주인공의 행적은 선행과 위업으로 점철된다.(물론 당연하게도 그 과정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언제나 타인보다 우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들은 자신의 진가를 알아보는 세상에게 이를 인정받고 존경받는다.


이를 통히니 한국청년세대의 이상적인 자신과 그런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공정한' 세상을 가지고 싶다는 욕구가 사이다물속에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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