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 로마의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 개인으로서의 삶은 그야말로 폭망이었는데 그렇게 된 원인에 친엄마가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는 걸 생각하면 원수가 따로 없었을 것이다.


친아버지인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는 2차 삼두정치 시기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지지했는데, 옥타비아누스를 상대로 끈질기게 반란을 일으킨 인물이었다. 그러다가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간에 협정이 채결되어 사면을 받은 그는 아내와 티베리우스를 데리고 로마로 귀환했는데 문제가 터진다. 옥타비아누스가 티베리우스의 엄마인 리비아 드루실라한테 완전히 뿅 가버렸다는 것.


그래서 옥타비아누스는 바로 티베리우스 네로를 찾아가 '내가 리비아하고 결혼을 해야 겠으니 이혼하라.'는 최고 지도자로서 명령을 내린다. 티베리우스 네로는 친아들 티베리우스와 아내의 뱃속에 있는 대 드루수스의 친권과 양육권을 요구했고 이게 받아들여져서 티베리우스는 친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친아버지는 실의에 빠져 재혼하지 않고 홀로 두 아들을 키우다가 티베리우스가 9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떴고 이후 티베리우스 형제는 어머니를 따라 아우구스투스와 같이 살았다.


이 것이 티베리우스가 장성한 후 친어머니와 대립각을 세우게 된 첫번째 원인이었다. 따지고 보면 친아버지를 버리고 양아버지를 선택한 꼴이니까.


두 번째는 첫 아내 빕사니아와 강제 이혼하고 율리아와 재혼한 사건. 고대 로마에서 상류층 사이의 결혼은 가문 사이의 관계를 염두에 둔 정략결혼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티베리우스는 빕사니아와 그 드물다는 연애결혼을 한 사이였고 동료나 부하들 사이에서 베스타 여사제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혼전순결을 지켰던 순정남이었고 사이에는 아들인 소 드루수스(동생의 이름을 물려줬다)도 있었다. 그런데 아우구스투스가 설계한 후계자 구도가 꼬이기 시작하면서 이 행복한 결혼생활에 먹구름이 끼게 된다.


먼저 아우구스투스의 오른팔이었던 아그리파가 세상을 떴다. 여기에 티베리우스가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친동생 대 드루수스가 게르마니아에 파견되어 근무를 하던 도중에 낙마 사고로 요절해버렸다. 드루수스는 아우구스투스가 진심으로 아꼈고 '진지하게 후계자로 고려한다'는 말까지 남길 정도였지만 젊은 나이가 죽게 되자 아우구스투스는 신들을 원망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희한할 정도로 '내 씨앗'에 집착했던 아우구스투스는 외동딸 율리아가 아그리파와 사이에서 낳은 두 외손자들을 양자로 받아 각각 가이우스, 루키우스라는 이름을 붙여서 키웠다. 하지만 이 둘은 아직 어렸기 때문에 누군가가 보호자 역할을 해줘야 했기 떄문에 징검다리 역할로서 티베리우스를 지명하고, 빕사니아와 이혼한 후 율리아와 재혼할 것을 명령했다. 그런데 이 명령에 친어머니 리비아가 개입했다는 게 문제였다.


원래 아우구스투스는 아그리파가 죽고 홀몸이 된 율리아를 기사계급 출신 남자 중 한 명을 골라 적당히 재혼을 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야망이 컸던 리비아는 재혼 직후부터 자신의 친아들들을 후계자로 만들고 싶어했기 때문에 이 결정에 반대하면서 외동딸 율리아와 결혼하는 건 후계 구도에 영향을 주니까 그 상대를 티베리우스로 해야하며, 이건 가족간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문제라고 설득했다. 이에 부담감을 덜어버린 아우구스투스는 평상시 스타일대로 강압적으로 티베리우스에게 이혼과 재혼 명령을 내린다.

(양아버지 카이사르와 달리 아우구스투스는 인간적인 매력이 빵점에 가까웠다.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정략과 논리에 따라 가족 문제를 처리했기에 집안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잡음이 일었다)


그러나 이건 티베리우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소리였다. 앞서 말했듯 티베리우스는 굉장한 애처가였고 그 사이에 아들까지 두고 있었으며 빕사니아는 아그리파의 첫 아내의 딸이고 율리아는 그 첫 아내가 죽은 후 재혼한 사이였기 때문에 형식상 장인의 딸과 이혼하고 장모랑 재혼한다는 개족보가 되어버린다. 빕사니아와 이혼하고 그토록 혐오하는 율리아와 재혼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던 티베리우스는 어머니 리비아를 찾아가서 그 명령을 거두도록 양아버지를 설득해달라고 했으나 그 배후가 리비아였기 때문에 씨알도 안 먹혔고 결국은 굴복했다. (훗날 티베리우스가 로마의 거리에서 빕사니아를 만났는데, 그녀가 아무 말 없이 떠나가자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빕사니아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만 있었다는 슬픈 에피소드도 있다)


그나마 결혼생활이라도 괜찮았다면 모르겠지만, 율리아의 품행 문제(남자 관계가 정말 문란했다), 두 사람의 성격 차이, 고부 갈등에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티베릴루스가 유아기 때 사망하면서 파탄이 났다. 이러자 만사에 질려버린 티베리우스는 기원전 6년이 되자 '자연인'이 되어 로도스 섬으로 들어가버린다.


황제가 된 후에도 리비아와 티베리우스의 대립은 심했는데, 아우구스투스의 유언으로 리비아에겐 각종 특권이 주어져 가문 내 중대사를 처리했으며 정치에 간섭까지 했다. 이러자 티베리우스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머니가 계속 특권을 행사하며 자신에게 간섭하자 율리우스 가문의 수장으로서 그 특권을 전부 박탈했다. 나중에 26년에 리비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에 참석을 안했고 유언장 집행도 거부했을 정도였으니 티베리우스가 얼마나 어머니를 향한 감정이 안 좋았는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