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지만, 우선 소설에 한정해서 이야기함. 

그리고 나는 작가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님. 다만 소설 약간 읽어 본 입장에서 사견으로 말함


상당수의 초짜 작가들이 이런 문제로 고민하더라. 나는 나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쓰고 싶은데 요새 소설계가 너무 정형화되서 안 먹힐 것 같다, 나만의 독특한 세계관 쓰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 이런 토로가 제법 보임. 


사실 이런 충동은 처음 글을 써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일종의 예술가병이라고 해야 하나. 남과는 다른, 나만의 탁월하고 독특한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다는 열망이지. 그게 절대로 나쁘다는 거 아니다. 오히려 좋은 거지. 글을 집필할 열정을 제공하고, 또 그런 초짜들 중에서 IT 시대의 이영도가 나올 지 누가 알아


문제는 이런 시도가 대부분 처참하게 실패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내가 모르는 세계관, 익숙하지 않은 설정들 나오면 걍 손절하고 떠나감. 그러다 보니 아예 현대 소설 시장 자체가 글러먹었다고 푸념하는 사람들도 자주 보인다. 특히 장르 소설은 웹소설이라는 특정 플랫폼으로 수렴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더더욱.


난 굳이 이 글에서 웹소설의 특성이 어떻고, 글을 쓰는 기교는 어때야 하고 하는 분석은 안 할 거다. 그런 건 유튜브 가보면 나보다 고급스럽게 할 줄 아는 사람들 차고 넘침. 


대신 왜 소위 말하는 '독자적 세계관'이 공감을 못 얻고 실패하는지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볼 생각임. 여기 찬성하고 말고는 냥붕이들 자유임.


사실 초짜들이 짠 독자적 세계관이 실패하는 이유 별 거 없음. 이 한 줄로 요약 가능함


소설의 기본을 잊어버린다


소설의 기본이 뭘까? 

1. 필력

2. 스토리

3. 캐릭터

이 세 가지를 잘 갖춘 소설이 잘 쓴 소설이고, 이 세 가지가 빻으면 망한 소설이다. 백 년이 가고 천 년이 가도 이 법칙은 바뀌지 않아. 근데 문제는 상술한 예술가뽕에 심취한 초짜 작가들이 자꾸 기본을 잊고 엉뚱한 방향으로 샌다는 거다.


독자들은 뛰어난 필력, 흥미진진한 스토리, 매력적인 캐릭터에 몰입한다. 애초에 플랫폼 들어와서 결제하는 이유가 그거 보려고 하는 거야. 그게 아니면 유튜브를 보러 가든, 게임을 하러 가든, 아니면 네이버에 웹툰 읽으러 가든 하겠지. 


근데 집필 경험이 부족하거나 자기 작품에 심하게 심취한 애들은 그 점을 간과한다. 그래서 독자들이 별로 궁금해 하지도 않을 설정이랑 세계관 설명 지리하게도 풀고 앉았음. 내가 만든 A라는 용어는 무슨 뜻이고, B라는 종족은 뭐하는 애들이고, C라는 체계는 어떤 구조고, D라는 설정은 뭐라는 식으로. 진짜 틈만 나면 군대 썰 풀 듯이 이거 풀고 앉았음


왜 이런 실수를 하냐고? 


지가 보기에는 그게 재밌거든. 


본인은 본인이 짠 세계관, 스토리, 떡밥 다 꿰차고 있으니까 존나 흥미진진한 거야. 떡밥 하나 뿌리고 설정 하나 설명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다 그려져. 이걸 어떻게 엮고 어떻게 연결해서 나중에 어떻게 빵 터뜨릴지. 그래서 독자들이 막 환호하고 천재라고 칭송해주는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거야.


문제는, 상술한 것처럼 그건 작가 본인만 재밌다는 거다. 


독자들은 이미 언급한 소설의 3요소를 즐기고 싶어서 들어오지, 작가가 짠 설정집 강의받고 싶어서 들어오는 거 아니야. 근데 위에서 말한 3요소는 되레 뒷전이고, 자기가 만든 세계관 납득시키는 것에만 온 힘을 쏟아붓는데 "우욱 씹"이라고 안 외칠 독자가 있을까? 막말로 직접 독자 입장에서 생각해 봐. 판타지 소설 읽자고 들어왔는데 첫장부터 설정에, 세계관에, 종족에, 주구장창 설명하는데 혼신을 쏟아부으면 읽고 싶은지.



가끔씩 이렇게 얘기하면 반론이랍시고 이거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반지의 제왕도 시작부터 설정 시시콜콜 풀고 시작한다. 반지의 기원, 호빗과 샤이어 등등 별 잡다한 정보 다 정립하고 이야기 시작했는데도 대박 쳤지. 


근데 반지의 제왕이 언제 편찬되었는지 한번 찾아봐라. 초판만 1954년에 나왔고, 영화조차도 2001년 작품이다. 게다가 반지의 제왕 이전에는 판타지라는 장르 문학 자체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 장르 자체를 시작한 기념비적인 작품을 자꾸 비교군으로 가져오면 많이 곤란하다. 



이 아조씨도 자기 살던 시대에는 천재 작가였고 베스트셀러였다. 근데 지금 와서 셰익스피어 읽어 봐라. 그렇게 막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고 술술 읽히는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시대가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지면 당연히 글을 쓰는 방식도 달라진다는 거다. 


셰익스피어가 썼던 방식이 500년 후에도 먹힐 리가 있나? 반지의 제왕도 마찬가지고. 반지의 제왕 같은 옛날식 소설 보고 "얘는 해냈는데?"라고 따지기 시작하면 진짜 밑도 끝도 없다.



또 이걸 반론으로 가져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영도 작가는 눈마새 쓰기 전에 이미 드래곤 라자로 대성공했다는 점을 기억하자. 인지도가 하늘을 찌르는 대작가가 아니었어도 눈마새가 그렇게 주목을 받고 인기를 끌었을지는 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게다가 눈마새는 요새 장르 문학 시장을 석권한 웹소설이 아닌 출판 소설이라는 점도 한 몫 하고


사설이 길었는데, 쨌든 정리하자면


정말로 내가 만든 독창적인 세계관으로 독자들을 매료하고 싶다? 그럼 오히려 그 세계관을 부수 요소로 밀어두고 일단 필력, 스토리, 캐릭터로 독자들 매료시킬 궁리부터 해야지. 세계관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건 그 와중에 틈틈이, 조금씩 해도 늦지 않음. 어차피 독자가 만나고 싶은 건 술술 읽히는 문장과 재미있는 스토리,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야. 거기에 양념처럼 찔끔찔끔 세계관을 뿌려줘야 독자들이 "와, 이건 스토리도 재밌는데 세계관도 독창적이네? 갓갓명작이다!"라고 외쳐주는 거임. 


근데 상당수의 작가들이 선후를 착각하고 꼭 지한테만 재밌는 걸 들이밀면서 "츄라이, 츄라이!" 이 ㅈㄹ을 떤다. 그럼 독자들은 자동으로 입맛 떨어져서 하차하는 거고.


이 짤 하나로 독자가 떨어져 나가는 메커니즘이 완벽하게 설명된다


그래 놓고 매번 자기가 트렌드에 안 맞는 세계관을 짜서, 이 저급한 시장에 발 붙일 준비가 안된 신인이라서 실패했다고 자조하는 걸 보면 좀 어이가 없다. 


물론 하지 말라는 걸 해서 실패했을 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본인 글이랑 역량을 까놓고 보자. 정말 독자적 세계관 ㅈ까고 웹소설 시장에서 요구하는 트렌드 그대로 썼으면 성공했을 만큼 잘 쓰는지. 게다가 본인이 그리 저급하다고 무시하는 작가들 작품, 실제로 보면 별로 저급하지 않다. 최소한 본인보다는 훨씬 잘 쓰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영역은 다르지만, 하지 말라는 거 다 하면서도 성공한 사례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이 바로 [호랑이형님]이다

1. 사이다물인가? -> NO

2. 전개가 빠른가? -> NO

3. 전형적인 세계관인가? -> NO

4. 이야기 구조가 단순한가? -> NO

5. 인스턴트식 말초적 쾌감에 집중하는가? -> NO

그런데도 지금 토요웹툰 1위 먹고 있지.


물론 상술했듯이 영역 자체가 달라서 소설이랑 웹툰을 1:1로 놓고 보기는 힘들다. 웹툰은 한 편 그리기 힘든 대신에 소설에는 없는 나름의 메리트도 있지. 그림을 통해 시각적인 정보 상당수를 쉽게 제공하면서 소설이 묘사로 잡아먹었을 분량을 절감하니까. 


다만 호랑이형님을 내밀면서 말하고 싶은 건, 독자적 세계관이 실패하는 이유는 꼭 작가들이 트렌드를 안 따르고 시장의 전형을 안 따라가서가 아니라는 거다. 그럼 호랑이형님도 벌써 망했어야지. 웹툰 시장에서 하지 말라는 것만 전부 골라가면서 하고 자빠졌는데. 


하지만 호랑이형님은 스토리와 캐릭터 등의 기본 요소를 굉장히 잘 챙겼고, 또 뚝심있게 자기만의 이야기를 밀고 나가면서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 노력이 지금 토요웹툰 부동의 1위를 만들어 낸 거지.


여기서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처음에 망했다고 자꾸 내던지지 마라.


웹소설 시장 구조 상, 초반에 인기를 못 끌면 길게 끌고 가기 힘든 거 안다. 근데 초짜 작가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그런지 포기도 더럽게 빠르다. 고작 2화 정도 쓰고 사람들이 안 봐준다고 절필하는 인간들도 심심찮게 봤다. 근데 2화면 암만 많이 잡아도 14,000자 내외다. 도대체 그 짧은 분량만 가지고 무슨 성과를 기대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작가들이 경쟁해야 할 대상들은 엄청나게 높은 필력으로 하루에 한 편씩 싸재끼는 고인물들이다. 당장 자유연재 칸만 가도 그런 썩은물들 차고 넘친다. 본인이 애정 퍼붓고 열심히 창작한 세계관 아님? 고작 2화로 포기하는 근성으로 어떻게 돈 받고 연재하는 프로들이랑 대적하려고?


정 자신이 없으면 비축본이라도 쌓아라. 주변 사람들, 아니면 웹갤 같은 데서라도 연재하면서 피드백을 받아 보고. 내가 정말 나만의 독특한 글로 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면 책으로 5권 분량은 쌓아 놓고 시작하는 근성이라도 갖추자. 그게 아니면 애초부터 경쟁이 불가능한 시장이다. 


결론 정리

1. 나 혼자만 재밌는 걸 독자도 재밌어 있을 거라 착각 말자

2. 좀 근성을 가지고 끈덕지게 쓰자


말이사 이렇게 했지만, 어쨌든 예비 작가들 응원한다. 열심히 써서 전독시 같은 명작 작가 반열에 올라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