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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볕이 지글거리는 무더운 여름날이였다.

방금 교육위원회청사에서 나온 소형뻐스 한대가 통일거리쪽으로 향했다. 차는 인차 차들의 번잡한 흐름속에 잠겨들었다.

해볕에 한껏 달아오른 아스팔트포장도로에서 확확 풍겨오르는 열기가 차안으로 흘러들었다.

차안에는 박달처럼 단단해보이는 오달진 체구에 진중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자신감에 넘쳐있는듯 한 50대의 사나이와 그에 비하면 몸이 갈람하고 얼굴이 퍼그나 수척해보이는 한창나이의 젊은이가 타고있었다.

교육위원회 김광우 부국장과 대학입학원격시험프로그람개발에 동원된 시험연구조 조장 김호성이였다.

차가 승리거리를 벗어나도록 두사람은 말이 없었다. 그들은 다음해에 1차로 진행하게 될 콤퓨터에 의한 대학입학원격시험준비와 관련하여 진행된 협의회에 참가하고 나온 길이였다.

《허, 벌써 만장에 이른것 같구만! 속도가 빠르기도 하오.》

한창 건설중에 있는 도로옆의 초고층아빠트골조우를 올려다보며 김광우가 누구에게라없이 하는 소리였다.

운전사가 흥에 겨워 벙글거리였다.

《그게 요즘 우리 나라 건설속도지요. 하루밤 자고나면 새 아빠트가 생겨나니까요. 어디서 1년도 안되는 사이에 큰 공장이 현대화되였거나 새로 일떠섰다든지 세상을 놀래우는 기적이 창조되였다든지 하는 소식을 매일과 같이 들을수 있으니까요.》

김광우는 껄껄거리며 그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동무말이 맞소. 우리 나라는 그런 나라지. 그런데 정말 저 아빠트는 어느새 저렇게 다 올라갔는지 모르겠다니까!》

건설장에서 경제선동대의 쿵작거리는 흥겨운 취주악소리가 들려왔다.

김광우가 감동되여 말할만도 했다. 그는 이 일대를 자주 지나다니면서 하루가 멀다하게 달라지는 건설장의 면모에 놀라군 했지만 사실 기초공사를 시작한것은 불과 석달전이였다.

《참!》 부국장의 기분상태에는 아랑곳없이 건설장풍경을 묵묵히 내다보고있던 김호성의 입에서 전혀 다른 소리가 튀여나왔다.

《위원장동지두! 지금껏 작성해놓은 시험문제들을 이제 와서 훌떡 뒤집어놓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되면 량원일동무가 맡아서 하는 프로그람작성은 어떻게 하구요.》

《위원장동지가 뒤집어놓기는 무얼 뒤집어놓았다고 그러오?》

부국장은 여전히 건설장에 눈길을 보낸채 배포유해서 입을 열었다.

《시험문제작성은 기본적으로 돼가는것이고 거기에 품을 좀더 들이면 되는게지 뭘 그러오. 프로그람도 같소. 더구나 량원일동무야 국가적으로도 꼽히는 프로그람전문가가 아니요.》

그의 얼굴에선 여전히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고있었다.

부국장의 기본관심은 놀라운 속도로 올라가는 건설물에만 가있고 제발등에 떨어진 불이나 같은 협의회에서의 토론내용같은것은 뒤전에 밀어놓으면서 말하는것 같아 김호성은 얼굴에 불만의 기색을 띠웠다. 그러면서도 실은 위원장이 한 말에 부국장자신도 의견이 있으면서 아래사람앞이라 내색하지 않으려고 그러는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상급의 견해가 옳은것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해서 그런것인지 알수가 없어 김광우의 얼굴표정을 슬그머니 엿보았다.

김광우는 그의 속을 들여다보며 또 빙그레 소리없이 웃었다.

조금전에 협의회를 하면서 위원장이 강조하던 말이 다시금 김광우의 귀전을 울리였다.

《나라의 전반적인 지성도를 높이자고 해도 물론 그러하지만 특히 고등교육의 질을 높여 전민과학기술인재화의 목표를 실현하자면 중등교육단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실정이 어떠한가? 일부 대학입학시험문제의 수준이 낮아 누구나 쉽게 높은 점수를 받을수 있게 되여있다. 때문에 해마다 진행되는 대학입학시험이 중등교육단계에 있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더 직심스럽게 해야겠다는 의욕을 돋구어주는 계기로 잘되지 못하고있다. 이것은 나라의 중등교육을 발전시키는데서 심중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위원장은 이런 현상을 극복하자고 해도 우리는 시험방법을 결정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면서 콤퓨터에 의한 시험을 진행한다고 해도 시험문제를 너무 쉽게 내면 새 시험방법을 적용하는 의의가 없게 된다는데로 조용히 이야기의 곬을 잡아나갔다. 그는 여기서 잠시 말을 끊고 생각에 잠기다가 긴장해있는 김호성을 건너다보며 말을 이었다.

《시험연구조에서 현재 자료기지에 넘긴 시험문제들도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해보고 수학에서 증명문제나 자연과목의 실험문제와 같이 학생들의 사고과정과 응용능력을 평가할수 있는 문제들부터 더 깊이 연구하면서 수준을 높이는 방향에서 갱신할것은 대담하게 갱신해야겠습니다. 시간상 좀 바쁠수는 있습니다.》

위원장은 바쁠수 있다는 말에 력점을 찍으면서 무슨 의미에선지 입가에 알릴듯말듯 한 미소를 띠웠다.

대담하게 갱신한다! 위원장은 성격이 온화한 오랜 학자출신답게 조용조용 말했지만 실은 그가 제기한 문제가 결코 간단히 받아들일수 있는것은 아니였다.

그것은 우수한 실력가들이 모여앉아 근 1년동안 머리를 쥐여짜면서 만들어놓은 수십만개의 시험문제들을 다시 검토하면서 수정보충해야 한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였다. 따라서 시험문제들에 대한 채점프로그람과 문제편집프로그람들도 다시 작성해야 하는것이였다.

김호성이 불만을 토로하면서 량원일의 프로그람작업을 꺼든것은 그때문이였다. 위원장이 요구하는대로 하자면 과목별문제작성조와 프로그람개발조만 바쁘게 되는것은 아니였다. 전반적인 망형성을 맡아해야 할 사람들까지도 덩달아 바쁘게 될것이였다.

하여 지금 광우부국장으로서도 사실 속이 편안치는 않았다. 그는 리과대학에 적을 두고있으면서 평양에 올라와 콤퓨터시험문제작성과 프로그람 《미래》개발전투를 긴장하게 벌려오는 연구조성원들에게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하다싶이 해야겠다고 말해야겠는데 그게 여간만 미안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모두들 집을 떠나있으면서 얼마나 고생들이 많았는가. 다음해에 있게 될 대학입학시험전으로 시험프로그람과 문제자료기지를 완성하자고 긴장한 전투를 벌리느라 입술들이 허옇게 부르트고 얼굴이 모두 꺼칠해진것이였다.

래년 시험철전이라고 하지만 그때까지 시간적여유가 많은것도 아니였다.

그런데다가 연구조를 책임진 김호성의 기분상태가 보매 말이 아니였다. 김호성의 저기압이 연구조의 일을 새로 시작하다싶이 해야 하는 부담때문만이 아닌것 같다. 무엇때문일가?

시간적으로나 덧쌓인 일감으로 보나 가장 바쁜 대목에 이르러 시험연구조를 끌고나갈 조장이란 사람의 기분상태가 저러하니 광우는 불안하기만 했다.

(이 조장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도 장연화책임교학이 빨리 와야겠는데.) 하고 광우는 생각했다.

김광우가 위원회에 제기하여 얼마전부터 시험연구조의 일을 도와주기로 되여있는 장연화는 책임교학으로서의 자기 일때문에 나흘전에 출장을 갔다. 여러 도들을 거쳐 오자면 열흘은 더 있어야 할것이다.

실은 오늘 협의회도 장연화가 참가했어야 하는것이였다. 책임교학이라도 와서 며칠씩 시험연구조에 붙어있으면서 시험문제작성과 프로그람개발사업을 봐주면 조장인 김호성이 이일저일 다 맡아안고 고생하지 않아도 될것이 아닌가.

부서일을 보면서 교육위원회적인 사업으로 전환된 콤퓨터에 의한 원격시험체계개발사업을 책임지고있는 김광우로서는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소형뻐스는 통일거리 살림집구역안에 들어앉은 번쩍이는 소층건물앞에 이르렀다.

교원재교육강습소로 건설한지 몇해 안되는 이 멋쟁이건물의 한층을 차지하고 시험연구조가 1년가까이 프로그람개발전투를 하고있었다.

차가 정문을 가까이하면서 부국장의 눈에 의아해하는 빛이 어리였다.

그의 눈길이 가닿은 정문옆에 지글거리는 삼복의 폭양을 피하여 화려한 꽃양산을 펼쳐든 한 처녀가 그린듯이 서있었다.

쭉 빠진 몸매에 어울리는 밝은 색갈의 달린옷을 입고 세련된 화장을 한 아름다운 처녀였다. 어데서 꼭 한번 본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데서 봤더라?

광우는 인차 생각해냈다.

전학선부상의 딸이였다.

김광우는 교육위원회에 배치되여온지 얼마 안되였을 때 전학선부상네 집에 얼핏 들렸던적이 있었다. 그날 차대접을 하려고 아버지의 방에 들어오면서 초면의 손님인 김광우에게 나부시 인사하는 아릿다운 처녀를 응석받이딸이라고 소개하며 전학선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경공업대학을 나왔다는게 큰일은 못하고 지방에 있는 호텔료리사요.》

전학선이 말은 그렇게 했으나 그때문에 별로 아쉬워하는것 같지는 않았다.

딸을 무척 사랑하는것이 분명했다. 하긴 그런 고운 딸을 사랑하지 않을 아버지가 어데 있으랴.

광우는 그때 일을 눈앞에 떠올리며 《허.》 하고 혼자소리를 질렀다.

김호성이 앞좌석에 앉아있는 부국장의 미소가 실리는 얼굴을 의아해서 바라보았다.

《왜 그럽니까?》

《저 전부상의 딸이 어떻게 여길 다 찾아왔을가? 여기 누구 아는 사람이 있는게구만.》

김호성이 그 소리에 시무룩이 웃었다.

《우리 라영국동무의 애인인데요.》

라영국으로 말하면 김호성이네 시험연구조의 유일한 총각이다.

평양에 집이 있으면서 대학연구사로 콤퓨터시험프로그람개발에 동원되여 일해오는 라영국을 두고 요즘 부국장은 생각을 많이 하고있는중이다.

위원회에서는 림시로 조직되여 그동안 많은 일을 해놓은 시험연구조의 경험있고 실력있는 연구사들을 기본으로 하여 인차 원격시험프로그람개발을 전문 맡아할 시험정보과를 정식 내오려 하는데 대학에서는 라영국을 강좌에 떨구어놓으려는 의향이였다.

대학에서 강좌의 교원력량때문에 그런다고는 하지만 실은 나이에 비하여 실력이 높아 자기 전공분야에서 장차 학계의 권위자들과도 어깨를 겨루게 되리라 촉망되는 젊은 수재를 놓치지 않으려는 욕심에서 그러는것 같았다.

그런데 광우부국장은 어떻게 해서나 라영국을 이제 정식 발족하게 될 시험정보과에 붙들어놓을 작정이였다.

《허, 우리 라영국이 꽤나 날래구만. 부상의 미인딸을 어느새 나꿔챘단 말이지. 괜찮아!》

차에서 내리며 부국장이 하는 말이다.

나이찬 로총각이 처녀 하나 달고다니는게 없으니 같은 시험연구조의 연구사들로부터 사내로서 뭐가 모자라는것이 있지 않느냐고 자주 놀림가마리가 되군 하는 라영국이였다. 김광우는 계단을 오르면서 기분이 좋아 껄껄거리였다.

《그렇단 말이지. 이젠 우리 로총각 장가보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구만.》

《그런데…》

김호성이 왜서인지 입을 열다말고 허거픈 소리를 질렀다.

광우는 의아해서 돌아보았다.

《왜 그러오?》

《그 사랑의 〈배〉가 암초를 만났으니까요.》

우울한 기분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김호성이 시무룩해서 말했다.

광우의 너붓한 얼굴에 의혹이 실리였다.

《암초를 만났다는건 무슨 소리요? 그러니 배가 침몰직전이라는거요? 허.》

아니, 이건 롱말로 대할 일이 아니다.

자기가 리용하는 빈방으로 들어가 김호성과 마주앉은 광우는 속이 좋지 않아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됐다는거요? 처녀가 곱게 차려입고 총각을 찾아오기까지 했는데 암초라니?》

《라영국이쪽에서 절교를 선언했다는가봅니다.》

《어?》 김광우는 어리치운 사람처럼 김호성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제풀에 화를 냈다.《아니, 부상의 딸이 어드래서 라영국이 차버린단 말이요? 처녀가 물찬 제비처럼 쭉 빠지고 대학졸업생에 몸가짐도 그만하면 세련되였던데.》

《그 부상동지때문이지요 뭐.》

김호성의 말투에는 까닭모를 비난의 색조가 다분했다. 어쩌면 로골적인 불만같기도 했다.

《부상동지때문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광우의 머리속에서는 눈덩이굴러가듯 점점 의혹만 커졌다. 그는 은근히 긴장해지면서 김호성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김호성이 사연을 말했다.

그것은 라영국이 시험정보과에 아예 떨어지는것과 관련되는것이였다.

어느날, 처녀의 아버지인 전학선부상이 오래간만에 집에 올라온 딸을 자기 방으로 조용히 불러들이였다.

집을 나가있으면서 어쩌다가 한번씩 나타나군 하는 딸이여서 그럴 때면 그동안 보고싶었던 정을 동이채로 쏟아놓군 하지만 그날은 다른 일때문이였다. 딸은 이미 시집을 보낼 나이가 다된것이였다.

《얘 영랑아, 솔직히 말해봐라. 너 사랑하는 총각이 있느냐?》

딸은 전혀 예견치 않았던 아버지의 질문이라 얼굴이 잉걸불처럼 빨개지면서 미처 대답을 못했다.

전학선은 너그럽게 웃었다.

《우리 영랑이 바빠하는걸 보니 친한 총각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구나. 일없다. 이 아버지는 처녀총각들이 련애하는걸 나쁘다고 시비할만큼 낡아빠진 봉건은 아니다. 더구나 지금 네 나이가 얼마냐.》

딸은 그제서야 발랄한 성미로 돌아왔다.

《아버지, 미안해요. 사실은…》

《허허, 어서 말해라.》

딸은 애인이 시험연구조의 라영국이란 청년이며 대학적으로 소문난 수재라는것과 그때문에 대학에서 강좌장으로 내정하는것 같다고 했다.

《수재라… 그 나이에 강좌장이란 말이지. 허허, 우리 딸이 똑똑한걸.》

《아버지, 그런데…》

전학선은 갑자기 머뭇거리는 딸을 이상해서 바라보았다.

《뭐냐? 어서 말해라.》

《그 사람은 강좌장으로 떨어지는것을 흥미있어하면서도 시험정보과에서 나오기는 어려울것 같다고 해요.》

전학선은 잠시 생각에 잠겨 말이 없다가 딸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그렇다? 음.》전학선은 머리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기였다. 이윽해서 그는 얼굴을 들어 딸에게로 피뜩 시선을 보냈다.

《네 엄마는 총각이 있다는걸 알고있느냐?》

《예.》

《음, 그 로친 알고있으면서 나한텐 말을 안했구나.》

《아버지.》

《됐다. 네 엄마를 탓하는게 아니다. 얘, 이 아버진 네가 어떤 총각을 사랑하든 관계치 않겠다. 너도 대학을 나왔구 그만했으면 사회생활경험두 있겠다 아무렴 사람보는 눈이 없겠니. 하물며 총각이 대학적으로도 꼽히는 수재라는데야. 리상이 맞는 총각을 선택했으면 그건 좋은것이지. 한데…》

전학선은 여기서 말꼬리를 흐리며 약간 신중해졌다.

《왜 그러세요? 아버지.》

의혹이 실리는 딸애의 고운 눈을 들여다보며 전학선은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뭐 다른게 아니다. 너의 그 사람 말이다. 젊은 나이에 강좌장을 할수 있다면 앞으로 자기 전공분야에서 발전이 촉망된다는건데… 더구나 대학에서도 강좌의 력량때문에 그러는거라면 이제 정식으로 나오게 될 시험정보과에 떨어지는 문제는 좀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것 같다.》

딸은 눈이 올롱해서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아버지,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그 시험정보과의 일이라는게 과학연구사업과는 다르다. 일단 거기에 발을 들여놓으면 별로 빛을 못 보면서 한생을 보내야 할거다. 하지만 그게 기본은 아니다. 혁명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꼭 리해관계를 봐가며 일하겠느냐. 필요하면 국가를 위해서 자기를 바칠줄도 알아야 하는것이지. 문제는…》

《뭐예요?》

전학선은 갑자기 긴장해진 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다소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전국적인 대학입학시험에 도입하자고 하는 그 원격시험이라는게 말이다. 아직은 꼭 리해를 해야 할 많은 사람들이 선뜻 손을 들지 못하고 주저하는 일이다. 그 사람들이란 대개가 오랜 전문가들이고 학계의 중진들이다.》

딸은 그 소리에 놀라서 눈이 둥그래졌다.

《어마! 그런 사람들이 반대를 한다면 우리 그 동지네는 가망없는 일을 한다는거나요?》

《반대라… 얘, 뭐 꼭 그렇게 말할것도 아니다.》

《다수가 찬성을 안한다고 아버지가 그러지 않았나요. 그것도 학계의 권위있는 사람들이. 결국은 그들한테 진리가 있다는게 아니나요?》

《진리라… 허허, 내가 이자 말하지 않았니,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구. 그러니 인간생활의 복잡한 함수를 너한테 어떻게 이 자리에서 다 설명해주겠느냐? 정 알고싶으면 네 머리로 생각해보려무나. 이 집의 귀여운 따님.》

딸은 아리숭하기만 한 아버지의 말뜻을 조금 생각해보다가 인차 모순의 수렁속에 빠져들며 고개를 홱홱 저었다.

《에이 모르겠어요, 아버지.》

그러면서도 원격시험이라는것이 학계의 권위있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있다는 아버지의 말이 귀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은 뭐야? 라영국동지네가 될지 안될지 아직은 막연하기만 한 일을 하고있다는 소리가 아니야! 더구나 성사된다고 해도 시험정보과에 정식 떨어지는 경우 한생을 해도 빛을 못 볼수 있다는 일에…

김호성의 말을 신중히 듣고있던 광우의 얼굴에 의혹의 엷은 구름장 하나가 떠돌았다. 그는 생각에 잠기며 자기도 모르게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수가 있나? 원, 그럴수가 있나?》

《…》

《그러니 그때문에 처녀총각의 사랑이 파탄직전에 이르렀다는거요?》

《부상동지의 딸이 다음날로 우리 라영국동무를 찾아와 아버지한테서 들은 내용을 말해주었다나봅니다.》

그때 애인들사이에 구체적으로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물론 본인들이나 알수 있는것이였다. 라영국은 애인을 만나고 돌아와 동료들앞에서 처녀의 아버지가 콤퓨터에 의한 원격시험을 두고 다수가 반대하는 일이라고 했다면서 그때문에 자기들의 사랑이 끝장난것처럼 말했다.

《라영국이 정말 처녀가 싫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학선부상동지가 그런 견해를 가지고있다면 이건 정말 신중한…》

《됐소, 됐소.》김광우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면서 김호성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남의 말을 듣고 지레 속단하지 마오. 부상동지가 뭘 반대를 하겠소?》

김광우는 그래놓고서도 생각이 많아졌다.

그는 어이없어 《허허.》 하고 웃어버리다가 신중한 낯색을 지었다.

웃음으로 스쳐보낼 일이 아니였다. 부상에 대한 김호성의 불만이 결코 그 혼자만 안고있는 생각은 아닐것이다. 라영국을 통해 부상의 견해를 알게 된 시험연구조사람들속에서 말들이 많았을것이다. 시험정보과가 정식 나오게 되여있고 그리하여 당장 자기들의 전망문제를 놓고 결심채택을 해야 하는 그 사람들이 원격시험에 대한 일부 일군들의 견해가 그렇다는것을 알게 되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문득 당비서(당시)의 진중한 목소리가 어데선가 울려오는듯 했다.

《교육혁명을 일으켜 우리 나라를 인재강국으로 도약시키자면 일군들부터가 새 세기의 요구에 자기를 따라세우는것이 중요합니다.

새롭게 사고해야 하며 대담하고 참신하게 일판을 벌려야 합니다. 우리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의 나라이지만 낡은 사고와 기성관념을 버리지 못한다면 세계를 앞서나가지 못합니다.

먼저 부서사업을 놓고 연구를 하십시오. 모집국사업이 나라의 중등교육과 고등교육발전을 추동하는 사업으로 되자면 어떤 부족점들을 극복해야 하며 무엇부터 해야 하겠는가를 알고 작전을 해야 합니다.》

책임부원으로 일하던 광우가 부국장으로 임명되던 날 모집국사업을 개선할데 대한 문제를 가지고 장시간 이야기하면서 당비서가 그렇게 말했던것이였다. 나라의 교육발전을 책임져야 할 위원회의 사업을 놓고 생각을 많이 하는 당비서였다.

광우는 우리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의 나라이지만 낡은 사고와 기성관념을 버리지 못한다면 세계를 앞서나가지 못한다는 그 말을 들으며 어깨가 배로 무거워지는것을 느끼였다.

《제가 중임을 꽤 감당해내겠는지 모르겠습니다.》

당비서의 둥실한 얼굴에서 부드러운 미소는 사라지고 근엄한 빛이 떠올랐다.

《무슨 소릴 하오? 동문 감당해낼수 있소. 아니, 감당해내야 하오. 우리가 교육을 발전시켜 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 실현하는것도 놈들과의 싸움이나 같소. 물론 동무야 겸손하게 하는 말이겠지요.》

김광우는 며칠동안 부서사업을 놓고 사색을 굴리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의견들도 들어보았다.

그렇게 하여 얻은 결론이 교육혁명을 일으키는데서 적지 않은 부족점을 안고있는 종래의 낡은 서지시험을 대담하게 페지하고 대학입학시험부터 원격시험으로 전환하는것이였다.

《대학입학시험을 원격시험으로 전환하는것은 단순히 정보화시대이기때문에 마땅히 시대를 따라가야 한다는것으로만 해석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나라의 교육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입니다.

왜서인가구요? 부국장동지두 다 아시면서 물으십니까? 그거야 명백하지 않습니까. 위원회의 통일적인 지휘하에 원격시험을 쳐야 국가가 나라의 중등교육실태를 정확히 장악할수 있고 그래야 가장 옳바른 교육전략을 세울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장연화책임교학의 말이였다. 50나이를 지척에 둔 그 녀자는 책임교학이라는 직제에 있으면서도 교육정보학을 전공한 박사였다.

장연화는 나라의 전반적인 교육실태와 지식경제시대에 이르러 변화되는 세계적인 교육발전추세를 대비하면서 자기의 견해에 대하여 자신감을 가지고 말했다. 성미가 유순해보이고 얼굴이 해말간 이 녀성책임교학은 나라의 교육발전을 위해 늘 사색을 많이 하고있다는것이 알리였다.

광우는 그의 견해에 동감이였다. 실은 그러지 않아도 광우자신이 책임부원으로 있을 때부터 새로운 시험방법이 어째서 많은 교육전문가들과 위원회안의 적지 않은 일군들속에서 도외시되고있을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있었는데 알고보면 그런것도 아니였다. 많은 사람들이 당의 교육혁명방침을 받들고 어떻게 하면 나라의 교육을 오늘의 시대와 우리 혁명의 요구에 맞게 더욱 발전시키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는 먼저 새로운 시험제도의 확립을 위원회적인 사업으로 상정시키기 전에 더 구체적인 리해를 가지기 위해 리과대학으로 내려갔다.

광우는 대학책임일군을 만났다.

《할수 있습니다. 또 반드시 해야 합니다. 지금은 정보화시대이고 따라서 교육부문에서도 정보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고있는 시대가 아닙니까.

교육사업전반이 정보화되고있는데 마땅히 시험제도도 정보화해야 합니다. 물론 전국적인 원격시험으로 발전시키자면 많은 문제들이 제기될것입니다. 시험방법에서 하나의 혁신이라고 할수 있으니까요. 우리 나라에서만 봐도 수백년동안 서지시험방법이 유지되여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새로운 시험방법을 완성하고 또 현실에 도입하자면 간단치 않은 문제들에 부딪치게 될것입니다. 진통을 동반하지 않는 새것의 탄생이란 없으니까요. 시험방법에서의 혁신이지요. 하지만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해야 합니다.》

광우는 제나름으로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렇겠지요. 아무런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새것을 창조한다는게 떡먹듯 쉽겠습니까.》

대학책임일군은 탁상우를 내려다보며 소리없이 히죽이 웃었다. 분명 광우의 추측에 대한 긍정의 뜻은 아니였다.

《사람들의 머리속에 굳어진 인식이 문제지요.》하고 그는 혼자소리하듯 나직이 말했다.

《?》

대학책임일군은 드디여 고개를 들어 광우를 바라보며 다시금 빙그레 웃었다. 광우의 머리속에 생겨난 아리숭한 의혹을 말짱 날려보내는 신선한 바람과도 같은 웃음이였다.

《하지만》 책임일군이 말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더우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우리 나라를 인재강국으로 도약시키자고 하시는 지금이 아닙니까. 그 일은 꼭 해야 합니다.》

김광우는 신심을 가지고 올라왔고 부서사람들과 충분한 토론도 진행한 끝에 다음해에는 한두개 대학에서 먼저 입학시험을 원격시험으로 진행할 목표를 내걸었다. 그리하여 김호성을 조장으로 하는 시험연구조가 무어졌고 여기에 장연화책임교학까지 자기 사업을 하면서 그 일을 도와주도록 위원회적인 조치가 취해진것이였다.

장연화는 시험을 지지하는 자기의 견해를 말한것때문에 광우부국장이 시험연구조일에 끌어들이여 일이 별나게 되였다고 어이없어하는 기색이 력연했다. 하지만 광우는 그런 눈치를 전혀 모르는듯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믿음직한 실력자 또 한명을 시험연구조일에 받아들였다고 흐뭇해하는 인상이였다.

위원회에서는 장연화가 책임교학으로 해야 할 일이 있는것만큼 자기 사업을 하면서 시험연구조의 일도 봐주라고 했지만 엉큼한 김광우는 다른 속타산도 있었다. 그것은 시험연구조의 전망과 관계되는것인데 광우는 그 계획을 아직은 혼자만 안고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생겨난 시험프로그람개발조가 자기 사업을 시작하여 수개월동안 많은 일을 해놓았는데 지금에 와서 전학선부상이 그렇게 말했다는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내가 여러 사람들이 내놓고 반대하지 못하면서 실은 반대를 하는 일을 욕망 하나만 가지고 벌려놓았단 말인가?

돌아가는 소문을 다 믿을수는 없는것이지만 광우는 왜서인지 전부상이 했다는 말이 귀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불쾌감 비슷한것이 광우의 머리속에 갈마들었다.

얼마전 그를 만나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광우는 조용한 사무실에 혼자 떨어져 콤퓨터를 마주하고있었다.

그에게는 위원회에 온 첫날부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스스로 세워놓은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그것은 정보화시대, 지식경제시대에 이르러 교육발전의 새로운 전략을 경쟁적으로 모색하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최근 동향자료들과 교육변혁과정에 찾은 교훈들, 주요문제점들, 교육계에서 이미 정책화되였거나 론쟁점으로 되고있는 현대교수방법과 교수리론들 그리고 교육의 정보화와 관련되는 자료들을 빠짐없이 머리속에 잡아넣는것이였다.

그는 하루일이 끝나고 모두들 퇴근한 뒤끝이면 그렇게 콤퓨터를 켜놓고 교육관련자료들을 들여다보았으며 퇴근하여 집에 들어가서도 밤늦도록 그 일에 달라붙었다.

자기의것을 더 훌륭히 창조하기 위해 세계를 알아야 한다는것은 군사일군시절부터 그의 머리속에 인박힌 지론이기도 했다. 그는 성격상 사람들앞에서 자기를 나타내기 좋아하지 않는 성미일뿐 사실상 아는것이 많았다. 그는 콤퓨터를 사랑했으며 콤퓨터에 능했다.

그가 끊임없이 지식의 세계를 들이파는것은 군관학교시절부터 생겨난 관습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한번은 지숙한 나이에 머리가 비상하고 엄격하기로 소문난 한 전술교원이 콤퓨터앞에 앉아있는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동무는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옛사람들의 말을 알고있겠지요?》

광우는 그 말을 전술교원이 무슨 의미에서 상기시켜주는것인지 알수 없어 얼굴이 뻘개서 대답할 생각을 못하고있었다.

전술교원은 빙그레 웃었다.

《농부가 소를 잃으면 손해가 막심한건 사실이지만 외양간을 고쳐놓은 다음에 다시 송아지를 사다놓으면 되오. 내가 말하자는건 군사에선 그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 소리요. 군사지휘관이 한번 결심채택을 잘못하면 돌이킬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되오. 현대군사과학과 리론으로 준비된 유능한 군사지휘관이 되기 위하여 콤퓨터에 정통하시오. 애당초 〈소〉를 잃지 않게 말이요.》

교훈적인 그 말은 지금도 광우의 머리속에 인박혀있다. 하여 콤퓨터앞에 앉으면 자연히 그 고마운 전술교원이 생각나는것이였다.

《방에 있구만. 지금 바쁘오?》

광우가 미래지향적으로 개선되고있는 중, 소학교교육내용에 대한 자료들을 보다가 생각되는것이 있어 잠시 콤퓨터에서 눈을 떼고있는데 전학선이 자기 방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괜찮습니다.… 시간이 있기에 그저 자료를 좀 보느라고… 왜 그러십니까? 부상동지.》

《시간을 낼수 있으면 내 방에 좀 오우.》

광우는 콤퓨터를 끄고 왜 그러는가 해서 그의 방으로 갔다.

전학선은 하는 일없이 벽가의 긴 쏘파에 앉아있다가 따뜻한 미소로 그를 맞으며 옆자리를 권했다. 부상이 무슨 사업상용무로 그를 오라고 한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직무로 보면 김광우는 비록 갓 임명되였지만 위원회에 직속되여있는 부국장이고 전학선은 위원회산하 보통교육성의 부상이니 사업상 직접 련관되는 일은 없었다.

《광우동무가 부국장이 된것을 축하도 해줄겸 조용한 시간에 마주앉아 이야기나 나누자고 그러오. 광우동무가 부국장으로는 금방 됐지만 우리 위원회에 배치받아온지는 몇해 됐는데 그동안 한번 마주앉아보지는 못하지 않았소.》

오랜 대학일군출신이라는 이 부상이 무엇때문에 오늘 새삼스럽게 나를 만나자고 해놓고는 그런 말을 하는것인가? 광우는 머리속에 생각을 굴리며 부상의 얼굴표정을 슬그머니 주시했다.

광우의 그런 속마음을 들여다본듯 부상은 약간 창백해보이는 갱핏한 얼굴에 느슨한 웃음을 실었다.

《광우동무가 중임을 맡은셈이요. 거기 부서의 일이 잘돼야 인재강국으로 솟구쳐오르려는 나라의 꿈이 더 빨리 실현될수 있고 가깝게는 중등교육수준이 시대의 요구에 따라설수 있지 않겠소. 고등교육에서 땅땅 여문 과학인재들을 키워내자고 해도 먼저 중등교육의 질이 올라가야 하겠기에 하는 소리요.

광우동무도 몇해 책임부원자리에 있어봤으니 물론 그사이에 공부도 많이 했을거구 교육사업이란 지휘관의 명령 하나면 다되는 군대에서와는 좀 다르다는것을 알았을거요.》

부상은 무엇때문인지 그 말을 퍽 조심스럽게 하는것 같았다.

광우의 얼굴에 실리는 의혹을 제나름으로 리해한듯 부상은 미안해하며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지금이야 과학이 나라의 국력을 결정한다는 확고한 인식이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요. 그래서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교육발전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있는것이지. 둘러보면 나라마다 교육발전전략도 새롭게 세우고있소. 명백한건 교육을 어떻게 하면 발전시키겠는가 하는 문제가 오늘날 인류의 사색에서 많은 령역을 차지하고있다는거요. 생존을 건 치렬한 경쟁마당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한 모지름이라고도 할수 있지. 이거야 사실 부국장동무도 다 아는 문제인데…》

부상은 여기서 말을 끊고 별로 소심하면서도 소탈하고 허심한 인상을 자아내는 미소를 얼굴에 실으며 김광우를 건너다보았다.

《부상동지두!》

《내가 새삼스럽게 이 말을 하는건 말이요, 우리도 분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을 하자는거요. 교육에서 진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라는 종당에 후진국이 되고마오.》

나라의 교육문제를 두고 항상 사색하며 머리를 쓰는 사람만이 할수 있는 말이였다.

교육에서 진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라가 후진국이 된다! 얼마나 심각한 정의인가! 교육이 그처럼 나라와 민족의 흥망이 달려있는 중대한 사업이기에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건국의 첫기슭에서부터 오늘을 내다보시고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교육제도를 마련하시여 우리 인민 누구나 돈 한푼 안 들이고 마음껏 공부할수 있게 해주신것이 아니겠는가.

부상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듯 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린 마땅히 이 훌륭한 교육제도를 발전시켜 나라의 믿음직한 기둥감들을 키워내야 하겠는데 현실은 아직도 시대의 요구를 따라서지 못하고있지 않소.

우리 중등교육의 실태도 같소. 학생들에게 쓸모있는 지식을 배워주어 응용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고 말들은 많이 하면서도 교원들부터가 교과서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데 그치는 지식전수위주의 교수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고 학생들은 그들대로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는 편향들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있단말이요.》

광우는 이 고정한 학자풍의 일군이 무엇때문에 자기를 만나자고 했는지를 알았다. 나라의 교육문제를 놓고 생각이 깊은 오랜 일군앞에서 머리가 숙어졌다.

《고맙습니다.》

《허, 그건 무슨 소리요? 부국장동무.》

《저를 위해 좋은 말씀을 해주자고 이렇게…》

전학선은 소탈하게 웃으며 손을 홰홰 내저었다.

《너무 겸손해서 그러지 마오. 그러지 않아도 위원회당비서동지한테서 다 들었소. 군관학교 최우등졸업생이고 지금도 공부를 많이 한다더군. 군대에서 오래동안 복무하다가 제대된 내 오랜 친구 한사람을 만났던적이 있는데 그도 동무에 대한 말을 하더구만. 군관학교때엔 각이한 지형과 정황조건에서의 병종간협동을 내용으로 하는 전술방안을 내놓아 소문을 낸적이 있다고 말이요.》

《…》

전학선은 다소 민망스러운듯 얼굴이 벌개지는 김광우의 표정을 얼핏 띠여보고나서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만나자는건 뭐 다른 일때문이 아니요. 난 그저 부국장동무와 마주앉아 교육문제를 놓고 이야기나 나누고싶었을뿐이요.》

광우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부상동지, 그렇다면 제 생각하는걸 하나 말할가요?》

《뭐요?》

《이건 사실 제가 위원회에 처음 와서 책임부원을 하면서부터 생각해온 문제입니다. 학생들의 학습열의를 높여주고 교과서를 그대로 외우는 식의 공부에서 벗어나자고 해도 지금의 대학입학시험방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 전국적인 대학입학시험을 국가가 통일적으로 장악지휘할수 있게 원격시험체계로 넘어가자는것입니다.》

전학선은 혼자소리로 외우며 한동안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들어 부국장을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결심하고 하는 말이요? 아니면 생각해보는중이요?》

《아직은…》

《물론 동무의 말대로 현재의 시험제도에 문제가 있는것은 사실이요. 교육의 정보화가 본격화되는 오늘의 시대적요구에 비추어봐도 그렇소.

하지만 서지시험제도를 페지하고 당장 원격시험으로 넘어가는 문제는 많은걸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제기하는게 좋겠소.》

부상방에서 나올 때 광우의 머리속에는 하나의 의혹이 생겨났다. 교육문제에 박식하며 나라의 교육발전을 놓고 생각을 많이 하는것이 분명한 이 부상이 현재의 시험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도 그리고 새로운 시험제도의 혁신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는것은 무슨 뜻인가?

《광남선생, 오늘은 어떻게 된거요? 긴장하게 일해야겠어.》

콤퓨터에서 자주 물러나 뒤목을 슬슬 문지르고있는 최광남을 보며 량원일이 점잖게 한마디 했다.

그 말에 최광남이 목운동을 하며 군소리없이 다시 일손을 잡는데 김승호가 건반을 부지런히 때리며 싱긋 웃었다.

《모르겠단말이야. 저 사람 밤에 어디 나가서 딴장 보는게 아니야? 그러지 않으면야 조장이 시간보장때문에 안타까와하는 때에 저럴수가 있나, 원.》

김승호 역시 지루감을 느끼기 시작하던 때라 롱말을 한마디 던져보는것이였다.

다시 콤퓨터에 달라붙던 최광남이 화면에 눈길을 박은채 심상하게 투덜거리였다.

《승호동무나 그 이마가 더 벗어지지 않게 주의하라구요. 딴장이 뭐요. 사실은 내 요즘 며칠째 불면증이 오면서 어쩌다 잠들면 괴상한 꿈만 계속 꾼단 말이요. 어제밤 꿈에선 글쎄 내가 돼지사양공이 되였는데 괴상하게 생긴 괴물이 나타나서 수백마리의 돼지를 다 먹어치우더란말이요. 아무리 소리쳐야 불가사리같은 그놈이 끄떡해야 말이지. 그래 이게 웬 괴물이야 해서 자세히 보니 우리 량원일선생이 프로그람을 짜넣은 로보트더란 말이요.》

김승호는 《허어―》 하며 일부러스럽게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 꿈이 문제로구만. 이보우, 최광남선생. 그렇다면 내가 비방을 하나 대주지. 나쁜 꿈을 꾸면 사슴대가리를 먹으라구. 그걸 푹 삶아서 국물과 함께 고기를 먹으면 잠이 잘 오고 꿈을 꾸어도 좋은 꿈만 꾼다오.》

곁에서 콤퓨터작업을 하고있던 라영국이며 우영심이까지 키득거리였다. 요즘 머리휴식을 하는 짬시간에 《동의보감》을 자주 들여다보는 김승호의 입에서 나온 말이고보면 그게 영 근거없는 소리는 아닐상싶지만 그렇다고 한들 콤퓨터밖에 모르는 최광남이 어디 가서 그 희귀한 사슴대가리를 구해오겠는가? 그래서 웃는것이였다.

건반누르는 소리만 지루하게 들리던 방안에 화기의 산들바람이 일고있을 때 문가에 김호성조장이 나타나 다들 작업을 잠시 중지하고 모이라고 했다. 김호성은 나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라영국을 찾았다.

《라동무는 정문에 내려가보오. 녀동무가 찾아왔소.》

콤퓨터앞에 앉아있던 연구사들이 별로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화면을 접으며 시물시물 웃었다.

《좋구만! 나도 지금 한창 저런 시절이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데 이 김승호는 다 지나가버렸단 말이야. 집에 들어가면 못생긴 안해가 반겨주지.》 김승호는 마치 인륜대사인 결혼에서는 실패한 인간이라도 되는듯이 한숨까지 내질렀다.

《제 안해를 두고 그렇게 말하는건 좋지 않아요, 승호선생.》

고지식한 우영심의 말에 최광남이 싱긋이 웃으며 김승호를 시까슬러댔다.

《영심선생은 모르는 소리. 저 승호선생의 처가 얼마나 미인인지 아오? 처에 비하면야 승호동문 백조에 까마귀지. 숫돌이마에 그나마도 벗어졌지, 어디 볼데가 있소? 그런데 저런 사내들이 밖에 나가서는 처녀들앞에서 총각흉내를 곧잘 낸단 말이야.》

점점 험상하게 번져가는 최광남의 롱말쯤은 먼산의 뻐꾸기소리처럼 흘려보내며 김승호는 노래부르듯이 긴소리를 뽑았다.

《빨리 내려가 만나라구요, 젊은 총각.》

《너무 윽박지르지 말게. 정도가 지나치면 사랑의 비둘기가 영 날아가버린다구요, 내 경험이긴 하지만.》 최광남이였다.

사실 방금 시작된 라영국이네 련애는 긴장한 프로그람개발전투를 하고있는 시험연구조의 관심사가 되였을뿐더러 조에 꼭 필요하다고 할수 있는 랑만도 주군 하였는데 유감스럽게도 갑자기 그들 두사람의 관계에서 마찰음이 일어나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들의 련애가 사랑의 바다를 향해 기슭을 떠나자마자 폭풍을 만난 작은 돛배처지가 된것으로 알고있는 연구사들이 걱정이 담긴 롱말들을 한마디씩 섬겨댔다. 당자는 들었는지말았는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뭐 특별히 바쁜 일은 아니라는듯 라영국은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면서 콤퓨터화면을 껐다.

《이보오 라영국동무, 처녀가 밑에서 기다린다지 않아. 빨리 내려가보라구.》

인정이 헤픈 최광남이 한마디 해서야 라영국은 성가신 일이라도 당하는 사람처럼 《젠장!》하고 혼자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떴다.

라영국이 사라진 문쪽을 바라보며 최광남이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여 머리를 기웃거리는데 김승호는 꿈만해서 자기도 그런 경험을 체험해본듯이 말했다.

《광남선생은 공연한 걱정을 하는군. 그건 저 라영국이 우리앞에서 일부러 아닌보살을 하는거요. 이제 정작 처녀앞에 서보지. 꿀같이 달콤한 말만 골라서 하지 않나. 어디라구.》

《자자, 모이라지 않소. 빨리 가자구.》

량원일이 독촉해서야 모두들 서둘러 방에서 나갔다.

김호성이 다들 모이라고 한지 1분도 못되여 연구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부국장이 시험연구조로 내려올 때마다 자기 전용사무실처럼 리용하는 방이다.

《다들 모였소?》 부국장은 얼굴에 느슨한 미소를 실으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라영국동무는 손님 만나러 정문에 내려갔소? 그런데 영심선생이 보이지 않누만.》

《이 동문 왜 나타나지 않아? 알려주었는데. 언제 봐야 집단은 생각지 않는다니까.》

김호성이였다.

우영심은 작업실에서 남자들과 함께 자리를 떴는데 아직 나타나지 않은걸 보니 자기 방에 잠간 들릴 일이 있어 떨어진 모양이였다.

그러지 않아도 기분상태가 좋지 않은 김호성이 언짢은 소리를 한마디 하는통에 모임직전의 흥그럽던 화제바람이 잦아들었다.

부국장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김호성을 너그럽게 책망했다.

《뭘 집단을 생각지 않아 그러겠소. 그 동무 성격이 그런건데.》

그때 마침 우영심이 미안해하며 들어왔다.

김호성이 방금전까지 그 녀자때문에 화를 내던 일을 생각하며 모두들 소리없이 싱글싱글 웃었다.

성격이 느리여 무슨 일이 있어도 바빠할줄 모르며 언제나 행동에서 한박자 느린것때문에 책임자한테서 드문히 말을 듣군 하는 우영심이 요즘은 그가 맡은 외국어과목에 대한 시험문제작성이 계획대로 진척되지 않아 김호성이 더욱 신경을 쓰는중이였다.

《요즘에도 산매 아버지한테서 〈프로전화〉가 오우? 우영심선생.》

산매란 올해 유치원생이 된 우영심의 딸이다. 광우는 늦게 온것때문에 조장한테서 또 무슨 꾸중이라도 들을가봐 바재이는 눈치가 분명한 우영심의 마음을 눙쳐주려고 한마디 한것이였다. 그랬던노릇이 오히려 그 녀자를 더욱 곤경에 몰아넣는 결과를 낳았다.

우영심은 당장 얼굴이 빨개지며 어쩔바를 몰라하는데 아닌게아니라 곁에서들 저마끔 소리없이 웃었다. 콤퓨터만 마주하고 앉아있느라 무료감에 지쳤던 남자들의 입에서 그 녀자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을 롱말이나 유모아라도 쏟아져나올판이였다.

우영심의 남편은 도체육단의 중량급레스링선수이다. 시험연구조 남자들한테는 《사랑과다증》에 걸린 남편이라는 아주 이채로운 별칭으로 불리우고있다. 안해인 우영심이까지도 기꺼이 인정하는 별칭이다.

《사랑과다증》이란 안해를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사랑한다고 해서 유모아가 심한 시험연구조의 수학전문가 김승호가 우영심의 남편한테 붙여놓은것이다.

사실 우영심의 남편은 몸매나 얼굴이나 빠지는데가 없이 곱고 인정 또한 많은 안해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안해와 떨어져 하루라도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속상한지 매일과 같이 전화를 걸어와서 어떤 때는 우영심을 여간 난처하게 하지 않았다. 일단 안해와 통화가 시작되면 끝날줄 모르는것이였다.

그런즉 《프로전화》라는것도 그닥 과장된 표현은 아닌데 부국장도 그들부부의 남다른 금슬을 알고있었다.

아닌게아니라 우영심이 곤경을 치르는 대가로 방안의 분위기는 다시금 화기로와졌다.

그런데 부국장이 위원장방에서 있은 협의회내용을 알려주자 불협화음이 일어났다. 역시 시험문제자료기지를 새롭게 혁신하는 문제때문이였다.

조장인 김호성은 차를 타고오면서 부국장한테 자기의 편안치 않은 심기를 이미 터쳐보인지라 입을 다물고있고 다른 사람들이 저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아니 부국장동지, 지금까지 밤을 패며 긴장하게 일해서 시험문제작성이 끝나가고 프로그람작업도 거의 마무리단계에 이르렀는데 이제와서 뒤집어놓으면 우린 어떻게 하라는겁니까?》

최광남이 한마디 하기 바쁘게 저저마다 불만을 터놓았다.

《시험날자가 멀지 않았는데 원격시험을 치자는것인지 말자는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많은 문제를 다시 검토하고 프로그람도 다시 작성한다는게 말이 쉽지 그게 어디 헐한 일입니까?》

《시험문제의 질을 높이자는것도 그렇습니다. 수학의 증명문제나 자연과학과목의 실험문제와 같은것은 학생들의 론리적인 사고과정을 추적하여 평가하는 문제로서 콤퓨터시험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자면 문제형식이나 프로그람작성에서 연구해야 할 새로운 문제점들이 적지 않습니다. 더우기는 중학교졸업생들이 그런 난도가 높은 문제들을 리해하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시험때가 박두해오는데 시간도 없지 않습니까.》

《광남선생이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뭐.》

왜서인지 처음부터 자기의 견해를 비치지 않고있던 량원일이 좋지 않은 소리로 한마디 했다. 그 바람에 모두들 조용해졌다.

조에서 제일 년장자이며 프로그람실력에 있어서도 대학적으로 인정하는 권위자라고 할수 있는 량원일은 응용수학연구실 실장으로 있다가 시험연구조에 동원된 사람이였다. 하여 조에서 그의 한마디한마디 말은 누구에게나 무게있게 통하는데 그 량원일이 시간타발을 하는 소리에는 그만 참지 못하고 불만을 터친것이였다.

사실 우에서 요구하는대로 문제의 수준을 올리자고 전반적인 문제자료기지를 검토하고 새로 갱신해야 한다면 누구보다도 부담이 많아지는 사람은 프로그람을 맡은 량원일이라고 할수 있었다.

《우리야 학구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요. 그런 이지러진 소리는 어울리지 않소.》

사람이 고지식하고 성근한 량원일은 그래놓고 스스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지 타협의 색채가 농후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시험문제의 질을 높이자는것이 응당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일을 시작하기 전에 여기에 낯을 돌렸어야 했습니다.

말하자면 발전하는 우리 중등교육의 실태와 인재강국을 지향하는 시대적요구가 반영돼야 한다 그 말입니다.

그렇게 놓고보면 시간이 급하다는데 빙자할 문제가 아니지요. 학생들의 론리적인 사고과정을 충분히 평가할수 있게 시험문제의 형식도 더 연구돼야 합니다.

물론 이미 해놓은 과목별문제자료기지가 중등교육 전과정의 교육내용을 포괄하고있고 문제의 형식도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어느정도 기억하고있는가를 판정하던 종전의 문제형식에서는 많이 벗어났다고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만족하여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우리는 중등교육단계의 모든 학생들이 교과서내용에 대한 기계적인 인식이 아니라 하나를 배우고 열을 창조할수 있는 응용능력, 활용능력을 키우는데로 지향하는데 좋은 작용을 하도록 대학입학시험문제를 끊임없이 갱신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일을 좀 했다고 만족해하면 더 전진하지 못합니다.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발전하지 않는것은 살아있지 않는것이다.〉 부국장동지, 이거 제가…》

량원일은 그 말이 상급앞에서 례의에 어긋나는 경솔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지 얼굴이 벌개지며 말끝을 사리였다.

부국장이 리해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제꺽 손을 내저었다.

《뭘 그러오. 그건 좋은 말이요.》

《그러니 우린 다 사망했는가?》

최광남이 능청스럽게 롱말을 한마디 던지는 바람에 분위기가 따분하던 방안에 화기의 바람이 일었다.

광우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량동무의 말이 옳소. 지금 학생들속에서 교과서를 기계적으로 따로외워 순수 대학입학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따내기 위한 공부에 치중하는 현상이 근절되지 못하고있는것은 교원들부터가 지식전수를 위한 교수방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사정과도 관련되오.

따라서 시험문제의 형식을 어떻게 발전시키는가 하는 문제는 중등교육의 질적수준을 시대적요구에 따라세우기 위한데서 중요한 문제이고 우리 당의 새 세기 교육혁명사상을 어떻게 구현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여있다고 볼수 있소. 어디 더 생각되는것이 있으면 말해보오.》

누구도 말이 없었다.

광우는 모든 동무들이 자기가 맡은 부문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켜야 하겠다는 말을 하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각이한 생각이 실린 표정들이였다.

《허, 바쁘게 됐군!》, 《신경질이 남아돌아가는 우리 조장이 되게 달굴거야.》, 《허, 이달엔 색시보러 집에 내려가기 다 틀렸는걸. 할수 없지.》…

광우는 빙그레 웃었다.

《동무들이 알아야 할것은 문제자료기지를 새롭게 혁신하는 문제가 원격시험체계를 개발하는데서 핵심적인 의의를 가지는 중요과제라는거요. 안 그렇소? 동무들.》

《그건 그렇습니다. 우리가 시험제도를 새롭게 혁신하자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라의 중등교육발전을 추동하고 보다 능력있는 인재후비들을 육성선발해서 고등교육부문에 보내주자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모임의 분위기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은 이번에도 역시 량원일이였다. 조장인 김호성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무슨 번민이라도 있는듯 자기 견해를 한마디도 내비치지 않았다. 광우는 그것이 불만스러웠으나 내색하지 않으면서 량원일의 말을 지지하여 고개를 끄덕이였다.

《다 들었소? 그러니 시험문제자료기지구축단계에서부터 문제의 형식을 교원들의 교수수준과 학생들의 실력수준을 기본으로 하여 정하던 종래의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야겠소.

시험문제를 작성하는 동무들은 학생들의 응용능력을 평가한다는 일면적인 사고에만 머무를것이 아니라 지식경제시대의 요구에 맞게 교수내용을 실용화, 종합화, 현대화하며 교원들의 교수과정과 교수수단, 수법들을 혁신하는데 기여하는것으로 되여야 한다 그 말이요.

동무들도 다 알고있는 문제이지만 지식경제시대에 와서 인간의 능력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있단 말이요.》

전통적인 관념에서 볼 때 인간의 능력은 본질상 그 인간이 지니고있는 지식의 질과 량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낡은 관념으로 되고있다.

오늘날의 인간은 《지식폭발》에 적응할수 있는 능력, 지식을 부단히 갱신할수 있는 능력, 경제와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적응하는 능력, 다시말해서 첨단돌파능력이 있어야 한다.

뿐만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고 거기에 적응하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인간의 능력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데 따라 종전의 교수관념도 달라지고있다.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인류가 축적한 기성지식에 대한 단순한 적재가 아니라 사회의 진보에 실질적으로 기여할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의 소유자들로 키우자면 교원들부터가 풍부한 전공지식과 함께 새로운 린접부문의 지식들을 부단히 창조해나가야 한다.

김광우가 인간의 능력에 대한 평가소리를 한것은 바로 그런 내용을 념두에 둔것이였다.

우리가 콤퓨터에 의한 원격시험으로 넘어가자는 목적의 하나도 바로 교원들의 교수방법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오자는데 있다는것을 말하고싶었던것이였다.

《물론 우리는 여기서도 어디까지나 우리의 실정과 우리 혁명의 요구를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새것을 개척해야 하는 창조사업입니다.

그러니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며 동무들이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이악하게 노력해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험문제의 질을 높이는 문제가 제기되였고 그것이 교육발전을 위해 필요한것만큼 반드시 소화해야 합니다.》

광우는 어떻게 하면 중등교육단계의 실력이 다 나올수 있게 하면서도 학생들의 학습에 대한 열의를 높여줄수 있게 하겠는가 하는 방향에서 각자가 자기 맡은 전공과목을 놓고 연구를 더 심화시켜야겠다고 했다.

누구도 말이 없었다. 무거운 표정들이였다.

몇개월동안 밤을 새워가면서 힘들게 지어놓은 집을 헐어버리고 다시 지어야 하는 격이 되였으니 손맥이 풀릴수도 있는 일이였다. 그중에서도 우영심의 표정이 말이 아니였다.

그러지 않아도 그 녀자가 맡은 외국어과목은 작업량이 많은데다가 진척정도가 굼뜨다나니 요구성높은 조장한테서 자주 말을 듣는것이였다.

부국장이 그 녀자의 걱정이 실린 얼굴색을 띠여보며 리해의 너그러운 미소를 짓고있을 때 아름다운 음악이 울리였다.

우영심의 손전화기에서 울려나오는 호출음이였다. 옆에 앉아있던 남자들이 벌써부터 무슨 전화인가를 짐작하고 저마끔 시물거리였다.

우영심이 얼른 밖으로 나갔다. 공교롭게도 남자들의 눈길이 다 미치는 때에 남편한테서 전화가 온것이였다.

《에이, 정말 시끄러워죽겠어.》 하는 소리가 복도로 나가는 그 녀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방안의 남자들은 기다렸던듯이 내놓고 웃었다. 쌓인 스트레스가 그 웃음소리에 말짱 날아나는듯 했다.

《웃지들 마오. 남편이라면 그 산매 아버지처럼 안해를 그렇게 사랑해야 돼. 우리 영심선생은 행복한 녀자요.》

김광우가 그렇게 말해서 또 분위기가 흥그러워졌다.

광우는 얼굴색이 밝아진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복도에서는 우영심이 어리광같기도 하고 진짜로 짜증을 내는것 같기도 한 목소리로 남편과 전화를 하고있었다.

《여보, 왜 때없이 자꾸 전화를 하면서 그래요?》

《그건 무슨 소리요? 당신은 사랑하는 이 〈애인〉의 목소리가 반갑지도 않소?》

《에이, 처녀총각도 아닌데 애인은 무슨 애인이람. 싱거운 사람!》

《우영심동무, 이 명준기는 귀여운 딸애의 착실한 아버지이지만 언제나 첫사랑을 속삭이던 그때처럼 동무를 사랑한단 말이요.》

《여보 산매 아버지, 당신의 사랑이 지극한건 알겠어요. 가슴이 찡하단 말이예요. 하지만 난 지금 그런 롱담을 할 겨를이 없어요.》

《롱담이란건 무슨 소리요? 난 정말 당신의 목소리가 듣고싶단 말이요. 〈애인〉의 사랑을 롱담으로 치부하다니, 너무하구만!》

《아유!― 속상해! 여보, 무슨 일이 있으면 빨리 말씀하시라요. 우린 지금 모임을 하고있단 말이예요. 우리 일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모임이예요.》 우영심은 목소리를 낮추어 《부국장동지까지 내려와서 말이예요.》했다.

그 바람에 레스링선수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우영심동무, 그건 무슨 소리요? 그러면 그렇다고 진작 말을 했어야지. 그런걸 모르고 우리 귀여운 따님한테 일이 있어 전화하지 않아.》

이번에는 우영심이 깜짝 놀라며 큰소리로 다급히 부르짖었다.

《여보, 산매한테 무슨 일이 있다는거예요? 어디 앓아요? 혹시 학교에 갔다가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니예요?》

《일은 무슨 일. 밥을 안 먹는단 말이요. 열이 쪼꼼 있는것 같기도 한데… 이거 당신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지 모르겠단 말이요.》

《아유! 훌륭한 아버지. 유명한 수학자인 뉴톤이 개구멍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 몰라 쩔쩔맸다더니 당신은 레스링 하나밖에 모르는게지요?

인차 세계선수권보유자가 될거예요. 이봐요, 고명한 〈레스링박사〉선생님. 명심해서 들어요. 이제 당장 따님을 업고 진료소로 가세요. 거기서 소화불량인지 감기에 걸렸는지 정확한 진단을 받은 다음 의사들이 내주는 약을 먹이세요. 아무 약이나 먹이면 안돼요. 꼭 의사선생의 말대로 해야 해요. 알겠어요?》

《아차, 내가 왜 병원에 가면 된다는 생각을 못했을가? 그렇게 단순한 생각을.》

《그래서 〈레스링박사〉지요.》

《됐소, 그만하기요. 중요한 모임을 한다는데… 빨리 참가하오.》

그들 부부가 다정한 전화를 하고있을 때 정문앞에서는 라영국이 처녀를 만나고있었다.

《어떻게 왔소?》 멀리서부터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온 라영국이 물었다.

처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였다. 애인이 늦가을의 흐린 하늘처럼 시펄뚱해서 맞이하리라는 생각에 찾아갈가 어쩔가 하다가 자존심을 누르고 왔는데 언제 절교를 선언했던가싶게 벌쭉거리는 인상이 아닌가.

이 사람이 녀자앞에서는 주대도 없이 쉽사리 뼈가 물렁탕이 되여버리는 그런 서푼짜리 사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사실 라영국은 며칠전에 처녀를 만나면서 부상인 그의 아버지가 시험연구조의 일을 두고 좋지 않게 이야기했다는 말을 듣고서는 다시 만나지 않을것처럼 푸르딩딩했던것이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라영국이 함께 일하는 동료들앞에서 자기들의 사랑이 슬프게도 끝장난것처럼 말하여 그들 청춘남녀의 사랑을 집단의 귀중한 재산처럼 소중히 여겨온 모두를 자못 서운하게 했다.

처녀는 그런 일까지 있었다는것은 알수 없었지만 라영국이 직접 자기에게 《난 동무나 동무 아버지에게 만족을 주지 못할수도 있소.》라고 매정하게 말한 그 한마디만도 언밥덩이를 삼킨듯 아직도 속에서 내려가지 않아 일부러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애인을 맞이했다.

《왜 찾아왔느냐고요? 처녀의 마음을 든장질해놓고는 먼저 아픈 말을 쏟아놓은 사람은 누군데…》

라영국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모자라는 사람처럼 벌쭉 헤식은 웃음을 지었다.

《오, 그거야 우리 연구조가 하는 일을 누구보다 지지해주고 힘을 주어야 할 동무의 아버지가 오히려 반대를 한다니까 그렇게 말한것이지. 난 정말 우리 연구조를 떠날수 없단 말이요. 그건 함께 일해오는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의무감에 귀착되는 문제요. 동문 그걸 리해하지 못하고있소. 그런데 정말 무슨 일로 이렇게 찾아왔소? 난 지금 대단히 바쁘오.》

대수롭지 않은 일을 말하듯 하는 라영국을 어이없어 빤히 올려다보던 처녀의 두눈에 물기가 어리면서 돌연히 원망과 분노가 타올랐다.

《그러니… 동진… 정말… 우리들의 관계를…》 처녀는 파들파들 떨면서 끝내 말끝을 잇지 못했다.

라영국은 그만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왜 그래? 영랑.》

《됐어요!》 별안간 처녀는 몸을 홱 돌려 걸어갔다.

라영국은 《동문 그걸 리해하지 못하고있소.》라고 한 그 말에 대하여 그리고 지금은 시간이 없다고 한 자기의 그 말에 대하여 처녀가 엄청난 오해를 하고있으며 자칫 잘못하다가는 아름다운 새가 자기의 품에서 영영 날아가버릴수 있다는 생각이 별안간 떠올랐다.

하여 처녀를 붙들고 사연을 설명해야겠는데 그럴 겨를이 없었다. 처녀는 얄궂게도 시야에서 사라져가고 부국장방에서는 중요한 토론을 하며 자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있을것이였다.

《젠장! 갈테면 가라지!》 그는 자신에게인지 처녀에게인지 모를 화를 내며 전영랑이 사라진쪽에 대고 말이 나가는대로 내뱉았다.

라영국이 모임장소에 들어섰을 때 모두의 눈길이 그한테 쏠리였다.

《벌써 다 만났소?》 마치도 모임은 모임이고 두 련인이 오래동안 재미있게 만나기를 바라기라도 했던듯 싱글거리던 부국장은 라영국의 시퍼래진 얼굴색을 띠여보고 의아해서 다시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었소?》

라영국은 자리에 앉아서도 대답이 없었다.

방안에는 광우부국장과 김호성조장만이 남았다. 모임이 끝나 모두들 헤쳐갈 때 김호성이 스스로 떨어진것이였다.

《무슨 토론할 문제가 있소?》 김호성의 별로 심각해진 얼굴색을 일별하며 광우가 물었다.

김호성의 입에서 뜻밖에 나직한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부국장동지, 시험정보과가 나오면…》

그는 이상하게 말끝을 흐리였다.

광우는 의아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오?》

《전 아무래도 대학으로 돌아가야 할것 같습니다.》

광우는 그제서야 오늘 별스레 김호성이 편안치 않은 낯색을 짓고 동료들앞에서 별치 않은것을 가지고도 짜증을 내던것이 무엇때문인지 어렴풋이 리해가 되였다.

그는 배신감을 느꼈다. 가장 긴장한 대목에 이르러 조장이란 사람이 시험연구조에서 떨어져나가겠다니 이게 어디 량심있는 소리인가! 광우는 속에서 터져나오려는 험한 욕설을 꾹 참으며 가까스로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무슨 일이 있은게 아니요?》

《…》

김호성은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입을 열 잡도리가 아니였다.

방안에는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드리웠다.

《안돼!》 광우는 끝내 참고있던 노여움을 터뜨렸다. 《동무도 군사복무를 하면서 입당을 한 제대군인이구 당의 배려로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지? 병사가 자기 하나의 발전을 위해 진지를 버리고 돌아가겠다는거요? 더우기 동무는 조장이 아니요. 물론 대학으로 돌아가면 직위도 올라가고 박사학위도 빨리 받을수 있을거요. 그만큼 실력도 있고 사업에서 책임성도 높아 신망을 받는 호성동무니까.》

김호성이 그 소리에 머리를 번쩍 들며 부국장을 쏘아보았다.

《비꼬지 마십시오!》

광우는 증기가마처럼 달아오르는 그를 아연해서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비꼬는게 아니요. 사실이 그렇지 않소?》

《이 김호성이라고 뭐 발전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다시금 침묵이, 오랜 침묵이 흘렀다.

광우는 갑자기 마음이 약해지는 자기를 느꼈다. 그는 성실하고 자기 사업에 열정을 쏟아부을줄 아는 김호성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른 박사론문을 서고에 넣어둔채 시험연구조의 일에 동원되면서 반년째 손대지 못하고있다는것을 안다. 이 사람인들 창공이 좁다하게 나래치고싶은 꿈이 왜 없을것인가!

그는 축축히 젖어드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시험연구조에서 떨어져나갈 생각은 하지 마오. 동문 여기 있으면서 박사도 돼야 해. 그러니 동무사정은 듣지 않겠소. 동무도 량심이 있는 사람이니 어디 생각해보오. 조장이 그렇게 나오면 수레는 누가 끈다는거요?》

《수레를 끌고갈 사람은 있습니다. 량원일선생이 조장일을 맡으면 잘할수 있습니다. 원래는 그 선생이 조장을 했어야 했습니다. 우리 조에서야 그 선생이 실력이 제일 높으니까요. 그리고 장연화책임교학도 있지 않습니까.》

《량원일선생이 조장사업을 할수 있지. 장연화책임교학은 아직 정식으로 우리 사람이 아니요. 하지만 동무말대로 그렇다고 하기요. 그래서 동무는 여기서 떨어져나가 발전을 하고… 발전을 할거요. 그런데 동무의 량심은 어떻게 하겠소?》

김호성은 고개를 숙이였다.

그의 얼굴에는 애달픈 그 무엇이 진하게 어리였다.

광우는 까닭모르게 속이 알알해오는 가운데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정말 갑자기 웬일인가? 전에 없었던 일이 아닌가! 조장일이 힘에 부치거나 자기 발전문제를 생각해서 그러는것 같지 않았다. 그런 인간이 아니였다. 조장으로서 연구사들과의 관계에서 간혹 너그럽지 못하고 성격을 살리는 때가 있군 하지만 알고보면 책임성이 높고 일에서 자기 한몸을 아낄줄 모르는 정열가였다. 이 사람한테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닌가?

광우는 도무지 속을 털어놓을 잡도리가 아닌 김호성의 덤덤해있는 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홱 저었다.

《됐소! 그만하기요.》하며 서류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대화를 결속하면서 고민거리를 안고있는 김호성에게 마지막으로 한다는 말이 너무도 매정한 소리를 던진것 같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여 방에서 나가다말고 문가에 멈춰서며 김호성을 다시 돌아보았다.

《내 바빠서 그러오.》하고 량해조로 말했다.

정말 바쁜 몸이였다. 그는 이제 평양을 떠나 이틀을 기간으로 황해남북도의 몇개 군을 돌아봐야 하는것이였다.

해가 서해너머로 떨어지기 시작하는무렵이였다.

락조에 물든 서해갑문다리목에 두사람이 초조해서 앉아있었다. 오련희와 최금동학생이였다. 그들은 평양으로 들어가는 자동차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런데 늦은저녁이라 평양에서 나왔던 차들은 이미 다 들어가버렸는지 지나가는 화물자동차 한대 보이지 않았다.

오련희는 은근히 걱정이 되여 고요해진 주변을 둘러보았다.

련희는 오전에 만경대를 참관하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서해갑문을 거쳐 은률쪽으로 간다는 뻐스를 만나 사정을 하고 무작정 올랐는데 그러지 않아도 늦어 나온데다가 금동학생과 함께 웅장한 갑문을 돌아보느라 시간가는줄 모르다나니 난처한 처지에 떨어진것이였다. 친척집에 나들이라도 온 걸음이라면 갑문주변의 어느 기관이나 려관같은데 찾아들어가 편히 하루밤을 보내고 다음날 평양에 들어가도 별일이 없겠지만 그들은 그럴 형편이 아니였다. 평양에 묵어있는 기간의 일정을 치차처럼 맞물려놓고있는 련희네였다.

오련희가 자동차를 잡지 못하면 어쩌랴 하는 생각을 하고있을 때 그의 손전화기에서 신호가 울리였다.

멀리 고향 림산마을에서 남편이 걸어오는 전화일것이다.

작업소에서 대형림산차운전사로 일하는 남편은 한달동안 평양에 가있게 될 오련희에게 필요없다는데도 굳이 반짝이는 새 손전화기를 쥐여주면서 《평양가서 하루에 한번씩 꼭꼭 나한테 전화하오. 알겠소?》하고 다짐을 놓아 말했다.

그런데 오늘은 하루해가 다 가도록 련희쪽에서 기척이 없으니 참지 못하고 제가 먼저 전화를 걸고있을것이였다.

오련희에게는 결코 평탄하다고 볼수 없는 인생체험을 한 끝에 늦어서 만난 귀중한 사람이였다.

통화건을 누르자 아닌게아니라 초인간의 성대같은 귀에 익은 정다운 사람의 목소리가 왕왕 울려나왔다.

《련희, 왜 전화를 하지 않소? 지금 어데 있소? 무얼 하는가 말이요?》

《여보, 미안해요. 일이 좀 딱하게 되여 제가 전화를 한다는게 그만 잊고있었어요.》

남편은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나 해서 성급하게 부르짖었다.

《왜 그러오? 평양에 갔다는 사람이 일이 생겼다는건 무슨 소리요?》

오련희는 그제서야 멀리 있는 사람을 공연히 놀라게 했다는 생각에 호호 하고 웃으며 맘 편한 소리를 했다.

《꼭 철부지어린애를 길거리에 내놓은 사람같이 그러네.》

그는 옆에 붙어서 소리없이 웃고있는 제자에게 눈을 끔뻑해보이면서 명랑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겠어요. 우린 지금 평양에 있지 않아요. 서해갑문에 나와있어요.》

대뜸 남편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 평양에 도착한지 사흘밖에 안되는데 서해갑문에 나가있다는건 무슨 소리요?》

《그렇게 됐어요. 아유! 그 사연까지 전화로 어떻게 다 보고한담. 당신도 군대때 서해갑문에 한번 와봤다고 했지요? 금동학생을 데리고 갑문에 나오기를 참 잘했어요. 야, 정말 굉장하구만요! 인간의 지혜와 힘으로 이렇게 거대한 창조물을 일떠세울수 있다는건 정말 놀라운거예요! 그런데다가 지금은 저녁이 아니예요. 거기 우리 고향 연두봉마루에도 아름다운 노을이 비꼈겠지요? 여기도 온통 노을이 불타요! 노을빛에 물든 바다! 노을이 비낀 거대한 갑문! 한폭의 그림같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황홀하고 장엄해요!》 오련희는 조금전까지만 하여도 갑문다리우에서 밤을 보내는게 아닌가 하고 속에 걱정이 가득 들어찼던 사람같지 않게 서해갑문의 아름답고 웅장한 풍경을 두고 시를 읊듯이 하다가 은률방향을 보면서 눈이 덩그래졌다. 그는 손전화기에 대고 갑자기 다급한 소리를 질러댔다.《가만, 여보. 그만하자요. 내가 다시 전화할게요. 지금 차가 와요!》

오련희는 남편이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어 속상해하며 화를 내리라는 생각은 못하고 서둘러 전화를 껐다. 다행스럽게도 속을 바질바질 태우면서 기다리던 차가 나타난것이였다.

소형뻐스 한대가 은률쪽에서부터 갑문다리를 건너오고있었다.

련희는 어쩌면 이 저녁의 마지막차일수도 있는 그 차를 놓치면 정말로 제자와 함께 갑문우에서 하루밤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나서서 손을 들었다.

달려오던 소형뻐스가 고적이 깃들기 시작하는 갑문다리우에 함께 돋아난 두송이의 버섯처럼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드는 녀인과 중학생의 딱한 사연을 리해한듯 옆에 와서 스르르 멎어섰다.

소형뻐스의 문이 열리며 뒤좌석에 앉아오던 나이지숙한 사나이가 차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김광우였다. 그는 황해남북도를 돌아보는 길에 은률군에 들렸다가 평양으로 들어가는 길이였다.

《어데까지 가려는 사람들이요?》

퍼그나 지쳐보이는 두사람의 행색을 여겨보며 광우는 친절한 어조로 물었다.

그가 별로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말을 건넨것은 차를 세운 당사자들이 어지간히 지친 행색인데다가 몹시 미안해하며 바빠하기때문이였다.

소형뻐스는 그들을 태우고 인차 떠났다.

오련희는 차에 올랐으니 이젠 평양에 들어가게 됐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부터 나갔다. 마음이 편해지자 바쁜목에 들면 부처님다리라도 붙잡는다더니 하고 어느 고망년적 말이 떠올라 속에서 웃음이 요글거리였다. 사실 오련희로서 손을 들어 차를 세울만 한 대담성을 발휘한다는것은 다른 때라면 엄두도 못 냈을것이였다.

《허, 동무넨 이 차에 귀잡고 절을 해야겠구만. 평양차를 못 만났으면 어쩔번 했소?》

옹색해하는 련희네를 바라보며 롱말을 하던 김광우는 아무래도 평양사람들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어디서 사는가고 물었다.

오련희는 자기들을 위해 차를 세워준 이 사람이 무척 인정이 많고 틀도 없는 사람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 차츰 어려움을 잊게 되였다.

그는 꿈많고 수학골이 비상한 제자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방학기간을 평양에서 보내려고 먼 북방에서 함께 견학을 왔다는것과 오늘 낮에 우연히 뻐스가 생겨 갑문에 나왔다가 늦어진 사연을 말했다.

《우리 금동학생은 인차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지만 세상에 소문난 서해갑문을 아직 한번도 못 봤단 말입니다. 서해갑문뿐이 아닙니다. 우리 로동계급이 만들어낸 강선의 초고전력전기로도 책을 통해서만 봤습니다. 이제 평양에 들어가면 주체사상탑이랑 이름난 거리들과 인민대학습당도 다 데리고가서 보여주겠습니다.》

먼 산촌의 다감한 녀교원이 중학생인 자기의 제자를 위해 평양에 와서 길지 않은 방학기간을 보람있게 보내려고 세워놓은 아름찬 계획에 대하여 말할 때 광우는 그만에야 감동되였다.

《선생은 좋은 일을 하고있구만. 옳소, 학생들이 조국의 자랑찬 현실을 알게 하는건 중요한거요. 열렬한 조국애를 심어주어야 제자들이 학문을 배우고 과학자가 되여도 나라를 위하는 참다운 인재가 될수 있는게 아니겠소. 그런데 점심식사는 했소?》

《했습니다.》

광우는 그 말이 못미더워 뒤좌석에 나란히 앉아있는 두사람을 돌아보았다.

《오전에 만경대참관을 나왔다가 예견치 않게 은률차를 탔다니 뭘 했겠소?》

김광우가 봉지에 몇개 남아있는 빵을 꺼내놓아서야 오련희는 당황하여 얼굴이 빨개졌다.

《아이, 정말입니다. 우린 점심밥을 먹었습니다.》

《허허, 그러지 말고 드오. 이 미래의 수학자가 배를 곯아서야 안되지.》

광우는 오늘 좋은 녀선생을 알게 되였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했다.

저녁어스름이 사위에 깃들무렵 대동강을 끼고 달리던 소형뻐스는 강선땅에 들어섰다. 차창너머로는 공업지구의 웅자가 지나가고있었다.

어디선가 멀지 않은 곳에서 강철의 둔중한 음향이 들려왔다. 이제 좀더 어두워지면 저녁노을이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일것이다.

차가 천리마구역을 거의 지나가고있을 때 초조해하는 인상을 보이던 오련희가 무척 미안해하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내리겠노라고 했다.

광우는 의아해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아니, 왜 여기서 내리겠다는거요? 평양에 들어가자면 좀더 있어야 하오.》

《여기 왔던김에 아예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에 들려 초고전력전기로까지 보고 래일 평양에 들어가겠습니다.》

거센 숨결이 느껴지는 공업지구의 웅자가 눈앞에 안겨오자 녀교원의 머리속에 그런 생각이 떠오른것이였다.

《허, 그렇단 말이지? 이 늦은저녁에 떨어졌다가 고생하지 않겠소? 차를 탄바에 평양까지 들어갔다가 편안하게 시간을 잡아가지고 다시 나와도 되겠는데…》 김광우가 차를 세워놓고도 두사람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였다.

녀교원은 미안해하면서 자기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차는 두사람을 내려놓고 다시 떠났다.

한참 가서야 광우는 《아차!》 하고 자기도 모르게 소리질렀다. 그 녀교원의 제자가 중학교졸업을 앞두고있으며 북방의 외진 산골학교 학생이지만 비상한 수학골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시험연구조에 한번 오라고 초청을 했을걸! 그랬더라면 그 학생에게도 유익한 체험이 될수 있고 새로운 시험체계를 개발하고있는 우리 연구사들이 지방학생들의 실력을 파악할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수 있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들이 평양의 어디에 자리를 잡았는지도 알아보지 않고 헤여졌으니 이런 한심한 일이라구야!

광우는 그들의 모습이 사라져간 공업지구쪽을 아쉬운 눈길로 돌아보며 한숨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