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게시판

본인은 십여 년도 넘게 성격장애랑 기분장애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

그렇다 보니, 왠만해서는 학적부? 생활기록부에는 보편적인 서술을 해놓거나, 대강대강 좋은 쪽으로 서술을 해놓기 마련인데도, 병역문제 때문에 제출해야 될 서류를 위해서 신체검사 당시 생활기록부를 다시 출력해서 확인해 보니, "타인의 기분이나 감정을 헤아리지 않고 말과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음." 이라고 초등학교 당시의 그것에 기재되어 있을 정도였던 것 같아.

유년기 시절 혹은 그보다 조금 지난 어렸던 적에는 아예 타인과의 교류나 관계 자체에 의지나 욕구 따위가 전무했었던 것 같고,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선, 학급 내에서의 서열이나 급우들간의 관계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긴 했지만, 그또한 일반적인 감정선이라거나, 심리작용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타인에게 하대 당하거나, 무시 당하거나, 공격 받는 것들이 극도로 불쾌하단 것을 스스로 깨닫고? 인지하고 나서 의식적으로 평소 나의 언동이라거나, 무드, 시시콜콜한것들까지 주변에 맞춰 조절한? 다시 말하자면 극도로 정교한 연기내지 거짓치레들에 가까웠다 보니 사실 주변에 사람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본인이 평소에 느끼는 부하나, 불안 따위는 크게 다르지 않았었어.

사실 그때는 이런 것들이 기분장애다, 성격장애다, 정신증이다 하는 인식은 물론 지식도 전혀 없었었는데, 매일같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화장애와 편두통에 시달렸고, 이러한 증상들이 본인이 신경써야 될 다른 사람들이 주변에 많으면 많을 수록 확연히 심해져서, 중학교 재학 중에는 교실에 있던 시간보다 보건실에 있던 시간이 훨씬 길었던 것 같아.

기실 본인이 그렇게 상습적으로 긴 시간동안, 보건실에 체류해 있을 수 있었던 까닭은 전부 보건선생님 덕분이었는데, 냥붕이들이 다녔던 학교들마다, 혹은 지자체마다 다 다를 순 있겠지만, 수업시간에 교실에서 벗어나 보건실에 가면 "A 냥붕이가 어떤 증세, 어떤 것들이 불편하여 0시부터 0시까지 보건실에 방문하여 치료받음" 같은 내용들이 기재되어 있는 확인증 내지 허가증을 보건선생님이 발급해 주었어야만 했어.

본인 중학교의 보건선생님은 그때 당시의 본인은 물론, 지금 본인의 기준에서 봐도 나름 예쁘신 분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 학교의 남학생들이 보건선생님을 보면 대개 질려 하거나 싫어 했던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지. 어지간해서는 절대로 확인증을 발급해 주지 않고 바로 돌려보낼 뿐만 아니라, 그런 어설프게 요령을 피우거나 엄살을 부리거나, 아니면 다른 모종의 이유에서 기웃거리는 치들에 대한 태도나 말투가 적잖게 까칠하고 험했었거든.

그런 선생님이었는데, 사실 지금도 본인의 어떤 면, 어떤 모습을 보고, 본인을 동정해 주었는지, 본인을 신경써 주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본인에게는 보건실에 얼마나 있건 크게 터치도 하지 않았고, 보건실에 있는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참 많이 주고 받았었던 것 같아. 주로 학급 내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직접적 가해나, 간접적 가해, 방관 등에 대해서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판단해야 될지 같은 것들이 주된 주제였던 것 같다.

예시로 하나를 들수 있겠는데, 이를테면 "본인이 A란 냥붕이한테 2만원 정도를 빌려줬고, 그 기일이 2주였으며, 그 기일인 2주가 다 지나자, 그 A란 냥붕이가 수중에 현금이 없는 상태였던 탓에, 학급 내에서 피식자의 위치에 있는 몇몇 아무개들한테 수금해서 본인에게 갚는다거나, 혹은 한학년 혹은 두학년 밑의 후배들한테 수금해서 갚는다거나 하는 상황에서 본인은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되는가" 같은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할 수 있겠네.

여하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보건선생님은 본인에게 인문학을 본격적으로 접하거나, 글을 진지하게 써보면 좋을 것 같다 이야기 해주곤 했는데, 작금에 와서는 본인은 철저한 공돌이이란 점이 소소하게 재밌는 점이라면 재밌는 점이기도 하구.

공교롭게도 그 보건선생님이랑 본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같은 방향이었어서, 퇴근과 하교를 같이했을 때도 잦았던 것도 다른 1, 2, 3학년때 담임 선생님들보다 보건선생님이랑 더 친했던, 더 기억이 많이 남을 수 밖에 없던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회고해 보건데, 중학교 다니는 3년 동안을 그나마 보건 선생님이 계셨기에 도중에 파탄나버리지 않고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완전히 절단나 망가져 버리긴 하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을 텐데 갑자기 그 분 생각이 나서 끄적거려 봤어.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