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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판사 도입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대체로 "인간 판사들이 판결을 너무 제멋대로 한다"인데

사실 이 말은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 판사들이 무슨 생각으로 판결하는지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겠다"에 더 가까워.

AI판사 주장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수식처럼 깔끔하게 떨어지는 공정성이지.

동일 범죄 동일 처벌!

성추행범이 허벅지를 만졌으면 징역 2개월 가슴을 만졌으면 징역 6개월 뷰지를 만졌으면 징역 1년 뭐 이런 식의 공정함.


그런데 말입니다.

"A가 B의 아구창을 갈구었다"

"C가 D의 아구창을 갈구었다"

위 두 사건은 같은 사건일까?

A와 C는 똑같이 처벌받는 게 맞을까?


그럴 리가 있나.


엄밀하게 말해서 하늘 아래 "동일범죄"라는 것은 없다. 유사한 행동이라도 맥락이 다르고 디테일이 다르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지위나 입장이나 여건이 다 다르겠지. 이걸 하나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공정하지 않아.

3년간 꾸준히 학교폭력에 시달리다가 돌아가신 어머니 욕하는 패드립듣고 울컥 이성 끊어져서 한 대 반격한 찐따랑 자기 기분나쁘다고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때린 사람이랑 똑같이 처벌하면 안되겠지?

자 그러면 AI판사님한테 "아구창을 갈구었다"만 입력하면 안 되고, 이런 정보도 입력해야 되겠다.

가정환경은 어때? 찢어지게 가난하고 애비는 폭력범이고 엄마는 진작 집 나갔고 보고 배운게 그것밖에 없는 놈이랑 유복하게 부족한 것 없이 자란 놈이랑 똑같이 취급하는 건 부당하지? 이것도 입력해야 되겠다.

반성은 어때? 뻔뻔하게 내가 뭘 잘못했냐고 뻗대는 놈이랑 진심으로 깊이 반성하고 다시 안 그러겠다는 놈이랑 똑같이 취급할까? 안되지. 이것도 입력해야 되겠다. 반성문 5장 쓴놈이랑 10장 쓴놈도 차별을 둬야 할까? 모르겠네. 아무튼 입력하자.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수식처럼 깔끔하게 떨어지는 공정성"이란 말은 결국 "인풋을 넣기도 전에 아웃풋이 예상가능하다" 라는 뜻이 된다. 유튜브 동영상에 싫어요 갯수랑 노딱 붙는 알고리즘도 알아내는 사람들이 AI판사 판결 알고리즘 못 알아낼까? "어렸을때 학대경험 인풋해봐야 별로 소용없음"이나 "평소 주변 사람들의 평이 좋으면 유리함 탄원서 10장에 징역 1개월씩 줄어듬" 같은 정보가 돌 것이고 그런 반쪽짜리 AI판사는 만들어봐야 결국 인간 변호사한테 휘둘릴 게 뻔하다.


걔가 먼저 때렸다구요? 아 어쩌라구요 탄원서나 존나게 모아 오세요 딴거 다 필요없음 그게 킹왕짱임. 


그니까, 유능한 변호사가 AI판사님 좋아할 인풋만 쏙쏙 뽑아 알차게 먹인 경우랑 "어.... 그냥 죽빵을 갈겼어요"로 끝나는 경우랑 당연히 결론에 차이가 나겠지. 설령 후자가 사실은 참작할 사유가 더 많았다고 해도 말이야. 인간이 떠먹여주지 않으면 AI판사님이 어떻게 알겠어? 그래서 이게 과연 인간 판사보다 공정할까?


그러니까 만약에 진짜로 인간한테 휘둘리지 않는 AI판사가 가능하려면 인풋부터 AI가 스스로 해야 돼. 그게 되려면 온세상 구석구석 한군데도 놓치지 않는 CCTV카메라로 AI판사가 사건의 전후관계는 물론이고 20년 전부터 기록된 당사자의 성장과정 등등을 전지적 시점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하겠지? 그런데 그런 세상이 오면 결국 애초에 기대했던 "수식처럼 깔끔하게 떨어지는 공정성"은 흔적도 없을 것이다. "내가 왜 징역 4년? 조두순이 11년인데? AI판사가 무슨 생각으로 판결하는지 메커니즘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돌아돌아 원점으로.


3줄요약:

1. 기자가 일부러 자극적으로 뽑아놓은 단편적인 사실관계만 보고

2. 이판결이랑 저판결이랑 웨 결론 다름? 얘가 더 나쁜놈인데 왜 쟤보다 형량 적음? 쒸익쒸익 

3. 하지 않는 똑똑한 냥붕이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