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일이다.

한 남자가 어떤 요술을 부렸는지

홀로 그의 앞 까지 도달한 것이다.


"하아악... 허어억... 카악.. 콜록.."


"이거 참 꼴이 말이 아니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맞춰보지. 마침내 해답에 도달했다고, 

이 괴물이 모든 것의 원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테지?"


"....이.. 꾸륵.... 얼.."


"이런, 말을 아끼는게 좋을거다. 구멍이란 구멍에서 끈적한게 흐르고 있지 않느냐. 

하여간 유리스의 악취미는 이해할 수 없군. 굳이 여기까지 오도록 내버려 뒀다는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건 네놈들도 마찬가지다. 들짐승조차 제 분수를 알고 몸을 사리거늘,

네놈들은 대체 뭐란 말이냐? 목숨과 맞바꿔 역병의 정체를 알아낸다 한들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지? 머리에 똥만 찬거냐?"


"얼마전 까지만 해도.."


“....”


죽어가던 남자는 용케도 인간의 육성을 흉내 내며 입을 열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이곳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는데..

대체 왜, 어째서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이냐. 네놈같은 괴물은 피도 눈물도 없단 말이냐..."


"인간이여."


“허억... 허억...”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까지 하는 것이냐."


"아아아아아아아아악!!!"


푹! 하고, 디레지에의 어깨죽지가 점토처럼 갈라졌다.

그러나 그 검격은 남자가 부릴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이었다.


"네놈을 증오한다! 죽어서도 귀신이 되어 네놈을 저주할 것이다!

언젠가 네놈이 최후를 맞이할 때 비통에 찬 원혼들이

네놈의 혐오스러운 영혼을 갈갈이 찢어버릴 것이다!

네놈이 다 빼앗았어! 네놈이! 죽어! 죽어어어어!!!!“

 

모든 것은 언젠가 풍화되어 사라지기 마련이거늘

그의 최후는 다른 무엇보다 덧없고 허무했다.

원망을 쏟아내던 열기는 어느세 한줌의 끈적한 무언가가 되어 바닥의 얼룩이 되었으니까.


"저주라..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라. 나보고 뭘 어떡하란 말이냐."

 

남자의 유언이 우스웠다.

그의 인생은 매 순간이 저주이지 않던가.

바스라지는 생명, 고름과 기포가 뒤섞인 눅진하고 축축한 얼룩.

사도 디레지에가 거쳐간 자리는 언제나 그랬다.

그는 항상 누군가의 저주를 받아왔고 누군가에게 저주를 흩뿌린다.

그것을 끝 없이 반복했다.

그러나 폭풍에 선의와 악의가 없듯,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파멸 뿐이듯,

일련의 과정에서 결여된 것은 오직 자신의 의지 뿐이다.

그것이 디레지에의 숙명이었다.


그리고, 그때가 왔다.

 

"저 괴물이... 디레지에...?"

"이 독기, 숨을... 못쉬겠어..."

"......"


디레지에는 자신을 찾아온 무리를 주시했다.


'뭔가를 뒤집어쓰고 있군.. 기묘하구나.. 그런 같잖은 힘에 기대는 것으로 나의 독기에 저항해보시겠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아니, 그렇군, 이녀석들이....'


눈 앞의 무리들이 의미하는 것을.


'무지한 이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아 닥치는대로 사지로 몰아넣은 결실이 이거란 말인가...

가련하기 짝이 없구나, 장기말 조차 되지 못해 버려진 우자들도,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줄에 매달려 이용당할 꼭두각시들도..."


디레지에는 남자의 유언을 떠올렸다.


(네놈을 증오한다! 죽어서도 귀신이 되어 네놈을 저주할 것이다!)

 

이것이 외면 뿐이었던 인생의 종착역이란 말인가?

그저 이용당할 뿐인 꼭두각시의 양분으로서? 


'클클클.. 네년은 이것이 운명이라 말하고 싶은 게로구나..

 

멸시와 혐오의 눈초리에 아랑곳하지 않게 된 건 언제부터였던가,

죽어가는 이의 저주를 비웃음으로 흘려넘기게 된 건 언제부터였던가.


체념.


그것은 디레지에가 이 통제할 수 없는 저주에 오랜시간 저항하여 얻은 결론이었다.

언제부터 였을까? 지금에 와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눈 앞의 꼭두각시 칼날을 목도한 순간,

그의 가슴 속에서 실체조차 불명확한 무언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네놈들은, 내 생각 따위, 기분 따위 궁금하지도 않겠지. 

탓하지 않는다. 무슨 말을 더해도 이해받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지금만큼은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구나.’

 

"가소로운 힘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군..

여기까지 온것은, 힐더의 가호 덕분인가.. 힐더의 꼭두각시 놈들.."

 

아아 디레지에,

운명에 버림받은 가련한 짐승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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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디레지에 관련해서 단편 만화 그려보려고 써놨던 시나리오 일부임.


뉴던 이전의 이지적이고 무기력한 디레지에와


뉴던 이후의 분노로 가득찬 디레지에 사이에 성격적 변화를 부여하면


더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