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진짜 길어서 미리 하는 3줄 요약


1. 게임사는 유저에게 접속 동기와 이유를 줘야 함

2. 지금까지는 헬파밍과 그 헬을 위한 입장재료 수급이 동기와 이유였음

3. 입장재료 수급과 헬이 사라진 지금 다른 방식으로 만든 동기와 이유가 장비 성장임


게임사는 유저가 지속적으로 게임에 접속할 이유를 만들어야 함. 그렇지 않은 게임은 전부 죽었음


게임이라는 것도 일종의 루틴이라 한 번 접속이 끊어지면 그 뒤로도 쭉 안 하는 게 그리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거든.


요즘 게임사의 대세 BM으로 자리잡은 배틀 패스 시스템의 목적도 사실 그쪽임.


1. 경험치를 모으면 큰 재화를 준다는 미끼를 던짐

2. 그런데 그 경험치를 쌓기 위한 제한이 일일 / 주간 단위로 존재함

3. 결국 유저는 재화를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접속을 하고 게임을 하게 됨


이제는 장르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온라인 게임에 자리 잡은 일일 퀘스트 시스템 역시 매일 접속하게 해서 유저의 일상 루틴에 게임이 자연스레 들어가게 유도하는 거임



그런데 그래서, 그렇게 접속하게만 하면 되나? 아니지. 게임 접속에 재미를 느끼는 유저는 없고 게임사는 단순히 유저가 접속만 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플레이도 하게 만들어야 함


꾸준히 접속하고 플레이를 하도록 유도하고 동기를 제시하고 이유를 만드는 게 게임사의 의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부문임


안톤 이후의 던파는 그걸 헬로 제시했던 게임임. 랜덤하게 드랍되는 고밸류 장비 아이템을 먹고 싶게 함으로서 유저들을 헬로 향하게 만들었음. 헬을 돌기 위한 입장비는 점점 유저의 매몰 비용이 되고, 그 매몰 비용을 돌아보는 유저는 "아, 이렇게 많이 돌았으니 내가 이건 꼭 먹어야지" 하게 됨


에픽 조각 시스템 역시 어떻게 보면 이 매몰 비용의 수치화를 목적으로 한 게 아닐까 싶다. 내가 헬을 얼마나 돌았는지가 직관적인 게이지와 퍼센트로 얼추 드러나니 그 매몰 비용을 생각해서라도 파밍 중간 단계에 안착할 수 없게 만든 거지


그리고 헬은 입장에도 재화가 들어감. 그리고 그 재화는 맨땅에서 깡으로 재료를 사서 돌기엔 진짜 말도 안되게 비쌈. 하지만 에픽 소울을 상점에서 초대장으로 교환할 수 있게 하고, 그 에픽 소울을 레이드 상점에서 수급하게 함으로서 유저에게 레이드를 도는 동기도 만드는 거였지


그런데 이 헬 시스템은 문제가 드러남. 헬을 돌기 위해서는 초대장이 필요한데 초대장을 수급하는 가장 싼 방법이 레이드를 가는 거고 레이드를 가기 위해서는 헬에서 나오는 에픽이 필요하다는 순환 구조임.


캐릭터 하나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수많은 배럭이 레이드를 돌고 그 레이드 재화로 초대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배럭은 어디 땅에서 솟아나나? 배럭의 첫 삽은 어떻게 뜨지?


결국 이 순환 구조 때문에 던파의 뉴비는 입문해서 만렙 찍으면 주는 초대장 다 쓰고 나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지고 손가락만 쪽쪽 빨다가 탈던합니다 ㅅㄱ 테크를 타게 됨.


이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김성욱이 만들었던 게 정가 시스템임. 이론상으로는 헬을 돌지 않아도 어썰트 모드 -> 미명의 틈 -> 테이베르스 계단을 타고 에픽 파밍이 가능하게 만든 건데 이게 잘 먹혔으면 김성욱이 흑역사가 안 됐겠지.


할렘 시즌 파밍 구조의 문제는 두 가지인데 파밍 던전이 계단 하나당 하나 밖에 없어서 장비 한개당 파밍 기간은 짧아도 그걸 졸업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과 접속의 동기 부여가 없었다는 거임.


파밍 기간 이야기는 스킵하고 동기 부여 쪽을 이야기하자면 테이베르스는 주간 던전임. 그리고 이때의 천체헬은 이전 시즌의 헬에 비해서 진짜 너어어어무 비쌌고 너어어어무 창렬했음. 천체헬에서 상급 에픽인 테이픽을 먹고 싶은데 떨어지는 건 하위 에픽인 할렘 에픽인 경우가 대다수였음.


결국 천체헬은 거기에 올인하는 사람한테 "누가 칼 들고 협박해서 거기 도시는 건가요?" 하고 묻고 싶어질 만큼 창렬 그 자체였고 실질 파밍처는 주간 던전인 테이베르스 하나로 끝이었음. 그럼 뭐가 문제가 된다?


목요일 점검 끝나면 테이 3회 파티를 찾아가서 테이베르스를 돔. 금요일에 또 테이베르스를 돔. 그러고 나면 던파를 할 이유가 전혀 없음. 접속해서 뭘 할 건데? 진짜 할 게 없음. 토탈에서 광부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음.


이런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시즌 7의  일반 파밍처는 일일 던전으로 냈음. 그러면서 헬의 입지를 대폭 강화하면서 정가는 삭제했고, 신화 장비를 냄으로서 유저들이 헬을 계속해서 돌게 유도했음.


할렘 시즌에서 변화로 인해 불거진 문제점을 봉합하기 위해 과거로 회귀한 셈인데, 이러면 또 할렘에서 타파하고자 한 문제점이 불거지게 됨. 파밍의 순환 구조. "신지에서도 에픽은 나오니까 문제없지 않음?" 이라고 하는 사람은 진짜 그 신지만으로 졸업이 가능했는지를 되새겨보자.


시즌 8에서 일반 던전 메타를 도입한 배경이 바로 이거임. 주간 던전 위주의 정가제도, 헬 위주의 드랍제도 전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매일매일 접속할 이유가 있지만 동시에 파밍 던전 입장만으로도 재화가 소모되는 일은 없도록 일던 메타로 간 거지.


그럼 일던 메타의 문제는 뭘까? 일던에서 지금까지처럼 완성된 에픽을 모을 수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동기 부여가 되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졸업도 확 단축됨. 그때부터는 또 유저가 접속할 이유가 사라지게 됨.


그걸 해결하기 위한 이번 시즌의 접속 동기가 바로 장비 성장이었다고 생각함. 장비를 한 번 먹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던전을 돌며 재료 장비를 구하고 그걸 성장 재료로 쓰게 만들려 한 거지.


결론적으로 에픽 파밍 자체의 허들과 컨텐츠 입문의 허들은 낮추더라도 졸업까지 가는 시간은 길게 잡고자 하는 게 장비 성장이고, 이걸 포기하면 자연히 다른 쪽... 그러니까 파밍 자체의 허들이 높아질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