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스텟은 지능, 공격력은 독공. 딜에는 많이 하자가 있을지언정, 범위만큼은 제법 넓고, 홀딩형 기술도 많은,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오브젝트 데미지 세팅 (소위 자연의 수호자 세팅) 특화 캐릭터.
 
윤명진 전 디렉터 현 네오플 대표이사가 야심차게 기획했던, 그러나 후하게 쳐 줘도 호평다운 호평을 해주기 힘들었던 8시즌의 초창기, 기계라는 이유로 감전을 약점 상태이상으로 들고 나온 온갖 보스들. 한때, 데카 가이던스 디바이스라는 장비와 시너지를 내며 파괴된 죽은 자의 성을 철의 무덤으로 만들며 이트레녹 저리가라 할 수준의 위엄을 내보이며, 모든 던전을 휩쓸고 다니던, 그러나 존나게 위대하신 윤명진 개호로잡씨발허벌두창새끼의 징벌적 밸런스 패치로 결전 무기를 너프당한 소울과 함께 뒷방 퇴물 늙다리 신세가 되어버린, 누군가의 표현처럼 킹에서 호킹이 되어버린, 업보를 정면으로 받아들인 참으로 병신같은 씹스러운 직업.
 
한때 왕이었다기엔 너무나 초라한, 그리고 추하기 그지없는 몰골의 캐릭터. 아수라. 그런 아수라를, 나는 현실에서, 그것도 아주 가까이서 보고 있었다.
 
우선 필자는, 요양원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는, 이른바 '요공' 이라는 것을 밝히고 시작하겠다. 규약 상 복무지를 밝힐 순 없으나, 광주전남 지역의 어딘가라고만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별 것 없다. 그저... 이런 일도 있었구나. 하고 스스로 되새기기 위해 쓰는 것 뿐이다.

 
'千態萬象' 이라는 말, 혹시 들어보았는가. 실제로 이런 말이 있다. 천태만상. 천 가지의 형태와 만 가지의 형상. 세상의 모든 사물이, 결코 하나와 같지 않고, 서로 모양과 모습이 다르지 아니하던가. 설령, 아무리 비슷한 직업일지라도. 실제로, 같은 홀리오더가 공대에 들어오더라도 평범한 8비트 탈의 홀리오더와 시계태엽을 등짝에 맨 노알라 룩의 홀리오더가 주는 감정이 다른 것 처럼, 같은 귀검사일지라도 4.4 노커스텀 한자닉 버서커가 주는 묘한 감정 -그마저도 편견으로 뒤틀린 시선이라기엔 너무나 과학적인- 과 그를 제외한 나머지 직업이 주는 첫인상의 차이처럼 말이다.
 
요양원도 이와 비슷한 논조로 이를 적용할 수 있다. 치매에 걸린 노인들은, 얼핏 보기에는 다들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 주간보호 시설이 아닌, 요양 시설에서 장기적으로 지내며 차도를 관찰하고, 보호사와 간호 인력 -때때로 차출되는 사회복무요원- 과 함께 병원도 가고, 처방도 받고, 누군가가 챙겨주는 약을 먹으며, 때에 따라 입원까지 해야 하는, 혼자서는 단 하루도, 아니, 어쩌면 단 몇시간도 버티지 못할, 다 늙고 퇴색된, 검고 차게 식어버린 별의 마지막 모습처럼, 그렇게 지내는 노인들의 모습.
 
하지만, 중성자별, 백색왜성, 흑색왜성, 행성상 성운, 초거성과 초신성... 별의 최후를 이야기하는 각기 다른 수많은 이름들이 존재하듯, 치매에 사로잡혀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주변인에게도 고통을 주는 노인들을 보자면, 다 같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치매가 그렇게 심하지 않은, 경미한 증상의 노인들도 있는 법이다. 당신들께서는 나를 기억해주신다. 알아봐주시고, 반겨주신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오면 '잘 쉬다 왔느냐?' 하고 웃으시며 물어봐주시고, 자제분들이 당신께 직접 드린 간식거리도 아낌없이 나눠주시는 등, 정말 손주처럼 잘 대해주신다. 실은, 너무나 감사드린다. 설령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이런 경우에서 보람을 얻으며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부디 한 분이라도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사셨으면 하시며, 마침내 이러한 시설의 보호가 필요 없어지고, 다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분들만 계셨더라면 '요양원 공익은 별로 힘들지 않다.' 라는 말이 나오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러나 냉혹하고 현실적이게도, 치매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병이 아닌 것이다.
 
15분에 한 번씩 똑같은 질문을 하는 노인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것이 차라리 양반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굉장히 유순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 귀찮긴 하다. '화장실이 어디 있수?' 라는 사소한 질문. 그러나 이 질문도, 몇날 며칠을, 그것도 하루에 몇 번씩 답하다 보면 상당히 골치가 아플 때가 많다. 혹시 당신께서 그렇게 소중히 여기시던 작은 자수정이 박힌 반지가 니미 씨발 정마반이었나? 싶은 생각도 들며 짜증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당신의 순수한 어린아이같은 미소를 보면, 스스로 퍽 부끄러운 감정이 들며, 커스텀 장비 앞에서 사르르 녹아버리는 큐브보다도 더 빠르게 짜증이 녹아 없어지고, 그 자리를 죄스러움이 채우는 것이었다.
 
밥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시설의 모든 곳을 불편한 몸으로 휠체어를 끌고 다니며 배회하는 이가 있다. 농담이 아니고, 진짜 이 틀딱새끼 귀때기에 배회하는 혼령의 향로가 달려있나 싶은 수준을 넘어, '어쩌면 그 향로의 주인인 배회하는 혼령이 이 틀딱의 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동분서주하며 시설 전체를 배회하고 다닌다.

아마, 요양시설이 2층이고 실내라 망정이지, 아마 1층에 마당이 딸린 곳에서 지냈다면 이 틀딱새끼는 아마 지 휠체어를 연못에 꼴아박아서 로터스 밥이 되거나, 아니면 차도로 나가서 덤프트럭에 꼴아박거나 해서, 진작 땅울림 쳐맞은 40세 레이븐마냥 싸늘한 주검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감히 말해볼 수 있다. 물론, 난 그 틀딱을 위해 써줄 코인따위는 없다.
 
소리지르는 것이 일상인 노인도 있다. 평소에는 조용조용하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정말 아주 조금이라도 수가 틀리면, 사람의 성질을 긁는 징징거리는 히스테리를 부리는 노인이다. 좀 극단적으로 비유해서, 격룡 브루트 한참 줘패고 잘 진행하다가, 작살패턴 실패해서 다음칸으로 넘어가버렸다고 욕 한사발 박고 그대로 공탈 조져버리는 미친새끼인 것이다.

목청은 또 얼마나 큰지, 씨발 내가 지금 요양원에 있는지 광룡 권역에 있는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차라리 한 명만 그 개지랄비명발작을 일으키면 그러려니 하고 다른 권역... 아니, 요양원의 다른 구역으로 어떻게든 몸을 피신하고, 거기서 노인분들을 도우며 시간을 보내겠지만, 개씨발 미친새끼들이 곳곳에서 소리를 질러대는 꼬락서니를 보고있으면 '아니씨발 광룡만 세마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혹은, 극도로 공격성이 높아지는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절, PCR 검사를 위해 죄스럽지만서도 어쩔 수 없이 어르신들의 코에 그 길다란 막대를 넣어야 할 때, 온갖 욕이란 욕은 다 하면서, 살을 잡아 뜯고, 꼬집고, 물어뜯고, 주먹으로 마구 때리던 틀딱새끼가 하나 있었다. 요양 보호사 분들도 막을 수 없었고, 넘어짐 방지를 위해 휠체어에 채워둔 보조장치도 마구 손으로 찢어버리려 하고, 손에 잡히는 모든 물건을 내던지는, 아마 버서커가 치매가 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로 정신이 매우 온전치 못한 개 씹스러운 미친 틀딱새끼가 있었다.

아직도 그 씨발년이 물고 잘근잘근 씹어서 왼팔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던 그 때가 생각난다. 사람 물어뜯어서 피를 내놓고는 분충 참피새끼마냥 역으로 욕을 하며 '테챠아아아악! 오마에! 똥닌겐놈은 이런 운치같은 짓을 그만두는데샤아아아악!' 하면서 씩씩거리는 꼴을 보면, '씨발 능지박살치매틀딱 씹련이 뒤질거면 곱게좀 빨리 쳐 뒤지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물론, 소소한 복수로, 노인들의 머리를 말리는 과정에서 달궈진 헤어드라이어의 끝부분을 인두처럼 사용해서 몇 차례 지져본적이 있으나, 나중에 우연히 간호과장으로부터 그 틀딱의 머리에 화상같아보이는 자국이 남았다며, 보호사들에게 씻길 때 너무 뜨거운 물을 쓰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하는 것을 듣고 나서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나 때문에 피해를 볼 보호사분들은 무슨 죄인가?

그리고, 설날 이후 다시 찾은 요양원에선 그 인간이 보이지 않았다. 듣자 하니, 공격성을 감당하지 못하고,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합의 하에 퇴소했다고 하더라. 드디어 꺼지는구나 싶어 날아갈 듯 기뻤었다. 미안한 감정은 하나도 없었고, 해방감과 즐거움, 쾌락만이 온 몸을 감싸고 휘돌았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싶은 생각이 들 법도 했지만, 이미 마음의 어딘가가 망가질대로 망가진 것인지는 몰라도, 오히려 나는 그 죽음을 직접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할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를 비롯한 다른 요양 보호사분들도 다 같은 감정이었던 눈치여서, 조금은 안심했다. 나만 이런게 아니구나 싶어서.
 
그 외에도, 앞서 말한 천태만상이라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 요양원이라는 장소답게, 다양한 유형의 노인들이 있다. 치매 등의 지병이 극심하여 가만히 누워만 있어야 하는, 코인 하나 쓰고 다음 생 살러 가야 하는 노인들.

문을 닫는 행위에 집착하며, 문, 창문, 심지어 변기뚜껑까지 닫아버리려고 발작하며, 다른 노인들을 위한 접근성이라는 명목으로 개방해둔 장소라 해도 막무가내로 휠체어를 끌고 다니며 문을 닫으려고 개지랄염병좆씹발작을 하는 노인.

수건에 강력한 집착을 보이며, 노란 수건만 보면 무조건 자기 거라고 징징 울며 챙기려 들어, 다른 노인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하는 황금고블린같은 개미친 수건페티시 틀딱.

5분에 한번씩 화장실에 가겠다며 휠체어에서 내려달라며 우는 소리를 하며 사람을 들들 볶아대는 요실금변실금기억실금 치매틀딱.

돚거련 저리가라 할 정도로 도벽이 패시브라서 젓가락도 훔치고 숟가락도 훔치고 컵도 훔치고 볼펜도 훔치고 심지어 리모컨도 훔치고 필자의 블루투스 이어폰까지 훔쳐간, 그래놓고도 발뺌은 세계제일인 존나 때려죽이고싶은 손버릇 개좆같은 틀딱련.

인지능력이 박살나서 바닥에 주저앉아 장판이나 뜯고, 그러다가 그냥 그대로 바닥에 오줌을 싸 버리고, 가끔 벽에다 똥칠하며 할카스캇물을 만들고, 그래서 이게 뭐냐며 일으켜 세우려 하거나, 조금이라도 큰 소리를 내면 씨발 넨마스터 사자후보다 한 다섯배는 큰 소리로 징징 짜며 뒤져서 [풍화된 뼛조각 1EA] 가 된 지 오래인 지 애미를 찾는 틀딱 등, 감히 이곳에 다 적지도 못할 정도로 다양한 유형의 인간들이 있는 곳이, 바로 요양원인 것이다.

개씨발 여기서 공익 노릇을 한 지 벌써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씨발 이런 꼬락서니를 다 보고 있자면 아벤투스에서 티아매트가 깔아놓은 장판 위에 올라가있는 기분이 든다. 앰창 씨발 이성이 갈려나가서 위장자가 될거같다고 지금.
 
그리고, 여기서 오늘의 주인공이 나온다. 현실판 틀딱 아수라. 아수라가 그의 이름이나 별명은 아니지만, 나는 그저 그를 그렇게 부른다. 아수라라고 불리기에, 너무나 안성맞춤인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맹인이었다. 태어날 때 부터 맹인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눈이 서서히 그 기능을 잃어가더니, 결국엔 그 빛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하였다. 빛이 잠시 머문 흔적만이 남은 것 같은 그 흐리멍텅한, 초점을 잃은 안타까운 두 눈을 보고 있자면, 차라리 그 눈을 안대로 덮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그는 이렇게 되기 전, 다양한 일들을 했었다고 한다. 한때는 한 마을의 이장까지 하기도 했었고, 마을의 중대사를 도맡아 처리했었으며, 농사일에도 굉장히 능했다.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 또한 대부분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망령들의 이름이다.- 경운기가 준비 되었느냐, 트락터에 기름 이빠이 채웠냐, 파종할 때 아니냐, 나가서 일해야지 뭣하냐, 김매러 가자, 저기 들개들 쫓아버리러 가자 등, 전혀 때와 상황에 맞지 않는, 문자 그대로 '환각에 의한 헛소리' 를 하곤 한다.
 
문제는, 그 말을... 침대에 누워서, 혹은 휠체어에 앉은 상태에서, 그것도 귀가 떨어질 정도의 큰 소리로 말을 하는 것이 문제다. 그것도, 정말 듣기 싫을 정도의, 큰 소리로.
 
나는 그럴 때마다 그분을 진정시켜야 한다. 몇 번이고 말해야 한다. 우리가 다 했노라고, 이장님 편하게 쉬시라고 우리가 먼저 다 씨도 뿌리고 거름도 주고 다 해놓았노라고. 그렇게 해야 한다.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어르신이 누구고, 뭐하는 사람이고, 지금 무엇 때문에 요양원 신세를 져야 하는지, 몇 번을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차라리, 과거에 사로잡힌 그의 정신에 작은 안식을 주기 위해, 선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개 씨발 지금 개좆병신이 된 아수라의 성능을 외면하고 옛날에 데카끼고 무력화 순식간에 뽑아내는 짤을 보여주며 약을 파는 것 처럼.
 
그리고 눈이 안 보이는 주제에 배회는 또 얼마나 씨발스럽게 해대는지, 휠체어에 앉혀놓으면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바퀴로 손을 가져가더니 이트레녹이 팽이돌리면서 벽에 쿵쿵 부딪히면서 다니는 것 마냥 앞뒤로 쉼없이 배회하며 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간혹, 휠체어에 앉은 다른 노인과 부딪혀서 언성이 높아지며, 욕설과 함께 시비라도 걸리면, 적반하장으로 '내가 누군줄 알고 다들 이러는거냐?' 하며 또 좆나게 시끄러운 소리로 개씨발썅갈라내는 침을 튀기며 언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물론, 그 것을 수습하는 건 요양보호사분들과 내가 하는 것이다. 일단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아 뒷바퀴를 들고 뒤로 뺀 다음, '누가 나를 이렇게 잡아 움직이냐!' 하고 씨발 파동해제를 노쿨로 갈기는것마냥 소리를 질러대면, 어르신이 탄 휠체어가 낭떠러지나 높은 바위 위에 있어서 뭐에 걸린 상태였고, 조금만 더 앞으로 갔다간 그대로 떨어질 것 같아서, 뒤로 빼 드렸다고 하거나, 논두렁으로 떨어질 것 같아서 빼드렸다며, 어두운 귀에 입을 바짝 가져다대고 소리를 지르듯 큰 소리로 거짓말을 해주면, 금새 진정하며 허허 웃는다.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조금 심하게 들긴 한다. 이런 덩치만 큰 어린아이같은 노인에게 화를 내는 내 자신이 옳은가 하며,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른 수많은 노인들도 생각이 난다.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동안 내가 겪었던 걸 생각하면 미안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극히 모순적인 기분이라는 표현 외에는 할 말이 없다.
 
아무튼, 이렇게 맹인에, 치매에, 그리고 환각을 보기도 하는 듯, 멀어버린 눈을 파르르 떨며 허공을 가리키며 저기 저 개잡놈들이 나락베어놓은 거 다 가져간다며 소리를 치는 모습이나, 엘마의 보지에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빗방울이 창문을 거칠게 때리고 있는데도, 귀까지 먹어가는지 그런건 듣지도 못하고 무작정 밖으로 나가서 일을 하자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차라리 그냥 죽어버리는 것이 모두에게 이득인 삶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에게도, 당신의 가족에게도, 그리고 당신, 스스로께도.
 
그러다가, 우연히 그 노인과 단 둘만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 찾아왔었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걸친, 햇살은 아직 따가울지라도 선선한 바람이 그 고통을 덜어주는 어느 날이었다. 날씨도 좋겠다, 당신께서는 외출을 하고 싶어하셨다. 안 될 이유는 없었고, 건강적인 측면에서도 햇빛을 쐬며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더 좋을 것이라고 판단한 보호사분들도, 당신의 주장을 받아들이셨다. 물론, 그분과 함께 나가는 것은 나였다. 공익한테 무슨 뭐 저항할 방법이 있었겠는가. 난 순순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귀찮긴 하지만, 함께 바깥 공기라도 쐴 겸, 싱그러운 녹음이 우거진 풀밭 위로, 휠체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당신께서는, 말 없이 달달한 간식을 드시며 풀과 나무가 주는 활력을, 햇빛이 주는 따사로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계셨었다. 아주 평화롭게.
나는 그때, 당신께서 그토록 차분하시고, 또 평화로웠는지 알 턱이 없었다. 그리고, 당신께서 내게 말을 걸어줄 때에서야, 돚구리가 하루종일 씨스퍼를 외치며 븜쩍븜쩍 날아다니던 정신이, 상던 보스보다 523배는 더 좆같고 정신없었던 그 시절의 스타크좌가 무빙으로 다이아몬드 스탭을 쳐밟으며 내 대가리에 총알을 쳐박던 그때만큼이나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던 그 정신이, 잠깐이지만, 아주 잠깐이지만, 그 망령된 기운을 떨쳐내고 맑은 기운을 회복하셨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때문에 고생이 많다. 미안타. 참으로 미안타.'
당신께서, 온전한 정신의 당신께서, 나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갈라지고 쉰 목소리로, 이가 빠져 우물거리기까지 하는, 참으로 안쓰럽기 그지 없는 목소리로, 나에게 전하는 사과였다.

순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죄책감. 강렬한 죄책감이, 나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말조차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던 찰나, 당신께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셨다. 치매에 걸려 여러 사람 고생시켰으니 천국은 안될 것 같다는 농담 아닌 농담부터, 내 고향도 물어보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했다. 단 둘이서 하는 대화였다. 언제 깨져 무너질 지 모르는 살얼음판같은 대화였지만, 그럼에도 오롯이, 온전하고 맑은 정신간의 대화였다.

그리고, 다시 들어갈 시간이 되었다.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한 나는, 문득 당신께 질문을 불쑥 던져보았었다.
'어르신은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
아차, 실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것이라, 내가 묻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당신의 소원을 들어드릴 수도 없는 주제에 무슨 정신으로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인가, 하고 스스로를 질책하던 찰나, 당신께선 어렵사리 입을 여셨다.
'농사해야제. 나락두 베구... 쌀밥도 한솥 만들고 닭도 잡아서 우리 야들 맥여야지...'

그랬다. 그분의 모든 망령은... 아니, 망령되는 행동처럼 보였던 모든 것은, 정신이 온전치 않은 와중에도 자식 헤아리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부모님의 내리사랑은, 나의 우둔하기 그지없는 지레짐작보다, 훨씬, 훨씬 더 위대하고, 커다란 것이었다. 모성, 부성, 부모님의 끝없는, 그리고 무조건적인 내리사랑, 그 어느 골짜기보다도 깊고, 그 어느 산봉우리보다 높은, 자식을 생각하는 그 마음. 그 마음을, 뇌를 좀먹는 치매의 악령조차 감히 훼손할 수 없는 지고의 마음을, 눈 앞에서 직접 본 것이었다.

나는 괜히 코끝이 시려왔고, 눈에 먼지가 들어간 것 같았다. 그런 부모의 마음도 모르고 철없이 투정이나 부리던 과거의 나에 대한 부끄러움일까, 아니면 이토록 순수한 영혼으로 살아오신 어르신에게 모질게 대한 현재의 나에 대한 부끄러움일까. 그렇게 내가 어르신을 모시고 다시 들어갈 때, 문득 당신께선 나에게 무어라 말하셨었다.
'학생, 농사 지을 줄 알어?'
농사라, 내가 남븝만했던 시절, 학교 텃밭에서 작은 작물들이나 기르며 호미질이나 조금 했던 그 시절 외에는, 농기구의 농 자도 접해본 적이 없는 삶이었다. 나히다의 농을 접했으면 더 접했지.
'...아뇨, 잘 모릅니다.'
'그려...? 어허이... 참, 난중에 모나 심고 농사나 좀 할때 같이꺼정 하고 싶었는디... 허허...'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시고 계실 줄은, 정말로 몰랐다. 나는 그저, '알겠습니다. 나중에 꼭...' 이런 말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대답해줄 뿐이었다. 당신의 온전하던 정신이 사라져버리고, 다시 치매가 뇌를 잠식할 때 까지...

지금은 2월. 2월 초. 작년 말부터 시작된 추운 겨울이, 끝을 보이는 시기이다.

저번 달, 몇 주간 보이지 않아 입원이라도 하신 건가 싶어, 보호사 분들께 여쭈어봤더니, 당신께서는 작년 겨울 말,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병원에서 숨을 거두셨다고 했다. 병원에서 돌아가셨다고, 이제 남은 유품도 다 정리해드렸다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먼저 가셨구나. 봄이 되면 꼭 씨를 제때 뿌려야 넉넉하게 거둘 수 있다고 하시던 분이, 봄이 오는 건 보지도 못하고 가시는구나. 싶어 참 얄궃으면서도, 참으로 잡다한 온갖 생각이 들었다. 유족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 자식들은 당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손주들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당신을 기억하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도, 한 가지 확신이 드는 것이 있었다. 좋은 곳에서, 봄이 찾아온 그곳에서, 홀로 씨를 뿌리고, 김을 매며, 자식들을 기다리는 당신이 있으리라고, 하염없이 아들딸들, 손자 손주들을 기다리면서도, 내심 늦게늦게 오길 바라며, 나락을 베고, 겨를 털어낸 갓 거둬들인 쌀로, 고슬고슬한 흰쌀밥을 지어놓고 기다리는, 그 모습이 눈에 선하는 듯 했다.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은 없었지만, 농기구를 잡는 것을 본 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 모습이 감히 모두 예상된다고, 그리 말할 수 있었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계실까. 아직 추우니까, 땅이 녹길 기다리며 좋은 씨앗들을 골라내고 계실까. 만약, 꿈에 그 분이 나온다면, 그리고 나를 알아보신다면, 필시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학생~ 아수라 요즘 좋아?'
'아뇨. 요즘 좆구려요. 개병신캐릭이에요.'
'뭐여 이 씨벌? 에에잉! 좆같은 게임!'
어르신의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밸패는 필수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이원만씨? 잘 생각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제발... 디렉터님... 믿고있습니다 지금... 자수싸개는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