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 피가 흩날린다. 왕궁을 막는 기사들의 처참한 비명소리와 칼에 베여 흩날리는 피가 사방으로 흩어져 바닥을 적셨다. 또각, 또각, 피의 궁궐을 걷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고 숨어있던 황제는 정체불명의 검사에게 들통나게 된다.

"...너, 넌..?! 누구냐! 대체 누구길래 이 제국에게 이런 짓을 하는거냐!"

달빛의 조명 아래 정체불명의 검사는 여성이었다. 흰 백발을 흩날리며 선글라스로 눈만 대충 가린 것처럼 보인 여성은 아무 말 않고 남성의 목에 흰 칼을 겨누곤 짧은 몇 마디를 뱉는다.

"레온 하인리히 3세, 당신을 죽이려고 오늘까지 난 살아왔어."

여성은 오로지 남성을 죽이기 위해 살아왔단 말에 누가 고용했냐는 생각부터 들었다. 얼마나 괘씸하고 간도 크면서 겁을 상실한 고용주인지 모르겠지만, 분노를 이기지 못 해 여성에게 호통을 쳤다.

"누구냐! 대체 누가 이 몸을 노리는거냐! 그 고용주보다 더 비싼 값을... 헉?!"

흰 칼이 목을 넘어 턱 밑까지 천천히 올라오는 걸 느끼고 긴장의 끈을 꽉 부여잡으려 했다. 여성은 황제의 고간을 구두로 콱 짓밟고 자기 할 말을 이어갔다.

"고용주는 없어. 이건 오로지 내 의지.  썩어빠진 이 나라를 개건하려면, 네 목부터 쳐내야 하니 그러는 것일 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크아악!"


황제는 여성에게 반박을 하려했지만, 찰나의 순간에 눈 뜨고 왼쪽 눈이 칼에 긁혀졌다. 베인 눈에서 피가 흐르고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한 손으로 베인 눈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꽉 움켜쥔다. 할 말을 하려던 그는 검은 칼이 목을 노리는 것을 보고 긴장의 끈을 부여잡아 마치 시간이라도 정지시킨 것처럼 온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은 말을 할 자격이 없어. 이미 쓰레기같은 마인드로 희생당한 자들을 생각하지도 않았겠지. 더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최후의 최후까지 고통과 절규에 시달리다 죽어야 마땅해. 왜냐면 실험체들은 그렇게 지내왔으니까."

분노에 미간을 꽉 구기며 역으로 황제측에서 복수의 불꽃을 불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복수의 불꽃은 사그라들었다. 여성의 싸늘하면서 칼과 같은 날카로운 시선이 복수의 불꽃을 꺼버린 것이었다. 공포에 몸을 덜덜 떨며 두 손 모아 빌기 시작했다.

"..."

여성은 그럼에도 아무런 표정변화가 없었다. 남성의 모습은 마치 삶에 어마어마한 미련이 남았지만 끝내  저승사자를 보고 생을 거두는 걸 늦춰달라는 미련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차가운 시선으로 무구한 시간을 내려보며 달빛이 점점 암흑에 물들어져 가 그녀의 표정을 완전히 감췄을 때 입이 열렸다.

"벗어, 추한 자존심이라도 챙기자고 속옷같은 거로 가릴 생각 말고 전부. 살고 싶다면 그거에 맞는 성의라도 보여야 하지 않나?"

정말 황제에겐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제국의 황제에게 이런 명령을 내릴 수가 있단 말인가? 씁쓸하고 비참한 자신의 상황에 입술 콱 깨물고 옷을 벗어내렸다. 알몸이 된 황제를 보고도 그녀의 표정은 어땠는지 어둠 속에선 그 어느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와이어에게 목이 묶여버린 그는 그녀가 움직이는대로 끌려갈 뿐이었다. 말 한마디라도 더 뱉었다간 목이 썰릴 것 같은 공포에 순종하며 따라가던 그 때, 어느 책상에 걸터앉은 여성을 달빛이 다시 비춰주며 보게 된다.

"...여, 여기는...!"

제국의 황제의 좌석이 칼날에 조각조각 긁혀져 폐허가 된 모습에 그녀가 앉아 다리를 꼬았다. 손가락으로 동물 대하듯 까딱거리던 손짓에 황제는 끌려올 뿐이었다.

"당신은 이제 개야. 개만도 못한 신세를 줘야 하지만, 마지막 용서라 생각해. 네가 노예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기억하겠지? 시작해."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개처럼 기어가 그녀의 구두를 입으로 물어 벗겨냈다. 수많은 호위무사들의 피가 구두 안쪽까지 스며들어 피에 적셔진 발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다 눈을 질끈 감고 혀를 내밀어 만찬을 즐기는 개처럼 핥아댔다.

'큭, 크윽... 젠장, 젠장...! 일개 노예년이었던건가?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알지?'

여성은 턱을 괴고 복수의 대상이던 남자가 자신의 발 밑에서 발이나 핥고 있는 모습에 묘한 배덕감을 느꼈다. 찢어죽여도 모자랄 남자,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비참하게 죽여야 할 남자, 철천지원수라는 단어로도 부족할 진정한 원수였던 그가 입을 열었다.

"주, 주인님... 다 했습니다.."

주인님, 그 세글자는 그녀를 이상하게 만들 것 같았다. 얼마나 더 비참한 상황을 만들지 오만가지 상상을 다 해봐도 시원찮았다. 와이어로 만들어진 목줄을 끌어당기며 발기되어버린 자지를 보곤 혐오감을 드러낸다.

"이 상황에도 욕구에 찌들어져있다니. 당신은 역시 개만도 못 해."

그녀의 혐오감에 배덕감이 하늘을 뚫었다. 세상에 어느 여성이 제국의 황제인 그에게 이런 행태를 보인단 말인가? 그에게는 있을수도, 있어서도 안될 일이었지만 오히려 처음 느껴보는 배덕감에 더 흥분한 남성기를 본 여성은 장갑낀 손으로 그걸 잡더니 주물러보기도, 어루만져 보기도, 때로는 튕기면서 쳐보기도 한다.

"읏, 헉.. 앗... 주, 주인.. 님."

황제가 자신의 밑이라는 걸 어필하듯, 자신의 양 발을 손으로 남성기를 비벼댄다. 갑작스러운 장면에 당황함이 표정에서 드러났지만, 이미 그는 쾌락의 노예가 되어있어 묵묵히 지 욕구를 해결할 뿐이어도 그녀는 그가 더욱 의심스러웠다.

'...뭐지? 이 남자, 대체 무슨 짓...'

자신의 발을 움직이는 횟수가 많아지더니 애매하게 남아있던 핏자국에게 하얀 정액을 잔뜩 덮어씌웠다. 점점 자세를 잡더니 자신의 몸을 혀에 애정을 잔뜩 담아 따뜻한 애무를 해주더니 타협이 안 되는 얼음과 같던 몸이 따뜻하게 녹아내리는 게 느껴졌다.

"자, 잠깐.. 명령이야. 하지... 아흣."


여성의 신체를 쪽쪽 빨아먹는 쾌감을 처음 느껴 본 그녀는 다리를 천천히 꼬아댔다. 불타는 쾌락의 눈빛을 보인 황제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 여성의 두 팔을 위로 높게 들어올리더니 하얀 겨드랑이에 애정을 담아 입을 잔뜩 맞추며 혀를 굴려댔다. 간지럼에 몸을 움찔거리던 여성이 그를 밀어낸다.

"주인님... 이 몸을 거부하지 말아. 내 죄는 속죄받지 못 하고 최후엔 죽는다 해도, 당신에게 죽는다면.. 그걸로 만족할거야. 이 배덕감, 중독될 것 같아. 황제고 뭐고, 당신의 개로 평생을 살아도 좋을 이 쾌감..."

그가 바라는 것은 오히려 쾌감이었다. 그렇다면... 진정 원하는 복수는 그가 비참해지는 것, 자리에서 일어난 여성은 와이어로 감긴 그의 목줄을 풀어주곤 뒤를 보였다.

"잘 있어. 당신이 원하는 걸 하나 이뤄서 기분 나쁘지만, ...이정도 복수라면 아버지도 만족하시겠지."

그를 뒤로 한 채 그녀는 제 갈 길을 나섰다. 그가 여성을 붙잡으려고 그녀를 쫓아오려는 순간, 거대한 참격이 세 번 순식간에 일어났고, 남자의 몸은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아버지, 죄송해요. 더 비참하게 죽였어야 했는데 그러질 않았어요. ...한 때는 아버지가 충성하던 사람이었으니까.'

폐허가 된 제국에서 홀로 나온 여성은 그 이후 행적이 없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제국을 멸망시켰는지 아라드의 주민들 사이에선 끝없는 탐정심을 자극했지만 끝내 진실은 그녀만 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