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혹시 운명이라는 걸 믿는가?



부동의 연못에는 아무런 소리 없이 조용했다.

수백 명의 천계연합군이 숨을 죽인 채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한쪽에는 서늘한 냉기를 두른 아름다운 여인.  부동의 연못을 지키는 수호자이자 이번 전투에서 패배한 자.


다른 한쪽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노란 빛 헤어 핀을 끼고, 짙은 녹색 빛 옷을 차려입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

그러나 그 장비들은 낯설지 않다. 그 년은 이미 죽어버린걸까. 이제와서 후회해도 늦었다.



특이하게도 그 이는 공격할 의사가 없는 것인지, 혹은 사유가 있는 것인지 아직 전투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대는 선택하기 어렵더라도, 항복할 수도 있었다. "

"인정하지요."


"14번."

"나는 그대와 이미 14번이나 전투했었지. 그리고 그대는 14번 모두 패퇴했었고. 이것도 기회인데 조금 솔직히 얘기해볼까. 나는 그대를 잡아서 팔다리 힘줄을 다 끊어내고 노예로 만들고 싶다네."



평범한 일상대화를 하듯이, 그이가 중얼거린다. 



지나가던 이가 듣는다면 오늘은 비가 올지도 모르겠구나, 라는 듯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귀검사, 도적, 음유시인까지.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여성의 주위를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 앞에서 말하고 있는 이가 명령한다면, 당장에라도 이 연못을 산산조각 내고 잔혹한 학살극을 벌일 것 처럼.


' •그저 관심없이 지나친다면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이만한 힘을 숨기고 있다니.'


게르다는 내심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이곳을 지나친다면 아버지께 다다르게 될테니. 최후의 보루는 그녀였으므로.


'나를 노예로 만들고 싶다라. 진심일까. 농일까. 아니면 단순히 시간끌기인걸까...'


한기의 게르다.

그녀는 용들 사이에서는 스카사의 냉기를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자, 스카사와 부녀지간 같은 관계를 가진 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명을 따라, 자신을 향해 오는 이들을 살해했다. 바칼님의 계획이 실행된 것도 이미 오래전, 저들은 아직 그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많은 목숨이 사라져가던 중.


눈 앞의 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대처는 신속했고, 또 날카로웠다.


순식간에 다른 용인들과 연계가 끊겨나갔다. 보급선이 무너졌다. 요새들이 점령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지킬 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처음은 자아없는 도구이자 칼날으로.

그리고 이제는 휘둘리는 칼날에서

휘두르는 칼날으로 변하는 자.



여러 이명을 가지고 있으나, 그 무엇도 눈 앞의 이 사람을 지칭할 단어는 없을 것이다.

게르다는 자각하지 못하였으나 공포에 질렸다.


이 공포는 곧 다가올지도 모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일까.

아버지의 적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책임감에 대한 공포일까.

아니면 그의 말처럼 노예가 되어버릴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공포일까.


그녀는 애써 후들거리려는 무릎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린다.

언제나 차분하고 당당할 것.

지금이야말로 의연히 대처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하다못해 노예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눈앞의 이에 대해서는 여러 소문이 파다했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조차 소문에 따라 제각각이었으며, 남자든 여자든 성별에 상관없는 미쳐버린 색마라는 소문까지도. 최악의 상황을 전제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게르다는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있었기에 의도치 않은 위안을 가졌다.



"그대는 스카사님께 다가갈 수 없어요."

"그런 소리는 몇번 쯤 반복해야 하는걸까"

별 개소리를 들었다는 듯 그가 핀잔한다.



"살을 에는 듯한 봄바람이든, 벗어날 수 없는 추위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혹한이든. 모두 통하지 않았을텐데."


게르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할지라도, 그대를 순순히 여기를 지나치게 둘 수 없습니다."


눈 앞의 사람은 자신따위는 아무런 변수가 되지 않는건지, 묵묵히 대화를 이어가나, 다른 조와의 소통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게르다는 먼저 선공을 취할 수 없었다. 분명 그는 이곳을 바라보고 있지도 않는데, 무수한 시선들이, 수백수천개가 그녀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착...착각일꺼야.'

'착각이어야만 해...'

게르다는 그녀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마치 어두운 방안에서 벽을 짚어 보이지 않는 앞길을 찾아나가듯이, 게르다는 간신히 말문을 다시금 열었다.


"이번 전투에 참여한 용인들은 이곳말고도 아직 여덟곳이상 남았습니다. 아무리 그대가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막대한 시간과 인력이 들겠지요."


딱히 부정은 하지않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렇긴 하지. 겁화가 차오르는걸 보고있자면 요즘 공대를 터트릴까 충동이 들더군."


"그들을 냉병기가 아니라 대화와 관용을 통해 타협하시죠. 만일 그 대가가 충분하더라면, 그리고 그대가 충분한 능력을 바칼님께 보일 수 있더라면, 저들도 손해볼 필요 없이 지나칠 수 있을 것입니다. 허나 만일 그러한 조치없이 잔혹하게 다루겠다면..."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 까지 더 격렬하게 저항하겠다는 거겠지."


게르다는 자신의 말이 끊겼음에 약간의 불쾌함을 느꼈으나, 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지 못했다.


그러나 게르다는 이 대화에서 약간의 희망을 가졌다.

눈앞의 사람은 단순히 모든 것을 굴복시키려는 포악한 이가 아니었다. 어느정도 상식이 통하며, 말이 통하는 이였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패배할 일 없이 이 상황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얼마가 지났을까.

아버지를 포함한 거룡들이 모두 깨어났다.

얼마가 더 지났을까.



이 전장에 소식이 전해져온다.


[그린팀이 전격의 스테이츠를 처치했습니다.]



이윽고 눈앞의 이가 내뱉는다.


"죽어라."


그것은 겨울에 내리는 첫 눈처럼 가볍게 부동의 연못에 내려앉았다.

너무나 평범한 목소리였다. 게르다는 그의 말을 순간적으로 알아듣지 못했다. 당황한 그녀는 그저 눈을 깜빡거렸다.



그이가 서서히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았다.

게르다는 처음으로 그의 눈을 제대로 바라본 것 같았다.


"게르다. 그대는 자신의 소신대로, 그리고 명령대로 이 장소를 지키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피해도, 그대 용족들의 피해도 있었지. 물론 용족들은 내가 책임져야할 목숨은 아니었고. 그들이 후퇴를 하든, 전멸을 하든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겠지..."



"그러나 게르다. 그대는 책임이 있지 않은가? 쓰러진 용인전사는 자네와 같은 처지였네. 우리의 길목을 막고 있던 용족들도, 그대와 비슷한 블로나와 님파, 에클레어 등도 말이지. 그 전원이 그대의 동족이고, 이 전쟁에서는 그대가 책임져야할 목숨들이었어."



조그마한 한숨소리가 들린다.



"방금 그대는 피해는 볼대로 봐놓고서, 이제와서 자신의 목숨이, 자신의 임무가 실패하리라 짐작되니, 제발 그냥 지나쳐달라고. 자신을 살려달라고. 공포에 질려 애원했다네. 이제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해했는가?"



"나... 나는... 그런 의도로 말한게..."


"게르다. 그대는 순수하고 또 냉혹하며 아름다운 여인이 맞다. 그러나 그대를 더 자세히 아는 이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자신이 닥친 상황이 아닐때만 이성적이고 냉혈한 이 라고."



그가 부동의 연못 중앙에 다다르고.

연못을 포위하고 있던 이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었다.


수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모험가의 선언이 떨어졌다.



"그대는 기록되기를, 자신의 동족을 배신하였으며, 또한 추하게 전투를 회피하려고 한 비겁자이고, 끝내 자신을 바쳐가면서 까지 목숨을 이어갈려고 한 더러운 이라고 될 것이다. 이는 이 곳에서의 전투가 끝난 뒤, 나의 이름에 힘 입어 퍼져나갈 것이고, 그대는 이 소문에 대해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을 것이다."



"그토록이나 바라던 대로 그대의 목숨을 여기서 취하지는 않겠네. 그러나 이러한 소문이 퍼지고도 그대가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에도 그대가? 그 고귀하고 흠잡을 곳 없다는 그대가? 나를 경멸하더라도 상관없다. 곧 그대는 노예가 될테니."



모험가가 무심하게 무기를 에열한다.

망토가 펄럭이면서, 주위의 눈이 휘날린다.

눈꽃들은 여전히 바람에 휘날리고 있으나, 이는 곧 봄바람에 녹아버릴 눈일테지.



이제는 그녀와 전투를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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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다 정신붕괴 암컷노예화해서 목줄로 묶어놓은다음에 이미 텅 빈 눈동자로 천장을 계속 쳐다보면서 망연자실한 눈길로 멍때리길래 눈앞에 스카사 머리 가져다 놓고 울고 있는 게르다가 보고싶구나...

그런 게르다를 발로 짓밟으면서 더한 굴욕감을 주고 싶구나...

본캐가 4포식1격노라서 입은거 포식장비묘사
+ 14클이라서 14회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