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빛이 가득한 바칼의 성 복도를 미려한 두 여인이 거닐고 있다

한 여인은 이 성에 있는게 당연한 듯 한 뿔과 날개를 가진
최전방에서 가장 많은 인간을 죽였고 지금도 죽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죽여갈 드래곤나이트의 모습

허나 다른 한 여인은 용과 인간이 전쟁중인 작금 이곳에 있어서는 안될...


인간이었다


그렇게 두 여인이 복도를 걸어온지 얼마나 지났을까


"흐흐.. 오랜만에 만나러 가는거지?"


지루함을 참지 못했던걸까
용의 특징을 가진 여인 에클레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이런 시기에 가족과 만나는걸 허락 해주는게 바칼님이 널 얼마나 특별하게 여기시는건진 알지?"


경박하고 가벼운, 허나 은은하게 느껴지는 광포함은 그녀가 인간을 개미보듯 하는 용족이라는걸 본능적으로 느끼게했다


"...예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은은한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 여인은 가족을 보러가는 즐거움을 숨기지 않는듯 실 웃는 표정으로, 은혜를 표하고 있으니

이는 그저 자존심과 존엄성을 버린것이었다
마치 용족의 개가된 것 처럼

그렇게 인간 여인이 자신의 복종심을 내보이던 중


"아 맞다 근데 얼마전에 니가 알려준 산둥성이 밑에 매복하고 있는 인간부대 정보 그거 잘못됐더라?"


에클레어의 갑작스러운 발언은 잠시 기쁜맘에 들떠있던 인간 여인의 손에 작은 땀방울을 맺히게했다


"죄송합니다 분명 2주전에는 선발대가 해당 좌표에 있는것으로 확인했으나... 예상치 못한 폭우로 인해 3일전에 위치를 이동한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3일전이면 나한테 알려줄 시간이 넉넉했을텐데... 왜 전갈이 도착을 안했던거지?"


나라를 위해 스파이로서 용족의 개가되길 선택한 인간 여인은 자신의 입장을 되뇌이고 되뇌이며 정갈하나 처절한 변명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당시 에클레어님께서 이터널파이어 본대 습격에 출정하셨던 것을 제가 미처 모르고 전령을 산둥성이 선발대 습격 장소로 보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에클레어는 살짝 고민하듯 턱을 매만지더니


"흠... 내가 너한테 말을 안하고 움직였던가? 그럼 모를 수 있지 그러려니 하자고"


라는 다소 생각없어 보이는 대답을 내놓았으며 이를 들은 인간 여인은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며 속으로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그 뒤로 얼마나 더 지났을까 인간 여인이 긴장감에 혼미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됐을 즈음
두 여인은 하얀 꽃으로 장식된 작고 빨간 문 앞에 도착했다


"다 왔네? 참 니가 가족들이랑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거 내가 봐야되는거 알지?"

"예 알고있습니다"


표면적으로나마 인간을 배신했다는 입장이기에 이러한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는 자신이 너무나 한탄스러웠지만
이 또한 나라를 위한 일이라 다시한 번 다짐하며 천천히 작은 문에 노크를 했다

똑 똑 똑


"엄마??"

"응 엄마왔어 우리 아가"


긴장된 분위기 속 어울리지 않는 앳된 목소리에
여인은 모든 고뇌가 사라지는 듯 한 행복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함무니 하라부지 엄마왔대! 문 열어저! 나 손 안다아!"

"허허.. 우리 강아지 잠깐만 기다려보거라"


끼이이익

천천히 열리는 문
점차 뚜렷해지는 아버님의 실루엣
그 뒤로 보이는 어머님과 남편 그리고 너무나 사랑하는 우리 아가의 모습


"아버님 어머님 다녀왔..."




순간

무엇이 지나갔는지 보지 못하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하고
왜 시야가 붉어졌는지 느끼지 못했다


"아 그러고보니 너가 잘못 알려준 정보로 죽은 우리 드래곤나이트 대원수가 세 명이더라?"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눈앞에는 아버님과 이어져있는 시퍼런 창대가 보였다


"으히히히 등가교환 알지? 딱 세 명만 바꾸자! 용인족 셋이랑 인간 셋 교환이면 그래도 니가 이득이네 크크큭"


그리고 창대는 아버님과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어머님 그리고 남편과 연달아 이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빌어먹을 상황 속에서

껴들 수 없었고
말릴 수 없었으며
대들 수 없었다

나라를 위해 각오는 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한다

인간 여인은 굳게 다짐하며 주먹을 쥔채 그저 무덤덤하게 보기만 했다


"으... 문하고 방 되게 더러워졌네 그래도 애는 남았으니까 청소는 니가.."


에클레어는 마치 기분나쁜 벌레를 잡은듯한 모습으로 말을 하던 중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아 니가 보낸 전령도 죽었는데 그거 포함을 안시켰네"


두근.. 두근..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저벅 저벅


안돼 아이만큼은 하지만 나라를 위해선 참아야하는데 난 어떻게 해야하지? 제발 아이만큼은 죽이지 말아줘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이가 아무 힘 없이 쓰러지기 시작하고


문에 붙어있던 하얀 꽃이 바닥에 떨어져 붉은 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야 이러면 숫자 딱맞네 그치?? 으헤헤"


아이가.. 작디 작은 몸을 가진 사랑스러운 아이가 붉게 물들어간다


"아.. 켈록... 어..엄마...."


무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인간 여인은 천천히 아이에게 걸어가 무릎을 꿇고 머리에 손을 올리고

딱딱한 목소리로
한마디 한마디를 건내기 시작했다


"아가야"
(아가야)

"살려달라 빌기라도 했으면 혹시 몰랐을터인데"
(살려주지 못한 이 어미가 미안하구나)

"내 아이지만 미련하여 죽게되었구나"
(어미의 고집에 너가 죽게되었구나)

"나중에라도 쓸데가 있을까 싶었거늘"
(전쟁이 끝나면 꼭 함께 나가고자 하였거늘)

"못난 아이야 이 어미를 욕되게 하지 말고"
(사랑하는 내 아이야 부디 어미를 용서치말고)

"빨리 떠나거라"
(부디 편히가거라)



그렇게 감지 못 한 작은 눈을 사글피 감겨주고


"정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에클레어님"

"그래 알아서 치우고 빨리 튀어와라 이따 바칼님 뵈러 가야되니까"


에클레어가 떠난 뒷 모습을 보며
두 주먹을 꽉 쥔체 부릅 노려볼 뿐이었다
아니 그저.. 그 외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을 뿐이었다

그런 인간 여인의 뒤에 스러져버린 작은 아이의 감긴 눈가엔
어째서인지 손 모양의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붉게 물들어 떨어진 하얀 꽃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