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남자일까. 사춘기 시절이든 언제든 내 성정체성은 무엇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스스로 정하는 것이리라 믿었다.

 애초에 그런 의문이 지속적으로 드는 것은 보통 대다수의 사람들이 겪는 것이 아님을 알았을 적에.

 내가 어릴 적과 평소에 했던 수많은 생각들이 성전환증에 대한 판단 기준에 포함됨을 알았을 적에.

 깊은 마음 속에서 차라리 거짓말이라고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들 그런다고, 남들도 그런다고, 네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친구들 사이에서 가끔씩 성소수자 관련 이야기가, 게이가, 레즈가, 트렌스젠더, 정치적 올바름 등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갈 때 움찔거리면서도 함께 혐오스럽다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응에 동조하면서 나는,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요 근래 나 스스로를 알아보며 인정할 때, 그러면서 내가 바라는 모습들을, 정확히는 내가 죽어 그런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다면 거리낌 없이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결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소망을 내가 바라고 있을 때. 닿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내가 바라기에 부질 없는 노력을 하고 있을 때.

 끔찍한 절망감과 우울감이 나를 덮친다.

 '차라리 망상 같은 것이라 치료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이게 망상이라면 이 고통과 우울함은 어디서 기원하나, 너무나 억울하다'고 느낀다.

 6월 초에 예정된 검사가 두렵다. 그 검사의 결과가 F.640이든 아니든 둘 다 각각의 기쁨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차라리 망상이었다면 하는 마음과 제발 망상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둘 다 있다.

 나도 화장하고 싶어, 나도 언니 오빠라고 부르고, 언니 누나라 불리고 싶어, 화장도 하고 싶고 치마니 레깅스니 다 입고 싶어. 나 논바이너리 맞아? 논 바이너리도 아닌 것 같아. 내가 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못 하기에 포기한 거 아냐? 너 정말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대해짐을 원하지 않니? 성별정정과 사회적으로 여성으로서 받아들여지는 것들, 화장이나 복장 등등은 못 해도 성확정수술만은 받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그저 내 몸과 현실에 지레 겁먹고 포기한 거 아니니? 나는 누굴 좋아해?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여자아이들을 동경의 시선을 바라본 거 아니야? 진짜 여자를 좋아하는 거지? 근데 왜 고등학교 시절 남자였던 친구가 뽀뽀했을 때 좋아했어. 왜 너도 뽀뽀했어? 왜 다른 친구가 여자친구를 사귀었을 때 질투했어? 왜 내가 더 잘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왜? 왜? 왜?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사실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내 특기도, 내 성적 지향도... 정체성도... 명확한 게 하나도 없어...

 오늘 잠에 들면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는데...

 나는 왜?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 얘기를 늦은 새벽녘 해 뜨기 직전 술김에서야 하는 내가 진짜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