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붕이들아 다들 반갑다. 오늘 소개할 전차는 영국에서 개발한 중보병전차 처칠이다. 전차 이름이 처칠이니 윈스턴 처칠의 조상인 존 처칠을 따왔다는 설이 있지만 양산 취소 위기에서 A22를 구한 사람이 윈스턴 처칠이라 붙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개발사


(A20 프로젝트)


1939년 영국은 기존의 마틸다II의 후계차량이 될 신형 중보병전차를 개발하고 있었다. A20으로 명명된 시안은 기존 마틸다를 더 발전시켜 2파운더 혹은 3인치 곡사포를 탑재하거나 정,측면 60mm 장갑을 지니며 너필드 리버티 엔진을 탑재하려 한다. 하지만 본질은 제1차세계대전 당시 참호 돌파용 전차를 현대화 시킨것이므로 시대에 뒤쳐진 물건이었다. 이후 프랑스 전역과 됭케르크 철수작전을 겪으며 A20의 전면수정이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A20의 개량형인 A22 전차가 100mm 이상의 장갑과 20km/h 이상의 속력 2파운더 또는 그 이상의 주포를 탑재 가능이라는 요구사항이 생겼고 1941년 6월 복스홀 자동차에서 첫 시제 전차가 완성되었다. 복스홀의 시제 전차는 영국육군의 요구사항을 모두 만족시켰을 뿐 아니라 2m의 잠수 도하능력을 가지고 있어 이후 있을 유럽전역에서 유용하게 쓸거라 판단되어 총리인 처칠에 의해 영국육군 장비중 최우선 양산 품목으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른 감사로 복스홀에서는 전차의 이름을 처칠로 지었다고 한다.


특징

처칠의 경우 좌측통행을 하는 영국이라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으며 Ц 형식의 핸들로 조항을 한다. 기어의 경우 메리트-브라운사에서 생산한 유성기어로 전진 4단 후진 1단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기어박스의 경우 엔진 뒤에 위치한다. 차동조향을 사용하기 때문에 좌우의 무한궤도를 따로 기동시킬 수 있어 제자리선회가 가능했다. 바퀴가 굉장히 많아 이 때문에 조종이 불편할 것 같지만 단단한 지형에서는 몇개의 바퀴가 땅에 닿지않게 떠서 조종하기 쉽도록 접지면적을 줄였고, 약한 지반에서는 차체가 땅에 묻히며 모든 바퀴가 닿아 접지면적을 늘려 조종이 쉽게 되어 있다. 계기판은 운전수 오른쪽에 위치해 있으며 기존에 차량을 많이 생산했던 복스홀사의 노하우에 따라 읽기 쉽게 만들어졌다. 


위에 설명한 내용만으로는 처칠이 좋은 전차라고 생각하겠지만 처칠은 제2차세계대전 전차 중 치악의 거주성을 자랑하는 전차중 하나이다. 보통은 소련 전차가 거주성이 나쁜걸로 유명하지만 실제 내부 공간 수치를 볼 경우 처칠이 닭장 수준으로 악랄하다. 물론 크롬웰 또한 끔찍한 거주성을 보야준다 특히 포탑 내부의 경우 매우 좁아 탑재 가능한 준비탄이 적었고 탄약고의 위치가 포탑하부 차체 측면에 위치되어있다. 특히 탄약수의 자리가 매우 협소하며 전차병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한다.



(순서대로 영국, 유럽대륙, 미국의 철도 건설한계)(소련은 미국과 조금 크거나 작은 차이)

처칠이 이 정도로 끔찍한 내부 구조를 가지게 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데 무게는 해상수송을 해야하며 크기는 철도수송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영국은 미국이 LST 함정(Landing Ship Tank/전차상륙함) 를 대량생산 하기 전까지 40톤 이상의 전차는 수송이 어려웠고 철도의 경우 열차 폭이 좁고 터널의 크기가 작아 이를 맞추기 위해 40톤에 폭이 좁고 높이가 낮은 대신 접지면적을 유지하기 위해 길죽한 전차를 만들어야 했다. (훗날 폭제한으로 전차 성능이 제한되는 것보다 전차 수송차를 새로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 해서 센추리온과 블랙프린스 부터는 폭 제한이 없어진다.) 


폭은 3.25m로 6호 전차 티거나 5호 전차 판터, KV-1과 비슷하지만, 차체 길이 7.44m, 높이 2.78m로 저 세 전차중 어떤 전차보다도 낮고 길다.


넓은 궤도와 비좀은 내부로 인해 처칠의 해치는 6개가 생겼는데 차체에 4개 포탑에 2개가 있다. 당시 타국의 전차의 경우 차체 천장에 2개 포탑에 2~3개가 있는게 일반적이지만 처칠의 경우 차체천장에 운전수, 부조종수 해치가 있고 비좁은 내부공간을 고려해 차체 측면에 좌우로 해치를 만들었다. 물론 이곳은 약점이긴 하지만 장갑이 타 부위에 비해 약하진 않다. 포탑상부에 해치가 2개가 있으며, 전차장 해치는 잠망경이 달려있다. 포탑 내부가 비좁다보니 탈출 할때 상당히 불편 했다고 한다.


전차 승무원들의 시야 확보를 위해 군들라흐식 잠망경의 영국 생산버전인 빅커스 잠망경을 장착했고 위치는 조종수 쪽 2개, 부조종수 및 차체 기관총수 에 1개, 포탑의 경우 포수용 탄약수용 하나씩 설치되어있다. 초기형 처칠의 경우 큐폴라가 따로 없으며 회전 가능한 잠망경이 해치에 달려있는 수준이라 큐폴라가 탑재된 독일 전차에 비해 시야 확보가 불리했다.(이것 또한 전고 2.5미터 제한으로 못달았다. 이 문제는 처칠VII에서 해결된다.)


1943년 기존 처칠을 개량하여 장갑과 구동계를 강화하고 서스펜션을 개량후 뒤 포탑 형상을 바꾼 것이 A22F로 이후 처칠VII로 불리게 된다. 하지만 엔진은 그대로였고 그 이유는 강화엔진은 더 크고 무겁기 때문이었다. 처칠VII는 1945년 A42로 재분류된다. 하지만 초기형에서 27km/h의 속도를 냈지만 최후기형에서는 20km/h로 떨어지는 등 추가 장갑으로 인한 중량증가에 따른 기동력저하가 컸고 결국 영국군의 전술개녑 변화로 보병전차가 퇴출되었다. 


한가지 일화로는 이런 그지같은 설계과정을 모를 수 밖에 없던 티거 에이스인 오토 카리우스의 경우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서 처칠에 대한 소감을 남겼는데 "왜 저렇게 디자인 했는지 모르겠다"라고 평가했다.


처칠의 실전

처칠의 첫 실전은 1942년 8월 이루어진 디에프 상륙작전이었다. 그러나 시작 부터 엉성했던 작전계획 손발이 서로 맞지 않은 육해공 병사들의 경험 부족으로 인해 처칠의 첫 실전은 참패를 겪게된다. 그러나 투입된 30대의 처칠은 처칠 특유의 중장갑과 독일군의 빈약한 화력으로 실제로 격파된 전차는 극소수였고 대다수는 침수로 인한 고장 또는 궤도 파손으로 인해 버려졌다. 

(디에프 상륙작전 당시 격파된 캐나다 육군 소속 처칠III)

이후 처칠은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활약하게 되는데 2차 엘 알라메인 전투 당시 처칠III 중전차 6대가 투입되었는데 당시 처칠III의 6파운드 주포로는 모든 독일군 전차를 상대하기에 충분했고 튼튼한 장갑을 바탕으로 88mm 대공포를 제외한 모든 대전차 포를 방어하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전투가 끝날 당시 격파된 처칠은 단 1대 였으며 적 대전차포에 집중포화를 맞고 버틴 처칠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튀니지 전투에서는 전차가 절대 못 올라올거라는 경사를 넘어와서 독일군 88mm 포대를 짓밟아버리고 독일군을 도륙낸 사례가 있다. 또 다른 사례로는 튀니지 제펠자파에서 티커 H1을 6파운더로 무력화 시켜 노획한 사례가 있다.


(튀니지 전투에 투입된 영국 육군 소속 처칠 IV와 해당 전차에 피격된 이후 영국군에 노획된 티거 131호차)

이후 이런 전적을 바탕으로 처칠의 생산과 개량이 지속되었고 이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도 영국군의 선봉으로 출전하게 된다 상륙작전 시작 직전에 개발된 처칠VII의 경우 정면 장갑 152mm의 중장갑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전쟁 후반으로 가서 처칠의 장점인 중장갑도 무적으로 남을수는 없었다. 블루코트 작전 당시 처칠 VII 11대가 야크트티거 3대의 기습으로 전멸한 사례가 있다.


처칠의 형식과 개량형

처칠의 형식과 개량형이 상당히 많기에 유명하거나 미디어에서 많이 등장한 형식만 소개함


처칠III

1941년 8월 부터 생산을 시작한 모델로 주포를 기존 2파운더에서 6파운더로 교체하고 처칠 중에서 최초로 실전에 투입된 전차였다. 투입된 전장은 디에프 상륙작전과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였고 두 전투에서 처칠의 평가는 극과 극이였다. 인리스티드에서 사용가능한 처칠 또한 이 형식이다.


처칠 IV


처칠 중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버전으로 포탑을 주조형을 바꾼것 말고는 기존 처칠III와 거의 동일하다 튀니지 전투에서 131호 티거를 제압한 형식이다. 일부 차량은 6파운더를 미국제 75mm M3 주포로 교체한 형식인 NA75가 있다. 


(NA75의 모습)


처칠VII


구형 전차 개수형을 제외한 처칠의 마지막으로 기존 6파운더를 QF 75mm로 교체 하고 정면 장갑이 150mm으로 늘린 형식이다. 전면 사각형의 조종수 관측창 좌우 해치 기관총 마운트를 원형으로 교체하였다. 다른 버전으로는 QF 95mm 박겨포 탑재형이 있다.


개량형

A43 블랙 프린스

제2차세계대전 당시 고질적인 화력 부족에 시달리던 처칠의 화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1943년에 시작된 프로젝트로 프로젝트의 이름은 슈퍼처칠이였고 목표는 17파운더를 탑재하는것이였다. 처칠의 개발사인 복스홀 사에서 프로젝트를 당담하였고 기존 처칠 VII를 기반으로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기존 처칠의 고직적인 문제인 차체폭을 대폭 늘렸고 기존 사각형 포탑에서 육각형 신형 포탑을 탑재하였다. 포탑 정면 장갑의 경우 기존 152mm 였지만 포방패와 이중방호가 되는 부분이 있어 기존 처칠보다 방어력이 더 상승하였다. (저 겹치는 부분은 8,8 cm 71구경장 주포의 APCBC 탄을 완벽하게 방호가 가능함)


그러나 방호력이 상승하고 중량도 50톤에 돌입하였지만 엔진의 개량이 전무하여 도로에서 17km/h의 속도가 나왔다. 결정적으로는 1945년을 기준으로 이미 17파운더를 탑재한 셔먼 파이어플라이, A30 챌린저 같은 전차가 배치되어 있었고 당시 블랙 프린스 보다 우수한 성능을 가진 센추리온 전차가 개발되어 시제형 6대를 만들고 프로젝트가 폐지되어 버렸다. 남은 6대의 시제형 중에서 단 1대만 보빙턴 박물관에서 보관중이다.


처칠 크로커다일

처칠의 개량형 중에서 가장 유명한 놈으로 배틀필드V에 등장한걸로 유명하다. 화염방사전차로 총 800대가 개조되었다. 처칠 Mk.VII 및 VIII 차량을 기반으로 기관총 대신 사거리 210m짜리 화염방사기를 장착하였다. 참고로 이 화염방사기의 원형은 영국군이 개발한 대공화염방사기인 라곤다 화염방사기를 개조한 버전이다. (역시 세상 이상한 물건은 전부 영국이 만든다.) 개조킷의 경우 비교적 설치가 간단하게 되어있어 야전부대에서도 교체가 가능했다. 800대중 250대는 대일전을 위해 남겨두었지만 일본이 핵 두방에 뻗어버리면서 사용되지는 않았다. 

화염방사 전차는 위험성이 다 똑같았는데 피탄시 내부연료가 유폭될 확률이 매우 높았는데 그것을 타개하고자 퍼시 호바트 소장의 아이디어로(퍼니전차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퍼시 호버트가 맞다.) 수레마냥 연료탱크를 끌고 다니게 되었다. 연료탱크의 경우 1510리터(400갤런)의 질소연료가 탑재되었고 연료탱크가 피탄 당할 경우 분리가 가능했다. 그러나 연료탱크에도 처칠 본체에 달하는 120mm의 장갑을 설치하였고 보병용 화염방사기와 달리 총에 맞아 유폭하는 경우가 매우 적었다. 가뜩이나 매우 단단한 처칠인데 독일군 입장에서는 전차 상대하느라 바쁜데 약점인 연료탱크를 부수려면 대전차화기를 제외한 모든 화기에 면역이었기에 독일군은 불지옥을 경험하게 되었다. 


크로커다일의 경우 1510리터의 연료를 소비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80초였다. 이것은 보병용 화염방사기에 비하면 매우 긴 시간이였고 연료를 전부 소비했다고 해도 후방에 가서 다쓴 연료탱크를 떼어내고 예비 연료탱크를 연결하면 끝이였기에 저선 재투입이 빨랐다.


일화로는 독일군 중대가 숨어있는 헛간에 화염방사기를 쏘았는데 하필 이때 연료밸브가 고장나버려 1510리터의 연료를 퍼부어버렸다고 한다. 헛간은 흔적도 없이 다 타버렸고 살아남은 소수의 독일군은 지옥도를 경험하고는 힘이 빠져 기어가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또 다른 일화로는 진지에서 농성을 버리고 있던 독일군에게 항복을 권유하지만 듣지 않자 크로커다일을 끌고와 진지 앞에 있던 커다란 나무를 순식간에 태워버리자 농성을 버리던 독일군이 기겁을 하고 항복하였다고 한다.


한줄요약


필자후기

이제 영국제 장비 많으니깐 영국트리 추가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