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MBTFj6uGYr4?si=7z3klRR3zEdNJAws


몽고메리가 오기 전까지 영국군 수뇌부는 마냥 파벌눈치싸움에 무능했고 자유프랑스군은 절묘하게 낙지 아프리카 군단의 목에 칼날을 겨누고 있었다


엘 가잘라 전투(2차 엘 알라메인 전투 직전에 벌어진 전투)에서 베르 하킴 기지를 요새화하고 드러앉은 자유프랑스 1여단은 롬멜의 가잘라 공세 한복판에 남게되지만 3달 넘게 북아프리카 군단 후방에서 버티고 버티다가 항복하는 대신 직접 퇴로를 뚫고 탈출하며 영국군 수뇌부는 자유프랑스군 1여단이 그렇게 격렬하게 싸우는 동안 전차 500대 가량을 날려먹으며 그걸 잠자코 지켜만 보고 있었음 


여담으로 자유프랑스군 1여단장 쾨니히는 자신의 아내 수잔 트레버스를 베르 하킴 기지에 데리고 왔었는데 이 사람이 이때 쾨니히의 전용차를 몰고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의 십자포화를 뚫고 탈출에 성공했으며 이후 프랑스 외인부대 최초의 외국적 여성 부대원이 되었음 


참고로 영국군이 거는 공세마다 실패한 이유가 기갑제대가 기병대에서 나온 병과라 일반 보병 병과를 등한시했고 전차만 집중적으로 편제해 운용했기 때문임. 반대로 독일군은 전차와 보병, 포병, 공병, 공군의 합동전술로 재미를 많이 본 나머지 기존의 기갑사단 편제에서 1개 기갑중대를 빼서 보병의 비율을 늘리고 사단의 지휘체계와 보급체계를 간략화 한 '경사단'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운용하고 이 성공적인 운용 전훈을 바탕으로 1943년 후반부터 이 경사단의 편제가 독일군의 표준 기갑사단 편제로 자리잡음. 


몽고메리는 자신의 센 고집을 이용해서 전공서열 부심이건 남아프리카 부심이건 기갑부심이건 기병부심이건 인도군 출신 틀딱부심이건 영국공군부심이건 상관없이 다 장성들 대가리를 깨부숴서 군말없이 서로 협동해서 작전하도록 하고 얼른 전과를 내라고 닦달하던 처칠에게까지 가운뎃 손가락을 먹이면서까지 철저히 빌드업을 해서 2차 엘 알라메인 전투와 '사막의 쥐'들의 오명을 위업으로 바꾸는 짓거리를 할 수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