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한적했던 수도회의 게시판 앞을 시끄럽게 메우는 견습 수녀들의 소란스러운 수다는 푸른 성십자회의 수녀, 클라릿사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평소 담화를 나누기 좋아했던 그녀들을 기억하고 있던 클라릿사는, 수도회의 기본 예절을 다시금 


일깨워주려 그녀들에게 조용히 접근했다.


"왜 이리 소란스러운 건가요?" 


"아, 그게. 저기…."


길게 땋은 보랏빛 머리칼, 기도하는 여신의 눈을 쏙 빼닮은 감은 눈, 기품있는 행동. 여러 방면에서 우수함을 뽐내는 그녀는


견습 수녀들에게 있어 존경의 대상이었다. 기쁜 마음에 할 말을 잃어버린다거나, 말을 허투루 뱉는 경우는 자주 있었으나, 그녀


앞의 견습 수녀들의 행동은 앞서 말한 '존경'이 아닌, '경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흐응.'


감이 좋은 그녀가 이를 놓칠리 만무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그녀는 견습 수녀들 중 


가장 경험이 많은 선임 수녀의 오른손을 자신의 양 손으로 덥석 쥐어 잡으며 말했다.


"OO 수녀님, 지난 번 저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아…, 아으…."


선임 수녀의 당찬 얼굴에 어느덧 핏기가 점점 사라지고 두려움만이 남는다. 견습 수녀 무리들은 클라릿사의 돌발행동에

 

잠시 놀라는 듯 하더니, 이내 기도할 시간이 되었다거나 볼 일이 생겼다는 말을 남기고는 대장을 잃은 고블린 무리처럼 부랴부랴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선임 수녀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 것 처럼, 자그맣게 눈물이 맺힌 상태로 이리저리 떨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몰아붙일 생각은 없다. 클라릿사가 궁금한 것은 선임 수녀의 우는 얼굴이 아니었으므로, 적당히 추궁하고 적당히 달래어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클라릿사는 마주 잡은 한 손을 떼고는 작은 동물 같은 선임 수녀의 손등을 가볍게 탁, 하고 두드리듯이 


치며 말했다.


"자, 고해성사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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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시크릿'


선임 수녀에게서 빼앗은 교서의 진짜 모습이었다. 간단한 마법으로 평범한 교서의 모습으로 위장한 것이었는데, 아카테스에게 도움을 받아 


위장 마법을 풀어 본래의 모습으로 바꿔놓은 것은 다름 아닌 여성향 성인 출판 도서였다.


"불경하군요."


이제서야 수녀들이 왜 그렇게 숨기려 했던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금욕을 넘어 음란한 것은 상상도 하지 말아야하며, 깨끗한 몸. 즉, 


처녀성을 반드시 지켜야함은 수도회 수녀의 기본 자격이었다. 얕게는 중징계, 심하면 파문을 당할 수도 있는 중대한 사항이었다.


클라릿사의 입장에 있어 읽을 이유가 없는 책이었으므로, 곧바로 남 모르게  갈기갈기 찢어 흔적도 없이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랬어야 했다.


'그 어떤 것보다 짜릿한 경험을 하고 싶으신가요?'


그녀가 책을 뒤집었을 때 뒤늦게 발견한 문구였다. 짜릿함, 그녀가 순례를 돌며 느꼈던 마물에게 내린 징벌의 희열. 그 이상은 느낄 수 없을


것 같던 짜릿함을, 저 책 안에 담겨있다. 당시 마물을 짓이기는 짜릿함을 미약하게 회상하는 순간, 작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심호


흡을 하고 있었다. 그러길 잠시, 그녀가 어느덧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목차를 넘기고 남성의 알몸, 성기와 근육의 향연을 넘어 '오르가즘에 


이르는 법' 항목에 다다른 자기 자신을 발견한 뒤였다.


'윽….'


이래서는 견습 수녀들의 행동과 다를 바 없었다. 자기 자신도 더럽고 불경한 것에 손을 댄 것과 같으므로, 그동안의 '클라릿사' 라는


경건한 수녀의 이미지는 순식간에 무너져내릴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그럴 것인데도. 그녀의 손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해서 페이지


를 넘기고 있었다. 왠지 모를 후끈함과 하부의 가려움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아…."


그녀가 깊고 뜨거운 숨을 저도 모르게 내뱉는다. 하얀 피부 위로 붉으스름하게 올라온 혈색이 그녀가 적지 않게 흥분했음을 알렸다. 


얼굴의 후끈함이 온 몸으로 퍼져나가고, 하부의 가려움은 참을 수 없는 근질거림으로 바뀌어간다. 


"우응!…, 흐읏!"


어느덧 그녀가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라' 라는 항목을 지난 후부터는, 그녀 스스로 흠뻑 젖은 속옷을 내리고 손가락을 자신의 음핵에 


가져다대는 그녀답지 않은 음란한 행동을 보였다. 천천히, 천천히. 위 아래로 쓸어담듯이 자신의 음핵을 문지르며 터져나오려는 교성을


필사적으로 참는 그녀의 풀린 눈은, 처음 '자위' 라는 것을 배운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음란함을 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