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처럼 대륙을 돌아다니는 것도 잠시

성약의 계승자이길 포기해서 인간이 된 라스는 곧 생애 처음 성욕을 자각했을 거야

메르세데스와 살이 스치면 바지가 죄어들고

드러나는 옷 사이 천박한 굴곡이라도 보인 날에는 잠도 오지 않았겠지


하지만 옛 용사가 창관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일 테고 

불침번을 자청해 일행들이 잠든 사이 혼자 흰 욕망을 발산하는 게 고작이었겠지

용사라는 자긍심과 메르세데스에 대한 얇은 의무감이 아니었다면

진작 메르세데스한테 손을 대고도 남았을 정도로 위태로웠을 거야


그런데 메르세데스도 바보는 아니니까 눈치채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라스가 자신을 보는 눈빛에 뜻모를 열기가 감돌고

밤이면 그가 자신의 이름을 속삭이며 헐떡인다는 것도 알겠지

싫었을까? 그건 아니었겠지만

오히려 때때로 다리 사이가 질척였겠지만

메르세데스는 불안했을 거야 자신은 호문쿨루스고 

또 마신의 힘에서 태어난 기분나쁜 존재니까

라스와의 미래는 욕심낼 수 없다고 생각해 애써 돌아누웠을 테지


그런데 그 미묘한 긴장을 눈치챈 여자가 한 명 더 있었을 거야

라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싶어하고

못된 장난을 좋아하는 환영의 사도


그 날 밤도 터질 듯한 성욕을 애써 달래던 라스의 앞에

테네브리아는 환영처럼 나타났을 거야

이미 전부 파악하고 있었겠지

라스는 내내 계승자로서 살아온 탓에 또래와 어울려본 적도 없고

학교가 상징하는 청소년기의 삶에 대한 동경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교복을 걸치고 나타난 테네브리아를 보자 

라스는 바로 칼을 빼들지 못했을 거야 

발산하지 못한 성욕과 어린 시절의 동경이 이성을 흐리게 했겠지

테네브리아는 귀엽다는 듯 웃었을 테고

나긋한 손길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뺐을 거야

두 팔로는 라스의 목을 휘감고

그리고 교복 차림으로 하기엔 너무나 진한 키스를 했겠지


라스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을 거야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칼을 떨어뜨리고 

테네브리아의 얇은 허리를 안아 당기고 있었겠지

둘은 한참을 그렇게 얽히다 가쁜 숨이 막혀 떨어졌을 거고

입술 사이 실처럼 이어진 무언가가 순간의 육욕을 증거하듯 빛났을 거야


하지만 테네브리아는 거기서 놓아주지 않았을 거야

짧은 치마 자락을 살짝 들췄을까

아니면 대담하게 흰 손가락을 뻗어 라스의 부풀어오른 사타구니를 부드럽게 더듬었을 지도 몰라

라스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겠지

테네브리아를 밀어눕히고 

교복 치마를 걷어올린 뒤

그녀의 살구멍을 헤집고 들어갔겠지


지독히도 부드러웠을 거고

또 따뜻했을 거고

자신의 밑에 깔린 테네브리아를 찍어누르면 찍어누를수록

오히려 모자랐을 거야 정신이 나가버릴 만큼 


테네브리아는 달콤하게 신음했을 거고

하얀 허벅지로 라스의 허리를 감았겠지

키스해 줘, 귓가에 달뜬 목소리로 속삭이면서


그리고 메르세데스는... 그 모든 광경을 다 보고 있었을 거야

자신을 구해주고 이름을 불러준, 그렇게 다정했던 용사가

테네브리아와 혀를 얽으며 

동물처럼 사정없이 허릿짓을 해대는 모습을 


그리고 어느 순간 라스의 허리가 멈췄을 거고

테네브리아는 끈적한 헛숨을 들이켰을 테고

서로 껴안은 채 움찔거리는 두 사람을 보고

메르세데스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을 거야 


자신의 출신과 태생과 몸과 용기없음을 원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