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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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은 뭐야? 뭐하는 사람이야? 나쁜짓했어? 여긴 어디야?"



"......"



"야, 그래도 생명의 은인인데 좀 반응은 해줘어. 안그래도 심심하단 말이야아아."



"....시끄러워."




벌써 이 숲길을 걸어가는 것도 수십분째, 


그동안 이들의 주요 대화 패턴은 항상 이러했다.



여자가 신나서 떠드는것에 일말의 대꾸도 하지 않는 남자.



가끔 나오는,



"꺼져."


"시끄러."


"귀찮아."


"가."



정도가 한계점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더 듣다못해 확실히 성가셔진 그녀를 향해 남자가 일갈했다.




"..여긴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차원이라며. 빨리 네가 살던데로 돌아가."



"흥, 너 차원이동 한번에 에너지가 얼마나 드는지 알아? 


지금도 열심히 충전중인데 아직 한참 모자라단 말이야. 나도 가고싶거든?"



"....쳇."




그렇게 다시 걸어가는 남자의 뒤를, 여자가 당연하다는 듯 쫄래쫄래 따라간다.




또 다시 불편한 동행이 시작되고, 



이젠 이 길이 숲을 빠져나가는지, 더 깊이 들어가는지 가늠도 잘 되지않던 그때.




"....!"



"아훅, 으.. 야! 왜 갑자기 멈추..."




아무런 예고 없이 우뚝 정지한 그의 등에 제대로 이마를 박은 그녀는 눈을 찡그리며 심통을 부렸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말은 순식간에 끊기게 되었다.




"....."



"꺅..!"




어딘가 익숙하게 손목을 잡아챈 그는 재빨리 근처의 풀숲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대로 꿇어앉아 자신도 침묵하고, 여자의 손을 놓치지 않게 꽉 잡는다.




"....?"



"....."




여자의 물어보는 듯한 표정에도 그는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이어, 그들이 지나온 굽이길을 막 돌아오는 갑옷의 장정들이 보였다.




"읍..."



"......입다물어."




단단한 팔로 목을 두르듯 감고 손바닥으로 그녀의 입을 막는다.


남자는 그렇게 강제로 침묵하게된 여자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쳇.'




아무리 소리를 죽인다 해도, 그녀가 입고있는 휘황찬란한 하얀색 원피스는 숨어있는 위치를 아예 광고를 해주는 셈이였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자신의 망토를 오른팔로 펼쳐서, 그 팔로 그녀를 끌어당겨 감쌌다.




"....!"



"......"




둘 모두 숨죽이며 장정들이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에게 보고를 하는 것을 지켜본다.


심장소리만이 들리는 망토 속에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휘관은 잠시 고민하더니, 그대로 자신들이 가던 길을 향해 팔을 펼쳤다.


그것을 신호로 보병들의 갑옷소리와 기병들의 말발굽 소리가 두 남녀의 앞을 벌떼같이 지나갔다.




육중한 군단이 내뿜은 흙먼지가 가라앉고도 좀 지나서, 마침내 둘이 풀숲에서 걸어나왔다.




"....끈질기군."



"....야.."




살짝 화난듯한 소리에 남자가 돌아보고, 


이쪽을 경계하는듯 두 팔로 몸을 감싼채로 그녀가 소리친다.




"모, 모델의 몸은 그렇게.. 막 함부로 만져도 되는게 아니라구, 이.. 이..."



"....?"



"이... 짐승..!!"



".....허,"



"아, 아까부터 손이랑 몸을 막 덥석덥석 잡아대는데, 이거 얼마나 관리한건지 알아? 

너같은 변태가 막 만지라고 있는 몸이 아니야! 아니라고!"



"....그래."




이젠 이 시끄러운 동행인을 그냥 체념한듯, 남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는 다시 걸어간다.


그리고 여자는...




"으.. 내가 끌려다니는게 아냐.. 그야, 혼자 있으면 좀 위험하고.. 그래, 내가 원해서 가는거야.."




혼자서 무언가를 중얼대더니 씩씩거리며 다시 따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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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뒤, 숲의 외곽.



내내 조금 의심스러워 보였지만 남자는 용케도 길을 잘 찾았다.


나무들 사이로 밝게 보이는 빛이 이 우거진 심록의 끝을 알렸다.




"휴, 드디어 끝이네. 뭐해? 어서 가자."



"....."



"왜그래?"




제자리에 딱 멈춘 남자는 평소와 똑같은 딱딱한 눈빛으로 주위를 훑어보더니,




".....!"




스걱-




단 한번의 간결한 몸짓으로, 검을 꺼내어 주위의 수풀을 두동강냈다.


언제 다시 검을 꽂았는지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였다.




"....힉..!"




잘려진 수풀을 가만히 지켜보던 여자가 작은 비명을 지른다.


후두둑 떨어지는 나뭇잎들과 가지들 사이로, 

선혈의 웅덩이가 슬금슬금 새어나왔다.


진한 피냄새가 순식간에 숲길을 가득 채우고,




"이야아아아!!"


"하아아앗!!!"


"우와아아아아!!!"


"가라! 전원 공겨억!!"




순식간에 길의 양옆에서 열댓명의 군사가 튀어나왔다.


지휘를 내리는 남자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말을 타고 있었다.




"죽여도 상관 없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목을 가져오는 자에겐 특전이 주어질 것이다!!"



"...."




돌진하는 몇몇을 피해서 남자가 빠르게 뒷걸음질 친다.


묵직하면서도 서늘한 그 발걸음은 가볍고 날렵했다.



그는 여자가 있는 곳까지 물러나서, 칼을 찬 쪽의 망토를 펄럭이며 말했다.




"....가. 여기서 도망가."



"그, 그치만.."



"빨리 안가면 좋은 꼴은 못볼걸."



"너, 다쳤..잖아."




그것은 직접 붕대를 감고 상처를 돌봐준 그녀가 가장 잘 알고있었다.


그의 몸은 분명 정상이 아니였고, 싸우다가 죽다 살아나서 다시 싸우기에는 무리로 보였다.




"쓸데없는 걱정은..."



"그리고.."




"이야아아앗!!"




그때, 가장 앞서 돌격했던 한 창병이 참다못해 달려들었다.


남자가 칼을 뽑기 전이라면 승산이 크다는 계산이였지만,




"하앗!!"




안타깝게도 그는 대전운이 나빴다.


눈앞의 소녀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착각했던 것이다.




"끄허어억!"




순식간에 그의 앞에 폭발이 일어나며 갑옷이 우그러졌다.


그 충격을 타고 뒤로 날아가 땅에 추하게 쳐박혔다.




"...그리고, 나도 혼자 알아서 잘 싸울 수 있어. 네 걱정이나 하지그래?"



".....하아.."




남자는 잠시 그녀를 째려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여기까지 딱 붙어서 따라왔는데 이제와서 순순히 갈리가 없다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상대는 고작 둘이다! 부상당한 한명을 먼저 죽여놔!!"




자신의 부하가 나가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지휘관이 명령했다.


남자는 그 한명이 자신을 의미하는 것을 알고, 얕은 조소가 새어나왔다.




"...하, 웃기는군."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비올레토. 항복한다면 투옥으로 끝날것을 시티로드의 이름으로 약조하셨다."



"아직도 상황을 모르겠나?"




그가 차분하게, 하지만 단호하고 빠르게 검자루로 손을 가져갔다.




"막아! 녀석을 포위해라!!"



"네놈들 목숨 따위는 그저.."




순식간에 4명이 그에게 달려들고, 




검자루를 쥔 손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검날의 붉은 빛이 살짝 번뜩이고, 검이 다시 검집에 꽂힌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듯 했지만, 


지휘관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스쳐가는 잔상일 뿐이야."





"크, 크아악..."


"흐으어억..."


"커헉..!"


"아..."




약속이라도 한듯 4명의 병사가 동시에 쓰러진다.




"이, 이 자식..."



"다들 목숨이 여러개인 모양이지?"




순간적으로 허공에 나타난 나비의 형상은, 


그의 악명 높은 실력을 병사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었다.




"보잘것 없는 저항은.. 이쯤에서 끝내자고."




그는 무심한듯 망토를 펄럭이며 말했다.



그 차가운 눈과 깊고 진한 눈동자에는, 


이 세상의 모든것들이 마치 어두운 잔영으로 보이는 듯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