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에요. 추석을 맞이하여 한편 써봤습니다.



원래 야설 하나 쓰고 있었는데, 매너리즘에 걸려서 진척이 안나가다가 기분전환 용으로 아이디어를 짜다 보니 써졌네요.



추석하면 송편, 그리고 콩송편이죠. 이번 소재는 송편입니다. 한가지 특기할 사항이 있다면...



이 처자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나름 대사도 있다구요?



그럼 즐감해주세요.

-배경: 피날레 이후

-태그: #어하, #진리스, #릴나비

-19금?: X (15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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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명한 하늘과 나부끼는 청량한 바람. 따뜻하게 달구는 햇빛과 흥겨운 노래소리. 별숲 리그는 오늘도 대민지원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젠 거의 잊혀 가는 전통 의상을 대여해준다든가, 전통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준다든가. 이것도 전쟁의 상처를 이겨 내기 위한,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의 일환일 것이었다. 군인들 입장에서도 고통스러운 전시 복무보단 상대적으로 맘이 편한 대민지원이 더 즐거울 것이고.

물론, 소울워커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여러가지 방면에서 ‘대민 지원’을 하고 있는 그들 에게까지 고강도의 육체 노동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그들이 아니지 않았던가.

 

“또 송편… 인가요. 찐득찐득 하니 기분 나쁜 걸요.”

“그래도, 저기 남자애들처럼 막노동하는 것보단 낫지 않아?”

 

송편 피를 만지작거리며 툴툴대는 릴리와, 그런 그녀에게 저 멀리 손짓하는 이리스. 그곳엔 두 어깨 한가득 쌀포대를 나르며 기운차게 일하는 진과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반쯤 죽어가고 있는 어윈이 있었다. 그렇다. 여성 소울워커들은 명절 음식을 만드는 일을, 남성 소울워커들은 이런 저런 몸 쓰는 일을 했다. 몇 십분 전만 해도…

 

“나 송편 만드는 거 잘해 아저씨! 나도 송편 만들게 해줘!”

“어윈씨! 혼자 그렇게 빠지시려고 하신 다니, 치사합니다!”

“어윈씨, 송편 만드신다고 했 다간 토오루 중령님이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겁니다.”

 

일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어윈은 여성 소울워커들을 따라 송편을 만들겠다고 떼를 썼다. 남정네들 이랑은 절대 일하고 싶지 않다며, 마틴에게 제발 좀 자신은 빼 달라고 사정하는 것이었다.

 

“그게 내 알바야? 난 세상도 구했는데 이런 송편 만드는 일조차 할 수 없는 거냐고!”

“물론 안 되지!”

“충성! 중령님 무슨 일이십니까 요?”

“자, 잠깐… 이거 놔! 어디로 끌고 가는 거야 아저씨!!”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나는 토오루. 그는 어윈의 어깨를 잡고 어디론 가 끌고 나갔고…

5분 뒤 그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쌀 포대 옮기기에 자원하는 것이었다. 진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인지 물어보려고 했으나, 마틴이 이를 필사적으로 말렸다.

 

 

 

“이거 봐 치이! 엄청 크지!”

“오오… 진짜 크다… 안에 내용물도 많아?”

“당연하지! 이건 치이 꺼야! 특별히 치이를 위해 만들었어!”

“고, 고마워… 그럼 나는…”

 

스텔라의 거대한 송편 덩어리를 보자 치이는 얼른 반죽을 떼어 펼치고 소를 채워 넣은 뒤 모양새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건… 어때?”

 

다 만들었는지 조심스럽게 스텔라에게 보여주는 치이. 그녀의 작은 손바닥 안에는 고양이 발바닥 모양의 송편이 만들어져 있었다.

 

“우, 우와 아아… 귀여워…!”

“브이.”

“스텔라도 만들어 볼래!”

 

한쪽에선 두 소녀의 기묘한 모양의 송편 만들기 경쟁을 하고 있었고.

 

“우물우물우물… 역시 송편은 맛있는 것 같습니다.”

“아까 부터 계속 드시고 만 계신데, 하나 정도 만들어 보시는 건 어떤 지요?”

“여러분들이 만든 것 중에 실패작만 집어서 먹고 있습니다. 특히 이 콩 송편은 꽤 맛있는 것 같습니다.”

“그, 그거… 제가 만든 거 잖아요…!”

 

반면 계속해서 찌지도 않은 송편을 계속해서 집어먹는 나비. ‘실패작’만 먹고 있다고 했는데, 유독 자기 자신의 것만 집히는 것을 보며 볼을 부풀리는 릴리였다. 역시 익숙하지 않은 탓인 걸까, 그녀가 만드는 송편은 끝이 오므려 들지 않아 계속 옆구리가 터졌다. 그리고 그런 것이 발견될 때 마다, 어김없이 나비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 나비씨도 하나 만들어 보시죠!”

“제건 여기 있습니다.”

 

나비는 자신의 등 뒤에 숨겨 놓았던 판을 들어 올렸다. 거기엔 완벽한 모양새로 만들어진 송편들이 놓여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노력하시면 충분히 예쁜 모양으로 만드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옛말에 송편을 이쁘게 만들면 자식 얼굴도 이쁘게 나온다고 합니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하, 하고 있다고요! 놀리지 마시… 히잉…”

 

정말로 격려하는 나비의 말조차 조롱으로 들렸는지 화를 내던 릴리는 또 다시 빚던 송편을 찢어 먹었다. 그러자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부서진 송편을 낚아 채서 입안에 털어 넣고 우물거리는 나비를 보며, 그녀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확실히, 어윈씨의 표정이 정말 안 좋아 보여요…”

 

한편 하루는 송편을 만들다 말고 저 멀리서 휘청거리는 어윈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소녀들은 정갈한 한복을 입고 모여 앉아 편하게 송편을 빚고 있으니 말이다. 마음이 약한 그녀에겐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걘 맨날 뺀 질 대고 그랬잖아? 뿌린 대로 거두는 거야.”

 

가만히 듣고 있던 에프넬은 주물 거리던 손가락을 멈추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모두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그녀의 성격 답다고 해야 할까. 이리스는 에프넬을 쳐다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 그래도 최근엔 열심히 일 하셨지 않아요? 가끔은 휴가라도 주는게…”

“진은 항상 저렇게 일하는 걸? 걔는 걱정 안돼?”

“지, 진씨는… 어… 그, 그렇네요… 아하하…”

 

갑자기 기다렸다는 듯이 태클을 거는 이리스. 그리고 에프넬은 이리스와 눈빛을 빠르게 교환하였고...

 

“뭐, 역시 남친 걱정은 많이 되는 가봐?”

“에, 예!? 아, 아니에요 그런거!!”

“이 언니한테만 솔직하게 말해봐, 응?”

“얘, 너 얼굴에 다 써 있단다? 어윈씨 사랑해 라고?”

“으어아아아아….”

 

송편을 빚는건지 하루를 빚는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지고 노는 두 사람.

 

“아이고, 찜통이 여기 있네? 누가 송편 좀 올려봐?”

“화, 화낼거에요!!!”

“뭘 숨기고 그래, 너도 나처럼 솔직 해져!”

“아, 아니라구요…”

 

하루는 빨개진 얼굴을 숙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리스의 경우, 진과 사귄다고 얼마전에 공개적으로 밝혔다. 당당한 것도 있지만 정말 잘 어울리는 모습에, 가끔 에프넬이 장난친다고 진한테 집적 거리는 것 말고는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모두가 축하해주는 분위기였기도 했고.

 

“솔직히 마음은 있긴 하지만…”

“어엉? 뭐라고오오?”

“역시나지?”

“에, 에에에에?? 호, 혼잣말이에요…! 멋대로 듣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크게 말하는 건 혼잣말이라고 안 하네요.”

 

장렬하게 자폭하는 하루를 놀리느라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두 소녀들. 이렇게, 송편 빚는 일은 매우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다.

 

 

 

“후아… 이걸로 벌써 50가마니는 옮긴 것 같네요!”

“넌… 대체… 으어어…”

 

어윈이 죽을 상을 지으며 겨우 옮긴 쌀 한 가마니를 받아 가볍게 트럭 위에 올리며, 진은 기쁜 듯이 외쳤다.

 

“자, 어윈씨.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요. 일 끝나고 나서 저희 동료들이 만든 송편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운이 나지 않나요?”

“그전에… 내가 먼저 죽겠다… 옛날 테네브리스가 이런 심정이었나…”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소울워커를 이런 곳에까지 부려먹다니… 반란을 일으킬 만한 이유는 충분한걸…”

“자, 어윈씨. 그렇게 죽을 상 짓지 말고 이거라도 한번 드셔 보세요.”

 

반쯤 시체가 되어 드러 누워있던 어윈에게 마틴은 조그마한 사탕 같은 것을 건넸다. 입만 벌려서 날름 받아먹은 그는 입안에서 사탕을 굴리며 빨았다. 뭔가 단맛은 나는 듯하면서도 밋밋한 게 약간 당혹스러운지 그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왠지 힘이 나지 않습니까?”

“뭐?”

“아, 이건 그 택배 상하차장에서 많이 주는 포도당 캔디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이렇게 어윈씨처럼 혼절한 사람들에게 하나 지급하면 거짓말처럼 부활하는 마법의 아이템이죠.”

‘자, 잠깐…”

 

어윈은 손사래 치며 거부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손사래 칠 수 있을 정도로 기운을 회복한 것이었다.

 

“자, 마저 일을 해볼까요 어윈씨?”

“시, 싫어!”

“아니면 토오루 중령님이 요구하신걸 해야 하실지도…”

“으으으으… 진짜… 죽여버릴 거야…”

 

마지못해 몸을 일으킨 어윈은, 또 다시 옮겨야 하는 쌀포대가 눈에 보이자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뭐야, 얼마 만들지 않았네요? 이러다가 세니아 대위님이 보시기라도 하면…”

 

송편을 수거하려고 온 아만다 상사. 그녀는 소울워커들이 내놓은 찜판에 송편이 얼마 올려져 있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아, 아… 그, 그렇네요…”

“그 아줌마 한테 걸리면 머리가 좀 많이 아프겠어…”

“어, 얼른 만들자!”

 

아만다의 말에 급히 송편을 만들기 시작하는 소녀들. 나비를 제외하고, 세니아의 공포에 대해서는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스텔라씨, 그렇게 무작정 크게 만들면 얼마 만들지 못할 거랍니다?”

 

자신이 만든 송편을 보이는 릴리. 그녀의 작은 손바닥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았는데, 유독 옆구리가 터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크면 입안 가득 넣고 행복해질 수 있어! 릴리 꺼는 옆구리가 터졌잖아!”

“흐, 흠… 시, 실수일 뿐입니다. 그리고, 주먹만 한 송편은 그 누구의 입에도 들어가지 않는 답니다?”

“아냐! 영감님이 이정도 사이즈면 어윈한테 괜찮다고 했어! 영감님!”

‘그 녀석한테 (한방)먹이기엔 적당할 거다.’

“확실히 저런 사이즈면 먹고 목이 막혀 죽어버리겠죠.”

 

갑작스레 시작된 릴리와 스텔라의 신경전. 아무래도 영감님은 다른 의도로 말한 것 같긴 한데.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저기… 왜 싸우는 거야? 그냥 다같이 만들어서 먹으면…”

“안돼 치이! 다른 사람을 위해 특별히 만든 걸 먹이는 건 중요한 거야!”

“고양이한테는 이런 낭만이 없는 가보죠?”

“낭만…? 그, 그렇게 말해도…”

“자, 치이도 만드는 거야! 릴리보단 잘 만들 수 있을 걸!”

“흥, 저보다 잘 할 수 있…”

“그럴지도…?”

“저 고양이가! 각오하시죠!”

 

치이가 합류하면서 갑자기 불이 붙어버린 송편 만들기. 어느새 세 소녀는 멥쌀 반죽과 깨설탕 소를 마구잡이로 집어내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얘네는 왜 이렇게 불 붙었데? 귀, 귀엽잖아…”

“뭐, 나도 슬쩍 참여해볼까? 건빵 넣은 송편 만들고 나비 이름 적어버리기~”

“제 건빵…! 멋대로 가져가지 말아주십시오!”

“진한테 콩만 넣은 송편 줘버리고 이리스가 만들었다고 해버리기~”

“잠깐! 그건 범죄야!”

“어윈한테 겨자 넣은 송편 주고 하루가 만들었다고 해버리기~”

“에, 엣!? 그, 그건 안돼요!”

“꼬우면 니들도 만들든가. 그럼 나 먼저 한다?”

 

가만히 있던 나비와 하루까지 끌어들여 갑자기 판을 키워버리는 에프넬. 그렇게 송편 배틀이 벌여지는 것이었다.

 

 

 

“아직도 멀었니? 너희 것만 남았어.”

“어… 그게…”

 

찜기에 넣기 위해 완성된 송편을 받으러 온 세니아 대위. 하루는 그들이 만들었다는 ‘스페셜 송편’을 가득 넣은 찜판을 건내며 매우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아, 아니에요… 그, 그게… 좀 부끄러워서…”

“어차피 너희들이 만든건 너희들이 먹게 될 거니까. 못 생겼다고 해도 걱정할 거 없어. 기왕 하는거 저기 남자애들한테 줄 것도 만들지 그랬니?”

“그, 그건 만들었어요…!”

“이런 쪽에는 요새 많이 빠삭하구나? 좋아하는 애한테 주는 것은 따로 표시해놨니?”

“………”

 

하루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뭐, 해놨겠지. 일단 찌고나서 통째로 가져다 줄게. 이후엔 너희가 알아서 하렴.”

“네…”

“근데 생각보다 엄청 적게 나온거 같다? 우리가 너희한테 꽤 많이 준 걸로 기억하는데, 다 날려 먹은거니?”

“그… 그게…”

“뭐, 그럴수 있지. 걱정마. 만일 더 필요하면 이야기하고~”

“네…”

 

세니아가 가고 나자, 하루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남아있던 소녀들도 다를건 없었다.

 

“이대로면, 저 두 분이 돌아왔을 때 면목이 없을거 같아요…”

“재미야 있지 않겠어?”

“에프넬씨… 이번 일은 그냥 안 넘어 갈 거에요…”

“그런다고 이렇게 묶어 놓으면 더 수상하다고 여길거 아냐!”

 

에프넬은 한복 저고리 끈으로 손발이 묶인 채로 누워 있었다. 그녀의 난동을 어떻게든 막아내겠다는 소녀들의 몸부림이라고 해야 될 듯한데. 안타깝게도 그녀의 송편 테러는 성공해버렸다. 제대로 만든 송편과 에프넬이 마구잡이로 만든 송편이 뒤섞이고, 남은 재료는 스텔라가 만든 거대한 송편에 대부분이 소모되었고, 치이가 만든 고양이 발바닥 송편은 릴리가 만든 다 찢어진 송편과 붙어버리면서 이상한 형태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인과 응보랍니다. 받아들이시죠.”

“맞아! 에프넬이 더 나뻐!”

“그렇게 맛없는 건 소울정크도 안 먹어…”

“너희들도 큰소리 칠 상황은 아닐건데?”

“죄, 죄송합니다!!”

 

하루와 이리스, 이나비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건지 머리를 맞대었다.

 

“다시 만들자.”

“하지만 시간이…”

“그런다고 저걸 줄 수는 없잖아?”

“지금이라도 다시 만든다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여기 애들도 데리고… 에프넬은 냅두자.”

“그러죠. 테러범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에프넬은 놔둔채, 찜통은 테이블 밑에 숨겨놓고 아이들은 세니아에게 달려갔다. 동료들이 사라지자, 그녀는 자신을 묶고 있던 저고리 끈을 잡고 이리 저리 돌려 풀어내었다.

 

“뭐, 이정도야 껌먹기지. 그럼…”

 

에프넬은 저 멀리서 진과 어윈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일에서 해방된 어윈은 진의 부축하에 겨우 소녀들이 있던 테이블까지 기어왔다. 진은 아직 체력이 조금 남아 도는지 즐거운 표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수고 많았어 둘 다!”

“에, 에프넬씨… 혼자 계시네요?”

“애들은 잠시 볼일이 있다고 해서. 나만 이렇게 남아 있었지!”

 

그렇게 말하며 에프넬은 테이블 밑에 있던 찜통을 꺼내 둘에게 내밀었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따끈한 송편. 그럭저럭 모양새가 살아있는 것도 있는가 하면, 주먹만 한 크기의 거대한 송편이라든가, 그냥 반죽 찢어 다가 쪄버린 듯한 비주얼을 가진 송편도 있었다.

 

“애들이 나름 고심해서 만든거야. 맛있게 먹어!”

“그, 그렇군요…”

 

어윈은 말 한마디도 하기 전에 바로 손을 뻗어 멀쩡해 보이는 송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입에 넣고 씹는 순간… 혀를 찌르는 듯한 강한 통증과 함께 뒷골이 땡기는 맛이 났다.

 

“투와아악! 퉷퉷… 뭐, 뭐 이렇게 매워!”

“어머, 그거 겨자맛 송편인데… 하루가 만들었어.”

“제, 제정신이야? 물 좀!”

 

그런가 하면, 진이 입에 넣은 송편에서는 밋밋하면서도 퍽퍽한 콩 맛이 났다. 그렇다. 콩 송편이다.

 

“콩 송편 이군요 이건? 어릴때 한 두번 먹어보긴 했는데… 음…”

“그건 이리스가 만든거야. 너한테 꼭 먹이겠다고 했었는데.”

“이, 이리스씨가… 하하하… 마, 맛있네요…”

“솔직하게 말해봐.”

“맛은 없어요…”

“메모…”

“네!? 자, 잠시만요!”

 

어윈은 다른 줄에 있는 송편을 집어 들었다. 살살 눌러보자 내부에 무언가 딱딱한게 잡혔다.

 

“이건 뭐냐?”

“먹어봐 한번.”

 

오도독. 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텁텁한 빵 부스러기맛. 이것은…

 

“건빵?”

“나비가 만든거야!”

“좀 평범한 건 없어?? 나비 누님은 또 왜… 켁켁!”

 

물을 연거푸 마셔대는 어윈. 어째 그가 고르는건 죄다…

 

“참고로, 이거 다 먹어야 할 거야. 아이들이 잔뜩 벼르고 있었거든.”

“그, 그건 좀…”

“뭐, 이리스한테 혼나고 싶으면? 감당할 수 있을까나?”

“여, 열심히 먹겠습니다…”

“야, 너도 좀 먹어!”

“!@#$!@$!”

 

그렇게 억지로 먹어대던 소년들은 결국 혼절해버렸고, 의무대로 실려갔다.

송편을 다 쪄온 소녀들은 그들의 행방을 물었지만, 에프넬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거짓말하며 누워 있을 뿐이었다.

 

 

 

저녁. 이런 저런 명절 음식을 먹은 아이들은 쥐불놀이 행사에 참여했다. 깡통에 숯을 넣고 빙글빙글 돌리자 불씨들이 흩날리며 화려한 장관을 연출했다. 단순 군인들 뿐만 아니라…

 

“영감님! 좀더 높은데서 해줘!”

‘이번만이다… 스텔라…’

“이거… 뭔가 뜨거우면서도 신기해…”

“에비.”

“으하아앗!? 노, 놀래키지 마…!”

“이리 줘봐. 여기 양 옆에 끼우고…”

 

쥐불통을 가지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에프넬. 아니, 정확히는 가지고 노는 그녀였다. 창에 끼워서 이리 저리 휘두르며 춤추는 모습은 불쇼 공연을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우물우물우물… 대단 합니다.”

“또 먹고 있는거에요?”

“이번엔 이리스 님 겁니다. 릴리님 거는 이제 멀쩡합니다.”

“그, 그래도 그만 드시죠… 그러다가 살 찌실지도…”

“저는 먹어도 가슴으로 가기 때문에…”

“으누으…”

 

완벽한 패배. 릴리는 분을 삭히며 그저 나비를 노려보았다. 물론 그녀는 영문을 모른채 그저 이리스가 만들었다는 깨설탕 반죽을 입에 넣을 뿐. 언제나처럼, 악의는 없었다.

 

“진~ 송편 맛있었어?”

“네, 네! 물론입니다!”

 

언덕위 정자에서 빨간 원들이 이리저리 그려지는 모습을 보며 다정하게 팔짱을 끼는 진과 이리스. 연인들에게 있어, 이곳은 특등석에 해당하는 자리였다.

 

“그, 콩… 송편이었나요?”

“…….. 깨설탕인데.”

“어, 어… 아까 분명 콩송편이었…”

“…… 언년꺼야.”

“에, 에프넬씨가…!”

“에프넬… 이년이 진짜아아!!!”

 

불타는 듯한 눈동자와 함께 강력한 소울 에너지가 치솟는 이리스. 당장이라도 해머 스툴을 꺼내 저기 창을 휘두르고 있는 에프넬에게 냅다 던질 것 같은 기세였다!

 

“차, 참아요 이리스씨!”

“이거 놔! 감히 내 진을 농락하다니! 용서할 수 없어!!!”

“제발 진정 좀… 으, 으아아앗!?”

 

그녀를 막으려고 뒤에서 잡고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발이 꼬여 넘어져 버린 두 사람. 진은 그 와중에도 그녀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다가 저고리의 끝자락을 잡아당겨버렸고, 옷이 풀린 이리스는 그대로 속옷 차림으로 그에게 안겨버리는 모양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벗겨진 저고리가 등 뒤를 덮으면서 부끄러운 모습은 가린게 위안이랄까. 품에 안겨 있는 상태에 자신의 처지를 깨닫자, 이리스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어… 그… 죄송합니…”

“……. 책임져.”

“네, 네?”

“여기 아무도 없어. 기세 좋게 옷까지 풀어냈으니… 한번 끝까지 해보라고.”

“오, 오해입니다! 옷은 정말 실수로 벗겼습니다! 아, 아직 그런거 할 나이가…”

“이, 이 바보 멍청아!”

 

그의 배에 올라타 냅다 울먹거리며 주먹을 날리는 이리스. 진은 그저 영문도 모른채 그녀의 주먹을 막아내면서도, 어떻게든 그녀의 맨 살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이번 명절… 정말 지옥 같은 하루였어…”

“괜찮으세요… 어윈씨?”

“아니… 다음 명절에는 어디 멀리 도망가 있으려고…”

 

어윈은 사람이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쥐불놀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하루가 한발짝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 함께했다.

 

“일도 일이지만… 송편…”

“아, 맞아… 제가 만든거 한번 드셔보실래요?”

 

준비했다는 듯 보자기를 풀어 어윈에게 보여주는 하루. 떡판엔 조금 식었지만 정갈하게 빚어진 송편이 있었다.

 

“어… 음… 겨, 겨자는 아니지?”

“그, 그건 에프넬씨가 만든거에요…”

“그런거지? 네가 만든거 아니지?”

“네… 절대 아니죠…”

 

이번엔 믿고 먹어보겠다며 다시 그녀가 만들었다는 송편을 집어 든 어윈. 에프넬 때문에 개고생 했던 때를 생각해보면 송편의 송자만 들어도 치가 갈리지만, 하루의 간절한 표정을 보고 있자면 도저히 안 먹고 베길수가 없었다.

침을 삼키고, 결의를 다진 그가 송편을 입에 넣어 씹는 순간, 달콤한 꿀과 설탕가루가 흘러나왔다.

 

“꿀… 송편…”

“네. 맞아요. 달콤하죠…?”

“맛있네… 이거 다 그거야?”

“네. 물론이죠! 다 어윈씨 꺼에요.”

“두고 두고 먹을게… 땡큐…”

 

어윈은 조금 더 떡을 집어 입에 넣었다. 예의상 먹었던 아까와는 달리, 정말로 맛이 있었던 까닭이다. 입가에 고물을 흘리는 지도 모르고 점점 집어먹는 속도가 빨라지자, 그녀는 흐뭇해했다.

 

“아, 여기 묻었네요. 제가 닦아 드릴게요…”

 

손수건을 찾던 하루. 그러나, 그녀는 잠시 행동을 멈추고 어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응? 왜?”

 

입 아래에 묻은 고물을 직접 햝아서 닦아주는 그녀. 어윈은 하마터면 떡판을 떨어뜨릴 뻔했다.

 

“에헤헤… 괘, 괜찮으신가요…?”

“너… 그거 무슨 의미인지…”

“아, 입술에도 묻으셨네요…”

 

얼굴을 붉히며 눈을 감고 천천히 다가가는 하루. 어윈은 그녀의 의도를 단번에 이해했다. 정말 과감하게 시도하는 그녀의 모습에 설레면서도,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울려 줄게… 이 어리광쟁이야…’

 

자신도 입술을 내밀며 입을 맞추려는 그 순간.

 

“하아아… 여기도 연인 분위기 인건가요…”

 

등 뒤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 이것은… 모태 솔로의 냄새가 나는 마틴 대위의 목소리였다. 둘은 화들짝 놀라며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았다.

 

“어이쿠, 이런. 좋은 시간을 방해했네요? 키스마저 하시죠.”

“으이구… 마틴 당신은… 눈치도 없고…”

“하하, 원래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찬물을 끼얹는 게 제일 재밌죠. 안 그렇습니까 베티양?”

“헤헤! 이미 사진은 찍었다구요~”

“아… 으아아…”

 

그만 바닥에 주저 앉아버리는 하루. 너무나도 부끄러웠고, 이를 도저히 감당을 할 수 없었던 그녀였다. 이를 눈치챈 어윈은 주머니에서 소울 에너지로 구성된 연막탄을 꺼내 들었다.

 

“다 저리가!”

 

폭발음과 함께 연막이 피어오르자, 그는 냅다 하루를 안아 올리고 앞으로 내달렸다.

 

“그럴 줄 알고 연막 투시용 렌즈도 가져왔죠! 제 손에 걸리면 절대 못 벗어난다니까요!”

“자, 얼른 가세요 베티양!”

“하아… 이렇게 소울워커를 괴롭혀도 되는건가요?”

“명절이니깐요. 이렇게 스캔들 나면 하루씨도 용기를 가지고 사귄다고 공표하지 않겠습니까?”

“뭐, 그 두 커플이 참 답답하긴 했죠.”

“하하하… 정작 저는… 그런 것도 없는데 말이죠.”

“……..”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마틴. 아만다는 그저 위로한다는 듯 그의 어깨를 토닥여 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