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이 편입니다.

전 캐릭을 대상으로 한편씩 써주는게 목적입니다.



이번 편의 치이는 고양이의 특성을 살린 부분이 많습니다.

실제 성격과는 조금 다릅니다.

좀더 멍청하고 귀여워 졌다고 해야될까...



기승전결이 비슷하다고 생각이 드시겠지만, 맞습니다.

단기간 내에 짜내려고 하다보니 포멧을 정해놓고 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최대한 캐릭터의 개성을 살려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즐감하세요!

(다음편 부터는 인트로가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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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한 치 앞도 바라볼 수 없었던 바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이다.

집 밖은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과 공허하게 비어버린 마음 한켠을 채워줄 함박눈이 밤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눈을 맞으며 새해에 대한 소원을 빌고, 함께하고 있는 인연의 끈이 쌓인 눈처럼 단단해지기를 비는 경우도 있겠지만.

 

역시 제일 좋은건 역시 보일러 빵빵한 따스한 방에서 연말 방송과 함께 귤을 까먹는 것이다.

소울워커라고 해서 예외가 있는건 아니다.

 

이 도시의 소울워커, 어윈 아크라이트. 그는…

치이 아루엘과 함께 하고 있었다.

 

날이 추워지면서 따스한 곳을 찾아 헤메던 그녀는, 마침내 어윈의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물론, 이 과정까지 어윈은 끈질기게 달라붙는 스텔라와 이리스를 떼어내는데 엄청 애를 먹었다.

 

“우으응… 따뜻해…”

 

따끈하게 바닥을 지펴주는 보일러의 기운을 최대한으로 받겠다는 듯, 그녀는 바닥에 드러누워 움직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정말 애완 고양이와 다를게 없지 않은가.

 

“누워만 있지 말고, 귤이라도 하나 까먹어. 이따가 새벽에 배고프다고 뒤척이지 말고.”

 

어윈은 접시에 귤을 한가득 담아서 치이 옆에 두었다. 

바닥에 한참을 엎드려 TV 화면만을 바라보던 그녀는 그제서야 손을 움직여 차가운 귤 한 알을 집어들었다.

 

“잘 먹을게…”

 

치이와 사귀게 되면서, 어윈은 상상 이상으로 그녀가 손이 정말 많이 가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고양이 기준에서 생각하는 본능 때문인지 감기에 충분히 걸리고도 남을 환경에서 얇게 입고 드러누워 있다 라든가…

식기도구의 정확한 사용법을 모른다 라든가…

 

‘파샥!’

갑자기 그의 눈가로 물방울이 튀어 올랐다.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얼굴을 겨우 틀어 눈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막았다.

 

“뭐, 뭐야?”

“어… 어…”

 

그녀의 왼손이 검붉은 색의 괴수로 변해있었다. 그러니까…

 

“귤을 까는데 그 팔이 대체 왜 필요한건데?”

“안까져… 하지만 먹고 싶은걸.”

“하…”

 

어윈은 아예 박살나버린 귤을 치우고 티슈 박스를 치이에게 건냈다.

 

“괜찮아… 내가 깨끗하게 닦아 놓을게.”

 

하지만 치이는 티슈를 뽑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엎드리더니 흘린 과즙을 햝기 시작했다.

고양이스럽다고 해야할까, 고양이의 시점에서 그녀의 행동은 잘못될게 없었지만…

문제는…

 

“야, 그래도 바닥은 햝는거 아냐!”

“…… 괜찮아… 햝짝…”

 

사실 데이트하면서 이랬던 적이 꽤 많았다. 고양이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탓에, 다른 사람이 볼땐 기행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이 방은 청소를 완료해 놓은 상태라 다행이었다.

만일 바닥에 떨어져 있는 짧고 꼬불꼬불한 털이라도 보았다면…

 

“어윈, 그루밍 해줄까? 엄청 꼬불꼬불거려는 털이 보여…!”

 

귤을 까던 어윈의 손이 멈춘다. 아무래도 ‘그 털’이 발견된 모양이다.

 

“아, 안해도 돼 그런건! 이제 그만하고 좀 앉아있어!”

 

괜히 화를 내며 치이를 억지로 일으키는 어윈. 하필 왜 그 털을 발견한 걸까?

그는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귤 하나를 집어 등을 돌린 채로 까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치이는 그저 자리에 앉아 손에 묻은 과즙을 구석구석 햝으며 청소할 뿐이었다.

 

“자, 먹어.”

“응… 미안해…”

 

귤을 받아 그대로 조금씩 베어 먹는 치이.

마치 혼나고 난 뒤 의기소침해진 강아지를 보는 것처럼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뭘 또 의기소침해 있어? 어차피 귤 먹어보는건 이번이 처음일거 아냐?”

“하지만… 어윈을 또 화나게 만든걸…”

“나 화 안났어.”

“그게 화난거 아냐?”

“…….”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고양이다, 라고 생각하는 어윈.

그녀를 위해 표정을 고치고 얼굴에 미소를 넣는다.

 

“좀 더 까줄 테니까, 이제 맘 편히 먹어. 알았지?”

“고마워...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는데…”

“뭔데?”

“들어줄… 거야?”

 

치이가 이렇게 뜸을 들이면, 무언가 민감한 것이거나 내가 불편할 수 있는 부탁이었다.

 

“말해봐.”

 

그러자 그녀는 대답 대신 어윈의 다리 사이로 기어 들어왔다.

 

“야, 야…?”

“어윈의 품 안에서 먹고 싶어.”

 

졸지에 그녀를 등 뒤에서 감싸안는 모양으로 있게 된 어윈.

치이는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 등 뒤에 얼떨떨하게 앉아있는 어윈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볐다.

 

“히힛… 이러면 따스하잖아. 어윈의 온기도 느낄수 있고…”

 

이렇게 다가와 몸을 비비면 쓰다듬어 달라는 신호였다.

고양이 답게, 그녀는 몸을 만져주는 것을 좋아했다.

어윈은 현재 까고 있던 귤까지만 정리하고, 손을 옮겨 치이의 얼굴을 감싸고 정수리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좋아… 냐아아앙…”

 

손동작에 맞추어 머리를 흔들고 기분 좋은 듯 목소리가 살살 떨려왔다.

그녀의 본능이 표현하는 ‘기분 좋은 상태’ 였다.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해주면 그녀는 정말 좋은 목소리로 울곤 했다.

 

“소온… 거기… 좋아…”

 

엄한 대사는 절대 아니다. 기분 탓이다.

물론 어윈은 실제로 이렇게 쓰다듬어 주다가 그녀가 내는 야릇한 목소리에 흥분한 적도 있었다.

… 아직까지 선을 넘어본 적은 없었지만.

 

“하아앙…”

 

오늘도 다를건 없었다. 어윈은 자신의 아랫도리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다만…

 

“어윈… 이거…”

 

갑자기 그녀가 전혀 예상치 못한 그곳을 탁하고 만진다.

순간 가슴이 철렁 한다.

그는 선을 넘은적은 없었지만, 넘으려고 시도했던 적은 있었다.

그때마다 돌아온건 진심이 반 섞인 그녀의 냥냥펀치와 얼굴가득 햘큄이었다.

그렇게 생긴 흉터를 다른 워커들에게 설명할 때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었다.

 

“그… 치, 치이… 이건…”

“알아. 어윈도… 나처럼 기쁜거지?”

“……..”

 

어윈은 머리를 엄청난 속도로 굴리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해야 그녀의 분노가득 냥냥펀치를 피할수 있을까.

내일 있을 새해 모임때 또 다른 스크래치를 만들어서 가고 싶지 않았다.

 

“그… 치이… 이건 생리현상…”

“말 돌리지마. 치이는 거짓말하는 어윈이 제일 싫어.”

 

아, X 됐다 라고 어윈은 생각했다. 그녀가 화났을 때의 말투인 3인칭 화법이 나온 것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심기를 건드리면 그녀는 냅다 무기를 꺼내 들이 밀것이었다.

꼴깍, 하고 입안에 고인 대량의 침을 삼켰다.

 

“네 말이 맞아 치이. 치이보고… 잠시 몹쓸 생각을 했어…”

“사실이야? 거짓말이면 지금 이대로 목을 물어버리겠어.”

 

역시 화가 나있다. 그녀는 내 목덜미 근처에서 앙 하고 입김을 내뱉었다.

이 피 마르는 분위기만 아니었다면 귀엽다고 피식 웃었을 지도 모른다.

 

“사, 사실이야… 용서해줘.”

“흥. 오늘은 연말이니까 특별히 용서해줄게. 대신…”

 

치이는 그대로 어윈을 밀어 넘어뜨렸다.

 

“그루밍… 해줘.”

“어?”

“치이에 대한 애정을 확인해야 겠어!”

 

말투와 표정은 화나 있었지만, 그녀의 양 손은 머리 위로 올려 귀를 쫑긋 거리는 것처럼 씰룩였다. 얼굴의 홍조는 덤이었다.

그제서야, 어윈은 안심했다. 그리고… 그동안 이루지 못했던 소원도, 이룰수 있는 기회를 보게 되었다.

 

“그럼… 그루밍 시작할게?”

“살살해.”

 

지퍼를 내리는 것과 동시에, 치이의 기분좋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

 

어윈이 눈을 떴을땐, 새벽 4시였다. 틀어놓았던 TV는 이미 정규방송이 종료되고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화면만이 떠 있었다.

바닥은 아직 뜨거웠지만, 이불 한장 없이 이 겨울의 공기를 버티는건 무리였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게 느껴지자, 어윈은 이불이라도 꺼내오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으느으으…”

 

그런 그를 못 움직이게 꼭 붙잡는 게 있었다.

 

“어윈… 치이를… 버리지 말아줘…”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어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안심시켰다.

 

“절대로 안버리지, 이 코양이야. 너 평생 데리고 살거니까. 내가 말은 그렇게 해도 널 버리겠니…”

 

자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걸 안 그는 벗어놓은 옷을 덮고 대신 있는 힘껏 그녀를 껴안았다.

 

“따뜻하지? 악몽 꾸지 말고 편히 자.”

“에헤헤… 어윈… 계속 함께야…”

 

치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상상 이상의 따스함에 그는 다시 잠이 솔솔 오는 걸 느꼈다.

 

“어윈… 사랑해…”

 

나지막하게 말하는 치이의 마지막 한마디. 하지만 어윈의 손은 이미 멈춘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 동안 떠 있었던 그녀의 눈은 스스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