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Precipice 가 모티브가 됨. (뜻이 '벼랑'이라는 의미임)

*해당 게임의 흐름을 최대한 따라가보려 함. 다만 스포일러가 함유되어 있기에 주의

*방주의 오퍼레이터가 죽기 전의 마지막 상태를 나타냄. 유체이탈 상태라고 생각하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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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언제부터인가 잠들어있었던 나는 눈을 떴다. 분명 앞에서 뭔가를 했었는데 이상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했는지도 모른 채로 희미하게 눈을 뜨니 오퍼레이터 룸 내의 장비들이 가득 있었다. 내가 오퍼레이터로 있는 방주인만큼 내가 모를 리가 없는 장치들. 게다가 룸 내의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나는 몸을 일으켜 보았다. 정신이 다시 맑아지자 나는 모든 주위를 돌아보았다. 모든 것이 하나도 부서지지 않은 채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본 탓일까 나는 안도하였다.


"방주는...아직 무사하네요.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기동을 해봐야겠어요."


그렇게 방주의 시동을 걸어보았지만 이상하게도 방주는 기동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스템 접근 거부" 라는 메시지가 뜨면서 기동이 오히려 꺼지기 일쑤인 것이 아닌가. 몇 번을 시도해봐도 끝내 방주는 기동되지 않았다.


"왜 기동이 안 되는걸까요..? .오퍼레이터는 저인데, 어서 그를 구해야하는데 어째서..."


의문을 품었지만 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일단 방주의 기동이라는 과제를 뒤로 하고 다른 시설의 이상 유무부터 파악하기로 하였다. 오퍼레이터 룸이 파괴 흔적 하나 없는 것이면 나머지 시설들도 이상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뭔가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불안해봐야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일단 방주 내 시설 점검을 진행해야겠습니다. 그를 태우는 것은 시설 점검을 하고 나서도 늦지는 않을 것이니까.."


그렇게 일단 오퍼레이터 룸을 나왔다. 나와보니 언제나 그랬듯이 복도가 펼쳐졌다. 불행 중에 다행이었던 것일까 ? 오퍼레이터 룸이 파손 하나 없이 상태가 좋았던 것처럼 복도 내 시설과 물품 적치된 곳도 별다른 훼손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방주 내 불빛은 정상적으로 작동 중이었기에 환한 불빛이 나를 감쌌다. 


"눈 부시네요...저는 왜 오퍼레이터 룸에서 잠들고 있었던 걸까요 ? 이해할 수가 없는 부분이에요. 그래도 복도 역시 파손된 부분 하나 없이 잘 있네요."


그렇게 나는 복도를 일단 돌아다녀보았다. 벽에 걸린 시계는 01시 43분이라고 표시되어있었다. 새벽 시간 대라 그런가 내가 자다가 일어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일어났으니 다시 자기도 뭐할 것 같아 시설 점검 겸하여 둘러보고 다시 오퍼레이터 룸에서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얼마간 복도를 돌아다녔을까. 시설은 완전체로 되어있었다. 방주는 계속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늘 그렇구나 싶었다. 아까 느꼈던 불안감도 복도를 배회한 탓인지 어느 정도는 해소된 느낌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머무르는 방도 봐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를 태워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그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기에 일단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 들어가겠습니다.......어 ?"


그가 항상 방주에서 머무르는 방에 들어가려고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어째서인지 다시 복도가 펼쳐졌다. 이상함을 느끼고 둘러보았지만 방주 내 복도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 와중에 벽에 걸린 시계는 1분이 흘렀는지 01시 44분으로 되어있었다. 내가 들어왔던 문을 다시 열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잠겼는지 열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마스터 키를 가지고 시도해보았는데도 "접근 거부"라는 안내 음성과 함께 열리지 않았다.


"이 방주 내부를 순회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5분이 걸리는데...고작 1분 밖에 안 흘렀던 것이 마음에 걸리네요. 누군가 방주에 술식을 덮어 씌운 것일까요...?"


다시 한번 복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복도의 모습 그대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일단 경계심을 가지고 복도를 다시 한번 돌아다녔다. 하지만 불이 정상적으로 켜져있다는 것 그리고 아무도 이 방주 내에 침입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복도를 비롯한 시설들은 모두 훼손 하나 없이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 이것이 내가 돌아다니면서 깨달은 정보들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마지막 순회 코스인 그가 머무르는 방에 들어가려고 이번에는 노빠꾸로 들이밀고 들어갔다.


"들어갈게요...어 ? 또 복도...?"


그의 방에 들어갔는데 또 복도가 나왔다. 시계는 또 1분이 흘러 01시 45분이 되어있었다. 순간 뭔가 잘못됨을 직감한 것인지 나는 뫼비우스의 띠를 돌아다니는 것인가 싶어 계속 복도를 돌아다녀보고 그의 방을 열고 들어갔지만 계속 똑같은 복도가 나왔다. 시간은 그새 4분이 흘러 02시 46분이 되어있었다. 분명 다른 방은 항시 잠가둔 터라 따로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지내는 방은 항시 그의 안전이 위협받는 것이 있을 수 있기에 수시로 드나드는 편이라서 들어가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방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복도 풍경만 펼쳐지고 있었다.


"뭔가 이상합니다...어째서 같은 복도 풍경이 제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일까요 ? 그 분은 또 어디로 가신 건지..."


반복되는 일에 나는 이상함을 느꼈고 그의 방을 들어가보는 대신 그를 찾아보려고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갑자기 복도 내 불빛이 깜빡 거리더니 갑자기 정전이 일어났다. 일순간 일어난 상황에 나는 멈추고 공격 태세를 취하였다.


"뭐,뭐죠 ? 왜 갑자기 방주 내 정전이...! 누군가 침입해온 것일까요...?"


경계심을 안고 공격 준비를 했지만 그것이 무색하게 다시 불이 다시 환하게 켜졌다. 잠시 깜빡였다 켜진 것이긴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복도를 돌아보고 그의 방문 앞에서 문을 열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그의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어디 나가신걸까요...? 왜 방문이 아예 열리지 않는거지 ?"


그러다가 맞은편을 바라보았는데 거기에 원래 없던 문이 생겨있었다. 머리 속이 복잡해져서 잠시 정리를 하기 위해 잠시 가만히 서있었다. 분명 나는 순찰을 목적으로 복도를 비롯한 시설들을 순회하고 마지막 코스인 그의 방을 들르지만 어째서인지 계속 펼쳐지는 방주의 복도 그리고 갑작스러운 정전 또 안 열리는 그의 방... 이 일련의 일들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머리를 한참 굴려보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지니 계산이 안되네요.. 점점 상황이 복잡해져서 그런걸까요 ? 일단 저 문이라도 열어봐야겠어요."


그렇게 맞은편에 있는 문을 열었는데 또다시 같은 복도 풍경이 나왔다. 점점 알 수 없는 원인에 나는 생각을 포기하고 다시 걸어나가려는 찰나 갑자기 복도 내 불빛들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몇 분 전 아니 언제 해소되었는지도 모를 불안감이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방주가 이렇게까지 이상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 반드시 사전 점검을 하고 운행을 하였기에 이번 현상이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요... 얼마나 더 이상 현상이 나오는지 알아봐야겠어요."


그렇게 복도를 다시금 배회하기 시작했다. 깜빡거리는 불빛으로 조성되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나는 불안감을 안고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는데 갑자기 벽에 붙어있는 스크린에서 지지직 거리는 큰 소리와 함께 이상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어떤 시설의 문을 열려고 시도하는지 찰칵찰칵 거리는 소리가 여러차례 들려왔다.


"...!"


방주 내부가 이상해지고 있다. 내가 오퍼레이터로 있는 방주인데 내가 잘못한 것인가 부터 시작해서 그에게 불안을 안겨 죄송하다 라고 사죄해야겠다는 생각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에게 사과를 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새 그의 방 앞까지 왔다.


"죄송해요... 여러 차례 불안을 드려서... 빨리 수정을..."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그의 방문을 열었는데...또 다른 복도가 나왔다. 아까의 연속적인 복도의 풍경이 아니라 좁은 일자로 뻗은 복도가 내 앞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 또 하나의 문이 있었다. 추측컨대 그 문 넘어로 그가 있는 방이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뛰어갔다.


"어... 이런 시설이 있었던 것일까요 ? 일단 저 문을 열어봐야겠어요 !"


그 문을 열어보니 마침내 그가 있는 방의 풍경이 펼쳐졌다. 어두웠던지라 내가 소유한 손전등을 켰다. 하지만 그 방에 들어갔을 때도 안심보다는 이상했었는데... 그는 온데간데 없었고 방은 어질러져 있었으며 소파 옆에는 왠 나를 본뜬 마네킹이 서있었는데 눈과 가슴 부분에 피로 추정되는 빨간색 액체가 묻어있는 것이 그로스테크하였다.


"이런 마네킹이 어째서 여기에... 그가 오면 한마디 해줘야겠네요.. 그리고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요."


그와 이야기를 해보겠노라 다짐하고 복도로 다시 나왔다. 그리고 좁은 복도를 지나 다시 문을 열었는데 어째서인지 그의 방 풍경이 다시 한번 등장하였다. 아까의 데쟈뷰가 계속해서 펼쳐지고 있는 듯 하였다. 문득 그에게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한 게임에서 복도를 지나다가 특정 구간에 들어가면 똑같은 대화 풍경이 계속해서 펼쳐지고 있었다는데 나의 상황이 그것과 다르다 해도 사실상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을 하였다.


"일단 방 정리라도...해야겠네요. 방을 더럽게 하실 분이 아닌데 왜 이렇게 방이 어질러져 있는지..."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그의 방을 정리하였다. 혹시나 내가 어떤 특정 행위를 하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나 싶어 방을 깨끗이 정리해봤다. 한층 깨끗해진 방을 보니 안심이 들었지만 어째서인지 내 모습의 마네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단 그것은 냅두고 다시 복도로 이동하였다. 그렇게 복도를 거니는데... 환했던 복도 불빛이 갑자기 빨간색으로 바뀌며 몇 초간 깜빡거리더니 다시 원상으로 돌아왔다.


"...청소를 한 것이 실수라도 된 것일까요 ? 어째서..."


불안감을 안고 간 와중에도 문을 열면 다시 그의 방 모습이 나왔다. 다만 전의 어질러진 모습과는 다르게 깨끗한 방이 나를 맞이하였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감이 고조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복도로 나갔는데 빨간 불빛 속에서 반대편 문 쪽에 누군가가 선채로 경련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 그 분이 오신걸까요 ? 그렇담 가서 이야기를 해야..."


라고 그 누군가에게 달려갔으나 갑자기 불빛이 소등되면서 그는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벌어졌기에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쯤 되면 방주가 여러 괴담을 안고 있는 장소로 변한게 아닌가 심히 우려스러웠다. 걱정이 앞섰지만 가만히 있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그래서 무서움과 불안함을 안고 나는 손전등을 키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 문을 열었다.


"앞선 풍경의 영향 탓일까요... 원래 복도의 모습이 나왔네요.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가 뭐죠 ?"


아까의 좁은 복도가 아닌 내가 순회하는 그 넓은 복도가 나왔다. 다만 복도 내 불빛도 모두 꺼져버렸기에 나는 손전등에 의지하면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오퍼레이터 룸으로 향할까 하고 이동하려는 찰나 벽에 걸린 스크린에서 갑자기 경보음이 울리며 화면에는 0과 함께 직선이 표출하고 있었다.


"경보 상황인걸까요....? 화면의 0과 직선 그리고 경보음이 무슨 관련이... 아까부터 누군가가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은데 또 그러면 가만히 있지 않을거에요 !!"


앞선 상황들로 인해서 점차 불안이 심해지자 짜증이 났는지 나는 외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다시 그의 방으로 가서 기다려볼까 하고 그의 방문을 열었지만 좁은 복도가 아닌 아까의 그 넓은 복도가 나왔다. 하지만 복도 불빛이 빨간색으로 계속 깜빡이고 있었다.


"대체 방주에서는 무슨 일이 펼쳐지는거죠...?"


적이 나타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 순간 나는 이성을 잃고 그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다다르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의 모습이 보이더니 순간 사라졌다.


"!!"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는 분명.... 아니 맞을 것이다. 나와 함께 여러 고난을 겪고 작전에 뛰어들었던 그였다. 망토와 허리춤의 지팡이.. 그전까지만 해도 없던 그가 유령이 되어서 돌아온 것인가 싶어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렇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방문을 열어 들어갔다. 그의 방을 보니 청소할 때까지만 해도 없었던 문이 생겼다. 


"저곳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요...? 일단 곳곳을 수색해보고 일지에 다 적어놓아야겠어요. 이후에 다 같이 논의를 해봐야겠네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어보니 이전의 좁은 복도처럼 똑같은 좁은 복도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을 계속 걸어보고 우측으로 돌아서니 긴 복도가 펼쳐져있었고 양쪽으로 문이 있었다. 하지만 왼편의 문은 열리지 않았고 반대편 쪽 문으로 갔다. 가면서도 나를 본뜬 마네킹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각기 다른 포즈로 있었고 마네킹이라지만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무서울 정도로 느꼈다. 심지어 어떤 마네킹은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었다. 이 마네킹들은 어디서 온 것이며 누가 만들었는지 생각에 잠겼다.


"왜 마네킹들은...다 저의 모습인걸까요 ? 저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고 밖에 해석이 안되지만 딱히 어떤 일에 연루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또한 마네킹들에는 피처럼 진한 빨간색 액체가 묻어있었다. 물론 작전하면서 피가 안 난적은 없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 빨간색이 액체가 한층 더 강조되어 보이는 느낌은 기분 탓인걸까 ? 여러가지 의문점을 안고 문을 열었더니 꽤 넓은 새로운 복도가 펼쳐졌다. 다만 등불들이 빨간색이었고 앞뒤로 있었으며, 복도의 양쪽으로 내 모습의 마네킹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목이 날라간 마네킹도 있었다.


"방주에 이런 곳이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언제부터였을까요 ? 이제는 놀랍지도 않지만... 이 마네킹을 만든 작자가 아케나인에 있다면 유리아님께 강한 처벌을 건의해야겠습니다."


꼭 그러겠노라고 마음먹으며 걸어갔는데 마네킹들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나를 계속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복도 끝편으로 이동하니 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을 올라가니 또 문이 있었다.


"아까처럼 계속 똑같은 풍경이 있겠죠 ? 하아... 이젠 당황스럽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 익숙하니까요."


처음만 그랬을 뿐 이 현상이 계속 지속된다는 것을 알아버린 나는 그냥 자신감있게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문 넘어로는 마네킹들이 즐비한 복도가 다시 한번 내 눈앞에 펼쳐졌다. 복도 등불들도 빨간색을 띄우고 있었다. 다만 마네킹들의 자세가 각기 달리하고 있었다.


"마네킹들은 움직일 수가 없는데... 어느새 움직였던 걸까요 ?"


천천히 복도를 다시 걸어보았다. 아까처럼 마네킹들이 나를 해코지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마네킹들 중 하나가 나를 때려눕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마네킹은 움직일 수 없다. 그러니 나를 해칠 수 없다 라는 결론을 내린 채로 계단으로 이동하니 나는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마네킹들이 언제는 저를 한번이라도 덮치겠지만... 어차피 움직일 수도 없는 건데 괜히 불안한 것인가 싶네요."


그렇게 계단 위의 문을 다시 열자 이번에도 같은 풍경이 나왔다. 하지만 뒤쪽의 등불이 갑자기 깜빡거리더니 이내 꺼졌다. 손전등을 비춰봤지만 이상하게도 뒤쪽 풍경은 보이지 않았다. 앞쪽의 등불은 켜져 있기에 그럴려니 했지만 뒤쪽이 암흑이 되어버린 탓에 뒤에 위치한 마네킹들도 어둠 속에 삼켜졌다. 혹시 모르는 상황에 나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때보았다.


"등불이 갑자기 꺼졌군요. 그래도 조심스럽게 이동..."

(너는 이미 죽었어)

"!!!!!"


갑작스럽게 내 모습의 마네킹이 뛰쳐나오며 나를 덮쳤다.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진 상황이었기에 나는 너무 놀라 그대로 주저앉았다. 스치면서 듣긴 했지만 내가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무슨 의미일까 ? 고개를 돌려보니 나를 덮친 마네킹은 이내 사라져 있었다. 또한 덮치는 순간 앞쪽의 등불이 꺼지고 뒤쪽의 등불이 켜졌다.


"제가... 죽었다고요 ? 아니 저는 멀쩡히 살아있는걸요... 겁주려고 하는 것 같은데..어 ? 왜 제 몸에 힘이 없는거 같죠...?"


겁주려고 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모르게 내 몸에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계속 걷고 그의 방 청소까지 다했는데... 죽었다 라는 말 한 마디 때문인지 몸에서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서있었다. '너는 이미 죽었다.' 라는 말의 의미를 계속 생각해보았지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일단은... 이를 생각해둔 채로 다시 계단 쪽으로 가니 뒤쪽에 서있었던 2개의 마네킹 중에 하나가 없어져있었다. 아마 그 없어진 자리의 마네킹이 나를 덮친 것일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올라가며 방문을 열었는데 아까보다 더한 상황이 펼쳐졌다.


"어...제발제발제발 !!!"


순간적으로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감싸며 무릎을 꿇었다. 내 앞에 그의 모습이 보이면서 동시에 빨간 등불들이 깜빡거리기 시작했고 양옆의 내 모습의 마네킹들은 머리를 잡은 채로 선 채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여기를 나가야겠어요."


나가야한다. 그 생각 하나만으로 바로 계단을 뛰어올라가 문을 여니 다시 한번 그 복도가 나왔지만 마네킹들이 사라져있었고 복도의 빨간 등불들이 계속 깜빡거리다가 잠시 꺼지더니 이내 하늘색 불빛으로 변해 깜빡이기 시작했다. 이미 이 방주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눈치를 챘었고 이내 제정신을 잃어버린 나는 또다시 미친 듯이 복도를 달리고 계단을 뛰어올라 문을 열었다. 그러더니 깜빡였던 하늘색 등불들이 다시 꺼지더니 이내 정상적으로 되돌아왔다. 다만 복도의 마네킹들은 뒤쪽에 하나 제외하고 빈자리만 덩그러니 있었다.


"이제... 끝난 것일까요...? 내가 잘못한 거에요...? 죄송해요 제발 죄송해요...!"


순간 다리의 힘이 풀려 나는 주저앉았다. 무서운 감정이 나를 지배한 탓에 나는 순간 울먹이며 잘못했다고 허공에 빌었다. 내가 원인이라면 누군가가 나의 죗값을 치르라고 이 상황을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빌었을까. 불행 중 다행으로 복도의 상황은 다시 바뀐 것이 없었다.


"나가면 반드시 사죄할게요...꼭 그럴게요..."


하지만 나는 그 누군가에게 사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렇게 다시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다른 어딘가를 열어야하나 싶어서 내려갔는데 뒤쪽에 있던 마네킹이 앞으로 이동해있었다.


"어라...언제 이동한거죠...? 발소리는 못 들었는데..."


그 마네킹으로 접근하자 갑자기 뒤쪽의 등불이 꺼지고 순간 달리는 듯한 발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아무래도 그 마네킹이 도주한 모양인데 아까 나를 덮친 장면의 데쟈뷰인 것일까 생각하였지만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아까 앞선 장면이 임팩트가 컸는지 방금의 것은 그리 놀라지 않았지만 불안감을 키워내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손전등을 켜고 주변을 둘러보니 왼쪽 벽면에 문이 하나 있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또 다른 복도의 모습이 나왔다.


"방주의 복도인데... 이곳은 왜 낙후되어 있는걸까요...?"


일단 들어왔으니 계속 나아가보기로 했다. 여기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돌아서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무서움도 엄습하였다. 왼쪽으로 돌아보니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그렇게 아래로 내려갔는데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 왜 바닥이 피바다이고 어째서 제가 부서져 있는채로 주저앉아 있는거죠...?"


아래의 풍경은 가히 공포스러웠다. 스크린이 지지직 거리고 있었고 바닥은 핏물로 가득했으며 벽에는 피가 한가득 묻어있었다. 게다가 그 핏물 위에는 로봇처럼 너덜너덜해진 내가 앉아있었다. 그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있었고 몸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었고 아무래도 거기서 피가 대량으로 나와 바다를 이룬 것 같아보였다. 아까 앞선 마네킹의 너는 이미 죽어있어 라는 말과 더불어 뭔가 있는 걸까...?


"정말 제가 죽은 건가요..?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전 이렇게 살아있는데...!"


순간 발밑을 보았다. 피바다에 발목까지 잠겨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째서인지 피바다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찰랑찰랑 거리며 핏물을 튀겼을텐데 내 옷에 피가 하나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안감이 머리 끝까지 솟구치자 나는 더 생각하지 않고 바로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고 나와 다시 그 문을 닫아버렸다.


"아니에요...아니에요... 안 죽었다고요 저는... 저는 그를 보좌하기 위해 태어난 오퍼레이터... 에덴을 지키기 위한 방주를 운영 중인 오퍼레이터인데...!"


문 앞에 움츠러들며 작게 절규했다. 앞선 마네킹의 메시지 그리고 좀 전의 방에서 본 죽은 나의 모습. 이것이 어떠한 메시지를 나에게 잔인하게 들이미는 것 같지만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부정하는 것일거다. 다른 증거라도 일단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복도의 모습을 보니 처음 그 좁은 복도였었다. 우측 편에 그의 방문이 있기에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면서 바닥을 보았지만 핏물에 묻은 발로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핏물 묻은 발자국이 바닥에 나타나있지 않았다. 고개를 흔들며 방에 들어와 소파에 앉았다.


"...저 정말로 죽은 것일까요 ? 도와주세요... OOO 님..."


몸을 떨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순간 오퍼레이터 룸에서 깨어나기 전 앞선 일에 대한 기억이 왠지 모르게 떠오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라고 하면서 눈에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계속 흔들었고 내 뺨을 계속 두 손으로 때렸다. 다리의 맨 살을 꼬집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소용없다 라고 느끼면서도 나는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방문을 나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안 돼...!!! 저리가. !!!!"


좁은 복도의 불빛이 빨간색으로 변해있었고 내 모습의 마네킹이 천장에서 나를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순간 나는 너무 놀라서 손전등을 집어던졌으나 그 타이밍에 맞게 불빛이 꺼졌다. 그리고 손전등은 천장을 탁 치더니 땅에 떨어졌는데 박살이 나버렸다. 이 상황에서 소중한 도구를 잘못된 판단으로 잃어버렸다 생각하니 순간 정신이 들었다. 불빛은 다행히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우측 벽에 문이 하나 생겨있었다. 정전된 순간에 생긴 것일까 싶어 일단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기는...화장실이네요. 그런데 화장실이 여기에 있었던가요...?"


화장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거울이 있길래 지금의 내 모습을 보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내 모습은 거울에 비춰져있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화장실 불빛이 깜빡이더니 순간 낙후된 복도에서 보았던 죽은 내가 욕조에 앉아있었고 피투성이와 부서져가는 벽이 재현되어있었다. 어떠한 생각도 할 겨를 없이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려고 손잡이를 미친듯이 돌렸지만 열리지 않았고 그 현상은 3분이나 지나서 사라졌다.


"하아...하아... 이제 열리겠죠..? 나가야겠어요."


그렇게 화장실 문을 열고 복도의 끝을 따라 문을 열고 나오니 처음에 오퍼레이터 룸을 나왔을 당시의 넓은 복도가 펼쳐져있었다. 다행히...원래대로 돌아왔구나 싶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처음에 봤던 복도 풍경과는 다른 것이 있었다.


"문들이..언제부터 이렇게 많았던 것일까요...? 일단 아무 문이나 잡고 들어가야겠어요."


그렇게 잠긴 문과 열린 문을 손잡이를 일일이 돌려가며 확인하면서 열었다. 하지만 들어가면서도 문들이 사방으로 나있었다. 왠지 모를 미로구역인가 생각하면서 문을 열어보니 어느새 마지막 방에 들어왔다. 그 방에는 문이 하나밖에 있지 않았다.


"저기로 가면...그를 만날 수 있는 걸까요...? 그분은 저를 도와주겠죠 ? 다시 한번 OOO님을 지켜드릴 수 있을거에요..."


그렇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그러나 내 앞에 펼쳐진 것은 깜빡이는 빨간색 불빛이 있는 복도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OOO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나는 생각했다. 그를 만날 수 있다고 그리고 유리아님을 비롯한 다른 정령들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드시 지켜낼 것이라고. 그리고 앞에는 등불들이 나열된 긴 복도가 있었다. 순간 가슴이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심장 박동이 왜 빨라지는 것 같죠...? 과호흡이 오면 안되는데...! OOO님을 만나러 가야하는데..."


그렇게 천천히 나아가지만 내 몸에서 흰 빛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너무 놀라서 두 손을 보니 손이 이미 희미해져있었다. 정말 내가 죽은 것일까 ? 나는 정령석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 무서웠다. 그를 다시 못 볼까 무서워서 급하게 뛰었지만 과호흡이 방해했고 다리에도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안 돼요...제발..."

이제 그만쉬렴.

"!!"


아까 나를 덮친 마네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떨쳐내려 하였지만 이내 거기서 멈추고 말았다.


너는 최선을 다해주었어. 그렇게 쑥을 막아내었어. 하지만 너는 거기서 이미 죽었어. 그렇지만 소중한 그는 너를 계속 기억하고 있단다.

"그만해"

너의 방주에 있었던 마지막 생존자와 이제 편히 쉬려무나

"제발 그만해주세요"


이동해야되는데...어째서인지 내 다리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나는 기어서라도 가려고 했지만 이내 팔도 모두 사라졌다. 눈물을 흘리며 절규해본다. 그를 불렀다. 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를 계속 불러보는데...누군가가 사라져가는 나의 몸을 잡으면서 말했다.


찾았네. 나의 마지막을 함께 해준 소중한 친구.

"!!!!"

괜찮을거야. 앞으로는 새로운 친구가 그와 함께해 줄거야. 그러니 이제 걱정하지 말고 나와 함께 놀자.

"당신은... 아아..."


다시 지구로 오기 전 마지막으로 나의 방주에서 생활했던 여자아이였다.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렇군요. 저는 정말로 죽었군요. 그래도 충격이지만...언젠가는 그를 다시 만나서 그녀와 함께 3명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

고마워요. 구원자님. 구원자님과 함께 만들어 나간 추억은 간직하여 그녀와 함께 공유할게요.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이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의 품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은 것이다.


-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