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대로 써보는 창작글. 스포일러 함유가 있으니 주의하기 바람.

*가끔은 죽은 방주의 오퍼레이터가 영혼으로 나타나서 주인공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오랜만에 써보는 글이라 필력이 상당히 떨어져서 아쉬울 따름...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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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밤에도 나는 항상 야근을 하는 입장이다. 최근 들어서 처리해야할 공무들이 많아지기도 하였고 장부 내용이 개판이었기에 마농한테 장장 3시간 동안 혼나고 개선하느라 죽을 뻔하기도 하였고, 한번은 게이트가 3곳에서 동시에 열리는 바람에 밸레드와의 협조 하에 자드키엘 호에 병력들을 태우고 분산하고 지휘하느라 진을 빼기도 하였다. 다행히 오늘은 그런 적이 없으니 위안이라면 위안이 될 것 같다. '구원자'라고 한다면 언제나 이런 느낌일까 하고 어깨가 무거워진다. 


사실 항상 무겁다. 처음에는 에덴이라는 곳에 갑작스럽게 '구원자'로 임명받아 반강제로 온 것을 생각하면 다른 의미로 놀랍다고 해야할지. 여기로 와서 정령들이라는 존재를 또 이들의 기원이라는 것을 다시 되찾아야한다는 것이 사실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도와주는 많은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으며 이들과 함께 관계와 신뢰를 쌓아나간다는 것이 어느새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 몇몇이 죽거나 다치기도 하여 슬프기도 하였지만 다시 만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어느 정도 병력 약화에 대한 걱정도 덜고 또 지금까지 쌓아온 관계를 무너뜨리지 않을 수 있었기에 천만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던 와중에 유리아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려 나를 비롯한 세계에 검을 겨누었고 그 때문에 내가 기댈 수 있었던 오퍼레이터인 메피스토펠레스는 스스로를 희생했다. 어쩌면 운석과의 전면전을 치르기 전에 했던 말들은 나를 향하여 이별을 고하는 메시지가 아니었을지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어쩌면 가온에 게이트가 나왔을 때 내가 가온으로 갔던 선택 자체가 지금의 상황까지 이르게 만든 하나의 나비효과로 작용한 것이 아니었을지. 나의 오판에 대한 대가로 메피를 주고 내가 살았다고 생각하면 죄책감이 더욱더 쌓이고 눈에서는 물이 쏟아져 나오려 한다. 지금은 그녀를 대체할 다른 오퍼레이터인 밸레드가 있어도 메피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가끔은 그녀에게서 메피가 보이기도 하였고 그러다가도 잘못 불러서 밸레드가 우는 것을 간신히 달래기도 하였었다.


그렇기에 그런 생각들은 내가 눈을 감아도 눈꺼풀 아래로 떠오르기에 더더욱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정말로 구원자가 맞을지. 구원해야만 하는 정령들에게는 정말 무능한 모습만 보이고 있는데 뭘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또한 당시 인간의 왕에게 '아무것도 모른다' 라고 말한 것은 그냥 안위를 찾고자 도망가기 위한 발언이 아니었을지 등 여러 생각이 내 머릿속을 메운다. 반강제라고 하였어도 이것은 구원자로 '선택받은 자'로써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었음을 다시금 머리에 되새겨본다.


"잠깐 나갔다 와볼까. 답답하네.."


일들을 어느 정도 처리해놓고서 나는 잠깐 집무실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나온 곳은 밤의 은하수 언덕. 이곳은 가끔 탈리아와 함께 별님에게 인사하기도 하고 별님과 별점 관련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눠보기도 한 장소라서 더욱 익숙하다. 가끔 메피와도 이곳에 와서 홍차를 같이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였었는데 참 시간 가는 줄 몰랐었던 기억도 있었다.


"...그 때는 참 좋았는데, 이제는 없네. 그래도 혼자 이렇게 별들을 보는 것이 얼마만일지."


메피가 옆에 없다고 생각하면 참 슬픈 일이다. 물론 다른 정령들과 여기에 아예 온 적이 없는가 라고 한다면 그것은 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메피의 죽음 이후로 나는 가끔 이곳을 많이 찾아오곤 했다. 옆에 누군가라도 있다면 실수로 그녀의 이름을 불러버리고 말 것이었기에 그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혼자 은하수 언덕을 다녀갔었다. 늘 방주에서 집무실로 출근하던 홍차도 챙겨왔었는데 그 홍차가 오히려 그 기억을 많이 떠올리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는 듯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내 오판이 너를 죽인 것이나 다름 없었어..."


밤하늘을 보며 나는 중얼거린다.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울고 싶어도 억지로 흘리는 눈물은 진심이 아닌 것임을 알기에 더욱더 그랬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공허해져만 가는 느낌이다. 그녀와 다시 만나자고는 했어도 사실상 메타트론 호가 초전박살이 난 것에서 그녀의 죽음은 사실상 확정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노라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억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그리움이 심화되는 느낌을 받은 채로 홍차를 마시며 밤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구원자님. 제가 왔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반응하여 나는 길목 왼편 쪽을 쳐다봤는데...


"메피...?"

"구원자님, 혼자 이곳에 계셨었군요. 혼자 다니시는 것은 위험해요."


메피가 서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내가 혼자 다니는 것을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었는데 지금의 그녀도 나를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나는 더 생각하지도 않고 그녀에게 달려갔다.


"메피...메피..."

"구원자님...?"


숨이 찰 정도로 달려가 그녀를 안았다. 안 나왔던 눈물도 흘러나왔다. 메피는 갑작스러운 나의 태도에 잠깐 당황하였지만 이내 내가 한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조용히 내 등 뒤로 손을 감싸안았다. 따뜻함이 느껴졌다. 설사 메피가 죽었어도 그녀는 영혼으로 나를 만나러 왔다고 생각해도 상관없었다. 그녀에게 정말 하고싶었던 말 그리고 사죄의 말들을 모두 하고 싶었던 내가 있었기에.


"구원자님을 이렇게 다시 뵐 수 있는 것은 정말 기뻐요. 하지만... 제가 이렇게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요. 이것이 구원자님께 상처가 된다고 생각하니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만남이기에 못 다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메피... 정말 미안해...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석고대죄해도 풀리지 못할텐데...!"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 그리고 메타트론 호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그녀에게 사죄의 말을 반복하였다. 내 잘못이었으니까.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그녀를 방패로 삼아 죽음으로 이끌게 만들었던 나의 잘못이었으니까. 


"...구원자님. 그 때의 일을 아직도 생각하고 계셨었군요. 하지만 그때의 상황은 오로지 저의 판단에 달렸던 것이에요. 구원자님을 만나고 나서도 구원자님께서는 저에게 정말 많은 친절과 상냥함을 보여주셨어요. 지구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 생존자였던 그녀와 투영되어 보였을 정도였어요. 그녀는 비록 죽었지만... 구원자님만큼은 정말 저의 부족함을 채워주신 은인이기도 하기에 꼭 지켜드리고 싶었던 거였어요. 그러니... 울지 말아주세요. 구원자님께서 슬퍼하신다면...저도 슬퍼요. 그러니까 우울해있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구원자'로 선택받아서 온 나였음에도 거기서 별다른 활약도 못 하였었고 오히려 너를 희생하게 만들었으니까... 구원자로 있으면서 가장 충격이기도 했었고 너에게는 정말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구원자님..."


나의 눈물은 끝없이 나왔다. 그녀를 어쩌면 영혼으로써 만났다고 해도 이 만남은 나에게는 정말 기적과도 같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녀는 나에 대한 기억을 잃지 않은 상태였다. 이전에 린지를 죽음굴에서 데리고 나왔을 당시 기억을 잃은 상태였었는데 그 때를 생각해도 사실 뼈아팠는데 메피까지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였다면 내가 정말로 무슨 짓을 할지 몰랐을 것이다.


메피는 그런 나의 울음을 이해하였는지 등을 만져주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이전에 대한 오판으로 인하여 그녀를 희생시킨 죄는 메피라고 해도 용서받지는 못하겠지만... 그녀는 그래도 그런 나를 이해해주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참 그녀에게 용서를 빌고 그녀는 나를 위로하고 나서 나는 비로소 눈물을 멈출 수 있었다. 눈물 몇 방울과 말 몇 마디 만으로 해결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어도... 그녀에게는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기에.


"이제 괜찮으신가요 ? 괜찮다면 다행이에요. 구원자님께서는 남들에게 눈물을 보이려고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생각 났어요. 그래서 가끔은 저희에게 한번쯤은 울음으로써 응어리를 풀어내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응... 이렇게 하니 정말 뭐랄까 마음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드네... 하지만 눈물과 말 몇 마디로는 그 미안함을 다할 수 없을테니까.."

"저는 괜찮아요..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는 구원자님을 지킬 수 있어서, 구원자님이 살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저는 정말 기쁜 마음이었으니까요.... 이제 이 이야기는 접어두고 마지막일지 모르는 이 만남을 많은 이야기를 하며 장식해보고 싶어요."

"그러자. 홍차도 가져왔는데... 가끔 밤에 너와 이렇게 나와서 여기서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홍차를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했었지"


그렇게 우리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밸레드는 어떤 애인지 구원자님에게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지 이야기를 했었는데 인간의 왕을 만나러 흑기사와 접선했다는 건을 이야기 해주니 메피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구겨지는 것이 느껴졌었다.


"하... 그 아이가 그런 행동을 했었다고요. 물론 밸레드는 인간에게 봉사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지만 자칫하다가는 구원자님을 비롯하여 에덴 전체에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이네요."

"응... 그래서 내가 어쩔 수 없이 '나만의 메이드가 되어라 !'라고 명령하였을 때 그래도 고분고분히 따르는 모습은 정말 어이가 없었지..."

"...어쩌면 그 아이 말고 다른 오퍼레이터에게 신호를 보내야했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밸레드를 만난다면 종아리를 때려야겠습니다."


메피가 밸레드에게 종아리를 때린다고 하니 뭔가 웃음이 나왔다. 하긴 그 일이 도화선이 되어서 정령들이 자드키엘까지 쳐들어와서 난동을 부린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할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와중에 밸레드가 정령들에게 말했던 내용은 워낙 거의 인간의 왕과 판박이인 발언이었기에... 이 부분까지 말하면 메피가 바로 자드키엘의 신호를 탐지하고 뛰어올라가 쳐들어가서 밸레드를 어마어마하게 혼낼거라 생각하여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홍차도 같이 나눠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그렇게 여러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도 하였는데, 메피가 나에게 무거운 주제를 꺼냈다.


"조금 무거운 이야기가 되겠지만...구원자님께서는 정말 괜찮으신건가요 ?"

"응 ?"

"언제나 구원자님께서는 저희 정령들을 위해서 항상 노력하시고 전투에서 큰 부상을 당하셔도 다시 딛고 일어나셨으니까요. 하지만 구원자님께서는 가끔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있으셨지만 저희에게는 내색 한번 하지 않으셔서요."

"...."


잠깐 생각에 잠겼다. 괜찮다...괜찮다라.... 솔직히 괜찮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지금까지 온 과정 중에서 곳곳이 폐허가 발생하기도 하였고 큰 전투에서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료들의 부상을 본다면 내 지휘에도 큰 손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기도 하였고. 또한 무엇보다도 나에게서 가장 의구심이 드는 단 한가지 '나는 과연 잘하고 있는가' 였다.


제아무리 구원자 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도 그 책임은 정말 위에서 언급했듯이 어마무시하게 무겁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게이트 현상만 잘 때려잡아 놓으면 적들이 무서운 것을 알고 더 쳐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도 있었지만 오히려 더 날뛰기도 하였다. 그러다가도 인간의 왕이 유리아를 납치하였을 때 그녀를 그대로 보낸 것을 생각하면 나는 이들을 구원하기에는 아직 약하고 한참 멀었다 라고 생각하기도 하였으니까. 여러 상황들을 접하였더라도 거기에서 어떠한 활약을 내가 펼쳤는지를 생각하면 구원자로써의 자격이 과연 나에게 맞는 것인지, 이들이 나를 계속 믿어줄지 등의 의구심들이 속속이 생겨났었다.


"...솔직히 모르겠어. 비록 구원자라고 해도, 나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 했었어. 오히려 유리아 납치를 방조해버리고 구하겠답시고 비비안의 말을 허투로 들었다가 오히려 상황만 더 악화되고... 솔직히 내가 구원자가 맞기는 한 것일까 ? 메피는 어떻게 생각해 ?"

"저는 구원자님의 가능성을 믿었어요.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기도 하고요. 워낙 일련의 상황들이 한꺼번에 터지다보니 판단력이 흐트러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었을 거에요."

"나를 중용해주는 것이구나. 그것은 고마워. 하지만... 여태까지의 구원자라는 타이틀을 내가 과연 계속 짊어지고 가야할지에 대해 의문도 많았었어. 너의 희생도 유리아도 그리고 또 다른 이런 일련의 건들도 어떻게 보면 내가 구원자로써 라고 하기보다 나는 방관자로써에 가까운 행동이었을지도 몰라."

"...."


그녀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마치 내가 가지고 있는 걱정과 의문점을 눈치채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학을 하는 나의 모습이 못마땅해서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 내가 이야기를 한다고 달라질게 있을까 하고 아무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는데 이들이 알아차릴 수 있을 리가.


그렇지만 딱 한가지. 안일하고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겠지만 시간이 해결해준다 라는 생각은 줄곧 해왔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뭔가를 알게 될 것이고 또 내가 구원자로써의 힘과 자격을 진실되게 깨닫을 수 있다고 믿었기에 오로지 시간에만 의지하면서 정령들과 교감을 쌓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행위는 오히려 지금과 같이 악화되고 살의를 띤 현재의 상황으로 돌아왔다. 그렇기에 나는 '구원자'라는 것을 스스로에게도 물었고 일전에 잊혀진 영웅의 유적에 다녀왔어도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해답은 알아내지 못 하였다.


"구원자로써 책임져야 하는데... 에덴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정령들과 평화를 지켜내야한다는 겉으로써의 책임져야할 줄만 알고 있지 실제로 이들을 어떻게 책임져야할지 스스로도 모르겠어... 너에게 이런 하소연 하는 것이 정말 이상하고 볼품없기로 짝이 없겠지만 그 해답을 구해내지 못하였으니 스스로도... 구원자 실격이라고 생각했었고 심지어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구원자님."


내가 독백을 그렇게 이어가고 있을 때 메피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잠깐 말을 멈췄었다.


"구원자님께서는... 스스로 계속 학대하시는 것 같아요. 구원자님께서 정말 이런 고통과 슬픔을 제가 진작에 알았어야 했는데... 이를 못 알아챘기에 구원자님께서 스스로 구원자 실격이라고 한다면 저는 구원자님의 오퍼레이터로서 실격이라고 하고 싶어요."

"그렇지 않아, 메피. 메피는 언제나 나를 도와주고 내가 힘들 때 의지하였었으니까. 그렇지만 이런 것을 메피에게 굳이 지우고 싶지는 않았어. 메피도 갖은 힘듬이 있었을텐데 나만 이렇게 힘들다고 하면 너에게도 스트레스가 되었을테니까..."

"전혀 그렇지 않아요. 구원자님도 언제나 저를 도와주고 제가 힘들 때 의지하셨었어요. 구원자님을 그리고 마지막 생존자인 그녀를 만나기 전에 저는 감정도 모르는 로봇이었지만 그녀를 통해서 1차적으로 감정을 깨달았고 구원자님을 통해서 교감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어요."

"메피..."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어쩌면 그녀도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일단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았다.


"구원자님께서 비록 제가 저를 희생하면서 구원자님을 그리고 소중한 분들을 지킬 수 있었어요. 그 소중한 분들에는 저 역시 포함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전에 구원자님께서도 구원자라는 직책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가졌을 것이라는 추측은 했었어요. 그래도 구원자님께서는 여러 게이트 상황 속에서도 지지 않고 저를 비롯한 정령들에게 여러 가지 전술을 통하여 많은 이들을 구해내기도 하였어요. 그런 일전의 활약들은 정말 구원자님으로써의 활약이 맞아요. 제가 확신하니까요. 그러니 결코 도망가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모든 것을 포기하실 것인가요 ?"

"...."

"분명 저는 희생한 것이 맞아요. 하지만 구원자님께서 혼자서 해내기에는 힘이 부족하셨을 것이었고 그런 분이 죽는 것은 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신 분이었기에 정말 슬퍼했을 거에요. 그러니 제가 반드시 지켜야겠다고 저의 의지가 저를 굳건히 만들었어요. 저 역시 제대로된 판단을 했었다면...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졌어요. 구원자님도 저도 한번 절망에 떨어졌어요. 하지만 어느 정도 멘탈은 가지고 계실 거 아닌가요 ? 시행착오가 아예 없을 수는 없어요 !"

"!!"


그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각해보면 히어로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악화되는 상황도 맞이하였고 그 상황에서도 답과 해결책을 찾아서 바로잡기도 하였다. 어쩌면 지금 내가 맡고 있는 구원자라는 것도 용서받지 못할 그녀의 희생과 종말의 정령으로 변해버린 유리아를 보면서도 죄책감이 컸었지만 거기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즉 그녀의 말대로라면 메피의 희생 그리고 유리아에 매몰되지 말라는 것일거다. 


분명 구원자로써의 의문점은 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기에 나로써는 답은 쉽사리 내릴 수 없었다. 허나 그렇다고 이들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 그 자체가 옳았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기에 거기에 계속 신경만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메피의 희생도 결국은 나의 원죄이지만 그렇다고 메피에게만 신경을 집중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그녀는 말하는거다.


"죄송해요... 의도치 않게 언성을 높였었네요. 하지만 이 말씀은 꼭 구원자님께 드리고 싶었던 말이었어요. 분명 제가 마지막으로 방주를 기동할 때 저의 손을 잡아주시면서 '다시 만나자' 라고 하였어요. 언젠가 구원자님과 저는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을 거에요. 그러니... 저때문에 계속 슬퍼하지만 말아주세요. 아직 해야할 일이 많아요. 다시 일어나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니야 메피.. 쓴 소리 정말 고마워. 정말 내게 소중한 오퍼레이터네. 응, 다시 일어나야지. 아직... 해야할 일이 많으니까."

"후훗.. 다시 기운을 차리시는 모습을 보니 정말 마음이 놓이네요.. 그래도 유리아님만큼은 구해내실 수 있을 거에요. 아직 그분께서 살아계실 때 해내실 수 있을 거에요. 비록 '구원자'라는 본질적 의문을 저도 해결해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하지만... 그 해답은 구원자님께서 찾아내실 수 있을거에요. 여태까지 함께 해온 순간이 많았었고 그 곁에는 언제나 제가 있었으니까요."

"고마워, 메피."


그렇게 말을 이어가는데 메피의 몸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러간 탓일까. 어느새인가 이별의 순간이 다시 다가왔다. 메피도 그렇지만 나 역시 당황했다. 


"아...이제 여기까지인가 보네요...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그래도 이렇게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메피... 이렇게 정말 가는거야...?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날 수 있을거에요. 우리는 약속했었잖아요. 저는 비록 구원자님의 곁에 더이상 있지 못하더라도... 밸레드가 그 곁을 대신해줄거에요. 그래도 그 아이는 구원자님께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어요. 그 아이를 대하는 것을 저처럼 대해주세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 아직 구원자에 대한 의문점도 그 외에도 해결을 못했어도...?"

"제가 믿지 않았다면 구원자님을 제가 이곳으로 부르지 않았을거에요. 그렇지만 구원자님께서는 모두를 위해 많은 노력도 해오셨었고 많은 잔부상을 겪으면서도 모두를 구하려고 하셨으니까요. 부디 구원자님께서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메피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가 사라져가는 속도가 빨라져간다. 안돼 메피. 나에게 이렇게 작별을 고하지 말아줘. 어떻게 다시 만났는데 또 다시 헤어지려고 하니까 마음에 비수가 여러번 꽃히는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메피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도 나의 손을 보고 어떤 의미임을 알았을까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우리는 손을 잡았다. 몇 초만이라고 해도... 이 순간은 영원히 남을 것이리라.


"구원자님.. 저도 구원자님과 이별하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파요. 시간을 멈출 수 없다는게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에요. 그렇지만.. 구원자님과 함께 쌓아온 추억들과 기억들... 저는 모두 가져갈 거에요. 가져가서... 그녀와 공유할게요. 그녀에게만큼은 구원자님에 관한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었어요."

"마지막으로 손을 잡아줘서 고마워, 메피. 많은 악수를 했지만 이 악수는 정말 영원히 내 기억 속에 남을거야. 언젠가 다시 만나자. 나는 다시 힘내서 나아갈게. 너의 희생이 비록 나의 원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볼게. 부디 하늘에서 나를 지켜봐줘."

"구원자님... 고마워요. 그럼 이만 여기서 작별이에요. 구원자님께서 부디 무너지지 말고 용기와 자신감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신의 축복이 부디 구원자님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그 말을 끝으로 메피는 사라졌다. 그녀와의 추억과 대화의 순간은 비록 보이지 않는 물체라고 할지라도 이 순간만큼은 나의 머릿속에 영원히 남게될 것이다. 그녀의 희생을 나는 결코 잊지 않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비롯한 모두를 위해서라도 나는 나아가기로 하였다. 또한 구원자라는 의문점에 대한 것은 끊임없이 답을 살펴봐야겠지만... 그래도 나는 '구원자'이기에 더이상 나약하게 있어서는 안되겠노라고 다짐하였다.


그렇다고 유리아를 다시 잡아와 패배기록 자체를 지우겠노라 라는 근자감은 가지지 않았다. 나의 목표는 이렇게 3가지로 정했다.


첫번째로 구원자에 대한 해답을 찾을 것. 

두번째로 유리아와 에덴을 모두 구해낼 것. 

세번째로 메피와 다시 만나는 것.


이 모든 것은 시간이 걸리고 난이도가 최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해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제는 반등을 절실하게 느끼고 고군분투 해보겠노라고 다짐하였고 하늘을 보며 이별한 메피를 떠올리며 나는 일어나 다시 내려갔다.


-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