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에붕이들. 간간히 채널 눈팅하는 에붕이 1이야.

 

최근 엡소 채널에서 나오는 정령들의 유물 이야기 시리즈를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거북선에 대한 내용은 다 알고 있다면서 바로 생략했더라고... 그래서 좀 아쉬운 마음에 이렇게 거북선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해 볼려고 해. 좀 긴 내용이 될 것 같아 지루할 것 같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봐주길 바래. 그럼 출발~!


1. 기원

먼저 거북선의 기원부터 보자. 흔히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이 만들었다니 그 부관인 나대용이 만들었다니 하는 얘기가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순신은 거북선을 만들었다기 보다는 우리가 아는 형태로 개량했다고 보는 게 맞아. 사실 거북선과 비슷한 개념의 배는 임진왜란보다 한참 이전부터 존재했는데, 대표적으로 고려 시대에는 과선이 있었어. 과선은 고려 초기부터 운용한 돌격선으로 고려 현종 대부터 숙종까지 여진족들이 해적질을 벌이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과선을 운용했다는 기록이 있지.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로 들어서면 검선이라는 소형 선박도 나오는데 이 검선은 거북선마냥 배에 단검을 꽃아서 왜구의 침입을 막았다고 해.


본격적으로 거북선이란 명칭이 등장한 건 바로 태종 시절이었어. 태종실록 25권과 30권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와

'임금이 임진도(臨津渡)를 지나다가 거북선[龜船] 과 왜선(倭船)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태종실록 20권, 태종 13년 2월 5일)

"여섯째는, 거북선[龜船]208) 의 법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가위 결승(決勝)의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戰勝)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태종실록 30권, 태종 15년 7월 16일 좌대언 탁신의 사의)


물론 태종실록에서 나온 거북선이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과 같은 배는 아닐 가능성이 높아. 태종 시대의 거북선이 어떤 형태였고 무슨 목적으로 운용했는지에 대한 자료가 일절 없거든 다만 탁신이 올린 상소에서 '적과 충돌해도 해칠 수 없다'는 언급을 봐선 적어도 방호능력은 일단 갖췄다고 볼 수 있어.


이후 임진왜란 당시 판옥선을 개량해 우리가 아는 거북선이 만들어 졌는데 정확한 개발자에 대한 정보가 일절 없어. 부관 나대용이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고 이덕홍이라는 선비가 거북선을 구상해 류성룡을 통해 이순신에게 전달했다는 전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야사에 불과해. 다만 확실한 것은 왜란 당시의 거북선을 건조하라고 지시한건 이순신 장군이 맞다는 거지.


운용

이순신 장군이 첫 거북선의 건조를 마친 건 왜란이 발발하기 직전이라고 해. 단 처음부터 투입하진 않았고 사천 해전부터 투입했는데 여기서 거북선은 적진 깊숙히 돌격해 충각 전술로 적선을 박살내고 내장된 화포로 불살라버리는 돌격선의 역할을 수행했어. 이런 전술은 왜선에게 기가 막히게 잘 먹혔는데 영화 한산에서도 봐도 알겠지만 왜란 당시 왜수군의 전법은 적선에 가까이 접근해 조총 사격을 날리거나 적선에 승선해 백병전을 벌이는 것이었는데 거북선은 내구도도 높은데다 창칼이 달린 지붕이 있었기에 승선하기가 까다로워 왜군 특유의 전법을 살리기 힘들었어. 추가로 왜선은 주로 삼나무 재질이었는데 속도는 빨랐지만 내구도가 약해서 판옥선과 부딪치는 순간 침몰은 거진 확정이었지. 판옥선만 해도 충각당하면 위험할 지경인데 대놓고 돌격선으로 만든 거북선이 뜨면...? 왜군 입장에서는 배가 부딪치지 않길 바래야 했지.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으로 쏠쏠한 전과를 올렸는데 이 당시 조선 수군의 주요 전력은 판옥선이었기에 거북선이 적진으로 돌격해 충각과 화포로 적선을 유린하고 그 사이 판옥선이 원거리에서 화포로 박살내는 전법을 즐겨썼다고 해. 


초기에는 3척 정도였지만 나중가면 7~8척 정도 늘어나는데 안타갚게도 전쟁 후기에는 거북선들이 모두 침몰해버렸어. 어째서 그리 됬는지는 말 안해도 알겠지? (원X 그 망할 자식)


일본이 본 거북선

이렇듯 거북선에게 하도 호되게 당하다보니 왜 수군은 거북선을 두려워했는데 기록을 보면 왜는 거북선을 메쿠라부네라 부르며 이들이 눈먼 배마냥 돌격해 충각을 가하면서 화포를 쏴재겼다고 기록했어. 얼마나 두려웠는지 에도시대때는 가토 기요마사가 복카이센, 즉 거북선을 퇴치한다는 내용의 연극이 성행했고(영화 한산에서 나오는 복카이센이 바로 요것.) 거북선을 본따 '메쿠라부네'를 만들었다고 하지.


(요게 바로 일본의 '메쿠라부네')


내부구조

(거북선의 진짜 내부구조는 어느쪽일까?)

거북선과 관련된 논쟁 중에서 가장 유명한 걸 꼽자면 역시 내부구조라 할 수 있어.  초반에는 거북선이 2층 구조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2층 구조는 노를 젓는 구간과 화포 구간이 겹치게 되기에 포를 쏠려면 이동을 못하고 이동을 못하면 포를 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나온게 바로 3층설이야. 상술한 구간 문제는 해결되지만 문제는 무게가 무거워서 얕은 해안가에서의 운용이 힘들다는 단점이 있지. 그래도 2층 구조보다는 나름 합리적인지라 요즘에는 3층 구조 또는 이 둘을 절충한 2.5층 구조 위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해.


한편으로는 노의 구조도 논쟁거리였는데 과거에는 판옥선처럼 조선식 노를 썻을꺼란 주장이 주요였지만 최근에는 서양식 노를 썻다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음. 재미있는 건 이 서양식 노 가설은 한국의 배를 서양에 알린 호러스 호턴 언더우드가 처음 주장한 가설이지만 그동안 무시당해오다가 다시 재조명 받게 되었다는 점이지. 


철갑선?

옛날에는 거북선이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다라는 얘기가 떠돌았지만 사실 거북선이 철갑을 둘렀을 가능성은 없어. 실록을 보면 거북선 얘기는 나와도 그것이 철갑선이라는 얘기는 일절 없고 무엇보다 당시 조선 수군은 쇠를 수급하는게 진짜 힘들거든. 오히려 조선보다는 일본쪽에서 거북선이 철갑선라는 얘기가 나왔어.

   

전쟁 이후

(이충무공전서의 전라좌수영 거북)

마지막으로 왜란 이후의 거북선에 대해 알아보자. 왜란 이후로도 거북선은 건조되어 조선 수군에 배치되었는데 왜란으로부터 200년 뒤인 정조 시기 1700년대에는 40척을 운용했다고 해. 크기와 형태 역시 시대에 따라 개량되면서 많이 달라졌는데 왜란 당시에는 지붕에 창칼을 달고 포문이 전부 합쳐 14문이었지만 1700년대로 들어서면 지붕에 달린 창칼은 사라졌고 크기와 화력이 늘어나게 되지. 현재 상세한 형태를 알 수 있는 거북선은 1795년 집필된 이충무공전서에 나오는 통제영 거북선과 전라좌수영 거북선인데 통제영 거북선은 총 72문의 포를 장비했고 전라좌수영 거북선은 총 36문의 포를 장비했다고 해. 이후로는 건조 횟수가 줄긴 했지만 1888년 박영효가 고종에게 올린 상소라던가 1872년의 지방도에 거북선의 그림이 남아있다는 걸 봐서는 적어도 고종대까지는 계속 운용해온 모양이야.


이상으로 거북선에 대해 알아봤어. 어때? 지금껏 거북선에 대해 알고는 있었어도 이런 뒷이야기가 있다는 게 재미있지 않아? 이렇듯 우리가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이라도 그 숨겨진 뒷이야기를 좀 더 알아보고 느껴봤으면 좋겠어.


그럼 이것으로 긴글을 마칠게. 다들 읽어줘서 고맙다.


추가)그냥 넘어간줄 알았는데.. 숨겨져 있던걸 내가 그대로 믿고 넘겨버렸네... 아이고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