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나인에 다시 한번 대형 게이트가 터졌다.

평화로움을 틈타서 게이트를 연걸로 보이는데 막아야 했다.


허나 막기에는 상대의 인해전술과 큰 차이나는 병력에 밀려서 어느새 내 쪽은 이디스 린지 등 일부 정령만 함께 하고 있고,

대부분은 쓰러졌다.


"구원자라더니 고작 이 정도냐, 그러고도 케이린 님의 사명을 꺾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 것이냐, 한심한 놈"


흑기사가 조롱했다. 옆에 있던 케이린도 비웃으면서 한마디 던졌다.


"오래 버틴건 높게 사주지, 허나 네놈이 저번에 저질렀던 방해 공작을 난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기억은 하고 있겠지. 각오해라"


무력한 건 어쩔 수 없었던 걸까. 확실히 나는 케이린보다 약하였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살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도와줬던 정령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죽어라, 전원 공격해라 !"


그렇게 시작된 대규모와 소규모의 전투. 끝까지 결사항전으로 버텨보았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지금도 함께 해주는 인원들마저도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것 뿐.


"무능한 저 개자식을 지지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게 해주지, 잘가라 정령"


 그리고 흑기사가 마침내 이디스에게 죽음의 칼날을 휘두르려 할 때였다.


"구원자님 !!!"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되었다고 생각했던건지 나는 이디스를 감쌌다.

흑기사의 칼날이 내 등을 완전히 찢어 놓는 순간 나는 그 때서야 생각했다.


'모두가 나를 위해 해주고 있는데..나는 도대체 뭘 한걸까'


"무엇이냐, 네놈이 정령을 감싼다고...? 정말 진심으로...?"


케이린이 놀란 듯이 말했다. 그러나 흑기사는 경멸 섞인 일갈만 날릴 뿐이었다.


"크하하 !! 웃기는군... 네놈이 그래봐야 넌 아무도 구원하지 못한다 !!"


"구원자님... 어째서인거시와요...?"


이디스가 나를 안으며 눈물을 흘렸고 나는 그 슬픔을 받아들이면서 말했다.


"모두가... 내가 구원자라고 열심히 하는데... 미안해, 내가 할 수 있는게... 너무 무능해서..."


"그것을 이제서야 알았다니, 참 너도 깨우침이라고는 늦는 녀석이군, 그래도 지금이라도 안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조금전에 놀란듯이 말한 케이린이었으나 그것은 가면임을 안 것은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는 듯이 천천히 나와 이디스에게 다가왔다.


"절망에 빠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지, 너를 안고 우는 녀석은 정말로 너를 아끼고 사랑한 모양이군. 허나 그것도 잠시일 뿐이다. 이 녀석의 죽음으로 네 얼굴에 절망과 죽음이 동시에 떠오르는 것을 보고 승리를 선언하겠다."


그렇게 말하며 케이린은 이디스에게 완전한 소멸을 위한 술식을 부리려 했다. 

이렇게 된다면 나는 구원도 해주지 못하고 그저 "거짓된 구원자"라는 오명 아래에 죽게 될 것임이 눈에 훤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나는 떠올렸다.


'너는 구원자 잖아 ?'

'구원자님 제가 언제나 서포트 해드리겠습니다.'

'구원자님 덕분에 언제나 평화로워서 항상 감사합니다 !'


아무리 내가 무능했어도, 아무리 내가 자질이 있는가 여러차례 의심했을지라도,

그런 나를 지지하고 응원과 찬사를 보내주었던 정령들.

그리고... 파우스트 박사.

....메피스토펠레스.


'언젠가 다시 만나자 메피, 죽지 말고 다시 만나자.'

'구원자님... 감사합니다'


특히나 메피스토펠레스는 정령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서 운석에 부딪혀가며 희생했다.

나를 도와줬던 정령들 그리고 그녀의 희생을 생각하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 나는 "구원자" 니까. 

죽을 때는 죽더라도 한방은 먹이고 죽겠다.


라고 생각한 순간 나는 온 몸에 힘을 다 끌어모아 케이린에게 반격했다.

손에 지팡이를 쥐고 케이린의 흉부에 큰 충격을 가했다.


"크헉 !!! 뭣...!!"


"결정타다... 맛이 어떠냐...!"


케이린은 내 반격을 받고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가슴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그녀는 피를 토했다.

그를 본 흑기사도 역시 분노하여 달려들었다.


"곧 죽을 놈이 뭐 아쉽다고 덤벼드는거냐 !! 죽어라, 거짓된 주인이여 !!!!"


"구원자님 !!"


이디스의 절규섞인 외침이 들려왔다. 허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이들을 지켜줘야할 의무가 있었으니까.

죽을 때는 죽더라도 그들을 지키고 죽는 것이 오히려 나에게 좋은 선택지이니까.


흑기사가 흉폭하게 칼을 내리침과 동시에 나는 간신히 흑기사 등 뒤로 피했고,

바로 보인 흑기사의 빈틈에 나는 지팡이의 날카로운 부위를 흑기사 등에 꽃았다.


"크아악 !"


갑옷을 입었다고 하지만 그 강도가 과연 모든 것을 막아내리라는 보장도 할 수는 없는 법.

흑기사 역시 케이린처럼 쓰러졌다. 나는 곧 죽을 몸이었지만 저들에게 마지막 일갈을 날리려고 한걸음씩 사력을 다해 다가갔다.


"이제... 알겠지..?"


"네놈.. 곧 죽을 놈일텐데...! 어디서 그런 힘이...!!"


케이린이 상처부위를 잡으며 나에게 분노의 말을 섞어냈다.

허나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간 침공한 횟수를 비롯해 죽은 정령들의 수 특히나 메피스토펠레스의 희생과 결부하면 굉장히 화가 나기에.

나는 그녀에게 오니와 같은 표정으로 마지막 힘을 짜내서 일갈했다.


"그래.. 죽을 놈이지 곧. 그렇지만 알았어. 나는 "구원자" 이고, 네놈들의 침공을 막아내어 이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으니까..! 네가 인간의 왕인건 아무래도 좋아. 허나 네가 인간의 구원자라고 한다면 나는 정령의 구원자라고 할 것이고 네 같은 인간들이 과거에도 한 짓을 생각하면 네놈들의 자업자득이었으니까 말이지 ? 그리고 아폴리온의 운석을 막은건 메피의 공이지. 네놈들의 지분은 하등 없었잖아 ?"


"큭... 내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간 녀석에게 뭔 정이 있다고...! 설사 그 자식이 죽었다고 해도 당연한 거였다 ! 그만한 죗값을 치르는건 오히려 해야할 의무였다고...!!"


메피에 대한 것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얼버무리는 모습이 너무 가소로웠다.

그러니 약간의 떡밥도 조금 던져보기로 해봤다.


"닥쳐라. 나는 기원의 탑을 통해서 그녀와 당신의 동생의 관계도 다 알았다. 얘기해봐야 어짜피 이해도 안할테니 살아왔던 인생을 통째로 복습해봐라. 나는 곧 죽겠지만... 네놈의 죽음도 보고 죽는게 나에게는 즐거움이겠지만... 아쉽게 그러지도 못하게 되었으니 말이지..?"


"으...크윽... 네놈... 곧 죽을 새끼가...! 유언이라도 하는거면 친절히 받아두겠다.. 크큭... 네놈이 죽으면 어짜피 여기는 구원자 없는 무방비 세계니까...!! 지금은 물러나겠지만... 어차피 승리는 확정이 되었지. 크큭...크하하하 !!! 내가 이겼어 !! "


"그래... 지금이라도 마음껏 웃어두라고...? 가능한 오래 살아있길 바라지... 과연 승리의 여신이 너의 편인가... 나는 죽겠지만 네놈을 위해 내 곁에 한 자리는 비워두겠다..."


나는 그렇게 쓰러졌다. 케이린은 그런 조소를 남기고 철수를 명령하여 다시 게이트 바깥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게이트는 다시 사라졌다.


곧이어 나를 따랐던 이디스를 비롯한 정령들이 구원자님 하고 외치며 나에게 달려오는 모습을 끝으로 나는 눈을 감게 되었다.


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비록 갑작스럽게 떠맡은 구원자 였다고는 해도... 이들과의 교감과 사랑이 나에게는 굉장한 도움이었다.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면 슬프다. 허나... 오히려 다행일 것 같다.

구원자로써 어느 정도는 하고 죽었다고 생각하니까.


'메피.. 조만간 옆으로 갈게'


다시 만나자고 그렇게 내가 말했는데.. 그걸 내가 깨버리니 오히려 우습다.

그렇지만... 차라리 저승에서 메피랑 만나서 못 했던 이야기들을 하겠노라고 마음 먹은 것이 오히려 나을지도.


'에덴에 평화를 그리고 정령들에게 구원을. 나는 구원자니까'